<일요연재> 선감도 ㊳한없이 묵중한 시간의 굴레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2.10 05:00:00
  • 호수 1518호
  • 댓글 0개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시간이 있건 없건 간에 수용소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기야 그런 와중에도 어떤 아이들은 방앗간에서 햅쌀을 훔쳐내 세숫대야에다 밥을 지어서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을 꿀꺽꿀꺽 삼키기도 하고, 개구리나 뱀을 잡아서 구워 먹기도 했다.

물론 무엇보다 우선 배가 고파서 그랬지만, 그런 일탈행위를 통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시간을 벗어나는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확실한 목표

그런 때야말로 시간은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렀고 그 속에서는 시간 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아찔하면서도 짜릿한 그 찰나가 지나고 나면 한없이 묵중한 시간의 굴레가 이미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믿는 사내는 간혹 이상한 전화를 걸거나 받곤 했다. 손을 귀에 대고 진지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시늉을 했다.

“자기야, 난 여기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 거긴 어때? 음, 행복하다니 다행이야. 어제는 무지개다리를 넘어가서 잔치를 벌였다구? 하하, 재미있었겠네! 내 걱정은 하지 마. 시간만 빼 버리면 괴로움도 곧 즐거움으로 변하니까 말야. 그럼, 그렇지. 시간을 넘어 밤엔 꿈속에서 자기에게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현실에서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신들의 신세에 짜증난 원생들의 욕설과 주먹질뿐이었다.

용운으로서는 시간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악랄한 선감원 측이 작업시간을 몇십 분씩 조작하고 휴식, 식사, 수면 시간을 빼앗기도 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겐 꿈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선감도를 탈출하여 실현하고픈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부랑아가 아닌 한 인간 존재로서 세상을 걷는 것이었다.

나의 본질과도 같은 고향 땅을 찾아 보고, 그 땅을 눈물로 적시며 엄마와 함께 원한이 풀릴 때까지 울고, 그런 다음 열심히 살아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우뚝 서고 싶었다.

그러려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나태해지지 않아야 했고, 가장 확실한 시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용운은 세월이 흐르면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인간으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도 그동안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눈치채고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원생들은 그 악독한 누군가를 원망하고 욕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 그보다 더 저급해져 버리는 수가 있었다.

용운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쁜 물이 어디서 어떻게 배어들지 몰라 시시각각 자신의 마음속을 살폈다. 사실 용운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선감도로 잡혀 온 셈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원통하기도 했다. 원수를 죽이고 나서 혀를 깨물고 죽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허망한 짓이었다.

‘왜 그런 개보다 못한 새끼 때문에 내가 개같이 되어야 하는가? 오히려 이것을 하나의 기회로 삼아 이 장벽을 넘어 한층 멋진 인간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용운은 그렇게 다짐하곤 했다.

이른 새벽이었다. 난데없이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원생들 틈에서 백곰 반장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니미, 또 어느 놈이 토꼈나 보군.”

순간 용운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피에로 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연극이니까…….’


언젠가 영농장에서 중얼거리던 말이 뜻 모를 느낌으로 피어올랐던 것이다.

그 직감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변소에 갔다 왔다면서 늦게 나타났다. 급히 뛰어나가자 옥사 앞은 먼저 나와 줄을 서는 원생들로 혼잡스러웠다.

시시각각 살펴야 하는 마음 속
탈출 방지하려 귀신 소문까지

“씨팔새끼, 토낄려면 낮에 토끼든지 남 잠도 못 자게…….”

한 시간의 단잠을 손해 본 원생들의 투덜거림이 용운의 귓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곧 사장이 사감 선생과 두 명의 다른 일직 선생과 함께 나타났다.


사감 선생은 1반의 불침번에게 이것저것 빠르게 묻고 나서 수색 지역을 나누어 지시했다. 용운이 속한 3반은 마을과 공동묘지를 거쳐 당산까지였다.

“뛰어!”

왕거미 사장이 닦달하는 소리를 뒤로 들으며 원생들은 마을로 달려갔다. 부지런한 섬사람들은 벌써 일어나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마을 집으로 가서 뒷간까지 일일이 들여다보자 우물가의 두 여인네가 수군거렸다.

“또 누가 도망쳤나 보네.”

“글쎄, 그런 모양이여.”

마을에선 아무런 낌새도 챌 수 없었다. 공동묘지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살피던 백곰 반장이 중얼거렸다.

“니미럴, 탈출 방지하려고 귀신 소문까지 만들어 퍼뜨리더니만, 쯧쯧…….”

그러자 뒤따르던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누가 아니래요. 그렇게 꼼수 써서 복도에 똥싸는 놈만 생겼지 별 거 있어요?”

“말 그대로 전설 따라 삼천리 아니냐? 우리들 못 토끼게 하려고 헛소문 낸 거라구.”

“그런데 반장님, 헛소문인 걸 어떻게 알지요?”

“뻔한 수작이지 뭘.”

“그래요?”

“우선 귀신을 보고 한 달을 앓았다는 그 박씨부터가 확실치가 않어. 몇십 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에서 말야…… 세상에 옆집 여편네 속옷 색깔까지 빠싹한 동네 사람들이 그런 귀신 사건을 똑똑히 모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구?”

그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랬구나…….’

용운은 생각에 잠겼다. 또다시 수용소의 비정하고 메마른 벽이 실감되어 서글퍼졌다. 왜 이렇게 사람을 짐승처럼 가둬 두어야만 하는가.

뻔한 수작

공동묘지는 마을 너머 야산에 있었다. 무덤들은 억새와 찔레덩굴 틈에서 을씨년스럽게 침묵하고 있었다.

봉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마지못해 엉성하게 다져놓은 둔덕들만이 죽은 아이들의 눈 뜬 잠을 대변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