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㊲나이테처럼 내부에 축적된 시간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2.03 08:56:35
  • 호수 1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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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잘 들어라. 여기 끝까지 사람대접 받기를 마다하는 놈이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 소원대로 개돼지 취급을 해줄까 한다. 너희들은 간혹 체벌이 가혹하니 어쩌니 하지만, 이쯤 되면 너희들도 할 말이 없을 거다.”

그러더니 사장은 용운을 향해 명령했다.

개돼지 취급

“무릎 꿇어!”

그의 양손에는 몽둥이와 결박용 로프가 들려 있었다. 용운은 시키는 대로 물통 앞에 꿇어앉았다. 동시에 사장의 입에서 두 번째 명령이 무겁게 떨어졌다.


“얼굴 담가!”

용운이 불안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사장은 잠시의 여유도 두지 않고 구둣발로 가슴을 걷어찼다. 숨통이 탁 막히면서 정신이 아뜩해졌다.

사장은 숨을 고를 여유조차 주지 않고 계속 다그쳤다.

“한번 더 말한다. 얼굴 담가!”

용운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못하겠다 이거야? 어디 누구 고집이 센가 해보자. 대가리를 스스로 박을 때까지 맛을 보여 주겠다!”

입에 거품까지 문 사장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몽둥이로 부위를 가리지 않고 내려치다가 로프를 잡고 매달리자 서슴없이 얼굴을 걷어찼다.


눈에 번개가 번쩍 일면서 코피가 주루룩 쏟아졌다.

“아, 알았어요. 담글게요.”

용운이 이상스레 변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둥이만 놀리지 말고 실제로 처박으란 말야!”

우박처럼 쏟아지는 매를 피해 용운은 허겁지겁 기어가서 통 위로 얼굴을 들이댔다.

멈칫거리자 사장이 달려들어 목을 밟았다. 한껏 숨이 차 있던 상태여서 물은 단 몇 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대번에 몇 모금의 물이 연거푸 코와 입을 통해 폐로 들어가면서 숨이 막히는 엄청난 고통이 시작되었다. 용운은 양손을 땅에 버티고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빼들었다.

“어, 이게 대가리를 빼?”

사장이 다시 발길질과 몽둥이질을 닥치는 대로 퍼부었다.

“이 새끼, 바닷물에 뛰어든 새끼가 왜 갑자기 물을 겁내냐, 엉?”

이를 악문 사장은 뒤로 물러나는 용운을 직접 끌어다 물속에 쑤셔박고 무릎으로 찍어눌렀다. 용운은 팔로 버티며 필사의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체중을 실어 짓누르는 사장의 무릎은 그대로 거대한 바위였다. 그저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허리만 꿈틀대면서 속수무책으로 물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거의 혼절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사장은 겨우 무릎을 치웠다. 용운은 그대로 녹초가 되어 짚단처럼 널브러졌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육지에서와 달리 바다에 완전히 둘러싸인 섬 수용소에서의 시간은 화살처럼 직선적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둥글게 돌고 돌며 나이테처럼 내부에 축적되는 것이었다.

별로 변화가 없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어디에선가 정지해 버린 것도 같았다. 하루가 한 달 같고 한 계절의 흐름과 바뀜이 한 해처럼 여겨졌다.

그렇다 보니 아예 시간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여느 원생들과는 달리 자기가 다른 누구에게 끌려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곳에 왔다고 믿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공상까지
자기만의 몽상에 잠긴 삶

시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공상을 했다.


그는 수시로 외치곤 했다.

“시간은 없다. 다만 여기 내가 이 순간 존재한다!”

시간이 사라짐과 동시에 폭풍이 일어 모든 헛것을 날려 버리고 참된 이 순간의 삶만 남겨 놓았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없긴 왜 없어, 임마. 이렇게 지루한 것도 다 시간 때문인데.”

백곰 반장이 퉁박을 주었다.

“그건 이곳에서 벗어나면 서울에 가서 멋들어지게 살 수 있다는 헛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핏기라곤 없이 희멀건 얼굴을 습관적으로 흔들며 대꾸했다.

“야, 미친 새끼야! 저녁밥 먹고 한 시간도 안 지나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 바로 시간이 있다는 엄연한 증거인데 뭔 개소리를 지껄이냐. 그리고 내시 같은 네 상판에 쥐수염이 자라는 것도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 아니냔 말야?”

스라소니가 그의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으며 말했다.

“물론 우린 여기서 하루 스물네 시간 꽉 짜인 시간 속에서 살고 있죠. 그러나 그렇게 꽉 짜인 시간이 날이면 날마다 똑같이 쳇바퀴마냥 반복되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오히려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서울에서 시간에 쫓겨 살다 죽으나, 여기서 시간을 목구멍 속으로 삼켜 버리고 살다가… 뒈지거나 과연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요?”

옆에서 누가 비웃거나 말거나 그는 시간은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용운의 머릿속에는 문득 넝마주이를 할 때 보았던 한 여인의 방이 떠올랐다.

그 지하 골방에서는 벽에 걸렸거나 탁자 위에 놓인 수십 개의 시계가 째깍째깍, 딸깍딸깍 저마다 색다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제각기 다른 그 시계들의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전혀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수많은 시간 속에서 여인은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자기만의 몽상에 잠겨 살았다.

어둑한 방구석에서는 찌직찌직 잡음이 심한 레코드판이 돌며 이상스런 곡조를 흘려내고 있었다. 그 시계들에 매달아 놓은 꼬리표에는 각각 선물 받은 날짜와 어떤 추억 따위가 적혀 있었다. 이런 것도 있었다.

부서진 시계

‘영원성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것은 중요성을 다소 잃어버리게 된다.’

용운은 그 방에서 나오는 술병이나 잡지책 그리고 부서진 시계 따위를 주워 오기 위해 가끔 들렀던 것이다.

고장난 시계를 내버릴 때면 그녀는 어떤 소중했던 시간을 영원히 잃어버린 듯이 울상을 짓곤 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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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