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중인데? ‘일타 강사’ 전한길 “수개표해야” 노림수

유튜브서 “선관위가 혼란 초래”
조회수·구독자 늘리려는 의도?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한국사 ‘일타 강사’ 전한길이 지난 1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향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대만처럼 수개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수개표 방식을 채택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발언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씨는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관위의 사전투표 및 전자개표기 방식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며,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까지 선관위 탓으로 돌리는 주장을 펼쳤다.

영상에서 그는 “이미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의 사태에 대해 공정하게 보도하는 기능을 상실했고, 특정 이념과 정당에 치우친 보도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현재의 탄핵 정국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 바로 선관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군이 국회에 280명이 투입됐는데, 선관위에는 국회보다 더 많은 297명이나 투입됐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본인이 선거서 패배한 것도 아니고, 당선된 대통령으로서 선거 결과를 조사해 얻을 이득도 없는데, 처음에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자 공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의 감사에 반발하고 북한의 사이버 공격과 해킹 의혹을 조사하려는 국가정보원의 조사마저 거부했다”며 “선관위가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이라는 것에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뿐만 아니라 현 야당 대표 및 야당 국회의원, 전 여당 대표 및 여당 국회의원까지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나.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이 부정선거 의혹을 반드시 바로잡겠다며 계엄까지 선포하게 된 것”이라며 “선관위가 그야말로 총체적인 비리와 의혹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특히 선관위의 사전투표와 전자개표기 방식에 대해 전산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또 이 같은 의혹 제기가 대법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성향을 가진 판사들의 판결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라며 “부정선거 관련 조사 과정서 재검표 과정 공개도 제한하고, 조작 의혹이 제기된 서버 원본도 공개하지 않고, 서버 로그인 기록 공개도 거부하고, 전자개표기 분석도 금지했는데, 과연 투명하고 공정한 조사와 재판이 이뤄졌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전씨는 수작업 투표와 수동 개표를 시행하는 대만의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도 이처럼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제도를 갖추기를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개표 시 사람이 직접 투표용지를 확인하는 ‘수개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투표지 분류기’라는 보조 장치를 활용해 1차적으로 후보자별 분류를 진행한다.

하지만 투표지 분류기는 명확하게 기표된 투표용지만을 인식하므로, 기표 상태가 불분명하거나 무효표에 해당하는 경우는 사람이 직접 다시 분류해야 한다. 이 같은 한계로 인해 기계를 이용한 개표 과정의 투명성과 정확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그러자 선관위는 개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투표지 분류기를 거친 투표용지를 다시 한번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는 ‘전수 수검표’ 절차를 지난 22대 총선서 추가 도입했다.

관련 업계에선 전자개표기만 해킹해선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자분류기와 계수기는 말 그대로 분류와 계수의 역할만 담당하기 때문에 투표용지의 내용 자체를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서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세는 수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해킹 의혹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보호 관련 전문가는 “분류기와 계수기는 인터넷과 완전히 분리돼있어 실시간 해킹도 불가능하고 프로그램까지 설치하려면 내부 인원이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참관자와 투표용지를 세는 사람까지 매수해야 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계획적으로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해킹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사 ‘일타(1등 스타) 강사’로 자자한 전씨가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주장으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는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며 학생들에게 영향력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EBS 강사로 활동했으며, 현재 각종 공무원시험 및 한국사검정능력시험 강사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또 수년 전부터 제기돼온 부정선거 의혹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한 누리꾼은 “선관위가 이미 여러 차례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짜 투표지’ ‘전산 조작’과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며 대법원의 판결과 사법부까지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더 심각한 부분은 그가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배경에는 ‘수익 모델’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는 점이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국회서 열린 제5차 긴급현안 질의에서 일부 유튜버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유가 “수익 창출 목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들은 음모론으로 관심을 끌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전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대한민국 혼란 선관위가 초래했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으로 조회수와 구독자를 늘리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전씨는 지난달 6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첫 영상을 게재한 이후 약 2주 간격으로 꾸준히 현 시국에 대한 영상을 업로드해 왔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대한민국 혼란 선관위가 초래했다’(지난 19일), ‘대한민국 분열 언론이 초래했다’(지난 8일), ‘대한민국 위기 사법부가 초래했다’(지난 6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하면서 탄핵 정국의 원인이 사법부, 언론, 중앙선관위라고 주장했다.

눈에 띄는 점은 시국 관련 첫 영상을 업로드한 이후 조회수가 급격히 늘어난 부분이다. 20일 선관위 관련 영상을 포함해 최근 5개의 영상의 평균 조회수는 약 92.3만회다.


이에 반해 비상계엄 이전에 올라온 ‘국민연금 개혁해야 한다 반드시’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가 15만회였으며, ‘적성이 고민인 청년들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은 조회수가 5만회에 머물렀다.

권 의원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일부 유튜버들에 대해 “이들이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유는 수익을 창출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며 “이들은 음모론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로 인해 수익을 얻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선거를 비난하고 그를 통해 이득을 보려는 음모론자들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날 전씨는 현행 수개표 시스템이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운영 중이라는 다수의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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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