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정보사 12·3 비상계엄 사태의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그림자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그의 수첩에는 비상식적 단어들이 즐비하다. ‘수거 대상’ ‘사살’ ‘북의 NLL(북방한계선) 공격 유도’ 등이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은 노 전 사령관이 수첩에 적힌 내용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용현 같은 윗사람이나 중요한 사람과 말한 내용을 적는다. 현직일 때도 그랬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정보사 관계자의 말이다. 경찰이 수사 과정서 확보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사살’ ‘좌파 언론인’ 등 일부 정치인의 실명까지 거론된다. ‘북풍 공작’ 시나리오를 적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요 단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와 공조수사본부(공수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는 군 사령관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계엄 앞뒤 며칠 동안 벌어진 상황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각 지휘관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계엄을 수행했는지를 역추적하는 방식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수사 범위는 점점 넓어졌고 마지막 길목에는 항상 윤 대통령을 가리켰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 ‘부정선거 음모론’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계엄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완벽한 명분은 찾지 못했다. 수사기관은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이 명분의 핵심 증거라고 보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지휘자’로 지목된 이유는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이번 비상계엄의 ‘목적’으로 밝혔던 부정선거 의혹 규명을 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장악, 계엄 선포 이후 군 배치 계획 등에 대한 논의가 이 자리서 이뤄졌다.
노 전 사령관이 회동을 주도했고, 논의와 관련한 메모가 수첩에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계엄 이틀 전인 지난달 1일과 3일 외에 두 달여 전에도 접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 전 장관의 공소장과 정보사 관계자의 공조본 진술 내용을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정보사 소속 정성욱 대령, 김봉규 대령은 지난해 11월17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서 만났다.
이 자리서 노 전 사령관은 정성욱 대령에게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느냐”며 계엄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계엄 명분이 부정선거 음모론? 말 안 돼”
노 수첩서 ‘롯데리아 회동’ 내용 거론
정 대령은 이때보다 한 달 전인 10월 초,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다. 교육용 자료로 쓴다며, 부정선거 의혹 관련 유튜브 내용을 정리해 달라는 요구였다.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진급이 얼마나 남았느냐”며 김 전 국방부 장관의 이름을 거론했고 “네가 다음에 (진급)하면 되겠네”라는 취지로 말했다.
10월 중순에는 노 전 사령관이 정 대령에게 “특별 임무가 있을 수 있다. 사업(공작) 잘하는 똘똘한 놈 몇 명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정 대령은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답했는데, 며칠 뒤 문 전 정보사령관으로부터 같은 지시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은 정·김 대령에게 A4 용지 10여쪽 분량의 문건을 전달하기도 했다. 선관위 소속 관계자 명단과 준비 물품 목록이 적혀 있었다. 물품은 야구방망이, 니퍼, 케이블타이, 송곳 등이었다. 정 대령이 해야 할 임무로는 ‘명단에 적힌 선관위 직원들을 버스에 태워 수도방위사령부로 데려가라’는 취지의 내용이 ‘계엄’이라는 단어와 함께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정보사 관계자는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물품이 준비됐고 선관위 직원들의 신원을 파악했다는 내용까지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명단에 적어준)선관위 직원이 30명쯤 될 텐데, 출근하는 걸 확인해서 (선관위)회의실에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된다. 저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케이블타이로 묶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태악(선관위원장)이는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둬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사령부 구성 이후 만들어질 합동수사본부 내 별동대인 수사2단을 지휘하려고도 했다. 이 집단은 정보사 소속 위관·영관급 현역 장교 60여명으로 구성해 1·2·3대로 나눠 운영하기로 했다. 경찰과 검찰이 파악한 조직도에 따르면, 단장은 구삼회 2기갑여단장, 부단장은 방정환 전작권전환 TF장이었다.
1대장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장 김모 전 대령이었고, 2대장과 3대장은 김 대령, 정 대령이 맡았다. 1대에는 군사경찰들이 배치됐고, 2대와 3대에는 정보사 현역 요원들이 투입됐다. 정보사 요원들은 ‘호남 출신이 아니고’ ‘몸이 건장하고 힘을 좀 써야 한다’는 등의 선발 조건이 붙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의 서해 NLL 공격 유도 의혹 규명 필요
부담 덜한 우회 공작 ‘정보사 820’ 몫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조직도만 그렇지 실질적으로 그림자 단장은 노상원이었다. 본인이 단장을 맡겠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 수사2단의 구성은 김 전 장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단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장관이 선관위에 투입할 부대로 정보사 요원과 방첩사 요원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과 관련해서는 “수첩의 존재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은 김 전 장관이 수첩의 존재를 모를 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노 전 사령관과 같이 근무했던 정보사 관계자는 “노상원이 공작에는 문외한이어도 국정원 파견 업무 이후 777사령관도 지냈다. 대북 정보와 첩보 수집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820 전문가 탑인 정 대령과 ‘공작 잘하는 애들을 선별하라’고 얘기한 이유가 뭐겠느냐”며 “본인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공격을 유도할 방법’인 우회 공작을 실행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롯데리아 회동’ 때 적은 내용 외에도 김 전 장관과 통화하거나 만났을 때 (수첩에)적은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체불명 집단
군 안팎서도 계엄이 유지됐다면 노 전 사령관이 수사2단을 주축으로 북풍 공작을 실행하려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서해 NLL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는 게 부담이 크지 않은 선택지다. 계엄 명분으로도 적합하고 우회 공작을 통한 실행 성공 가능성도 높은 편”이라며 “정보사 820을 선별한 목적이 그저 선관위 직원들을 압박하기 위함이라고 보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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