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색출’ 바쁜 국민의힘 이중플레이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2.30 14:40:13
  • 호수 1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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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이해해야 버틴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배신자 색출과 따돌림에 바쁜 국민의힘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배후중상설에 심취한 전간기 독일을 연상시킨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오늘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대부> 3부작의 위대함을 반증한다.

비상계엄 사태 발생 다음날인 지난 4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선 “윤석열 대통령이 고독할 때, 우리가 말벗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었느냐”거나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등 윤 대통령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찬성했다고
신변 위협까지

국민의힘 김민전 당시 최고위원은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서 울먹였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놓고, 김 전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얼마나 무도한지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계엄이라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 당시엔 우왕좌왕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과 이틀 만에 ▲윤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이해 ▲남 탓이라는 등 논리구조를 완성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 요구가 거세게 일어나고, 야권이 윤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즉, 당의 정권 재창출이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세 번째 논리구조는 ‘배신자 색출’이었다. 이는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결된 이후 불거졌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찬성하면서 탄핵소추가 가결되자, “탄핵을 두 번 당한 정당이 어떻게 정권을 다시 잡겠느냐”는 공포가 현실화됐다. 공포는 ▲찬성표 12표 ▲기권 또는 무효표 11표 ▲탄핵 찬성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한동훈 당시 대표 등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JTBC는 지난 14일 진행된 국민의힘 비공개 의총 녹취를 일부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들은 한 전 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했고, 일부 의원은 그에게 물병을 던지기까지 했다. 한 전 대표는 “비상계엄은 제가 한 게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한 친윤계 의원은 한 전 대표를 일컬어 ‘도라이’라고 지칭했다.

“저런 놈을 갖다가 법무부 장관을 시킨 윤석열은 제 눈을 지가 찌른 것”이라고 비난하는 의원도 있었다.

한 전 대표가 지난 16일 사퇴하자, 분노는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에게로 번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전 대표의 사퇴 전인 지난 11일 한 전 대표와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을 ‘한동훈과 레밍들’이라고 지칭하면서 “당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19일 “국민의힘서 탄핵 찬성 의원에게 가까이 다가가 ‘배신자’라고 속삭이거나, 일부러 악수를 피하는 등 노골적인 따돌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던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은 지난 2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현실적으로 거처를 공개하면 신변의 위협도 느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이런저런 협박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이상휘 미디어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해당 보도에 대해 “사실 확인 없는 왜곡·과장·허위 보도고, 제보자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물론, 이 위원장의 반박은 큰 설득력을 얻고 있진 못하다. 김 의원이 인터뷰서 ‘신변의 위협’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응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정립했던 ‘죽음의 5단계’ 중 1단계 부정과 2단계 분노가 섞여 있다.


죽음 5단계 중 부정·분노
결국 못 벗어나고 허우적

‘배신자 색출 및 조리돌림’으로 마무리되는 3단계 논리구조는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독일서 광범위하게 유행했던 배후중상설을 연상시킨다. 동부와 서부서 양면 전쟁을 치렀던 독일은 1918년 2월 소련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해 동부전선의 압박서 벗어난다.

하지만 소련보다 국력이 월등한 미국이 참전하자, 주요 방어선 힌덴부르크 선이 무너진다. 이어 주요 동맹국들의 항복과 영국의 해상 봉쇄에 따른 경제난에 직면하자, 독일도 항복한다. 

독일의 권력을 잡고 있던 군부는 연전연패라는 전황을 숨기는 언론통제를 진행했다. 내각도 항복 직전이 돼서야 전황을 정확히 알았다. 항복 이후 황제 빌헬름 1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했다. 독일 국민들에게 항복 소식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함께 닥쳐온 것은 일부 유대인이 주도했던 극좌 봉기였다. 이에 맞서 극우 세력도 폭동을 일으켰다. “영국·프랑스 등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베르사유 조약도 알려졌다. 이는 구 군부를 포함한 우익 세력이 배후중상설을 주장했던 직접적인 계기였다.

당시 독일서 유행했던 배후중상설의 내용은 “독일이 전쟁서 진 이유는 유대인과 좌파가 등 뒤서 칼로 찔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구 군부 세력에게 훌륭한 면피의 명분이 됐다. 군부 세력의 핵심이었다가 전쟁 패배 후 독일을 떠났던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인터뷰 도중 당시 상황을 놓고 “등 뒤서 칼에 찔렸단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내 말이 바로 그것”이라고 답변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부 1인자였다가 아돌프 히틀러의 총통 취임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도 배후중상설을 퍼트린 배후였다. 히틀러는 배후중상설을 충실히 이어받아 유대인 절멸을 시도했다. 배후중상설은 인지부조화와 책임전가를 조합한 주장이었다.

국민의힘 내 ‘배신자 색출’ 움직임도 윤석열정부의 사실상 몰락 이후 “책임지기 싫다”는 심리와 위기 상황서 만만한 사람을 적으로 삼아 두들겨 패면서 뭉치는 심리가 결합한 결과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영화 <부산행>에 있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이 열차서도 진행되자, 안전한 칸에 있던 생존자 중 일부는 다른 생존자를 위해 문을 열어줄 경우 감염자들이 함께 몰려올 것을 두려워해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훌륭한 
면피 명분

문을 열지 않았던 생존자들은 감염자와 동행했던 생존자들을 감염자로 몰아 안전한 칸에서 내쫓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좀비 영화서 자주 나오는 설정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비판 여론이 클 수밖에 없다. 정치는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정책과 법률을 결정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겐 더 가혹한 인내심과 냉철함이 요구된다.


‘배신자 색출’은 마피아·갱스터 영화서 흔히 다루는 설정이다. 미국 마피아 영화 <대부> 3부작의 중심 내용도 배신자 색출이다. <대부>는 훌륭한 정치학 교본이다. 여전히 회자되는 명대사들에 정치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1부 주인공이자 대부인 돈 비토 코를레오네는 대자인 가수 겸 배우 조니 폰테인으로부터 하소연을 듣는다. “잭 월츠라는 영화 제작자가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자신의 영화 출연을 막으니 해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비토는 울면서 하소연하는 대자의 따귀를 때리면서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꾸짖은 후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고 말한다.

비토가 말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잭 웰츠의 침대에 그가 애지중지하던 말의 잘린 머리가 올려진 것으로 드러난다. 이후 조니는 원하던 영화에 출연했다.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는 대사의 취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문에도 담겨있다. 결정문엔 “대통령의 재단 출연 요구는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부담과 압박이고,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어, 기업은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권력자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지지율 폭락에 시달리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절대권력을 얻는다면, 윤 대통령의 제안은 침대에 잘린 말 머리가 있는 것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제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엔 “누구도 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어 등장하는 <대부>의 명대사는 “화해를 권유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배신자”다. 비토는 타탈리아 패밀리와의 항쟁서 장남 소니 코를레오네를 잃는다. 그 결과, 비토가 정치인으로 키우려고 했던 셋째 마이클 코를레오네가 후계자가 된다. 

이후 비토는 오랜 친구 돈 바지니가 자신의 패밀리를 노리고 타탈리아 패밀리를 배후조종해 항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 마이클에게 “돈 바지니가 우리 조직원을 매수해 너를 해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다. 이때 나온 대사가 “돈 바지니와의 화해를 권유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배신자”였다.

편한 사람
더 가까이

돈 바지니는 소니를 죽인 불구대천의 원수인데, 화해를 언급하는 사람이 있다면 배신자일 가능성이 높다. 비토는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출신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친족 중심으로 움직이고, 시칠리아 마피아는 복수를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돈 바지니와의 화해는 있을 수 없다. 

강성 친윤의 관점서 볼 때,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해 ‘조속한 직무 정지’ ‘탄핵’ 등을 언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일 소지가 많다. 그런데 정작 저 대사를 여러 번 곱씹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한 전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면 무너진다. 한 전 대표 체제는 친한계로 거론됐던 장동혁·진종오 의원이 사퇴에 합류하면서 무너졌다. 

장 의원은 비상계엄을 해제한 국회의원 190명 중 1명이었고, 진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영입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 그들이 한 전 대표 체제를 무너트린 이유는 ‘탄핵 반대’였다. 그들의 탄핵 반대는 친윤과의 화해 권유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그들에겐 ‘국민의힘 붕괴 방지’라는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존속이 국민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들은 비판 대상이 됐다. 한 전 대표 관점에선 둘째 형 프레도 코를레오네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단 사실을 알았던 마이클의 충격에 버금갔을 것이다. 물러설 수 없는 명분과 화해는 양립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비토는 아들에게 이를 짚은 충고를 한 것이다.

반대로 한 전 대표에게 적용할 수 있는 대사도 있다. 코를레오네 부자가 한 번씩 말하는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대사다. 이는 비토가 후계자로 낙점된 마이클에게 남긴 경영철학이었다. 원전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조직과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적을 더 가까이 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가까이 지켜봐야 포섭할 가능성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편한 사람만 가까이 해선 다양한 능력을 두루 부릴 수 없다. 마음의 지옥을 감수하는 것이 조직의 수장이 견뎌야 할 운명이다.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지나치게 뚜렷하다. 이들의 호불호에 국민의힘 의원들도 같이 춤을 췄다.

윤석열·한동훈 모두 못 지켰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적대적인 사람에 대한 독설을 아끼지 않는 한 전 대표의 평소 성향은 결국 국민의힘서 쫓겨나는 이유가 됐다.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가 무력화된 후 국민의힘은 ‘중진의힘’으로 통한다. 두 사람의 공백을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등 5선 이상 중진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비상 의원총회서 중진들의 주도로 5선 권영세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중진의힘이 주도하는 국민의힘은 우리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신세계>도 겉으로는 조직폭력을 다룬 범죄 영화지만,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신세계>의 배경은 3개의 폭력조직이 통합한 후 기업화한 골드문이다.

이를 주도한 석동출 회장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이어 석동출의 직계 이중구와 실질적 2인자 정청이 후계자 다툼을 하는 상황이 내내 이어진다. 

영향력을 거세당했던 명목상 2인자 장수기는 계열사 분리를 약속하면서 이중구·정청으로부터 소외된 원로들을 포섭하려고 한다. 원로들은 “족보대로, 공식 서열대로 가는 것이 남들 보기에도 좋지 않느냐”면서 흐뭇해한다. 원로들이 추대한 차기 회장 후보는 장수기였다. 원로들이 ‘족보대로’ ‘공식 서열대로’를 강조하면서 뭉치는 상황,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제4차 대국민 담화서 “여기저기서 광란의 칼춤을 추는 사람들은 나라가 이 상태에 오기까지 어디서 도대체 뭘 했느냐”면서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선포로써, 정작 칼춤은 자신이 춘 꼴이 됐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칼춤’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묘해진 <신세계> 마니아들이 많았을 것이다.

후계자 다툼서 패배 직전으로 몰린 이중구는 경찰관 강형철로부터 정청을 제거하기 위한 대규모 항쟁을 제안 받았다. 그러자 이중구는 “나더러 칼춤이라도 한 번 추라는 말이냐”면서 화를 냈다. 이중구는 항쟁을 결정한 후엔 “까짓 거, 내 칼춤 한 번 춰주지, 춰준다”고 말한다. 

<신세계> 내 항쟁과 대한민국의 비상계엄은 모두 같은 결말로 끝났다. 한 전 대표와 정청이라는 정적은 제거했지만, 윤 대통령과 이중구는 모두 무력화됐다. 이중구는 윤 대통령과는 달리 패배를 인정했다. 이중구의 깔끔한 패배 시인을 접한 정청의 부하들은 이중구를 살해하면서도 예우를 갖췄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 주요 정치인들을 모두 체포해 경기 과천 소재 방첩사령부에 수감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정적 한 순간 일망타진’은 <대부> 2부와 <신세계>의 주요 장면이다. <대부> 2부서는 마이클이 참석한 조카의 세례식 장면과 부하들이 뉴욕의 다른 패밀리 수장들과 배신자들을 모두 제거하는 장면이 교차한다. 

<대부>와
<신세계>

<신세계>에선 정청의 후계자이자 골드문에 침투했던 위장경찰 이자성이 골드문 접수를 결심한 후 자신의 정체를 아는 경찰관들과 주요 정적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모두 갱스터 영화의 흐름서 못 벗어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가원수고, 국민의힘은 여당이다. ▲폭력을 활용한 정적 제거 시도 ▲책임 회피 ▲배신자 색출 및 조리돌림 등은 국가원수와 유력 정당이 할 행동이 아니다. 이들이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지니까”라는 <대부> 3부의 대사를 음미할 줄 알았더라면,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부>의 위대함을 방증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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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