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이 시간 벌어준’ 동대문 분양사기 증거인멸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한 피해자들이 믿을 건 경찰뿐이었다. 금방 끝난다는 경찰의 말을 동아줄처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피해자들은 이제 경찰을 믿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늑장 수사 절대 아닙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시사> 보도(1502호 <단독> ‘빌라 사기’ 동대문경찰서 늑장 수사 내막) 이후 직접 전화로 해명했다. 동대문구 분양사기 사건에 대한 동대문경찰서의 빠른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 현장을 다룬 기사였다. 동대문구 용두동 현장서 분양사기 피해를 본 이들은 지난 10월11일 서울경찰청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부도 났다”
피해 인지

사건은 지난해 5월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신축 빌라를 분양한 공인중개사가 분양대행을 맡은 또 다른 공인중개사로부터 “부도가 났다”고 통보받은 게 시작이었다. 용두동 1차 현장은 80~90%가량 공사가 진행됐고 2차 현장은 땅만 매입한 허허벌판 상태였다. 

용두동 1차 현장은 15세대, 2차 현장은 13세대로 총 28세대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른바 선분양을 받은 이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르고도 빌라의 소유권을 얻지 못했다. 뒤늦게 확인한 등기부등본에는 수십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였다. 빚이 덕지덕지 붙은 현장은 순식간에 경매로 넘어갔다. 

재테크를 위해 투자한 사람,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빌라를 산 사람 등 20여명에 이르는 수분양자들은 피해자로 전락했다. 특히 용두동 2차 현장은 지난 8월 말 경매 처리가 완료되면서 수분양자의 돈 17억2000만원이 공중분해 됐다. 용두동 1차 현장도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건설 현장에서는 시행사가 사업을 주도한다. 시행사는 시공사를 선정하고 필요한 돈을 댄다. 대부분 올라갈 건물을 담보로 금융권서 돈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한다. 이후 공인중개사 혹은 분양대행사, 매도인과 매수인이 등장한다.

돈이 오가고 권리주체가 바뀌면 그때부터 건물은 재테크 수단 또는 거주 공간이라는 ‘집’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용두동 현장은 등기부등본에 존재하는 건축주(시행사) 뒤에 또 다른 건축주가 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등기부등본의 건축주는 ‘바지’고,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지난 10~11월 4차례에 걸쳐 진행한 집회서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홍모씨’다.

분양계약은 이른바 바지 건축주와 진행됐다. 은행 대출도 바지 건축주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계약금과 중도금도 바지 건축주의 계좌로 들어갔다. 하지만 소유권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분양자는 바지 건축주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바지 건축주 역시 실제 건축주로 추정되는 홍씨에게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수사 개시
18개월 동안 지지부진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수법으로 ‘부도가 난’ 현장은 용두동의 2곳을 비롯해 7곳에 이른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장안동, 성북구 성북동,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등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수십명, 피해 금액은 100억원대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경찰을 찾았고 용두동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에서 사건을 ‘인지 수사’ 형태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수사 개시 시점은 지난해 7월이다. 동대문경찰서는 수사 초기 사건에 굉장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다른 지역의 사건을 가져오고 대대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 고소·고발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 피해자는 경찰의 재촉에 해외여행을 갔다가 귀국한 다음 날 조사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경찰이 3개월 안에 마무리 짓겠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올해(2023년) 말에 마무리하겠다고 말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18개월이 흘러 현재에 이르렀다. 동대문경찰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

결국 피해자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먼저 홍씨 등을 사기,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홍씨 등은 빌라 분양을 빌미로 거액을 편취한 뒤 토지와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무가치 상태로 만들어 경매에 부쳐지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0월1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진행한 집회를 시작으로 동대문경찰서, 국가수사본부 등지서 피해를 호소했다. 동대문경찰서가 홍씨를 구속하고 수사를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경찰 수사가 늘어질수록 추가 피해와 피해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숨어 있는
실소유주

용두동 2차 현장 피해자는 집회서 “홍씨 등은 신축 빌라 분양으로 돈을 챙기기 위해 청량리 인근 개발계획 및 허위 투자 정보를 과도하게 부풀려 홍보했고 빌라를 지을 자금 여력도 없는 상태서 다수의 피해자와 분양계약을 체결해 용두동 2차 현장서만 수십억원대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가 늦어지면서 홍씨 등이 2차 범죄를 계획, 실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두동 1차 현장 피해자 가운데 1명은 집회서 “최근 홍○○이 건축설계사무소에 방문해 두 군데 신축 빌라 설계를 의뢰했다는 말을 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며 “얼마나 경찰 수사를 우습게 봤으면 100억원이 넘는 피해 금액과 수십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도 새로운 빌라를 두 군데나 더 짓겠다고 설계를 뽑느냐”고 분노했다. 

피해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글을 올려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게시글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동대문경찰서에서 인지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형사고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점, 18개월 동안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18개월 동안 피의자에게 방어할 기회와 시간을 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집회, 커뮤니티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피해자들은 “첫 번째 집회를 한 직후에는 (경찰로부터)집회 신고를 누가 했냐는 질문을 받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이후에는 (경찰이)작성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빨리 내리라고 종용했다”고 말했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게시글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었다”며 “그런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수사관이 위축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사를 잘 하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 억울하다”고 반발했다.

게시글에도
민감한 반응

눈여겨볼 대목은 홍씨의 움직임이다. 피해자들은 사건을 외부로 알리기 시작하면서 홍씨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피해자는 “홍씨는 ‘재수 좋으면 집행유예’라는 말을 자주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우리가 집회를 진행하고 관련 내용이 언론에 나오자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최근 홍씨가 보관 중이던 문서를 수차례에 걸쳐 버린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10월11일과 24일, 지난달 6일과 28일에 집회를 진행했다. 10월24일은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진행한 날이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날 홍씨는 피해자 집회 이후 경찰의 연락을 받고 동대문경찰서에 들어갔다가 약 15분 만에 나왔다. 

이후 지난달 6일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고 이날 방송국서 취재를 나왔다. 그리고 열흘 뒤인 지난달 15일부터 홍씨는 문서를 버리기 시작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홍씨가 구속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홍씨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문서는 수천 장에 달했다. 대부분 찢어진 채로 발견된 문서 중에는 분양계약서, 세금계산서, 이행각서, 등기부등본 등이 있었다. 동대문구는 물론 성북구, 구리시 등 수분양자들이 피해를 본 현장 관련 자료도 확인됐다. 심지어 교회 봉투에 쓴 기도문도 반으로 찢어진 채 발견됐다.

홍씨에게 명의를 대여해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수기로 작성한 A4 용지 1장 분량의 내역서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바지들은 세금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 건물(신축 빌라)이 자기 재산으로 잡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세금 폭탄을 맞은 상태다. 하지만 홍씨가 명의대여 비용으로 바지들한테 주는 돈은 (현장 1곳당)2500만원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는 이런 상황에 놓인 바지 건축주가 1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피해자 고소·집회 공론화 시도
수천장 분량 문서 찢어서 버려

<일요시사>가 확인한 내역서에 따르면, 명의대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의료보험료 ▲재산세 ▲지방소득세 ▲국세 등 9억원 이상의 채무를 짊어진 상태였다. 또 이들은 민‧형사상 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양사기 사건 피해자가 수분양자만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피해자들은 홍씨의 증거인멸 시도에 분노했다. 또 홍씨가 문서를 버리기 시작한 시점을 두고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문서를 확인한 피해자들은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홍씨가 버린 문서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문서를 보자고도, 내용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아직 피해 사실을 모르는 현장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추가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한 피해자는 “지난해 5월 전까지 우리가 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며 “그 시기에 성북구 현장은 이미 고소가 진행돼 수사 중이었다. 이런 현장이 더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요시사>는 지난해 2월 홍씨가 연루된 서울 성북구 성북동서 일어난 신축 빌라 분양사기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1414호 ‘<단독> 서울 성북동 빌라 사기 의혹’ 1417호 ‘<단독> 성북동 신축빌라 바지 사장 의혹’). 시기상으로 용두동 현장 피해가 드러나기 전이다. 보도 시점에는 성북경찰서에서 수사가 이미 9개월째 진행 중이었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늑장 수사’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부정했다. 수사가 늘어지면서 홍씨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질문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면서도 올해 안에 종결되냐는 질문에는 “언제까지 (마무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건설 현장이 여러 군데 있고 관련자도 많다. 자금도 한 군데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여러 군데 걸쳐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성북(경찰서)은 한 건짜리에 1년6개월 걸렸던데 우리가 그렇게 늦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무리 단계”
대체 언제?

또 “강력범죄와는 달리 사기는 입증이 어렵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다 들여다봐야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그 사이에 고소 사건도 병합됐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충할 순 없지 않나. 최대한 꼼꼼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사 자료만 1만 페이지가 넘는다”고 토로했다. 홍씨의 구속 여부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수사 중인 사항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jsa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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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