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평 구산역 지주택 230억원 먹튀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13 16:35:50
  • 호수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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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제자리 “수백억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지역주택조합은 원수에게나 추천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흔한 말처럼 번졌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구산역에듀시티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230억원에 달하는 분담금이 투입됐지만, 수년째 추진위원회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산역 지주택’ 사업에 고용된 용역업자는 “광고비, 용역비로 다 쓰고 실제 토지 매입에 들어간 비용은 1%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곳은 앞서 ‘역촌2주택재건축정비구역’이 토지 등 소유자의 요청으로 정비구역서 해제되자 개발을 찬성하는 토지주들 중심으로 지난 2018년 말 사업 방향을 지주택으로 틀었다. 현장 위치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촌동 2-45번지 일원 제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하 3층~지상 35층 총 8개동으로 계획돼, 732세대 전용면적 44㎡~74㎡ 중소형 평형대로 구성됐다고 소개했다.

분담금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구산역 지주택 추진위는 지난 2019년 5월12일 모집 신고로 조합원을 확보했다. 이어 같은해 11월12일 건축계획(안)변경을 통해 세대수를 기존 450세대서 478세대로 늘렸다. 이후 지난 2020년 9월28일 약 396명의 조합원들로부터 각각 6000여만원의 분담금을 받아 사업비 총 237억6000만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토지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건설 예정 규모는 430세대로 줄었고,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조합설립인가를 위한 토지소유권 15%를 확보하지 못해 추진위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급기야 지난달 현장에는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리며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정리하고자 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를 본 일부 조합원은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결국 일부 조합원과 업무대행사 간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조합원이 업무대행사와 추진위원장 등을 사기 및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에 고소하자, 업무대행사인 Y 건설사는 사측과 나머지 조합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해당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민·형사 고소를 예고했다.

일부 조합원은 계약을 취소하겠다며 추진위를 고소했다. 고소에 나선 조합원 측 오인철 변호사는 “조합원 분담금 환불 보장 약정 내용이 포함된 ‘안심 보장 확인서’까지 교부한 해당 추진위는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거라고 안심시켰다”며 “고소인은 조합원 분담금 등의 명목으로 각각 6000만원씩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총 사업비 230억원 이상을 확보한 추진위는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 토지 확보 동의서만 43.8%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 매입 동의를 받으러 다니는 용역 근로자에게 지급된 비용만 13억원 이상 사용됐고, 나머지 200억원 이상은 Y 건설과 이들이 세운 홍보관 설립 비용 등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추진위의 예산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일부 직원은 월급 1000여만원을 받지 못해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용역·광고비에 쏟은 200억원
“애초 개발 어려운 지역에 왜?”

특히, 추진위 측이 조합원에게 공개한 안심 보장 확인서에는 조합원 분담금 전액에 대한 환불 보장 약정이 포함돼있지만, 이는 총유물의 처분행위에 해당해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했다. 사실상 추진위서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넘어가 총회를 거쳐야 하며, 이마저도 총회서 돌려줄 의사가 없으면 받지 못하는 돈이다.

추진위는 이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음에도 안심 보장 확인서를 의뢰인에게 교부해 사업이 무산되더라도 분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처럼 기망한 것이다. 그로 인해 가입계약의 중요 부분인 안심 보장 확인서의 효력에 관해 착오에 빠질 수 있게 했다고 변호사는 판단했다.


따라서 조합원은 추진위가 착오를 불러일으켰다는 이유로 조합가입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이에 부당이득 반환으로 추진위는 각 분담금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결국 지난 2022년 5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고소인 조합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추진위 측이 분담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승소 판결에 따라 조합원은 앞서 1심 패소 판결을 뒤집고, 납입한 조합원 분담금 전액뿐 아니라, 그에 대한 법정이자 및 변호사 비용을 추가로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추진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전혀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토지 매입은 개발을 원하는 지역주민들이 도와야 할 문제”라며 “사업비를 정직하게 사용했다”고 일축했다.

반면, 과거 추진위서 근무하다가 인건비를 받지 못해 퇴사한 전 직원은 “애초에 토지 매입을 위해 사용될 돈은 모두 업무 대행비 등으로 지출된 지 오래고, 배임 횡령 소지가 있다”며 “지주택이 성공할 수 없는 사업지다. 그 주변이 다 그렇다”고 토로했다.

용역비
흥청망청

실제로 지난 1월 해당 지역 인근에 위치한 연신내 지주택 조합원 95명(탈퇴자 20여명 포함)은 업무대행사 대표 A씨를 비롯해 총괄이사 B씨, 업무대행사와 ‘조합원 모집 대행’ 용역을 맺은 H사 대표 C씨, 추진위원장 D씨 등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사기 및 업무상 배임죄로 고소했다.

허위로 지주택 조합원을 모집해 152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이들은 현재 서울은평경찰서로 이첩돼 수사받고 있다.

최근 은평서는 은평구서 불광2동주택조합(가칭) 업무를 담당하던 C씨와 관계자 1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대행사 사무실과 C씨의 자택, 주택조합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은평서 관계자는 “피의자 일부를 송치했으며 사안을 계속 수사 중에 있다”고 말했다.

대행사 측은 지난 2019년 9월 연신내역 인근에 세워질 25층 아파트단지 입주를 원하면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라고 홍보했다. 이 무렵 ‘GTX연신내역 북한산 파크뷰’라는 이름의 모델하우스와 현수막이 등장했다. 연신내역 인근에 세워질 25층 아파트단지 입주를 원한다면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대행사는 이미 조합 설립에 필요한 토지 사용권원을 대부분 확보했으며 2~3년 안에 입주가 가능하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이를 믿은 조합원 673명은 지난 2019년부터 1인당 5500만원서 많게는 1억원 가까운 금액을 계약금 명목으로 납부했다. 그러나 대행사가 얻어낸 토지사용권원 확보율은 지난해 10월 기준 27.7%에 불과했고, 아파트단지 건설을 위해 매입한 땅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에 문제가 생길 시, 납부 금액을 전부 돌려주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행사는 사업추진비 명목으로 금액의 대부분을 이미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위 언급한 구산역 지주택과 흡사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진흙탕
은평구

문제는 조합 업무를 담당하던 대행사가 사업 추진 없이 몇 년을 끈 데다 최근 대행사 대표도 사무실에 나오지 않아 원금조차 회수하기 어렵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조합원들은 정신적 피해까지 호소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대행사의 거짓말을 알게 된 후 현재 신경정신과를 다니면서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악성 지주택 현장을 살피기 위해 정부가 나서기도 했다. 지난 6월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했던 ‘지역주택조합 실태조사’에서 지적사항을 시정하지 않았거나 내부 갈등 등으로 민원이 발생한 조합, 사업 기간 대비 토지 확보율이 떨어지는 조합 중 7개 조합을 선정해 집중 점검했다.

지주택 사업은 무주택자 또는 1주택(전용 85㎡ 이하) 소유주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한 뒤 사업시행 주체가 돼 주택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때 시세 대비 저렴하게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수요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주택을 지을 토지를 확보해야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사업 지연, 허위·과장 광고, 과도한 추가분담금, 조합 운영상 횡령·배임, 사기 등의 리스크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계획 승인 조건(토지 95% 이상 소유)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토지 사용 동의율 80% 확보(조합 설립 조건)’로 속여 조합원들의 돈을 편취한 사기범죄 사례도 허다하다. 시장에선 지역주택조합은 ‘원수에게나 추천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전히 추진 단계···고소 나선 조합원
‘연신내 지주택’ 조합장 구속 재조명

무주택자들이 조합을 꾸려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주택 사업의 취지와 달리 사업 지연과 피해 사례가 속출하자 서울시가 집중점검에 나섰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해 조사 대비 조사 기간(5→7일)과 전문 인력을 보강, 사업성 분석과 조합원 분담금 적정성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특히 사업계획승인을 받고 착공하지 않은 조합 3곳(전체 43%)은 토지 매입 가격 상승, 고금리, 공사비 증가, 사업 지연 등에 따른 사업비와 조합원 분담금 상승으로 내부 갈등이 있어 사업성 등도 함께 들여다봤다.

아울러 ▲조합 모집 광고 ▲홍보 ▲용역계약 체결 ▲조합원 자격 ▲조합 규약 ▲업무대행 자격 ▲업무 범위 ▲자금 관리 방법 ▲실적보고서 작성 ▲정보 공개 ▲자금운용 계획·집행 실적 등을 놓고 적정성을 종합적으로 점검, 조사했다.

지주택 점검 결과 배임이나 횡령 의심 사례가 적발되면 수사 의뢰 등 강력한 조치로 대응하고, 같은 내용으로 2회 이상 적발된 경우, 주택법 등 관련 규정에 따라 과태료 즉시 부과 또는 수사 의뢰, 고발 등 엄중한 행정조치에 나선다.

시는 조합원을 비롯해 시민 누구나 조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게시하는 한편, 조합별 세부 지적사항은 조합 가입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각 조합이 운영 중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한병용 주택정책실장은 “그동안 지역주택조합은 깜깜이 사업 추진으로 비판받아 왔지만, 앞으로는 건실한 정비사업으로 신뢰받을 수 있도록 관리할 것”이라며 “투명한 조합 운영과 조합원 피해 예방을 위해 철저한 실태점검과 감독에 계속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 4월 지주택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전에 주택법에 따른 정보공개 여부에 대한 점검을 선행한 뒤 구역 지정 여부를 결정하기로 밝힌 바 있다. 지주택 조합원이 사업 추진 사항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조합이 피해를 입히는 사례를 막기 위한 장치다.

실제 지역주택조합이 지구단위계획 구역 지정 및 계획 수립 단계서 마치 사업이 빨리 진행될 것처럼 조합원을 모집해 놓고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거나, 사업 추진 상황과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사업구역 면적 5000㎡ 이상 또는 1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아파트)을 건설하는 경우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돼야 하는데, 현재 서울 시내 지역주택조합을 추진 중인 118곳 중 114곳(97%)이 지정 대상이다. 

단속 나선 시
“깜깜이 주의”

지주택은 일반적으로 조합원 모집 신고→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조합설립인가→사업계획승인→착공→준공→조합 청산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을 위해선 주민 입안 제안→주민 열람·공고→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정보공개 등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구역 지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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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