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 국민의힘 총선백서가 발간됐다. 백서는 두 사람을 비판하면서 한 대표에게 더 큰 책임을 물었다. 그러자 친한(친 한동훈)계가 반발하면서 백서 내용을 두고 계파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양분 흡수일까, 단장취의일까?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위원장 조정훈, 이하 ‘백서특위’)는 지난달 28일 오전 270여쪽 분량의 총선백서 전문을 공개했다. 백서에는 지난 4월 제22대 총선서 거론됐던 국민의힘의 갖가지 문제점이 제시돼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백서의 내용을 놓고 또다시 계파 간 갈등이 발생했다. 백서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문제점이 모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2년의 기록
백서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총선 패배 사유는 ▲불안한 당정 관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이조심판론 ▲이종섭·황상무 임명 논란 ▲메가시티 서울 추진 ▲윤 대통령의 지난 4월 대국민담화였다.
윤 대통령에게 제기된 첫 비판은 각종 이슈에 대한 미숙한 대응과 정책 방향이었다. 백서특위가 진행한 설문 결과, 정부의 상황 대응 및 정책 방향에 대한 만족도 관련 질문의 답변 점수는 10점 만점에 2.11점이었다. 이어 의대 정원 증원 논란에 대해 “당 지도부는 모든 의제를 열고 대화할 것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직후 후보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끝났다’는 절망이 팽배했고, 민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고 지적했다.
또 “친윤(친 윤석열) 그룹이 득세하고,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 등으로 공정과 상식 이미지가 사라졌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처벌해서 엄정히 법질서를 세워줄 것으로 기대한 보수 유권자들의 바람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통령과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당은 견제보다 두둔·홍보에 급급했다”고 짚었다.
특히 심각하게 거론했던 것은 의대 증원 논란이었다. 백서특위는 “장작불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집권당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극대화시켰다”며 “대통령실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친 각종 사안에 대해 즉각적으로 조처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타이밍을 놓치고 최악의 결과를 산출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백서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대한 비판보다 한 대표 쪽에 더 큰 비중을 할애했다. 백서는 “총선 패배 두 달 뒤 드러난 ‘영부인 문자 논란’은 ‘비대위원장과 대통령실 모두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으며 총선 과정서 원활하지 못했던 당정 관계가 주요 패배 원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해줬다”고 판단했다.
정부 정책 만족도
10점 만점에 2.11
문맥상 당시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이었고, ‘원활하지 못했던 당정 관계’에 대한 책임의 비중을 한 대표에게 더 많이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총괄선대위원장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경기남북 분도 제안을 수용해 야당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지 못했다”고 직격했고,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일관되게 밀어붙인 데 반해, 우리는 운동권 심판·이조 심판·읍소 전략으로 변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운동권 심판론과 이조심판론은 모두 한 대표가 제시했던 구호였다. 백서는 특히 이조심판론에 대해 “선거를 정권심판론에 가뒀고, 설득력이 없었으며, 유권자는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것이 무능해 보인다’고 반응했다”며 “이조심판론은 보수층을 확실하게 결집했지만, 여당의 무능을 상징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이조심판론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조심판론으로 떠밀려 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운동권 심판론과 이조심판론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아울러 한 대표에게는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의 비교도 백서에 포함돼있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 지휘했던 대선 선거전략과의 비교가 반복적으로 게재된 것이다.
백서는 “대선 당시 많이 회자된 윤석열 후보의 ‘좋아, 빠르게 가’ 같은 ▲감성 터치 ▲유머와 센스 코드 ▲2030 취향 SNS 콘텐츠가 절대 부족했다”며 “‘국민의힘은 합니다’ ‘지금 합니다’ ‘일하고 싶습니다’ 등 슬로건은 막연·모호하고,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또 “‘이재명은 합니다’를 베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설득력을 잃고 공허한 구호가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를 겨냥한 당정 갈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백서는 “집권 2년 후 치러진 선거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있다”며 “당정 갈등은 문제 해결 능력이란 측면서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권자들에게 ‘대파 논쟁’은 여당의 경제 문제 해결 능력과 연관되고, ‘의정 갈등’은 여당의 사회 문제 해결 능력과 연관돼 인식된다”고 비판했다.
한의 이조심판론 반복 비판
‘이는 합니다’ 베꼈냐 지적도
반면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이 작성을 주도한 전략평가 부분에 대한 평가는 윤 대통령에 대한 강도 높은 지적을 이어갔다.
백서는 “당은 대통령과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데도 견제 대신 두둔·홍보에 급급했다”며 “총선 패배는 윤석열정부 집권 2년에 대한 불만들이 누적된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총선백서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당정 관계가 얼마나 왜곡되고 당내 민주주의가 어떻게, 왜 무너져 내렸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거 도중 벌어진 당정 갈등은 선거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쳤다”며 “대통령실이 임명된 지 한 달 된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선거 중간에 비대위원장이 사퇴하겠다고 항의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건강한 당정 관계를 수립해야 하고, 대통령실과 당은 서로 운명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상호협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서는 우여곡절 끝에 작성됐다. 총선백서 TF는 지난 5월 총선 출마자와 당직자 등을 상대로 한 대표의 선거 활동과 전략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그러자 친한계는 “TF 위원장인 조 의원도 인재영입위원으로 총선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는데, 인재영입위에 대한 문항이 왜 없느냐”고 반발했다.
김재섭 의원과 김준호 노원을 당협위원장은 “총선 참패의 원인을 찾는 작업을 책임지는 백서특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가 말이 되느냐”는 취지로 ‘의도적인 한 대표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다. 반발이 이어지자, 조 의원은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준석과 비교
하지만 내용을 통해 확인했듯이 총선백서에도 계파 갈등의 흔적은 여전하다. 원래 7월이었던 발간 일정도 전당대회로 인해 10월로 바뀐 것이었다. 이 같은 백서 내용에 대해 한 대표는 “평가는 백서가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면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패배를 기록하는 백서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작성될 수 없다. 임진왜란은 이긴 전쟁이었음에도,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을 저술한 계기 중 일부는 자신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반박하면서 반대파 서인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백서 작성자들과 당의 구성원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진지하게 흡수할 자양분을 찾는 것이지, 단장취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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