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익는 마을을 찾아 ⑤문경 오미나라

세계가 감동한 오미자 와인 탄생지

가을에 찾아가면 좋은 유서 깊은 마을 양조장으로 대한민국 오미자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문경 오미나라를 추천한다. 오미나라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문경새재 초입에 위치한다. 예로부터 문경새재는 한양과 영남지방을 이어주는 영남대로 가운데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로 통했으며, 해발 1000m 고지에 달하는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에 자리해 사시사철 쾌적하고 서늘한 기온을 자랑한다. 

문경의 이런 지리적 환경은 오미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오미자는 일교차가 큰 해발 300~500m 정도의 준고랭지 가운데 바람의 피해를 받지 않으면서 일조량이 풍부한 산간분지서 잘 자란다. 문경은 우리나라 오미자의 생산량 중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45%를 차지한다.

최적의 조건

강원도, 제주도 등지에서도 오미자를 재배하지만, 오미자 주산지인 문경의 오미자 재배 면적에는 미치지 못한다. 

오미나라는 2008년 9월 세계 최초의 오미자 와이너리로 설립됐다. 2010년 12월 오미자 와인을 특허 등록했으며, 2011년 11월 정통 발효 공법과 오크통 숙성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틸 와인 ‘오미로제’와 정통 샴페인 공법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결’을 선보였다.

이후 2016년 5월 사과 증류주 ‘문경바람’, 6월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을 내놨고, 2020년 6월 샤마트 공법(보급형 스파클링 와인 대량 생산 방법으로, 압력탱크서 2차 발효시킨 뒤 압력이 손실되지 않도록 여과해 병입한다)으로 제조한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 연’을 출시했다.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은 국내외 통틀어 유일하게 오미나라서만 생산한다. 오미나라를 만든 이종기 대표는 지난 44년 동안 세계 명주를 공부하고 우리 술을 연구한 양조 및 증류 명인이다. 1980년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OB맥주에 입사, 씨그램코리아 공장장과 디아지오코리아 부사장으로 25년을 근무했다.

이후 스코틀랜드서 브루잉 앤 디스틸링(Brewing & Distilling, 양조 및 증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대한민국 최초로 위스키 마스터 블렌더 자격을 취득했다. 

이 대표가 오미자 와인을 개발한 이유는 분명했다. 바로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급 명주를 만들겠다는 일념이었다. 우리나라의 주류 시장에는 우리나라와 무관한 온갖 술이 전 세계로부터 들어와 있었다. 이 대표는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국산 세계 명주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오미자였다. 황홀하고 신비로운 색과 맛을 자랑하는 오미자를 최신 양조기술로 재해석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오미자 와인은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만찬주와 건배주로 쓰였다.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 2014년 ITU 전권회의,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 2015년 세계물포럼,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2022년 5월 바이든 미 대통령 방한 정상회의, 2023년 1월 다보스포럼 한국인의 밤 등 오미자 와인의 행보는 화려했다. 

지름 약 1㎝의 작은 열매 오미자(五味子)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이름 붙은 천혜의 과일이다. 소화 촉진과 피로 해소, 성 기능 개선에 좋을 뿐만 아니라 뇌졸중, 고혈압, 당뇨, 노화를 예방하는 데 뛰어나 선조 때부터 최상의 약재로 쓰였다.

오미자 재배 최적의 지역, 문경
세계 최초 오미자 와인 생산해 큰 인기


오미나라는 오랜 노력으로 까다로운 오미자 발효에 성공해 대중이 오미자를 와인으로 즐길 수 있도록 주류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오미나라에 방문하면 와이너리 투어 및 테이스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와인 발효실, 증류실, 숙성실 등을 순차적으로 관람한 뒤 와인 시음으로 이어진다. 체험비는 인당 1만원이며 40~50분 정도 소요된다. 나만의 기념주 만들기는 인당 3만원이다.

오미나라는 와이너리 체험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진행하고 있는 점을 인정받아 2016년 7월 농림축산식품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데 이어 2023년 11월 6차 산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서 대상을 차지했다. 최근 오미나라는 침출 방식으로 담그는 매실주와 달리 매실을 발효시킨 뒤 증류한 ‘섬진강 바람’을 공개했다.

오미나라가 야심 차게 준비 중인 차기작의 원료는 바로 ‘쌀’이라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2007년 10월 개장한 문경자연생태박물관은 문경 지역의 생태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자연 학습 및 체험 공간이다.

지상 2층 규모로 1층에는 문경의 자연환경을 시청각 자료로 접할 수 있는 영상관, 문경 지역의 돌리네(빗물에 녹은 석회암 표면이 원 모양을 만들며 가운데가 웅덩이처럼 움푹 들어가는 현상)습지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실, 실내 모험 어린이 놀이시설 벅스어드벤처, 가상 4D 체험실 등이 있으며, 2층에는 생물박제표본과 함께 8개 주제로 문경의 자연사를 학습하고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입장료는 무료다.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은 문경의 이 같은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자 2010년 4월 개관한 박물관으로, 향토사 중심으로 운영하던 문경새재박물관이 그 전신이다. 옛사람들이 여행 중 괴나리봇짐 속에 넣고 다녔을 유물을 비롯해 각종 고지도,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길로 유명한 문경새재 위에서 남긴 각종 여행기와 풍속화 등을 전시한다. 입장료는 역시 무료다.

문경새재는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문경 대표 명승지로,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의 고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유명했다.

문경새재

‘새도 쉬었다 가는 고개’라는 뜻을 담고 있는 ‘새재(鳥嶺)’라는 이름이 이를 설명해준다. 현재 문경새재의 얼굴인 3개 관문(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은 임진왜란 직후 설치한 국방의 요새였다. 입구부터 제3관문 조령관까지의 편도 거리는 약 7㎞다. 이렇듯 고유의 맛과 멋을 뽐내며 깊은 쉼을 선사하는 문경서 청명한 가을 하늘과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오미나라→문경자연생태박물관→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문경새재도립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오미나라→문경오미자테마공원→문경자연생태박물관
-둘째 날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문경새재도립공원→문경새재오픈세트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오미나라 www.omynara.com
-문경시 문화관광 www.gbmg.go.kr/tour

운영 정보
-오미나라 운영시간: 09:30~12:00, 13:00~17:30 휴무일: 1월1일, 설·추석 당일 입장료: 무료 체험비: 와이너리 투어 및 테이스팅 체험비 1만원, 나만의 기념주 만들기 3만원(40~50분 소요)
-문경자연생태박물관 운영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1시간 전 입장 마감) 휴무일: 1월1일, 설·추석 당일 입장료: 무료(4D가상체험 1000원)
-문경새재도립공원 운영시간: 00:00~24:00 탐방로 상시 개방 휴무일: 없음 입장료: 무료 전동차 이용요금: A코스 편도(옛길박물관→오픈세트장) 성인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800원, 어린이 500원, C코스 편도(옛길박물관→제2관문) 5000원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 운영시간: 3~10월 09:00~18:00, 11~2월 09:00~17:00(30분 전 입장 마감) 휴무일: 1월1일, 설·추석 당일 입장료: 무료

문의 전화
-오미나라 054)572-0601
-문경자연생태박물관 054)550-8383
-문경새재도립공원 054)571-0709(전동차 이용 문의 054)572-6768)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 054)550-8365

대중교통
-버스 서울-문경,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서 문경행 하루 8회 운행(06:30, 07:00, 07:50, 12:20, 13:10, 16:20, 17:50, 20:00), 약 2시간 소요. 문경버스터미널 앞 정류장까지 도보 약 1분 이동, 10-2번, 10-3번, 11번, 21번, 26번 버스 이용, 진안리 정류장 하차, 오미나라까지 도보 약 5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점촌행 시간대별로 하루 14회 운행(06:50~20:20), 약 2시간10분 소요. 점촌버스터미널서 홈플러스 정류장까지 도보 약 5분 이동, 21번, 26번 버스 이용, 진안리 정류장서 하차, 오미나라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1688-5979,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고속버스통합예매시스템 www.kobus.co.kr/main.do, 문경버스터미널 1666-0343, 점촌시외고속터미널 16  88-7710 

-기차 서울-점촌, 서울역서 김천역 경유 점촌역까지 하루 5회 운행(06:13, 08:49, 12:02, 15:39, 16:54), 약 4시간 소요. 점촌역서 농협시지부 정류장까지 도보 약 7분 이동, 11번, 21번, 26번 버스 이용, 진안리 정류장서 하차, 오미나라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신갈JC→영동고속도로→여주JC→중부내륙고속도로→연풍IC→문경대로→새재로→오미나라

숙박 정보
-페트로호텔(구 라마다 문경새재): 문경읍 새재2길, 054)504-7077, www.hotelpetro.com
-문경새재리조트: 문경읍 웰빙타운길, 054)572-5100, www.mgle.co.kr
-문경 STX 리조트: 농암면 청화로, 054)460-5000, www.stxresort.com

식당 정보
-문경식당(오미자 고추장 삼겹살 석쇠구이 정식·오미자 고추장 더덕구이 정식): 문경읍 새재로, 054)571-3044
-백두산가든(쌈밥정식·능이버섯전골·한우쌈정식): 문경읍 새재로, 054)571-4545
-문경산채비빔밥(산채비빔밥·표고우엉잡채): 문경읍 새재로, 054)571-3736

주변 볼거리
문경새재오픈세트장, 문경생태미로공원, 문경도자기박물관, 문경에코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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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