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깊이 잠든 한국을 깨우다’ 노벨문학상 한강

[일요시사 취재1팀]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 순간 한국문학 앞에 놓여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노벨문학상은 외국 작가의 전유물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국민을 놀라게 한 기분 좋은 충격이기도 했다. ‘아시아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벼락처럼 찾아온 소식이 ‘깊이 잠들어 있던 한국’을 깨웠다.

지난 10일 오후 8시경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로 쏟아졌다. 특정 작가의 집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수상을 기대하며 작가의 이력을 보도하는 기사도 없었다. 마츠 말름 한림원 사무총장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 나온 ‘Han Kang’이라는 단어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맨부커상
세계적 명성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표현으로 한강의 작품세계를 언급했다. 이어 “한강은 자신의 작품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면서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지니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세계 각국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후보를 좁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명가량의 최종 후보 가운데 그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식이며, 후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매년 해외 도박사이트서 수상자를 점치지만 번번이 틀리곤 한다. 심지어 수상자조차 발표 10여분 전에야 소식을 알 수 있는 정도다.

실제 한강은 한림원 발표 전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미국 유력 언론 <뉴욕타임스>서도 한강의 수상을 ‘놀라운 일(Surprise)’라고 보도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깜짝’ 수상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림원이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와 그의 작품을 논평한 기자회견을 보면 30여년 동안 작가가 우직하게 그려온 작품세계가 보인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으로 한강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 <채식주의자>부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작품에 드러나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노벨위원회가 추구하는 그것과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민간인 학살’ 등 한국서 일어난 폭력적인 역사를 소설에 담아내면서 그 안에 인간의 본성을 녹였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인간의 폭력성이 만들어내는 비극, 이타심이 주는 위로. 한강이 30년의 문학 인생 동안 천착한 주제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그린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한강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한림원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할 때 두 작품을 비중 있게 다뤘다.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와 함께 한강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 총에 사망한 열여섯 살 소년 동호와 그 주변 인물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인물의 면면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현대사 비극을 인류 보편적 가치로

한강은 2014년 <소년이 온다> 출간 당시 소설을 집필하는 내내 ‘압도적인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열두세 살 무렵 아버지가 건넨 사진첩을 보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참혹하게 변한 시신, 그리고 그들을 위해 헌혈을 하려 병원 앞에 모인 시민들.

한강은 그 모습을 양립할 수 없는 숙제처럼 느꼈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또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서는 광경은 한강에게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그는 <소년이 온다>에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담았다.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이 자란 도시 광주서 1980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는다”며 “소설은 희생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 ‘증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해간다”고 <소년이 온다>에 대해 논평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경하, 인선,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 등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경하가 인선이 기르던 앵무새의 죽음과 맞물려 환영을 보는 마지막 부분은 폭발적인 흡인력을 자랑한다. 폭설이 내리는 제주서 인선의 집에 고립된 경하가 정심의 과거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부분은 ‘고통스러운 애도’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한강은 간담회서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정의했다. 그러면서 “<소년이 온다>를 쓴 이후 나의 삶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됐다.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많이 회복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메디치상은 페미나상, 공쿠르,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 4대 문학상의 하나로 한국 작가 작품이 이 상을 받은 건 한강이 처음이었다. 

인간 폭력성
집요한 탐구

한림원은 “(<작별하지 않는다>는)1940년대 후반 한국 제주서 벌어진 학살 사건의 그림자를 들춘다”며 “압축적이고 정확한 이미지로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집단 망각에 빠진 상태를 드러내려고 끈질기게 시도한다”고 논평했다. 또 “악몽 같은 이미지, 진실을 말하려는 증언 문학 사이를 독창적으로 오간다”고 덧붙였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소개됐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생기는 주변 인물과의 마찰을 다뤘다. 인간의 폭력적 본성을 집요하게 탐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와 함께 비영연방 작가의 번역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 소설”이라며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논평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쓰는 것은 인간에 대해 내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이었다”며 “가능한한 그 질문 속에 오래 있으려 했다. 그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최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며 한국의 독자에게도 인사를 남겼다. 

맨부커상, 메디치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난 한강은 이번 수상으로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1970년 11월 광주서 태어난 한강은 서울 풍문여고,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로 등단한 그는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붉은 닻>으로 당선돼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강의 부친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한승원, 오빠인 한동림도 등단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문인 집안서 자란 한강은 어린 시절부터 책과 밀접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노벨위원회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서도 “어릴 때부터 번역서뿐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을 읽으며 자랐다”며 “나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출판업계
대박났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진행하지 않았다. 당초 그의 작품을 출간한 출판사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는 합동 기자회견을 조율했지만 작가가 끝내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강의 부친 한승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딸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밝혔다. 

대신 한강은 출판사 창비를 통해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는 짤막한 서면 소감을 전했다. 

공식 반응 없이 두문불출하던 한강은 최근 한 시상식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포니정 재단은 지난달 19일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바 있다. 

이날 시상식서 한강은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을 발표하기에 앞서 양해를 구한 뒤 노벨상 관련 소감을 말했다. 그는 “노벨위원회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 않아서 그저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려고만 했다”며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수상 당일 밤 조용히 자축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강은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했기에 정확한 시기를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밝힌 포니정 혁신상 수상소감에서는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일로 꼽았다. 한강은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며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독자와 주변 관계자, 지인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극구 고사
포니정 시상식에 등장

한강은 “지난 30년의 시간 동안 저의 책들과 연결되어주신 소중한 문학 독자들께, 어려움 속에서 문학 출판을 이어가고 계시는 모든 출판계 종사자 여러분과 서점인들께, 그리고 동료, 선후배 작가들께 감사를 전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한강은 “나의 일상이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란다”고 했지만 국내는 ‘한강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들썩이고 있다. 특히 출판업계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원서’로 읽으려는 독자들의 쇄도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부터 치솟기 시작한 한강 작품의 주문량을 맞추느라 인쇄업체도 덩달아 난리가 났다. 

실제 서점가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 6일 만에 한강 작가의 책이 누적 100만부 넘게 팔렸다.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시장점유율을 90% 가까이 차지하는 서점 3곳에서 각각 36만부, 43만2000부, 24만부를 판매했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를 비롯해 전 작품이 고르게 팔려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출판업계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서 시작된 독서 열풍이 정착되길 바라고 있다. 한국 성인 가운데 절반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극악의 독서율이 개선됐으면 하는 기대감도 보인다. 유통업계도 노벨문학상 특수에 기대 ‘한강 마케팅’에 올라타는 모양새다. 기획전, 낭독회, 작품해설 등 다양한 루트로 한강의 작품을 경험할 방법을 고심하는 중이다. 

정치권도 말을 얹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강의 수상 당일 “대한민국 문학 사상 위대한 업적이자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라며 “작가님께서는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SNS에 글을 올려 “한강 작가님을 그분의 책이 아니라 오래전 EBS 오디오북 진행자로서 처음 접했었다. 조용하면서도 꾹꾹 눌러 말하는 목소리가 참 좋아서 아직도 가끔 듣는다”면서 “오늘 기분 좋게 한강 작가님이 진행하는 EBS 오디오북 파일을 들어야겠다. 이런 날도 오는군요”라고 축하를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굴곡진 현대사를 문학으로 치유한 노벨문학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면서 “고단한 삶을 견디고 계실 국민들께 큰 위로가 되길 기원한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다. 수년 전부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상하고 기대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지금일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한강의 수상이 문학계에 미친 파급력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한·중·일 3국 중 한국만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어 문학적인 면에서 ‘아시아의 변방’ 취급을 받던 일도 과거가 됐다. 한국을 넘어 세계의 한강이 된 작가가 해낸 일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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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