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방송대 사태

1년6개월만 버티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총장 임용 과정서 시작된 한 국립대의 학내 갈등이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학내 구성원의 문제 제기로부터 비롯된 시민단체의 고발, 정치권의 지적 등이 이어졌지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은 그대로다. 올해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는 2022년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국립대학이면서 국내 최초 원격 대학인 방송대는 반세기 동안 80만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배움에 뜻은 있지만 형편이 안 돼 학업의 때를 놓친 이들에게 방송대는 ‘한풀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인정하지만…

1972년 3월9일 ‘한국방송통신대학설치령’에 근거해 개교한 방송대는 1993년 3월1일 ‘한국방송통신대학’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앞서 6명의 학장이 있었고 뒤이어 7명의 총장이 학교를 이끌었다.

2022년 3월 고성환 당시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방송대 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003년부터 방송대 교수로 재직한 고 총장은 교무부처장, 교양교육원장, 인문과학대학장, 통합인문학연구소장 등 방송대 주요 보직을 맡았다.

문제는 고 총장 취임 이후 시작된 학내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방송대 총장의 임기는 4년. 고 총장의 임기는 2026년 3월3일까지로 이미 반환점을 넘었다. 학내에서는 고 총장의 남은 임기 동안에도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한 방송대 관계자는 “총장 후보자 선거 때부터 불거진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아 학내 구성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못 받는 중이다. 일부 직원 사이에서는 ‘인사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 등의 말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고 총장은 2021년 11월 열린 선거서 결선투표 끝에 1순위 후보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겸직 위반 ▲세금 체납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총장 임명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특히 세금 체납은 당시 문재인정부의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7대 기준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국립대학은 학내 선거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후보자를 교육부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서 가부를 거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총장을 임명한다. 사립대학과는 다른 국립대학의 시스템서 고 총장이 교육부의 검증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부 교수 사이에 제기됐다.

예상을 뒤엎고 고 총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를 한 달여 앞두고 임명됐다. 전임 류수노 총장이 취임까지 40개월 동안 법정 공방을 벌인 것과는 대조되는 대목이다. 한 시민단체는 고 총장의 임명을 ‘문재인정부 마지막 알박기 인사’라고 지적했다. 

교육부의 종합감사,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질의 등에서 고 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교육부는 2021년 10월25일부터 같은 해 11월5일까지 열흘 동안 방송대 종합감사를 진행했다. 이 시기에 교육부는 제보 등을 통해 고 총장 관련 논란을 알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교육부가 2022년 11월 공개한 감사결과 처분서에 따르면 방송대는 ▲불성실 재산 등록 ▲미허가 겸직 등을 지적받았다. 방송대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지적사항은 고 총장과 관계된 것이다. 

교육공무원 가운데 대학교의 학장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등록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매년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재산 변동 사항을 이듬해 2월 말까지 등록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채무도 마찬가지다. 고 총장은 2020년 2월 재산 등록을 하면서 10억원이 넘는 채무 중 9억5000만원가량을 등록하지 않았고 변동 사항 신고 때에도 약 9억2000만원의 채무를 누락했다.


교육부 감사·국감 지적에도…
문제 제기 교수와 법정 공방

눈여겨볼 대목은 이 채무가 생긴 과정이다. 고 총장은 방송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회사를 설립해 사내이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학 교수는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겸직할 수 없다.

감사 처분서에 따르면 고 총장은 2003년 12월1일부터 2007년 5월8일까지 이사로, 2009년 4월10일부터 2017년 12월11일까지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일했다.

10억원에 이르는 채무는 이 시기에 발생했고 변제하지 못해 고 총장의 급여가 압류되기 시작했다.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서도 세금 체납이 발생해 2016년 10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법인)에 고 총장의 이름이 올라갔다. 서울시가 부과한 지방소득세 등 38건에 이르는 4200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는 2022년 10월19일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국민의힘 정경희 전 의원은 고 총장을 상대로 겸직 위반, 세금 체납 등의 문제를 질의했다. 고 총장은 당시 국감에 출석해 겸직 허가는 받았냐는 정 전 의원의 질의에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또 겸직 허가를 받지 않고 영리활동을 한 부분에 대해 징계나 처벌을 받은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정 전 의원은 방송대가 고 총장의 겸직 사실과 영리활동을 알고 있었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면서 “(방송대가)2019년 고 총장이 국어국문과 교수였을 때 국가공무원법 제64조 위반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은 기록이 있다”며 “두 곳의 법무법인에 의뢰했는데 각각 자문 내용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법무법인은 징계 대상이지만 시효가 만료됐다. 또 다른 법무법인은 징계시효가 완성되지 않았고 징계 절차 진행도 가능하다는 답변을 했다. 방송대는 이 중 전자의 자문만 반영해 고 총장에 대한 징계 의결 요구가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우호적인 자문만 취사 선택하면서 방송대가 조직적으로 비리 감싸기를 했다는 주장이다. 

정 전 의원은 “고 총장은 본인이 총장 자리에 앉음으로써 국립대 교수들이 허가 없이 겸직해 영리사업을 해도 되고 세금을 탈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매우 잘못된 전례를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퇴할 의사는 없느냐”고 몰아붙였다. 

고 총장은 자신과 관련된 논란은 선거 과정서 이미 구성원들이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구성원들이 논란을 알면서도 자신을 뽑아줬기 때문에 사퇴 문제는 이들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후 방송대 총장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 총장 관련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교수가 시민단체의 집회 당일 보직 해임되고 해당 사안으로 현재까지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등 학내 갈등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부산지역대 학장이었던 해당 교수는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에 고 총장을 상대로 ‘신분보장 등 조치’를 신청했다. 권익위는 “보직을 다시 부여하고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라”며 교수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고 총장은 권익위의 결정에 불복해 권익위를 상대로 가처분 소송에 이어 본안 소송까지 제기했다. 해당 소송은 현재 2심까지 진행됐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퇴 안 해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방송대 문제는 이번 국감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학내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것인지에 대한 방송대 측의 입장을 물을 수 있다는 것.

한 방송대 관계자는 “학교 안팎서 다양한 루트로 문제 제기가 이뤄졌지만 후속 조치는 전무했다. 고 총장은 정년과 맞물려 연임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고 총장의 남은 임기 내내 구성원은 문제를 제기하고 학교는 이를 뭉개는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고 자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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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