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한동훈-이회창 아이러니 오버랩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14 10:20:21
  • 호수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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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보면 2024년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이은 갈등과 결별을 이어가고 있다. 견제 장치를 없애는 것에 골몰했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폭주 기관차로서 헌정사에 비극으로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갈등은 지난 1월부터 드러났다. 두 사람은 검찰 시절 인연에 이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으로서 호흡을 맞췄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대표는 1월17일, 김경율 회계사를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후 22대 총선 서울 마포을 출마를 직접 소개했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의 파열음이 일어났다. 김 회계사는 20년 넘게 참여연대서 활동한 야권 성향 인물이었다.

검찰 인연서 
정권 악연으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김 회계사의 종편 유튜브 방송 출연 당시 발언이었다.

김 회계사는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서 “디올백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이라며, 김건희 여사를 프랑스 부르봉 왕조 시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사치와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국민의)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시기에 사천(私薦)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김 여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공천 시스템 훼손 우려 때문”이라는 명분으로 한 위원장을 비판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한 위원장에게 “대통령의 뜻”이라면서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거론했고, 당내 친윤(친 윤석열)계도 사퇴 여론을 조성했다. 이어 한 대표의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에도, 그가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조건부 수용 의사를 드러내자,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압박한 사실이 밝혀졌다.

총선을 불과 석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단 봉합’인 상황을 유지한 채 선거를 치렀고, 김 회계사도 제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물론 ‘일단 봉합’이었을 뿐 ‘완전 봉합’은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선거 정국 중에도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거취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단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 등 이슈를 놓고 끊임없이 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4월1일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된 대국민 담화를 진행했고, 한 위원장은 사퇴 의사까지 밝혀가면서 ‘의대 증원 유연화’를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서 108석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지만, 해외직구 규제 논란에 대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이어나갔다. 이어 ▲전당대회 출마 ▲채상병 특검법 찬성 ▲김 여사 발신 문자 ‘읽씹’ 논란 ▲R&D 예산 삭감 비판 등 흐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선거인단 득표와 여론조사 지지율을 합친 62.84%의 지지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다.

한 대표의 취임 이후에도 두 사람은 ▲정책위의장 임명 갈등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등 문제서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 연이어 보도됐다. 이들의 갈등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제목을 장식했던 표현은 ‘윤 격노’였다.

갈등이 가장 크게 불거진 사안은 지난 9월 불거진 김대남 전 SGI서울보증보험 상임감사의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이었다.

김경율 영입부터 시작된 윤·한 갈등
30년 전 내부 갈등과 유사 형태 전개


유튜브 ‘서울의소리’는 김 전 감사가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재직할 당시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전당대회 중이던 지난 7월10일 “‘서울의소리’가 이번에 잘 기획해서 한동훈을 치면, 김 여사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고, ‘서울의소리’는 7월12일 한 대표의 당비 횡령 및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보수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 정치인을 허위 사실로 음해하기 위해 좌파 유튜버와 협업하고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명백하고 심각한 해당 행위이자 범죄”라며, “당 차원서 필요한 절차들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김 전 감사는 일면식도 없고, 해당 발언은 김 전 감사가 청와대서 퇴직한 이후에 한 발언인 데다 일방적이고 과장된 주장”이라며, “김 여사와도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김 전 감사가 2022년 4월 강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국제뉴스>와의 인터뷰서 “윤 당선인을 위해 조직 동원 활동을 했고, 당선인이 저를 많이 신뢰하셨던 것 같다”며, “당선인과 2시간 동안 독대라는 귀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3월에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감사는 감사직 취임에 대해서도 “다른 회사는 임기가 2년인데, (서울보증보험 감사의 임기는)3년이라 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있을 수 있어서 내가 선택했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진행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재의 표결은 지난 4일 진행됐다. 무기명 투표로 진행된 재의 표결서 104표의 반대가 나왔다. 국민의힘 의석수는 총 108석이기 때문에 4명의 이탈표가 발생한 셈이다.

이틀 후에는 한 대표와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여명이 서울 종로구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이들이 향후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는 아직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국민의힘의 의석수가 총 108석이라는 사실로 비춰볼 때, 20여명이라는 이들의 ‘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현재 개헌저지선 100석을 살짝 웃도는 선의 의석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론조사 꽃’이 7일 발표한 정례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23.7%로 집계됐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29%로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 지지율보다 낮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가 여론조사 전문회사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하고 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대표는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19.3%를 기록해 전체 2위에 올랐다. 한 대표 외에 이름이 거론된 국민의힘 인사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5%를 넘지 못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한 대표 외에는 유의미하게 내세울 수 있는 대선주자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셈이다.

YS와 갈등
박과 갈등


헌정사에서 대통령과 당내 유력인사가 갈등을 빚은 사례는 여럿 있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제3공화국 시절 제6대 총선서 당선돼 의회 입성 후 민주공화당 내에서 계보를 구성하고 있었다. 당내서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로 미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3선 개헌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 전 총리의 자택은 김형욱 부장이 이끌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고, JP 계열 연구모임 국민복지연구회서 3선 개헌을 반대했다. 구성원들은 중정서 혹독한 심문을 받으면서 ‘JP 대통령 추대 음모’를 추궁당했다. 김 전 총리는 결국 마음을 바꿔 3선 개헌을 지지했다. 

김 전 총리는 ‘최순실 게이트’ 정국이 이어졌던 2016년 11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제가 나세르입니까? 왜 자꾸 의심하십니까?”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내가 좀 의심도 해”라고 말했고, 김 전 총리는 인터뷰 도중 “(박 대통령이)‘했어’라 아니라 ‘해’라고 말했다. (의심을)계속 하고 있다는 말”이라면서 서운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가말 압델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은 총리로 재직했던 1954년 무함마드 나기브 대통령을 퇴출시키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나세르 대통령은 1952년 왕정을 무너트린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를 주도한 후 나기브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 대통령이 김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동원한 사람들은 ‘4인방’이었다. 4인방은 김성곤·김진만·백남억·길재호 민주공화당 의원이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당내 대리인 격으로 JP계와 다퉜고, 3선 개헌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특히 김성곤 의원은 박 대통령의 셋째 형이자 김 전 총리의 장인인 박상희씨와 친분이 돈독했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당내 영향력이 커진 4인방은 1971년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은 “광주대단지 사건과 실미도 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로 오치성 내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국회 의석수 총 204석 중 공화당 소속은 113명이었고, 공화당은 ‘해임건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부결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인방은 10월2일 가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자 이후락 부장이 이끌던 중정은 이들을 연행해 고문을 가했고, 정계서 추방된다. “김성곤 의원은 콧수염까지 뽑혔다”는 이야기가 있다. 4인방이 정리된 것은 한국 정치에 큰 흔적을 남긴다. 공화당에는 더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발표하고 제4공화국을 열었다.

문민정부에서는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가 김영삼(YS)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이 전 총리는 YS의 권유로 감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청와대·기무사 등 어느 기관이든 법 규정에 따라 감사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권력기관들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대권 도전했다
콧수염 뽑혔다

감사원은 먼저 대통령비서실부터 대대적으로 감사했다. 이어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후 비리에 연루된 노태우정부의 국방부 장관 2명과 해·공군 참모총장들을 적발했다. ‘평화의댐’ 비리 의혹을 근거로, 안기부에 대한 감사도 진행했다.

안기부가 감사원 직원들의 진입을 막는 등 감사를 거부하자, 이 전 총리는 “그대로 밀고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불과 10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이 상황은 5공·노태우정부에 대한 사정(司正)이었기 때문에, 문민정부에게도 유리한 흐름이었다. YS는 이 전 총리를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총리 취임 이후 시작됐다. 이 전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서 총리가 제외된 것과 관련해 “통일원 장관 등 회의 구성원들은 총리의 직할이고, 총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사실상 경질됐다.

이 전 총리는 신한국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고, 제15대 총선 선대위원장을 거쳐 당 대표로 지명됐다. 하지만 총리 재직 당시부터 시작된 갈등은 이 전 총리의 당대표 취임 이후 더욱 크게 불거졌다. 이 전 총리는 대표직서 사임하지 않은 채 대선에 출마했고, 김윤환 의원 등 민정계는 이 전 총리를 지원했다.

반면 민주계는 여러 후보들이 난립해 단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전 총리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YS는 암묵적으로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다. 이 후보는 신한국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후 신한국당의 표밭을 잠식했다. 이 전 총리는 제15대·제16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연이어 낙선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크게 충돌했고, 이 충돌은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을 바꿨다. 박 대통령과 유 전 의원은 2015년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선 이전에 이미 결별했던 상황이었다. 유 전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외교 노선과 관련해 “청와대 얼라들이 외교하느냐”는 말을 해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당시 친박(친 박근혜)계는 이주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밀었지만, 유 전 의원은 경선서 이 의원을 물리쳤다. 유 전 의원은 취임 직후 박 대통령의 핵심 의제 ‘창조 경제’를 비판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다.

폭주 기관차, 결국 헌정사 비극으로 
갈등마다 격노…이번도 같은 길 걷나

유 전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불과 5개월밖에 이어가지 못했다. 당시 여야는 정부가 법률을 침해하는 시행령을 국회가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통과시켰다. 이 합의는 유 전 의원이 주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국민이 배신의 정치인을 심판해주셔야 한다”면서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유 전 의원으로서는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서 야당의 여러 요구 조건 중 선택했던 사안이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로서는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거래 조건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이게 왜 배신이냐”는 의문이 들 법했다.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유 전 의원은 당 대표가 된 적은 없다. 당시 당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도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는 했지만, 유 전 의원의 대립각이 더욱 강하게 부각됐다. 김 전 의원은 유 전 의원이 물러난 후에야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경선제에 대한 합의를 하면서, 박 대통령과 크게 각을 세웠다.

제20대 총선 국면에서는 공천 갈등 끝에 ‘옥새 런’ 사건을 일으켜 갈등을 증폭시켰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은 당내 견제 장치를 모두 제거한 후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다가 파국을 맞았다. 공화당과 유신정우회 모두 거수기 역할만 소화하면서, 중앙정보부장과 대통령경호실장이 2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하던 중 아버지 대통령은 암살당했다.

딸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과 핵심 측근인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에 의지해 국정을 운영하다가, 비선 실세의 존재 및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가 발각돼 탄핵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탄핵안이 국회서 가결될 당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이었기 때문에 사태를 수습할 역량 자체가 없었다. 대기업에 대한 금품 갈취를 세상에 드러낸 언론은 보수언론 <조선일보>였다. 박 전 대통령과 <조선일보>는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대통령이 폭주 기관차가 되면 그 끝은 결국 파국이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재직 시절 민주당 및 문재인정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결별했고, 정계 입문 후에도 이준석 전 새누리당 대표는 물론, 현재 한 대표와 갈등을 빚고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논란도 정치 입문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견제 없앤 
정권의 끝

민주당은 현재 압도적인 원내 제1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호불호와 찬반 여하를 떠나 ▲법 왜곡죄 ▲금융투자소득세 ▲거부권 특별법 등 정책 논제를 던지고 있다. 원외에서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 정책과 관련해 ‘두 국가론’라는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오로지 김 여사와 ‘윤·한 갈등’만 보인다. ‘웰빙 정당’이라는 놀림도 여전하다. 견제 장치를 날리기 위한 파국의 끝이 어땠는지는 헌정사에 빼곡하게 기록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과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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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