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티메프 사태’ 루멘페이먼츠 실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12 09:51:03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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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 공중에 붕 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수백억원대 상환 지연 사태를 일으킨 뒤 도주한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 루멘페이먼츠 김인환 대표가 검찰에 구속됐다. 김 대표는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허위의 신용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선정산 대출’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를 받는다. 이로 인한 루멘페이먼츠 계열사 등의 경영상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수십억대 적자로 보고 있는 루멘페이먼츠 계열사에 자금 유용이 없었는지 주시했다. 이는 온라인투자연계업(온투업)의 정산 지연 사태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달 루멘페이먼츠는 온투업체인 크로스파이낸스 측에 600억원 규모의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아 금융감독원의 현장 검사를 받게 됐다. 

지난달 5일부터···

업계에선 김인환 대표의 ‘문어발식 경영’이 불러온 사태라는 지적이다. 김씨는 지난해 자본금 5억원 규모의 ‘푸른주택종합건설’을 인수했다. 김 대표가 100% 소유한 푸른주택종합건설은 지난해에만 3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밖에 푸른주택종합건설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감사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감사보고서에는 “주택 분양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이 어렵다”며 “당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적혔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소유한 건설사에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루멘페이먼츠의 자금을 유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루멘페이먼츠의 모 그룹으로 소개되는 ‘루멘그룹’도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루멘그룹의 대표도 맡고 있다.


루멘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계열사 가운데 금융, 투자, 자산운용 부문을 맡고 있다는 회사 3곳은 법인 등기조차 되지 않아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또 계열사 중 7곳의 회사는 자본금 100만원에 불과했다. 16개 계열사의 임원진들도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동일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회사 규모를 부풀리기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산지연 사태에 대해 김 대표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부 사정으로 경황이 없지만 정산은 반드시 상환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산금 유용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경황이 없어서 잘 마무리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달 7일 오전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우후죽순 16개 페이퍼컴퍼니 내세워···
선정산 대출 악용, 전형적 먹튀 사례

김 대표가 ‘제2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지난 7월 큐텐그룹의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서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소비자와 판매업체를 중개하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소비자가 결제하면 일정 기간 후 판매업체에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마찬가지로 루멘페이먼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PG사의 대금 미지급과, 구속된 김 대표의 정산금 유용 의혹이 사건의 발달이라는 점에서 티메프 사태와 닮았다는 것이다. 

루멘페이먼츠 사태는 루멘페이먼츠,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크로스파이낸스, 선정산 업체의 자금 흐름 구조서 발생했다. 선정산 대출은 소상공인 가맹점이 카드 매출을 담보로 선정산 업체 등으로부터 대출 형태로 돈을 지급받고, 선정산 업체는 정산일에 PG사로부터 대금을 받아 자동 상환하는 대출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카드 사용업소들이 카드 매출서 발생한 대금을 정산받는 데 5일서 7일이 걸린다. 카드사, PG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맹점 입장에선 재료비 등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산대금을 약 일주일 후에 받을 수 있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선정산 대출이다.

이번 사건은 루멘페이먼츠가 정산대금을 미상환하면서 선정산 대출 투자금 상환도 지연되는 사태로 번졌다. 온투업은 온라인 플랫폼서 투자자를 모집해 온라인 소상공인 등 자금이 필요한 이에게 투자금을 대출해주고,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는 구조로 ‘P2P 금융’이라고도 불린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선정산 업체와 투자자를 중개했고, 소상공인의 카드매출채권 선정산 상품을 주력으로 삼았다.

선정산 업체는 소상공인 등 가맹점에게 카드매출 채권을 매입해 이를 담보로 삼고, 크로스파이낸스에게 대출을 신청한다.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페이먼츠 등 PG사의 가맹점 카드매출 정산금액을 확인한 뒤, 선정산업체에 투자금을 빌려준다.

이때 PG사가 정산을 담당하는데, 루멘페이먼츠는 유동성 확보 문제로 정산을 하지 못했다. 결국 크로스파이낸스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관리·감독 부실 책임···도주하다 걸려 
크로스파이낸스 “32억4000만원 피해”

루멘페이먼츠가 크로스파이낸스에 대금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현재 파악한 크로스파이낸스의 피해 투자자들 수는 888명, 피해 금액은 약 734억원으로 확인됐다. 루멘페이먼츠는 또 다른 온투업체인 스마트핀테크(스마트펀딩)에도 선정산 상품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스마트펀딩 측의 대출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9억원 규모다.

곽기웅 크로스파이낸스 대표는 “8월2일 루멘페이먼츠가 일부 금액에 대한 상환을 지연했다”며 “그리고 8월5일 급작스럽게 대규모 정산 지연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곽 대표에 따르면, 계약을 맺은 2021년 7월부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루멘페이먼츠가 한번도 정산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미룬 적이 없다고 한다. 약 3년간 루멘페이먼츠와 거래해 온 만큼 어느 정도 업체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이 곽 대표의 입장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에 따르면, 김 대표는 선정산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 대표가 소유한 선정산 페이퍼컴퍼니가 가짜 카드매출채권을 만들어 중간서 투자금을 빼돌릴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들은 크로스파이낸스의 투자자들뿐이다. 자금순환 구조상 가맹점 또한 피해가 발생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루멘페이먼츠의 피해 가맹점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루멘페이먼츠가 가짜 카드매출채권을 만들었다거나 가맹점들을 다른 PG사로 이동시켰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얘기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크로스파이낸스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나아가 크로스파이낸스가 루멘페이먼츠와 공모했거나 이를 방조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이 같은 소문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임직원들 또한 피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크로스파이낸스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당사의 임직원들도 지금까지 해당 투자상품의 구조적 안정성을 믿고 해당 상품에 투자해 왔다(28명, 5억3000만원)”며 “당사 역시 해당 상품들에 법인 유휴자금을 활용해 27억1000만원의 간접투자를 했으며, 일반 투자자와 동일하게 투자를 유지해오다가 결국 총 32억4000만원의 연체 피해를 입었다”고 공지했다.

다만,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페이먼츠에 대한 면밀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시인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달 23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상환 지연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공준혁)는 김 대표의 도주를 도운 혐의(범인도피)로 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지난 3일 밝혔다. 박씨는 김씨와 함께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차명 휴대전화, 은신처, 차량 등을 제공해 도주를 도운 혐의를 받는다. 박씨는 지난달 30일 영등포구 모처의 은신처서 김씨와 함께 검거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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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