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티메프 사태’ 루멘페이먼츠 실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9.12 09:51:03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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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 공중에 붕 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수백억원대 상환 지연 사태를 일으킨 뒤 도주한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 루멘페이먼츠 김인환 대표가 검찰에 구속됐다. 김 대표는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허위의 신용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선정산 대출’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를 받는다. 이로 인한 루멘페이먼츠 계열사 등의 경영상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수십억대 적자로 보고 있는 루멘페이먼츠 계열사에 자금 유용이 없었는지 주시했다. 이는 온라인투자연계업(온투업)의 정산 지연 사태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달 루멘페이먼츠는 온투업체인 크로스파이낸스 측에 600억원 규모의 정산금을 지급하지 않아 금융감독원의 현장 검사를 받게 됐다. 

지난달 5일부터···

업계에선 김인환 대표의 ‘문어발식 경영’이 불러온 사태라는 지적이다. 김씨는 지난해 자본금 5억원 규모의 ‘푸른주택종합건설’을 인수했다. 김 대표가 100% 소유한 푸른주택종합건설은 지난해에만 3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밖에 푸른주택종합건설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감사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감사보고서에는 “주택 분양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 차입금에 대한 이자 지급이 어렵다”며 “당사의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유의적인 의문을 제기할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적혔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소유한 건설사에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루멘페이먼츠의 자금을 유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루멘페이먼츠의 모 그룹으로 소개되는 ‘루멘그룹’도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루멘그룹의 대표도 맡고 있다.


루멘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계열사 가운데 금융, 투자, 자산운용 부문을 맡고 있다는 회사 3곳은 법인 등기조차 되지 않아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또 계열사 중 7곳의 회사는 자본금 100만원에 불과했다. 16개 계열사의 임원진들도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동일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회사 규모를 부풀리기 위한 페이퍼컴퍼니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산지연 사태에 대해 김 대표는 매체와 인터뷰서 “내부 사정으로 경황이 없지만 정산은 반드시 상환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산금 유용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죄송하다. 경황이 없어서 잘 마무리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달 7일 오전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우후죽순 16개 페이퍼컴퍼니 내세워···
선정산 대출 악용, 전형적 먹튀 사례

김 대표가 ‘제2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지난 7월 큐텐그룹의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서 대규모 미정산 사태가 발생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소비자와 판매업체를 중개하는 온라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소비자가 결제하면 일정 기간 후 판매업체에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마찬가지로 루멘페이먼츠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PG사의 대금 미지급과, 구속된 김 대표의 정산금 유용 의혹이 사건의 발달이라는 점에서 티메프 사태와 닮았다는 것이다. 

루멘페이먼츠 사태는 루멘페이먼츠,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크로스파이낸스, 선정산 업체의 자금 흐름 구조서 발생했다. 선정산 대출은 소상공인 가맹점이 카드 매출을 담보로 선정산 업체 등으로부터 대출 형태로 돈을 지급받고, 선정산 업체는 정산일에 PG사로부터 대금을 받아 자동 상환하는 대출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카드 사용업소들이 카드 매출서 발생한 대금을 정산받는 데 5일서 7일이 걸린다. 카드사, PG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맹점 입장에선 재료비 등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산대금을 약 일주일 후에 받을 수 있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선정산 대출이다.

이번 사건은 루멘페이먼츠가 정산대금을 미상환하면서 선정산 대출 투자금 상환도 지연되는 사태로 번졌다. 온투업은 온라인 플랫폼서 투자자를 모집해 온라인 소상공인 등 자금이 필요한 이에게 투자금을 대출해주고, 투자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는 구조로 ‘P2P 금융’이라고도 불린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선정산 업체와 투자자를 중개했고, 소상공인의 카드매출채권 선정산 상품을 주력으로 삼았다.

선정산 업체는 소상공인 등 가맹점에게 카드매출 채권을 매입해 이를 담보로 삼고, 크로스파이낸스에게 대출을 신청한다.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페이먼츠 등 PG사의 가맹점 카드매출 정산금액을 확인한 뒤, 선정산업체에 투자금을 빌려준다.

이때 PG사가 정산을 담당하는데, 루멘페이먼츠는 유동성 확보 문제로 정산을 하지 못했다. 결국 크로스파이낸스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관리·감독 부실 책임···도주하다 걸려 
크로스파이낸스 “32억4000만원 피해”

루멘페이먼츠가 크로스파이낸스에 대금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현재 파악한 크로스파이낸스의 피해 투자자들 수는 888명, 피해 금액은 약 734억원으로 확인됐다. 루멘페이먼츠는 또 다른 온투업체인 스마트핀테크(스마트펀딩)에도 선정산 상품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스마트펀딩 측의 대출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59억원 규모다.

곽기웅 크로스파이낸스 대표는 “8월2일 루멘페이먼츠가 일부 금액에 대한 상환을 지연했다”며 “그리고 8월5일 급작스럽게 대규모 정산 지연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곽 대표에 따르면, 계약을 맺은 2021년 7월부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루멘페이먼츠가 한번도 정산대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미룬 적이 없다고 한다. 약 3년간 루멘페이먼츠와 거래해 온 만큼 어느 정도 업체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이 곽 대표의 입장이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에 따르면, 김 대표는 선정산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 김 대표가 소유한 선정산 페이퍼컴퍼니가 가짜 카드매출채권을 만들어 중간서 투자금을 빼돌릴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들은 크로스파이낸스의 투자자들뿐이다. 자금순환 구조상 가맹점 또한 피해가 발생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루멘페이먼츠의 피해 가맹점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루멘페이먼츠가 가짜 카드매출채권을 만들었다거나 가맹점들을 다른 PG사로 이동시켰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측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얘기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 크로스파이낸스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나아가 크로스파이낸스가 루멘페이먼츠와 공모했거나 이를 방조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이 같은 소문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임직원들 또한 피해를 봤다는 입장이다.

크로스파이낸스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당사의 임직원들도 지금까지 해당 투자상품의 구조적 안정성을 믿고 해당 상품에 투자해 왔다(28명, 5억3000만원)”며 “당사 역시 해당 상품들에 법인 유휴자금을 활용해 27억1000만원의 간접투자를 했으며, 일반 투자자와 동일하게 투자를 유지해오다가 결국 총 32억4000만원의 연체 피해를 입었다”고 공지했다.

다만, 크로스파이낸스는 루멘페이먼츠에 대한 면밀한 관리 감독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시인했다. 


한편, 김 대표는 지난달 23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상환 지연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공준혁)는 김 대표의 도주를 도운 혐의(범인도피)로 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지난 3일 밝혔다. 박씨는 김씨와 함께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차명 휴대전화, 은신처, 차량 등을 제공해 도주를 도운 혐의를 받는다. 박씨는 지난달 30일 영등포구 모처의 은신처서 김씨와 함께 검거됐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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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