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여름나기 ⑤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류의 샘이 깊은 물

미리 말하자면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하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나무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아니다. 배우 한석규, 송중기 등이 출연했던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세트장도 아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창기가 발행한 잡지 이름이다. 정기구독자만 무려 6만5000명에 달했던 잡지계의 전설이다. 물론 드라마와 공통점은 있다. 한류와 한글이다.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부터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기까지 5년 남짓 발간됐다. 우리나라 최초 순수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선언한 잡지였다. 당시는 경제발전이 지상 과제였고, 우리의 것보다 서양의 것이 환대받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발행인 한창기는 창간사에서 “우리 문화의 바탕이 토박이 문화”라며, “토박이 문화가 역사에서 얕잡힌 숨은 가치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토박이 문화

한류를 예언하듯 우리 한글과 문화의 가치를 눈여겨본 셈이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낙안읍성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다. 한창기의 유물 6500여점을 중심으로 꾸렸다. 일상에 가까운 옛 물건이 많다. 그가 한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 지사장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한편으로 놀랍고 어찌 보면 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곧장 한창기실로 이동해 먼저 그의 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괜찮은 관람법이다. 

한창기실은 자그마한 전시실이다. 옛 집무실을 재현하고, 옷가지와 생활용품, 친필 원고 등의 유품들을 전시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뿌리깊은 나무> 전권. 호별로 전시 중인데 각 호는 표지만으로 단숨에 시선을 끈다. 지금이야 제목에 한글을 쓰고 잡지에 아트디렉터를 두는 게 마땅하지만, 그때는 표지에 사진을 싣는 것조차 무모해 보이는 파격이었다. 


창간호는 흰 쌀과 65세 농부의 거친 손이 대비를 이룬다. 1979년 5월호는 친정에 온 딸과 어머니가 우산 하나에 의지해 나란히 걷는 모습이다. 1980년 5월호의 표지는 한 젊은 기능공의 환한 모습이다. 동양인 최초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장 고(故) 에드워드 김이 찍었다.

마지막 호는 이맘때인 8월호다.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이 표지다. 

<뿌리깊은 나무>의 기사는 한창기실 내 키오스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호에는 종간에 대한 언급이 없어 예정된 폐간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한창기의 집념은 <뿌리깊은 나무>의 폐간서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관점으로 여성을 이야기한 <샘이깊은물>, 여행서가 전혀 없던 시절의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목수, 길쌈아낙, 장돌뱅이 등 보통사람의 삶을 구술해 정리한 <민중자서전>, 우리 소리를 담은 23장의 음반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 등을 연이어 제작했다.

‘한류’라 불리는 우리 문화의 뿌리가 이곳에 있다. 

<뿌리깊은 나무> 전권이 전시 중인 한창기실
희소 유물 등이 있는 다채로운 지하 전시실도

한창기실서 지하로 내려서면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나타난다. 상설전시실은 그가 수집한 유물 6500여점 가운데 600여점을 전시한다.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백자청화매죽문필통 등 희소 유물서 일반 서민이 쓰던 소반이나 책장, 고무신, 한글 소설까지 다채롭다.


첫 방문이라면 조선시대 한글 편지를 눈여겨볼 일이다.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가 정경부인 김씨에게 보낸 편지, 사촌 동생이 형님에게 보낸 편지 등이다. 시누이가 아우의 변비를 걱정하며 도토리를 쑤어 꿀에 타 먹으라 권하는 편지는 잔잔한 미소를 자아낸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정갈한 한글 필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아이와 함께한 가족은 <박물관 탐구하기 책자>를 챙겨 돌아보자. 전시 관련 질문이 있어 게임을 하듯 재밌게 돌아볼 수 있고, 답을 적어 매표소에 제출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박물관 건물 맞은편에는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간문화재) 백경 김무규의 고택 수오당이 자리한다. 수오당은 영화 <서편제>에 등장했는데 영화서 백경 김무규가 실제로 거문고를 연주했다. <서편제>의 주인공 유봉역을 맡았던 김명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뿌리깊은 나무>의 기자기도 했다.

수오당 옆은 야외 석물 전시장이다. 목이 없는 석불과 옥개석만 올려놓은 석탑 등은 온전하지 않은 채라 오히려 ‘역사’적이다. 

순천의 다른 여행지를 같이 돌아보고 싶을 때는 순천시 관광지 통합입장권을 구매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습지, 낙안읍성, 드라마촬영장,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자연휴양림 등 6개소를 1박2일 동안 돌아볼 수 있는 관람권이 1만2000원이다. 

낙안읍성(사적)은 뿌리깊은나무박물관과 이웃한다. 1410m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 가옥 9동이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290여동의 초가집에 100여세대 230여명의 주민이 산다. 마을의 집과 집 사이로 난 돌담길을 천천히 산책하거나, 마을 민박집서 하루를 묵어가며 낙안읍성을 길게 누릴 수 있다.

특히 성곽 위에서 감상하는 마을 전경이 압권이다. 주말에는 객사에서 하루 두 차례(오전 11시, 오후 3시) 상설공연이 열린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생태도시 순천의 자랑이자 상징이다. 올해는 지난 2023정원박람회 이후, ‘우주인도 놀러오는 순천’으로 새로 단장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미로정원은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캐릭터가 자리 잡으며 ‘유미의 정원이 됐고, 동문과 서문을 잇던 강익중 작가의 ‘꿈의다리’는 색색의 조명과 미디어 콘텐츠를 결합해 우주선이 착륙하는 형상의 ‘스페이스 브릿지’로 정비했다.

4D입체영상관, 몰입형 맵핑 연출 등이 매혹하는 시크릿어드벤처도 들러볼 만하다. 여름에는 개울길광장도 제격이다. 개울 옆의 어싱길을 걷거나 마치 해변이나 계곡에 온 듯 개울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순천 나이트가든투어를 이용하는 것도 이색 피서법이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시크릿어드벤처와 정원드림호 수상퍼레이드를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짱뚱어, 칠게 등 순천만국가정원을 상징하는 8척의 캐릭터 배가 밤의 물길을 누빈다.

순천 나이트가든투어

스페이스 브릿지의 환상적인 야경 또한 배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평일에는 철도관사마을, 주말에는 철도관사마을과 원도심자유투어를 포함한다. 1일 20명 선착순이며 평일(18:20~21:10)은 1인당 1만4000~1만9000원, 주말(17: 00~21:10)은 2만4000원~2만9000원이다. 우천으로 수상퍼레이드가 취소될 경우 도보형으로 전환하고 승선료 부분은 환불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낙안읍성→순천만국가정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낙안읍성→나이트가든투어
-둘째 날 순천만국가정원→순천만습지→와온해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두근두근 순천여행 www.suncheon.go.kr/tour
-낙안읍성 www.suncheon.go.kr/nagan
-순천만국가정원 https://scbay.suncheon.go.kr/garden
-나이트가든투어 www.nightgardentour.co.kr

운영 정보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운영 시간: 9:00~18:00 휴무: 매주 월요일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

문의 전화
-순천시청 관광과 061)749-5798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061)749-8855
-낙안읍성 061)749-8831
-순천만국가정원 061)749-3114
-나이트가든투어 010-5707-2354(순천관광매니지먼트)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순천역, KTX 하루 16~18회(05:08~21:48)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순천역 정류장서 68번, 순천역 서측 정류장서 61, 63번 일반버스 이용. 낙안읍성 3·1운동 기념공원 정류장 하차. 도보 441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순천시교통관제센터 061)749-5959, https://its.sc.go.kr


-버스 서울-순천,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16회(06:10~23:30)운행, 3시간40분 소요. 순천버스터미널 정류장서 61, 63, 68번 일반버스 이용. 낙안읍성 3·1운동 기념공원 정류장 하차. 도보 441m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순천시교통관제센터 061)749-5959, https://its.sc.go.kr

자가운전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순천IC→지봉로→녹색로→민속마을길→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숙박 정보
-류황가원림: 순천시 조정래길, 010-9268-6524
-순천만에코촌 유스호스텔: 순천시 해룡면 생태배움길 061)749-4818, www.suncheon.go.kr/ecochon
-순천만숲펜션: 순천시 순천만길, 010-7570-1775, 순천만 숲펜션(xn--sk4b1n9b95sn3jj1kt5c.com)

식당 정보
-순천만전라도밥상(꼬막비빔밥): 순천시 순천만길, 061)745-2112
-겨비겨비(칼삼겹살): 순천시 오천3길, 061)743-1278
-브루웍스(카카오 쌍화차): 순천시 역전길, 061)745-2545, www.brew works.kr

주변 볼거리
순천만습지, 순천드라마촬영장, 송광사, 선암사,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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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민주당 사법개혁 진짜 속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안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법부가 빌미를 제공했단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허점이 많은 법안을 밀어붙인단 비판도 있다.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을 엮어 이재명 대통령까지 패로 쓰려 했던 민주당의 진짜 속내는 뭘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대법관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변경 ▲법관 평가에 변호사협회 평가 반영 ▲하급심 판결문 전면 공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사전심문제 도입 등 5대 사법개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법 왜곡죄 신설과 재판소원 제도는 별도로 추진할 예정이다. 5대 개혁안 확정 발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이후 대법원과 야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이 특히 반발했던 개혁안은 대법관 증원이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현행 14명인 대법관은 4년 동안 매년 4명씩 늘려 30명까지 채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에 신임 대법관 16명과 임기 만료 후 교체되는 대법관 10명 등 총 26명을 임명한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 “대법관 증원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가 일시에 임명되면,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후임 대법관 임명 때마다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지난달 22일 국회서 진행된 ‘민주당의 입법에 의한 사법 침탈 긴급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은 사법 해체안”이라며 “사법부의 중립성은 온데간데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사법부 스스로 민주당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빌미로 작용하는 구체적 사례는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등이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윤 전 대통령 측의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핵심 근거는 “수사 관련 서류가 법원에 있었던 시간은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기술이 발달해 정확한 서류 접수·반환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관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 후 “구속 기한이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제66조 제1항은 “구속기간의 초일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1일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 부장판사가 집필에 참여해 지난 2022년 발간된 <주석 형사소송법>도 “구속기간 계산은 시간이 아닌 일(日)로 한다”며 “구속기간은 날짜 단위 계산법을 따른다”고 명시했다. 검찰이 지 부장판사의 구속 취소에 즉시항고를 제기하지 않아 반발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 부장판사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재판을 비공개하거나 “보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밝히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5월부터는 “고급 룸살롱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법원은 제21대 대통령선거를 33일 앞둔 지난 5월1일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28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이 대통령 사건 기록을 받았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이로부터 불과 9일 후 상고심 선고가 진행됐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했다. 빌미 제공한 사법부에 몰아치는 민주 왜? 당리당략 위해 여야 번갈아 “대법관 증원” 민주당은 “기록 6만쪽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졸속 재판”이라고 반발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며 “대법원은 왜 정치를 하느냐는 국민적 비판까지 감수한 무리한 행동을 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후 범여권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유의 일사불란한 몰아치기 전술로 사법개혁안을 한꺼번에 처리하려 하고 있다. 보복을 위해 대법원을 무력화하려는 것일 가능성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사법개혁안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추진 ▲법 왜곡죄 신설 등이다. 대법관 증원론은 1994년부터 제기됐다. 상고허가제는 밀려드는 상고심 접수에 대응하기 위해 1981년부터 운영됐다가 위헌 논란이 제기돼 1990년 폐지됐다. 대법관 증원론은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안으로 거론됐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밝혔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1994년 도입됐다. 하지만 상고심 접수는 나날이 늘었다. 지난해에 접수된 상고심 접수 건수는 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송을 제외하면 1만3026건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시도했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사건만 전담하고, 상고법원은 그 외 상고심을 맡아 사실상 4심 법원 체제로 운영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법원행정처를 내세워 ▲불법 로비 ▲재판 거래 ▲판사 사찰 등을 저질렀단 의혹이 불거졌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현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상고허가제는 “국민이 상고심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상고법원 설치는 금기시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특례는 누가 봐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남은 대안은 대법관 증원밖에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반대해 왔다. 사법부는 1994년에도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의 대법관 수도 15명”이라며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고유 기능 측면에서 볼 때, 대법관 13명도 많은 숫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론이 제기될 때마다 ▲전원합의체 유지 ▲파기환송 증가로 인한 송사 비용 증가 ▲재판 지연 ▲인사청문회·임명 지연 등 논점을 제시하면서 반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정략적으로 접근한다.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은 지난 2010년 우리법연구회 좌편향 논란을 제기하면서 대법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비법관 출신 8명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명박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며 반발하는 등 현시점에선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당시에도 크게 반발했다. 여야는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가 곧 백지화시켰다. 돌고 도는 직권남용 당시 한나라당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겨냥해 대법관을 늘리기로 한 것처럼, 민주당도 대법원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이후 급하게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재판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긴 안목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을 급하게 밀어붙여 부작용을 양산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법 왜곡죄 신설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추진된다. 범여권은 꾸준히 법 왜곡죄 신설을 시도했다. 제20대 국회에선 정의당 심상정 전 의원이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 김남국 당시 의원(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발의했다. 지난해엔 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발의했다. 지난해까진 검사·사법경찰관 등 수사 업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발의됐으며, 이번 추진엔 법관도 포함된다. 1년여 동안 법관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할 정도로 달라진 변수는 지 부장판사 관련 논란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엔 심각한 오류들이 있다. 민주당은 이미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쪼개는 검찰 해체 법안 통과를 완수했다. 이에 따르면, 중대범죄수사청에 소속될 검사는 수사관 신분으로 전환된다. 공소청에서 근무할 검사는 기소·공소 유지만 맡는다. 부장검사를 지낸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법 왜곡죄에 관한 소고>에서 “기소 이후엔 절차 지휘권이 법원으로 넘어간다”며 “검사는 판사에 의한 법 왜곡죄의 공범으로 가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해체 이후 검사에겐 수사권이 없고, 공소 유지는 법관이 전담하는데, 검사가 어떻게 법 왜곡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느냐”는 취지의 반박이다. 김 부교수는 법관을 법 왜곡죄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민주당의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 왜곡죄 도입이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법안엔 검사 등 수사기관으로 규율 범위가 한정됐지만, 대법원이 특정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하자, 12일 만에 법관을 적용 대상에 추가해 발의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구하기? 그러면서 “이 의심은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고도의 개연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 왜곡죄는 독일 형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독일의 법 왜곡죄는 “법관 등이 재판 등을 하면서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법을 왜곡하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의 법관 전용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 왜곡죄에 대해선 “법관에 대해서도 이미 있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 “굳이 신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울러 직권남용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정치 보복 목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다수의 고위공직자에게 직권남용죄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시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검찰도 박근혜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을 지내면서 직권남용죄를 다수 적용했던 사람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다. 실제로 검찰의 직권남용죄 총처분 건수는 2011년 4057건서 2020년엔 1만4050건으로 늘어난 통계도 제시됐다. 직권남용죄에 대해선 “개념이 모호해서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의 직권은 어디까지인지, 무엇이 남용인지, 직권과 행사에 방해를 받은 권리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면 범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는 법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수사·기소를 하는 수사기관과 판단을 하는 법관의 재량에 판단이 좌우되는 일이 많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 2006년 직권남용죄에 대한 헌법소원 당시 “조항이 모호해서 정권교체 후 정치 보복을 위한 고위공직자 처벌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위헌 취지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파기환송에 “판사 법 왜곡 처벌” 수사권 없어지는데 검사도 포함 추진 권 전 재판관은 지난 2022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용을 방지하려면 요건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위헌 의견을 냈다”며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의견을 밝혔을 때 서둘러 개정했다면,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라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권 전 재판관이 발언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시기였다. 문정부도 직권남용죄의 함정에 빠져, 문 전 대통령 재임 중인 지난 2019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에 대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에 대해서도 “인사권과 관련된 직권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연루돼 기소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2022년 10월엔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정부 인사들이 불구속 기소됐다. 문정부 검찰총장으로서 다수의 직권남용을 지휘했던 윤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 때문에 구속 기소됐다. 민주당은 한동안 “대통령 재임 중엔 진행 중인 형사재판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 다수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었고,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사건도 있었던 현실을 고려한 법안 추진이었다. 발의 시점도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다음 날인 지난 5월2일이었다. 민주당은 ‘국정안정법’이란 별명까지 붙여가면서 이달 안에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발은 정작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3일 “재판중지법은 불필요하단 게 대통령실의 일관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여당에 사법개혁안 중 대통령 재판중지법 제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이 이 대통령까지 옭아매 패로 쓰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대통령 재판중지법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받는 형사재판은 임기 중에만 중지된다. 퇴임 이후엔 다시 진행되기 때문에 유죄를 선고받으면 수감 생활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일각에선 “진짜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공소 취소”라고 주장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지난 6월 “공소를 취소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후 비판받은 사람은 민주당 정청래 대표였다. ▲유엔 총회 ▲아세안 정상회의 ▲APEC 정상회의 등 이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이 겹친 시기에 대통령 재판중지법을 강하게 추진한 사람이 정 대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대통령을 구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해서 당 대표 재선에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노리려는 것”이란 일각의 분석도 나온다. 법률적 이해관계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엔 이 대통령의 법률적 이해관계가 묶인 내용이 다수 포함돼있다. 아울러 “특정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현임 대통령까지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법률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오류에 대한 지적에도 개의치 않는다. “보복·당리당략·자기 정치를 위해 막 던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특유의 몰아치기가 작동한다. 민주당이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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