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CFO도 모르는데 경제범죄 수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몇 년 전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벌였다. 수십년간 검찰이 독점적으로 행사한 권한을 경찰에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결과 경찰은 과거에 비해 강한 힘을 갖게 됐다. 문제는 그 힘을 행사할 능력의 여부다.  

“이제는 ○○○(피고소인)보다 경찰이 더 저를 화나게 합니다.” 이모씨는 지난해 8월 한때 회사의 공동대표를 지낸 하모씨를 고소한 이후 ‘지옥’에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하씨가 회사를 이용해 몰래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고 이 과정서 1000억원대의 업무상 배임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뒤늦게
알았다

이씨와 하씨가 공동대표를 지낸 R스타트업은 2019년 56회 무역의날에 ‘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할 정도로 비전을 보인 회사였다. 중국 플랫폼을 대상으로 국내 뷰티 및 패션 상품을 소싱·마케팅하는 종합 커머스를 운영했다. 창업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씨는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는 R스타트업의 단독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한 시점은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면서부터다. 사업서 중국의 비중이 컸던 만큼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국내는 물론 세계 경제 전반을 흔들었던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하씨의 주도로 마스크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이씨에 따르면, R스타트업은 미국의 상장 의료법인 A사로부터 1000만불에 달하는 마스크 공급 요청을 받았고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마스크 관련 유통 업무를 주도했던 하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 법인을 이용해 수급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하씨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고 통보하면서 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이는 2020년 3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씨는 “그 이후로 회사 차원서 마스크 관련 업무를 진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하씨가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천만불 수출탑’ 수상
코로나19로 상황 악화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였던 하씨가 경영서 손을 떼면서 이씨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회사를 떠안게 됐다. 이후 하씨가 2022년 3월 ‘차단’ 형태로 이씨와 연락을 끊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씨가 하씨의 회사 메일 계정을 일시정지 조치했다.

이씨는 “그 시기(2022년 3월경)는 연령 초과로 하씨의 병역의무가 사라진 때였다. 주변 사람을 통해 하씨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00억원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도 있었다. 고급 외제차를 사고 지인 사업에 투자도 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완전히 일단락되나 했던 이씨와 하씨의 관계는 지난해 6월 우연한 계기로 다시 변곡점을 맞았다. 이씨가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을 확인하는 도중 석연찮은 구석을 발견한 것이다. 하씨가 완전히 무산됐다고 밝힌 미국 A사 외에 다수의 마스크 거래를 진행한 흔적이 포착됐다. 


이씨는 이 과정서 하씨가 회사에 정보를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사 경영상의 사소한 내용까지 메일로 공유했지만 마스크 관련 부분만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가 하씨의 이메일 계정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씨에 따르면 하씨는 마스크 거래를 추진하는 과정서 R스타트업의 이메일을 사용해 해외 수요자와 소통했다. 또 하씨의 아버지가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필리핀 법인을 R스타트업의 지사로 소개하는 등 이씨와 상의없이 회사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회사
이용했다?

마스크 거래가 성사됐는지는 불분명한 상태지만 이메일 내용으로 추정한 규모는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씨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도로 극심한 배신감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회사가 경제적으로 허덕일 당시 이씨는 하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회사 빚을 자신이 다 떠안은 상황서 하씨는 ‘뒷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거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8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하씨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확인한 ▲하씨가 거래 상대방과 주고받은 이메일 ▲날인, 서명본이 존재하는 계약서 ▲필리핀 법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 등의 증거자료를 함께 제출했다. 

이씨는 “경찰에 많은 증거를 공유했고 추가로 나오는 내용도 전부 이메일을 통해 제공했다. 이메일 양이 워낙 방대했지만 범죄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결론이 금방 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소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경찰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씨의 고소건은 인천 연수경찰서에서 진행되다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이첩됐다. 하씨가 진행한 마스크 거래 규모가 지역경찰서에서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 연수경찰서에서 작성한 범죄일람표상 금액은 1400억원에 달했다.

대형 경제범죄 의혹에도 경찰의 움직임은 미진했다. 이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경찰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하씨의 출국금지 조치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인천경찰청은 연수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뒤 하씨에 출국금지 조치를 진행했다. 

출금부터
꼬였다

문제는 해당 시기 하씨가 국내에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씨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하씨가 해외에 있는 것을 확인해 경찰에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알아보겠다’는 말이 돌아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하씨가 국내로 들어온 뒤에야 다시 출국금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국금지 조치는 지난 2월 인천경찰청이 하씨의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해제됐다. 이씨는 이 과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강조했다. 먼저 고소인 조사가 20분밖에 진행되지 않은 점을 들었다. 또 이씨에 따르면 인천경찰청은 이첩 전 연수경찰서에서 4시간에 걸쳐 진행한 고소인 조사의 조서조차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씨가 분노한 지점은 경제범죄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였다. 이씨는 “고소인 진술 과정서 ‘CEO(최고경영자)와 CFO(최고재무책임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팀장이 ‘CFO가 뭐냐’고 묻더라. 그때부터 경찰이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범죄는 수사하기가 힘들다” “필리핀 계좌는 사실상 우리가 수사하지 못한다” 등의 발언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수많은 자료를 제공했고 수사기관으로서 조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피고소인(하씨)의 진술에만 의존해 불송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찰이 기재한 불송치 이유를 보면 하씨가 ▲R스타트업과 최초로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던 미국 A사 외에도 다른 업체와 계약을 진행한 점 ▲이 과정서 이씨에게 계약 내용을 일일이 고지하지 않은 점 ▲회사 이메일을 통해서 계약을 진행한 점 등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하씨가 ▲거래대금을 이씨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을 불송치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 확인서 등을 근거로 ‘혐의 없음’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메일 확인 과정서 배임 의심
경찰 불송치 → 검찰 보완 요구


반면 이씨는 “하씨가 마스크 거래와 관련해 나와 공유한 것은 미국의 A사 건뿐이다. 내가 원한 것은 미국의 A사 외에 하씨가 회사 몰래 진행한 마스크 거래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라며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리기 전 하씨의 필리핀 계좌는 물론 국내 계좌에 대한 조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영장이)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에 수차례 걸쳐 하씨의 가족이 사건에 연루돼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돈의 흐름이 하씨서 하씨의 아버지로, 하씨의 여동생으로 흘러간 정황이 있는데도 경찰은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 사이 하씨의 몇몇 친인척은 이미 외국으로 출국했다”고 주장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 3월 하씨에 대한 인천경찰청의 불송치 결정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상태다. 인천경찰청 수사 담당자는 “검사님이 필리핀 계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보완수사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청(경찰청)을 통해 필리핀에 공조를 요청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수사준칙 개정안을 통해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3개월 이내에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씨는 “14일에 경찰이 오라고 해서 한 번 더 조사를 받았다. 그때는 필리핀 법인에 대해 ‘같은 이름의 다른 업체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더라. 첫 조사부터 지금까지 1년이 지났는데 해당 업체의 실체에 대해 묻는 것이다. 그것도 조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휴대폰으로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다”고 고개를 저었다. 

민원 제기
결론은?

이씨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제대로 된 수사를 해달라면서 민원을 제기했다. 해당 민원은 인천경찰청 사건 수사관에 대한 진정으로 분류돼 현재 연수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이씨는 “경찰은 수상할 정도로 하씨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내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해야만 제대로 수사해줄 거냐. 제발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천경찰청 담당 수사관 “할 만큼 했다”

이씨가 제기한 하씨에 대한 고소 사건을 맡고있는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수사를)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화 통화는 고소인 추가 조사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이뤄졌다. 다음은 수사 담당자와의 일문일답.

-불송치 결정 이후 인천지검서 보완수사 요구가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피고소인이 본인 개인회사로 추정되는 필리핀 회사와 거래를 했다고 고소인이 주장해 검찰서 해당 회사의 거래내역을 한 번 확인해 보자고 했다. 국제공조 요청에 대한 보완수사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불송치 결정 전에는 국제 공조 요청을 하지 않았나?
▲그때는 마스크 거래한 업체에 출장 조사까지 가서 확인했는데 마스크 공급이 전혀 안 됐다. 거래가 최종 결렬됐다. 고소인이 주장하는 1400억원을 배임했다는 증거나 소명자료가 부족해 국제공조까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했다. 

-현재 국제공조 요청이 이뤄진 상태인가?
▲경찰청서 필리핀 인터폴에 공조 요청을 했다. 우리(인천경찰청)가 직접 공조를 하는 것은 아니고 경찰청이 진행하고 우리는 자료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고소인은 경찰 조사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고소인은 연수경찰서에서 1차로 조사받았다. 중복되는 내용을 물어볼 수 없어 부족한 부분만 물었다. 처음부터 다시 다 조사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사는 다 했다고 생각한다. 

“묻지 않는 게 더 나쁘다”

-고소인은 경제범죄에 대한 경찰의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경찰이 지능범죄나 경제범죄에 대해 100% 알고 있는 상태서 입문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서 특히 경제범죄의 경우 시사, 경제 용어를 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다. 모르는데 그냥 넘어가는 게 더 나쁜 것 아니냐.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3개월 안에 이행되도록 규정돼있지 않나?
▲맞다. 90일 안에 무조건 끝내려 한다. 사건이 적진 않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사건의 결론은 어떤 절차를 거쳐 언제쯤 나게 되나? 
▲보완수사가 마무리되면 결과 통보서를 검찰에 보낸다. 이후에 검찰이 다시 보완수사 요구를 할 때도 있고 그대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마다 다르다. 결정 변경도 가능하다. 결론이 언제 날지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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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검찰개혁안 이후⋯‘초상집’ 검찰 내부 분위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 개편안이 시행되는 것은 아직 1년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수사관, 지휘부와 일선 검사들은 물론 퇴직 검사들까지 나서서 검찰청 폐지에 반대 중이다. 특히 공소청장을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개혁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대선 기간부터 말이 나왔던 검찰개혁안이 발표됐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고 검찰개혁안에 대해 쉬쉬하던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야 조직을 지키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사관, 검사, 퇴직 검사, 지휘부 등 모든 관계자들이 검찰 해체가 ‘위헌’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등 늦게나마 조직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위헌” 목소리 지난 7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시행 시기는 세부 방안 확정 등을 위해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당정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건의한 조직 개편안을 중심으로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듣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마련한 정부 조직 개편방안을 추진했다”며 “개편 방안 중 검찰개혁을 가장 심도 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개혁의 완성은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며 “그간 검찰의 견제받지 않은 권한의 남용과 공정성 훼손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당정은 검찰 수사·기소를 분리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각각 신설하며,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두기로 확정했다. 한 위원장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의 제기와 유지, 영장 청구 등을 수행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공소청을 신설하는 한편, 부패·경제 범죄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를 수행하기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중수청을 신설하겠다”고 설명했다. 헌법의 검찰총장 임명 조항과 관련해 ‘공소청장이 검찰총장이 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당정은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무총리실 산하 범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해 당정대 협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오늘 협의 결과를 토대로 의원 입법을 통해 조속히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추석 이전에 개편안을 시행하기 위해 이달 말에 법안이 통과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며 “정부 조직 개편에 특별히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 “잘못 인정하지만 폐지는 절대…”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지난 9일 야권에 ‘3대 개혁(검찰·사법·언론)’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검찰, 사법,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곳”이라면서 “3대 개혁은 비정상적인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시대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절대 독점은 절대 부패한다”며 “절대 독점을 해소함으로써 권력기관은 스스로 절대 부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개혁은 타이밍”이라며 “추석 귀향길 뉴스에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해체되는 검찰개혁안이 발표되자, 검찰 구성원은 이제야 뭉쳐 반발하는 분위기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검찰청 폐지’를 토대로 한 정부 조직법 개편안을 두고 “검찰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지난 8일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을 만나 전날 정부여당이 내놓은 정부 조직 개편안과 관련해 “헌법에 명시돼있는 검찰이 법률에 의해 개명당할 위기에 놓였다”면서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에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서 세부적인 방향이 진행될 것인데, 그 세부적인 방향은 국민들 입장에서 설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언급했다. ‘반성’을 앞세우면서도 ‘강제 개명’ ‘국민 입장’ 등 뼈 있는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희 검찰도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검찰 존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검찰 수사관들은 전국 검찰 수사관회의를 열어 달라고 대검찰청에 요청하고 있다. 이대로 사라지나 수사관 A씨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현재 검찰 조직을 둘러싼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내 친구들에게, 내 친척들에게, 내 이웃사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정말 우려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 자신을 8년 차 수사관이라고 소개한 그는 “저희는 노조(노동조합)도 없고 직장협의회도 없다”며 “검찰이 해체되면 도대체 1년 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저는 수사가 하고 싶어 수사관이 됐는데, 앞으로 수사할 수도 없이 제가 8년간 소중히 여겨온 검찰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빼앗겨야 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대검 운영지원과에 조속히 전국수사관회의를 열어줄 것을 요구한다”며 “저희 검찰 수사관들을 위한 논의를, 검찰 조직의 방향을 위한 논의를, 형사법체계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검찰 구성원들끼리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하자 서울고검·대구지검 등 소속 검찰 수사관 수백명이 2022년 4월 검찰수사관회의를 열고 우려 입장을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파견된 일부 검사들은 ‘원대 복귀’ 희망 의사를 특검 지휘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건진법사 게이트와 통일교 수사팀장을 맡은 부장검사 2명이 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해 특검보에게 “전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다만 특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정식으로 해당 내용을 확인한 바 없다”며 “내심의 의사는 모르지만 아직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퇴직 검사들도 검찰청 폐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퇴직 검사 및 검찰공무원 모임인 검찰동우회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여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정부 조직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시 살릴 방법은? 이들은 “검찰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해체 위기까지 맞이하게 된 데 대해 국민 앞에 먼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는 것을 넘어 개혁 대상이 된 현실은 검찰 구성원의 과오에서 비롯됐음을 통감하며 국민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권한을 조정하고 조직을 개편하려는 입법부의 결단을 존중하며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에 동참할 것”이라면서도 “개혁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성급한 개혁은 위헌 논란을 야기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크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1948년 제헌 헌법은 수많은 직위 중 유독 검찰총장을 국무회의 심의 사항으로 명시했고 이 원칙은 70년 넘는 헌정사 동안 굳건히 지켜져 왔다. 검찰청과 그 책임자인 검찰총장이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닌 헌법적 차원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는 헌법적 기관임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헌법이 인정한 기관의 명칭을 법률로 변경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며 법체계의 위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법률로 헌법상의 법원을 재판소로 바꾸거나 국무총리를 부통령으로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이 원하는 진정한 개혁은 위헌적 논란을 감수하며 명칭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혁의 핵심은 명칭이 아닌, 검찰이 국민을 위해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며 “개혁의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주길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청 폐지 위헌 주장은 헌법 89조16호에서 비롯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해 “‘공소청장’을 헌법 제89조 제16호의 ‘검찰총장’으로 본다”는 공소청 법안 규정을 두고, “헌법상의 기관을 헌법 하위의 법률로써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 89조 16항 발목 잡나 “규정 넣으면 실질 갖출 수도” 그는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라고 하는 조직의 수장이고 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는 조직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조직의 명칭만 바꾸는 것도 위헌이고 명칭을 그대로 두고 내용을 바꾸는 것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헌법 제89조 제16호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로 ‘검찰총장·합동참모의장·각군 참모총장·국립대학교총장·대사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관리자의 임명’을 규정하고 있다. 앞서 노태우정부에서도 합동참모본부를 국방참모본부로, 합동참모의장을 국방참모의장으로 각각 변경하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같은 헌법 89조에 따른 위헌 지적이 나오자 명칭 변경을 포기한 선례도 있다. 2010년에도 군 지휘구조 개편을 통해 합동참모본부를 합동군사령부로, 합동참모의장을 합동군사령관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위헌 가능성이 있어 개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검찰청 폐지 역시 검찰총장을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헌법상 검찰총장은 검찰청이란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를 없애거나 두지 않는 건 ‘위헌적 입법 부작위’라는 취지다. 공소청 설치법에서 공소청장을 ‘헌법상 검찰총장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는 것은 하위 법률로 헌법에서 정한 사항을 무력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검찰청 폐지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검찰동인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나오자 당정은 ‘검찰청이 헌법기관이 아니라 폐지하면 위헌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검찰총장을 헌법상 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검사는 개개인 독립된 행정관청이고, 검찰총장은 그 집합체의 장일 뿐 조직법상 직위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총장 명시 헌법 위반? 헌법상 검찰총장이 명시돼있더라도 공석으로 임명하지 않은 채 충분히 신설 공소청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공소청장을 임명하면 검찰총장은 헌법 조문상에서만 존재하게 두고 법적 지위는 없어진 게 되는 것”이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헌법 92조), 국가원로자문회의(헌법 90조) 등 헌법상 사문화된 기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공소청 법안이 준비되면 공소청장 임명에 관한 규정에 ‘헌법 89조 16조의 검찰총장 임명 방식을 준용한다’는 규정을 넣으면 실질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법 역시 법적 미비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한다’ 등으로 명시해 근거를 마련했다는 게 근거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