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업 벤처 등록 제외 논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8.20 10:45:36
  • 호수 1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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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업 취급받는 ‘K 코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가상자산사업자가 벤처기업 인증 대상서 제외돼 시대착오적 규제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벤처기업 인증은 기술기업이 세제·금융·특허 및 정책자금·신용보증 등 혜택과 더불어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가상자산업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으로부터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벤처기업협회 및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신고된 5곳 업체에 대한 벤처인증취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거래소뿐 아니라 디지털 월렛, 커스터디 사업(수탁사업) 등 사행성과 거리가 먼 신사업 추진 기업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벤처인증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인증을 받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인증심사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이미 취소됐거나 소명 절차를 거친 후 최종 취소 여부가 결정된다. 벤처기업 인증을 이미 받았지만, 가상자산사업자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이유로 정부가 획일적으로 제외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관련 기업들은 정부가 벤처인증까지 내주고 뒤늦게 가상자산사업자라는 모호한 규정을 적용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금융자산을 대신 보관 및 관리하는 서비스인 커스터디 사업의 규제가 가장 눈에 띈다. 기존에 금융사들이 제공했던 업무로 투자자 입장에서는 직접 자산을 관리할 필요가 없고, 외부 도난 등의 사고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안 사업의 일종이다.


최근엔 디지털자산 산업이 발달하면서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 영역도 커지고 있다. 

해외에선 이미 관련 서비스들이 출시된 바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9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비트코인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국민은행이 최초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했다.

국민은행의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Korea Digital Asset·KODA, 이하 코다)은 지난 2021년 5월3일 가상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공식 출시했다.

코다서 제공하는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는 고객들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을 외부 해킹이나 보안키 분실 같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고 가상자산 예치이자(스테이킹) 같은 탈중앙금융(디파이, De-Fi) 상품에 투자해 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법인 고객들이 가격 변동성 위험을 최소화하며 안전하게 디지털자산을 매매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법인 계좌의 원화 입출금이 불가능한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와 달리 코다는 장외거래를 중개한다. 제도권서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한 만큼, 기능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소 경쟁사의 진입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다만, 정부는 가상자산사업자를 ‘유흥업’과 견주어 벤처기업 인증의 자격을 박탈한 모양새다. 이는 지난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시행한 것과 상충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18년 10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중개·매매업에 대해 도박장인 카지노, 유흥업종인 유흥주점 및 카바레와 함께 ‘벤처기업 지정 제외 업종’으로 하는 벤처기업육성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시행해 오고 있다.


“시중은행도 하는데···” 왜 빠졌나?
디지털 월렛, 커스터디 사업 물거품

정부가 지난달 19일부터 이용자 보호 및 불공정 거래 규제 중심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1단계 가상자산법)을 시행하면서 본격적인 가상자산 제도화 시대에 진입했다. 앞서 국무총리실이 지난 2017년 12월13일 ‘조속한 시일 내 입법조치를 거쳐 투자자 보호, 거래 투명성 확보 조치 등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서는 가상통화 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한 지 무려 6년7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가 벤처 업종 및 중소기업 자금 지원서 제외되면서 시대착오적 제도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22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는 “새 정부 출범 후 5개월이 지났음에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제도적 홀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KDA는 국민권익위원회 및 중소벤처기업부에 새 정부 출범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벤처업종 제외 및 중소기업 자금 지원 제외 등 제도적 홀대를 개선해 주도록 요청한 바 있다.

당시 관계 당국에선 국민신문고를 통해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라며 “투자자 보호 강제 규정 등이 미비하다”고 아직 해당 제도를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특히 ‘벤처기업 지정 업종에 포함’ 요청에 대해 관계 당국에서는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골자로 한 법이며, 투자자 피해 구제 수단을 강제하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자금 지원 대상 포함 요청에 대해서는 “특정금융정보법 제2조 1항 하호에 의해 가상자산사업자가 '금융회사 등'에 포함돼있어서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기술 및 사업성이 우수한 중소기업의 성장촉진을 위해 운영되고 있으나, ▲사행산업 등 국민정서에 의해 지원이 부적절한 업종과 ▲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금융 및 보험업 등의 업종은 융자지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는 신용보증기금 및 지자체 신용보증재단의 신용보증에 의한 중소기업 운영 및 시설자금 지원 대상서도 제외돼있다.

강성후 KDA 회장은 “2018년 당시와 확연히 달라진 정책환경을 애써 무시하는 처사”라며 “국민의힘 및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특위와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규제혁신회의 및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TF 등과의 협의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제도적인 홀대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혼란만 가중시킬 것”
‘공정 경쟁’ 사라지나

2년이 지났지만 제도 개선보다 규제만 늘었다. 현재 벤처기업협회 확인심의팀은 현행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를 벤처 등록 대상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에 해당한다. 지난 2018년 10월 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은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는 업종(제2조의 4관련)에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명시했다.


당시 투자과열·유사수신·자금세탁·해킹 등 불법행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벤처기업으로 지정해 혜택을 주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가상자산 사업 형태 및 규모와 제도권 진입 등이 이뤄진 현재에도 일률적인 규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령에 따르면 모든 가상자산사업자는 벤처인증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다 포기한 가상자산업 대표는 “사행 기업이라는 과거 기준으로 가상자산사업을 판단하는 정부의 이 같은 행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며 “벤처기업 인증을 받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미 인증받은 기업까지 취소 통보하고 있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 벤처 정책과 관계자는 “그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으로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서 벤처 인증을 내주는 데 부담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행령 개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팀장은 “사행성이라든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벤처인증 심의 과정서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면서 “가상자산사업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은 현시점서 벤처 예외 업종으로 지정해 일률적으로 규제할 필요는 없다”고 짚었다.


벤처기업 인증은 기술기업이 세제·금융·특허 및 정책자금·신용보증 등 혜택과 더불어 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로 꼽힌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벤처인증 불허의 가장 큰 문제는 가상자산업 투자 생태계 조성을 못 한다는 것”이라며 “산업 육성을 위해선 벤처기업 제외 항목에 대한 시행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국제기구들은 ‘국제공동 가상자산법 권고안’을 발표하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30여개 회원국에게 입법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도 일부나마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갈 길 멀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금융안정위원회(FSB)는 9월에, 국제증권관리감독기구(IOSCO)는 11월에 각각 ‘국제공동 가상자산법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지난 2022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60조원 이상 피해를 유발한 테라·루나 토큰 사태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현재 신현성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 등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이 밝힌 공소장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관련자들이 거래소서 자전거래 등을 통해 얻은 수익은 무려 6308억원에 달한다. 이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입증한 금액에 불과하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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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