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호사카 유지 교수 사도광산을 말하다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8.06 13:45:20
  • 호수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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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부터 눈감아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됐던 사도광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정말 막을 수 없었던 것일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두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정부가 국제법에 걸리지 않도록 박근혜정부 때 군함도서 ‘강제징용’을 뺀 것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지금부터 9년 전이다. 이때부터 일본 정부는 일본이 강제징용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었다.

‘사도광산’이라고 불리는 사도 금광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가섬에 위치한 금광이다. 1601년에 금광이 발견됐고 에도 시대(1603년부터 1868년까지) 동안 중요한 재원으로 개발됐다. 여기서 발견된 금은 1년에 약 400㎏, 은이 약 40t 이상이었다. 일본 최대의 금 광산으로 대량의 금·은을 생산했다. 사도광산서 생산·제련한 철심 및 금은은 막부에 상납됐고, 이를 긴자에 맡겨 화폐를 주조했다. 

언제부터
틀어졌나

특히 은은 청나라 등에 대량 수출됐으며, 사도 산출의 화취은은 ‘세다 은’으로도 불렸다. 현재는 고갈 및 금의 가치와 노동자 임금이 맞지 않아 채굴 자체가 중단됐고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에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안겨줬던 사도광산에는 숨은 비밀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금광을 채취했던 노동자들이 과거 조선서 강제동원된 인력이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 중 몇 명이 죽었으며, 어떻게 생활했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7일, 사도광산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이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데 대해 “등재까지 14년 넘게 걸렸다”며 기쁨을 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엑스(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전통 수공업 수준을 높여 구미의 기계화에 견줄 만한 일본 독자 기술의 정수였던 사도광산”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한 니가타현 지사와 사도 시장에게 전화로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과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가마카와 요코 외무상도 담화문을 내고 “세계유산 등재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오랜 세월에 걸친 지역주민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도광산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모두의 합의를 통해 등재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지만, 이들은 사도광산을 둘러싼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마저도 비판 보도를 냈다. 일본 현재 매체들은 지난달 30일 “일본 측이 처음부터 한반도 출신자의 고난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네스코 등재에만 14년 노력?
일 언론 “조선인 노동 인정해야”

진보 성향 매체 <아사히신문>은 이날 ‘빛도 그림자도 전하는 유산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조선인 노동이)강제노동인지 아닌지 일본과 한국 사이서 견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강제’ 표현을 피하면서(조선인이) 가혹한 노동환경에 있었음을 현지에 전시한 것은 양국 정부가 대화로 타협한 산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조선인 노동이)직시해야 할 사실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역사는 국가의 독점물도, 빛으로만 채색된 것도 아니다. 그늘진 부분도 포함해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유산의 가치를 높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안팎의 비판과는 무관하게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한결같다. 사실을 입증할 문서나 명단이 있다면 내으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자발적 참여’라고 왜곡하거나 동원된 인원을 축소하기 바쁘다. 


물론, 공식적으로 확인된 조선인 동원 인원수나 명단이 기록된 자료는 없다. 단 당시 사도광산서 작업장을 운영한 미쓰비시광업㈜이 출간하려 했던 책의 미완성 원고인 <사도광산사 고본>에는 ‘합계 1519명을 이입했다’는 문장이 남아 있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한국의 반발을 언급한 뒤 선례를 따라 사도광산의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 출신의 사망자 수 등 데이터와 노동환경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 전문가들도 “광산의 역사, 당시의 일을 알리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본 문화청은 지난 6월6일 이코모스가 사도광산에 대해 4단계 평가 중 2번째인 정보 조회 권고를 내렸으며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코모스 권고는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판단할 때 큰 영향을 끼치는데 ▲등재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4단계로 나뉜다.

자발적
참여라고?

일본 문화청이 말하는 정보 조회 권고는 2번째 단계인 보류로 ‘신청국이 보완 조치를 취하도록 신청국에 다시 회부한다’는 의미다. 일본이 추천한 세계유산 후보가 보류 권고를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코모스의 2단계 보류 조치가 무색하게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31일, 세종대학교 호사카 유지 교수를 통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유지 교수는 “이 일은 2015년도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가 2015년부터 준비됐다면, 기시다 총리의 ‘사도광산 등재에 14년이 걸렸다’는 주장이 납득이 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2015년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근혜정부 당시 일본 정부는 하시마섬(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말을 바꿨다. 등재에 성공하자 기시다 당시 외무장관은 “‘Forced to Work(일을 강요당했다)’라는 표현은 강제노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유지 교수는 “박근혜정부서 군함도에 관해 ‘강제동원(Forced Labour)’이라는 단어를 뺐다. 대신 ‘강제로 일을 하게 했다’는 말로 바꿨는데, 일본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국제법 때문”이라며 “국제법에는 강제동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불법적’이라 비슷한 단어로 바꾼 것이고, 이를 박정부가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단어의 뉘앙스가 바뀌면서 강제노동이 ‘불법’ 노동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는 “일본의 주장은 당시 조선 사람의 국적이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조선인뿐만 아니라 대만인도 여기에 포함된다. 모두 일본 국적자였기 때문에 징역을 시킨 것이 합법이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시 박정부가 계약했던 내용 자체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셈이다. 결국 이번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는 시작점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박정부 당시 일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10억엔을 지불하면서 발표한 합의문에는 자기들의 만행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겠다는 심사로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굳이 삽입했다.

이런 결과는 3년 후인 2018년에 다시 발생했다.

유지 교수는 “2018년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을 때도 일본은 ‘징용공’을 대신해서 ‘조선서 온 노동자’라는 말을 썼는데 이런 말을 아베정권이 만들어냈다”며 “이게 다 단일화된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제 노동
전부 빼라

이어 “2012년에 강제동원, 강제징용 문제가 한국 대법원서 유죄 판결이 났다. 일본은 항소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엔 국무회의서 ‘강제노동’이 부적절하다고 결정한 이후 모든 교과서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지난 1월엔 우익단체의 문제 제기로 법적 소송까지 가면서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가 20년 만에 철거되기도 했다.


이 같은 철저한 기획 속에서 사도광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흐름이 쭉 이어진 것은 아니다. 2020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의 동의를 얻은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한‧일 정부가 아무리 합의해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위안부 합의 때 아주 절실하게 경험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이라는 점을 감안해 방안을 마련한다면 양국 간 해법을 마련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고 본다”며 일본에 적극적 대응을 주문했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일 변호사 및 단체들이 제안한 ‘한·일 공동협의체’에도 긍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유지 교수는 “문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일본과 대립했다. 법원 판결서 배상금을 내야 한다고 한 상황이었는데, 아베가 반대하기도 했다”며 “이런 맥락서 ‘제3자 변제 문제’가 나온 것인데 한국 책임으로 다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6일 윤석열정부는 대법원의 ‘일본 전범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고, 한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대신 내주되 피고인 일본 기업에는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였다.

“일본은 국익 위해선 뭐든지 한다”
“일본을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윤정부가 집권하자마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무시한 채 내놓은 것이 제3자 변제안이다. 이에 대해 국내 정치권 및 시민단체는 물론 일본 시민단체도 윤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후 재정적 파탄으로 기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지 교수는 “일본은 일관적으로 움직였으며, 여태까지 계속 같은 결정을 하고 있다. 교과서,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염수 방출도 이때 결정했다. 이 맥락에서 사도광산이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또 “일본은 앞으로도 ‘강제동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박근혜정부에서 동의를 했으니까. 일본은 한국이랑 다르다. 생각이 여러갈래로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한 개다. 굉장히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또 학자들도 이용된다. 이 사람들은 ‘국익이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논리를 만든다. 그런데 한국은 이러한 논리 구축이 상당히 약하다”고 전했다.

물론 학자들이 논문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지만 이것만으로 일본 정부의 논리를 이기기 어렵다. 이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드러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서 일본 정부 대표로 나선 카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해석과 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할 것이다.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 특히 한국인 노동자를 진심으로 추모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우리 입장을 토대로 정부가 지난 수개월간 일본 정부와 가진 진지한 협상의 결과물이다. 해당 발언문은 세계유산위원회 결정문에 각주로 포함되어 결정문에 각주로 포함되어 결정문의 일부로 간주된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강제동원’이라는 말이 없는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못 했나
안 했나

유지 교수는 “이번 세계유산위원회가 있을 때도 일본은 강제동원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대사가 일본의 이런 논리를 모를 리 없는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다. 외교부도 이 같은 일본의 논리를 모를 수 없는데, 결국 공무원이라 주장하기 어려운 점은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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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