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개월 전부터…’ 예견된 큐텐 사태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8.06 08:39:53
  • 호수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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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밀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큐텐과 입점 계약을 체결한 판매자들이 받지 못한 지난 5월 대금만 총 2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 결과, 큐텐 플랫폼을 활용해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판매해 온 한 업체가 받지 못한 금액이 약 40억원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판매 대금을 받지 못했다. 

홍콩과 미국에 법인을 둔 전자기기 판매업체인 A사의 대표 박모씨는 큐텐을 상대로 미지급 정산금 및 지연이자 청구 소송에 나섰다. 큐텐이 A사와 정한 이용약관에 따르면, ‘물건을 판매하고, 배송이 완료된 다음 달 15일이 포함된 주의 금요일에 판매자(A사)의 통장에 지급된다’고 명시돼있다. 큐텐은 이를 스스로 어긴 채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한 푼도 정산하지 않았다. 

무리한 확장

앞서 중국에 이어 싱가포르와 미국 등 해외 곳곳서 큐텐발 미정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A사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라고 볼 수 있다. A사의 2개 홍콩 법인의 미정산금은 한화로 26억4126만원과 7714만원이며, 1개 미국 법인은 13억6742만원을 받지 못했다.

문제는 A사가 큐텐에게 정산금을 지급하라고 요청한 시기가 지난 2월부터라는 것이다.

큐텐은 지난 2월 1억7300만달러(약 2300억원)에 북미·유럽 기반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시를 인수했다. 당시 큐텐이 티몬서 자금을 빌린 건 위시 인수 대금 납부 기한을 앞두고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A사의 판매 대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세를 확장하는 데 썼다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재 A사 측의 이성은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A사가 고객들에게 물품을 판매하고 배송까지 완료해 큐텐에 정산금액을 요청했지만, 지난 2월2일부터 7월11일까지 정산금이 지급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며 “기한 내에 정산금이 지급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정산금 보전을 위한 큐텐 계좌 가압류 등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뢰인은 큐텐과 계약을 해지하기라도 하면 미정산금을 돌려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개월간 물건을 납품하면서 버텼다”며 “의뢰인을 비롯한 해외사업자들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일하다 말고 한국에 들어와 소송에 나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큐텐은 판매자에게 정산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황서 행사를 진행하지 않거나, ‘기존 주문건 발송을 하지 않으면 정산을 해주지 않겠다’는 식으로 판매자 측에 패널티를 부여하려 했다”고 부연했다.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를 빚은 티몬과 위메프(티메프)의 모기업인 큐텐이 내부 절차나 규정을 무시하고 자금을 빼 쓴 정황은 명확해졌다. 큐텐그룹 내부 문서에 따르면, 큐텐은 지난 4월11일 위시 인수 자금 명목으로 티몬에서 200억원을 빌렸다. 이자는 4.6%, 만기는 1년이다.

이를 위한 내부 승인 절차는 비정상적이었다. 대여금 집행 문서의 기안일은 지난 4월11일이었으나 류광진 티몬 대표의 최종 승인이 난 것은 나흘 뒤인 15일로 확인됐다. 이미 티몬서 자금이 빠져나간 뒤 사후 결제가 이뤄진 셈이다.

홍콩·미국 업체 수십억 소송
올 들어 한 푼도 정산하지 않아

올 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큐텐은 또 지난 1월11일 금리 4.6%로 1년 만기 자금 50억원을 티몬서 빌렸다. 이 당시에도 대표의 승인은 자금 대여가 집행된 날로부터 19일이나 지난 1월30일에 이뤄졌다.


큐텐은 2022∼2023년 티몬과 위메프를 차례로 인수한 뒤 재무와 기술개발 조직을 해체하고 해당 기능을 큐텐테크놀로지에 넘겼다. 이 회사는 사실상 큐텐 한국 자회사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큐텐 측이 이런 자금 이동을 사전에 류 대표와 상의하지 않았거나 류 대표가 대여금 집행 시점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짙다. 

티몬과 위메프 안팎에서는 대표의 최종 결제 없이 큐텐으로 자금이 넘어간 사례가 있으며 두 회사 대표조차 정확한 이전 자금 규모를 알지 못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티몬과 위메프서 큐텐으로 빠져나간 자금 중에는 A사를 포함한 판매자들에게 정산해야 할 결제 대금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 긴급 현안 질의서 “티몬과 위메프 자금 400억원을 위시 인수 대금으로 썼으며 이 중에는 판매 대금도 포함돼있다”고 인정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수사에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자회사 자금을 빼 쓴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횡령·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를 중심으로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 “큐텐 자금 추적 과정서 강한 불법 흔적이 드러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주요 대상자 출국금지 등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원장은 지난달 30일 정무위서 ‘구영배 큐텐 대표는 자금이 없다고 하는데 금감원은 자금 추적을 하고 있느냐’는 윤한홍 정무위원장의 질의에 “수사 의뢰 과정서 주요 대상자들에 대한 출국금지 등 강력한 조치를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자금흐름을)지금 확인 중”이라며 “가급적 선의를 신뢰해야 하겠지만 최근 금융당국과의 관계서 보여준(큐텐 측의) 행동이나 언행을 볼 때 상당히 양치기 소년 같은 행태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이 “최대 1조원 가까운 판매 대금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데(큐텐은) 자금이 없다고 하니 해외를 포함해 금감원서 자금을 추적하는 게 가장 급한 것 같다”고 강조하자 이 원장은 “20명 가까운 인력을 동원해 검찰에도 이미 수사인력을 파견해 놨다. 공정거래위원회와도 같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정산금 받으려 ‘울며 겨자 먹기’
‘헉’ 부랴부랴 귀국한 해외 사업자 

한편,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구 대표의 지나친 사세 확장이 불러일으킨 결과라는 분석이다. 2009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구 대표는 이듬해부터 글로벌 이커머스를 꿈꾸며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2년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큐텐을 설립하고 지난 14년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홍콩 등에 진출하며 몸집을 불려 왔다.

구 대표는 아마존과 알리바바에 견줄 수 있는 글로벌 디지털커머스 플랫폼 구축을 비전으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지난 2월 북미와 유럽을 커버하기 위해 미국 쇼핑 플랫폼 위시를 23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밑천이 드러났다.

위메프의 판매자 정산기일이었던 지난달 7일 정산금 지급이 일부 지연되면서 곪아 있던 문제가 터져 나왔다. 불안감에 휩싸인 판매자들이 위메프에서 빠져나가면서 자금 사정은 더 악화했고, 이는 티몬으로도 옮겨붙었다.


티몬과 위메프서 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여행사들이 상품 판매를 중단하면서 결제를 마친 기존 고객들의 환불 요구도 이어졌다. 성난 피해자들은 강남에 있는 티몬·위메프 사무실로 몰려갔지만, 먼저 온 일부 피해자들만 현장 환불을 받았다.

구 대표는 전날 오전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사재 800억원을 털어서라도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오후 들어 티몬·위메프는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소상공인들은 지난달 31일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구 대표가 판매 대금 지급을 위해 약속한 사재 출연을 즉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티몬과 위메프의 지난 5월 미정산금액만 이날 기준 2264억원에 달하는 만큼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티몬·위메프 피해 입점 업체 대표는 “일부러 회생을 유도하려는 것 같다. 800억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을 하는 게 어디다가 재산을 감췄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구 대표는 70억원 상당 서울 반포동 아파트와 통장에 든 10~20억원이 전부라고 언급했다. 큐텐 지분도 38% 보유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 지분가치는 담보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티몬 측은 이날 오후 판매자들에게 정부지원자금과 계열사 위시를 통해 자금 500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밀린 대금이 1억원 이하인 판매자들에게 우선 정산하고, 추가 자금을 확보하면 1억이 넘는 판매자들에게 순차 정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망신

하지만 법원의 자산 동결 결정으로 원칙적으로는 채무 변제가 불가능해 판매자들을 상대로 또 희망고문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은 최근 판매자들에게 정산 지연 사실을 공지했다. 인터파크도서도 최근 티몬, 위메프의 미정산 영향으로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는 공지를 올렸다.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여파가 큐텐의 다른 계열사들로 번지면서, 판매자들의 불안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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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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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