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 못 막는 전자발찌,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7.29 14:17:40
  • 호수 1490호
  • 댓글 0개

“처음엔 외출도 꺼렸지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전자발찌 부착’과 관련한 끊이지 않는 논란이 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가 출소 후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전자발찌까지 찬 상황에서 ‘도대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뭘까?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전자발찌 착용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성범죄로 징역을 살다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서 출소 5개월 만에 모르는 여성의 집에 따라 들어가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민호)는 지난 19일,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발찌 차고
다시 범행

재판부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20년 부착과 10년간 신상정보 공개, 아동·장애인 관련 기관 10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이날 재판부는 “다수의 성폭력 전과가 있는 점과 위험 평가를 종합해볼 때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침입, 강간해 피해자의 공포심이 극심하고 성적 수치심으로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 내원과 약물·상담 치료를 받고 있지만, 범행 이전의 상태로 회복을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동종전과 포함해 형사처벌을 받은 게 수십회에 이르고 수사 단계에서 공격적이고 불량한 태도를 보였다”며 “조사 도중 경찰에게 거짓말하고 피해자에게 전화 시도하는 등 범행 정황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월1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 송파구서 처음 보는 여성을 집까지 쫓아가 도어락을 부수고 침입한 뒤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을 피해 달아났던 그는 인근의 한 노래방서 붙잡혔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동선을 추적해 3시간 만에 A씨를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 혐의로 체포했다. 범행 당시에도 A씨는 성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전자발찌를 부착한 뒤 재범을 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전자발찌를 인증하면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자발찌 착용 사진과 함께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닌다. 저거(전자발찌) 가려야 되니까. 인권침해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물론 여고생을 범한 건 잘못이긴 하지만 이미 징역 4년을 살고 나왔는데 또 이런 벌을 주다니”라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에는 “겨우 4년을 살고 저런 말을 하다니. 여고생 부모님 마음이 찢어졌을 것” “손모가지를 잘라야 저런 글을 안 쓰지” “저런 사람들이 교도소서 교도관들 힘들게 한다던데, 사실인 듯. 인권은 사람한테 있는 것이다” “대부분 범죄자가 이렇게 생각한다. 본인이 망가뜨린 인권은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인권은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다” 등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출소 5개월 만에 또 성폭행
“인권침해 너무 심하다”

범죄자들이 전자발찌를 찬 상황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우선 전자발찌에 대한 효용성은 지속적으로 논의돼오고 있다.


전자발찌는 2008년 9월 특정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도입됐고, 이후 미성년자 유괴범과 살인범 등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대상자는 물론, 평균 부착 기간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자발찌 부착자들의 재범률이 늘면서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경각심이 무뎌질 뿐만 아니라 관리·감독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상자의 사회 복귀와 효과적인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심리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 활성화와 함께 전자발찌 가해제 활성화 방안과 부착 기간 단축 등을 검토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전자발찌의 평균 부착 기간은 1년에서 무려 7년으로 증가했고, 법정 최장 부착 기간은 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경합범 가중 시 2분의 1까지 가중이 가능해 최장 45년까지도 부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평균 3~5년을 부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장기간인 셈이다. 당초 특정 성범죄자로 한정됐던 부착 대상도 미성년자 유괴범과 살인범 등으로 확대돼 부착 대상자도 크게 확대됐다.

이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들의 재범률은 2019년 90명(1.97%), 2022년 74명(1.68%), 2021년 74명(1.65%), 2022년 45명(0.99%)로 감소했지만,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면서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자발찌 훼손자는 2009년 1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23명까지 늘어났다. 이 중 2명은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한 뒤 나중에 검거했다.

커뮤니티
착용 인증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가 말하는 전자발찌는 확실히 범죄 예방 효과가 있었다. 교도소 수감 시절부터 ‘전자발찌를 쓰면 어떻다더라’는 추측들이 난무한다.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인 30대 B씨는 전자발찌 부착 기간만 10년으로, 죄명은 강간상해다.

B씨는 “출소 전에 전자발찌를 착용하는지 몰랐는데 어쩌면 몰라서 다행일 수도 있다. 만약 알았다면 출소도 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출소 때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집에 왔는데, 재택장치 설치하고 일주일 동안 밖에 안 나갔다. 문 밖을 나가는 게 무서웠다”고 말했다.

오히려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끔찍한 것이 전자발찌라는 것이다.

A씨는 “차라리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기간만큼 감옥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가족들과 같이 사는데 친척들이 오는 것도 말릴 수밖에 없다”며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도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지만, 내가 느끼기엔 밝게 빛나고 있는 형광등 같다. 걸어다니면 의식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자발찌 착용 후 범죄를 저지른 것을 후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바라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B씨는 “지금 생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거고 나도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의 감정이 밀려온다”며 “나는 패배자다. 내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매번 고민한다. 다만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나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은데, 아무 병원이나 가기가 좋지 않다. 진로 상담도 받고 싶어서 이런 것을 (나라에서)도와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감독 관리인력 증가세는 더디기만 하다. 실제로 전자발찌 착용자가 30배 넘게 늘어나는 동안 이를 관리하는 감독자는 약 6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관리가 부실하다 보니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그들의
반발은?

법무부 평택보호관찰소(소장 권태호)는 전자발찌를 차고 보호관찰을 받다가 훼손 후 도주했던 50대 남성 C씨를 체포했다. 붙잡힌 C씨는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지난 5월29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해 전자장치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C씨는 2014년 9월 강간 등 상해죄로 징역 10년, 전자발찌 부착 명령 20년, 성폭력 치료 강의 80시간을 선고받고 복역 중 만기출소한 뒤 지난 3월15일부터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평택보호관찰소서 관리감독을 받고 있었다.


그는 출소한 지 닷새 만인 20일, 전남 남군 화원면 인근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3시간 만에 전남 목포시 소재 모텔서 검거돼 재판을 받아왔다. C씨는 복역 후 출소하더라도 부착 명령 20년 중 잔여 기간에 대해 전자발찌를 계속 부착해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전자감독제도 운영 성과 분석 및 효과적인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 및 전국 57개 보호관찰 기관서 근무하는 직원 4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6.2%가 “부착 기간의 장기화로 대상자에 대한 지도·감독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답했다. 

연성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좀 더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 전자발찌 부착 최장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조속한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사회 복귀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재범 방지에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착 기간을 산정해 전자 감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 연구위원은 ▲주기적인 위험성 평가를 통해 전자 감독 지속 여부와 가해제를 결정하고, 전자장치 부착 명령 집행률 기준을 완화하는 등 현실적인 가해제 심사기준을 정립해 가해제를 활성화하는 방안 ▲부착 명령 최장기간을 단축하고 부착 명령 집행이 종료되는 시기에 재범 위험성 평가를 해 필요한 경우 부착 명령을 연장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가해제 전 단계로 재택 구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택 구금이란 범죄자를 교도소나 교정시설이 아닌 범죄자 본인의 가택에 구금하는 것이다. 재택 구금은 과밀수용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대두된 1980년대 초 미국과 덴마크 등에서 도입됐다.

“재택 구금이 더 효과적” 주장도
김영진 ‘박병화·조두순 방지법’ 발의

무엇보다 재택구금은 비용절감의 장점이 있다. 재택 구금의 실시 비용은 구치소 구금 비용에 비교하면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고, 대상자는 직장에 출근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으며, 개인별 조건에 맞는 일정도 조절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도 가석방 또는 조기 석방의 조건으로 재택 구금이나 외출제한 등의 결합한 형태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가해제 전 단계서 중간 처우로 재택 구금을 도입하면 재범 우려 불식과 탄력적인 가해제 제도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이른바 ‘박병화·조두순 방지법’을 발의했다. 지난 9일, 김 의원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과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병화·조두순과 같은 연쇄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각 지역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연쇄 성범죄자 박병화가 수원특례시로 이사 오자 수원 내 시민사회단체서 퇴거를 강력 촉구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전자발찌 효과로는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해 국가가 적극 관리하는 거주지 지정 명령 제도를 도입할 것을 법안에 담았다.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거주지 제한은 해외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서 발생한 제시카 런스포드 사건로 인해 만들어진 ‘제시카법’의 경우 성범죄자가 학교와 공원 주변 600m 이내에 살 수 없도록 주거지를 제한하고 있고, 워싱턴주의 경우 출소한 아동성범죄자가 맥닐섬에 위치한 특별 구금센터에 거주하도록 제도화돼있다.

김 의원은 “박병화·조두순과 같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각 지역에서는 극심한 갈등과 불안을 겪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거주지 
지정 명령

이어 “21대 국회서 법무부가 해당 법안을 너무 늦게 제출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거주지 제한이 기본권 침해·이중 처벌 등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사위서 신속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고, 법사위 위원들과 협의를 통해 신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