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 못 막는 전자발찌,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7.29 14:17:40
  • 호수 1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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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외출도 꺼렸지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전자발찌 부착’과 관련한 끊이지 않는 논란이 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가 출소 후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전자발찌까지 찬 상황에서 ‘도대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뭘까? 이를 두고 일각에선 전자발찌 착용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성범죄로 징역을 살다가 전자발찌를 찬 상태서 출소 5개월 만에 모르는 여성의 집에 따라 들어가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김민호)는 지난 19일,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발찌 차고
다시 범행

재판부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20년 부착과 10년간 신상정보 공개, 아동·장애인 관련 기관 10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이날 재판부는 “다수의 성폭력 전과가 있는 점과 위험 평가를 종합해볼 때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뒤따라가 침입, 강간해 피해자의 공포심이 극심하고 성적 수치심으로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 내원과 약물·상담 치료를 받고 있지만, 범행 이전의 상태로 회복을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은 동종전과 포함해 형사처벌을 받은 게 수십회에 이르고 수사 단계에서 공격적이고 불량한 태도를 보였다”며 “조사 도중 경찰에게 거짓말하고 피해자에게 전화 시도하는 등 범행 정황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월1일 오후 1시50분쯤 서울 송파구서 처음 보는 여성을 집까지 쫓아가 도어락을 부수고 침입한 뒤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을 피해 달아났던 그는 인근의 한 노래방서 붙잡혔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CCTV 영상 등을 토대로 동선을 추적해 3시간 만에 A씨를 성폭력처벌법상 주거침입 강간 혐의로 체포했다. 범행 당시에도 A씨는 성범죄 전과로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전자발찌를 부착한 뒤 재범을 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의 전자발찌를 인증하면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전자발찌 착용 사진과 함께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닌다. 저거(전자발찌) 가려야 되니까. 인권침해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물론 여고생을 범한 건 잘못이긴 하지만 이미 징역 4년을 살고 나왔는데 또 이런 벌을 주다니”라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에는 “겨우 4년을 살고 저런 말을 하다니. 여고생 부모님 마음이 찢어졌을 것” “손모가지를 잘라야 저런 글을 안 쓰지” “저런 사람들이 교도소서 교도관들 힘들게 한다던데, 사실인 듯. 인권은 사람한테 있는 것이다” “대부분 범죄자가 이렇게 생각한다. 본인이 망가뜨린 인권은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인권은 너무 소중하게 생각한다” 등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출소 5개월 만에 또 성폭행
“인권침해 너무 심하다”

범죄자들이 전자발찌를 찬 상황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어떤 심리일까? 우선 전자발찌에 대한 효용성은 지속적으로 논의돼오고 있다.


전자발찌는 2008년 9월 특정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해 도입됐고, 이후 미성년자 유괴범과 살인범 등으로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대상자는 물론, 평균 부착 기간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자발찌 부착자들의 재범률이 늘면서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전자발찌 부착 기간이 장기화할 경우 경각심이 무뎌질 뿐만 아니라 관리·감독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상자의 사회 복귀와 효과적인 관리·감독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심리상담 및 치료 프로그램 활성화와 함께 전자발찌 가해제 활성화 방안과 부착 기간 단축 등을 검토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전자발찌의 평균 부착 기간은 1년에서 무려 7년으로 증가했고, 법정 최장 부착 기간은 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경합범 가중 시 2분의 1까지 가중이 가능해 최장 45년까지도 부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전자발찌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평균 3~5년을 부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장기간인 셈이다. 당초 특정 성범죄자로 한정됐던 부착 대상도 미성년자 유괴범과 살인범 등으로 확대돼 부착 대상자도 크게 확대됐다.

이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들의 재범률은 2019년 90명(1.97%), 2022년 74명(1.68%), 2021년 74명(1.65%), 2022년 45명(0.99%)로 감소했지만,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면서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자발찌 훼손자는 2009년 1명에 불과했지만 2019년에는 23명까지 늘어났다. 이 중 2명은 전자발찌를 끊고 잠적한 뒤 나중에 검거했다.

커뮤니티
착용 인증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가 말하는 전자발찌는 확실히 범죄 예방 효과가 있었다. 교도소 수감 시절부터 ‘전자발찌를 쓰면 어떻다더라’는 추측들이 난무한다.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인 30대 B씨는 전자발찌 부착 기간만 10년으로, 죄명은 강간상해다.

B씨는 “출소 전에 전자발찌를 착용하는지 몰랐는데 어쩌면 몰라서 다행일 수도 있다. 만약 알았다면 출소도 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출소 때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집에 왔는데, 재택장치 설치하고 일주일 동안 밖에 안 나갔다. 문 밖을 나가는 게 무서웠다”고 말했다.

오히려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끔찍한 것이 전자발찌라는 것이다.

A씨는 “차라리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기간만큼 감옥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가족들과 같이 사는데 친척들이 오는 것도 말릴 수밖에 없다”며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도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지만, 내가 느끼기엔 밝게 빛나고 있는 형광등 같다. 걸어다니면 의식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자발찌 착용 후 범죄를 저지른 것을 후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바라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B씨는 “지금 생각으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거고 나도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의 감정이 밀려온다”며 “나는 패배자다. 내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매번 고민한다. 다만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나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은데, 아무 병원이나 가기가 좋지 않다. 진로 상담도 받고 싶어서 이런 것을 (나라에서)도와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감독 관리인력 증가세는 더디기만 하다. 실제로 전자발찌 착용자가 30배 넘게 늘어나는 동안 이를 관리하는 감독자는 약 6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관리가 부실하다 보니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그들의
반발은?

법무부 평택보호관찰소(소장 권태호)는 전자발찌를 차고 보호관찰을 받다가 훼손 후 도주했던 50대 남성 C씨를 체포했다. 붙잡힌 C씨는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지난 5월29일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도주해 전자장치부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C씨는 2014년 9월 강간 등 상해죄로 징역 10년, 전자발찌 부착 명령 20년, 성폭력 치료 강의 80시간을 선고받고 복역 중 만기출소한 뒤 지난 3월15일부터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평택보호관찰소서 관리감독을 받고 있었다.


그는 출소한 지 닷새 만인 20일, 전남 남군 화원면 인근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3시간 만에 전남 목포시 소재 모텔서 검거돼 재판을 받아왔다. C씨는 복역 후 출소하더라도 부착 명령 20년 중 잔여 기간에 대해 전자발찌를 계속 부착해야 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전자감독제도 운영 성과 분석 및 효과적인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 및 전국 57개 보호관찰 기관서 근무하는 직원 4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6.2%가 “부착 기간의 장기화로 대상자에 대한 지도·감독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답했다. 

연성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좀 더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 전자발찌 부착 최장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조속한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사회 복귀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재범 방지에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착 기간을 산정해 전자 감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 연구위원은 ▲주기적인 위험성 평가를 통해 전자 감독 지속 여부와 가해제를 결정하고, 전자장치 부착 명령 집행률 기준을 완화하는 등 현실적인 가해제 심사기준을 정립해 가해제를 활성화하는 방안 ▲부착 명령 최장기간을 단축하고 부착 명령 집행이 종료되는 시기에 재범 위험성 평가를 해 필요한 경우 부착 명령을 연장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 밖에도 가해제 전 단계로 재택 구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택 구금이란 범죄자를 교도소나 교정시설이 아닌 범죄자 본인의 가택에 구금하는 것이다. 재택 구금은 과밀수용의 문제점이 심각하게 대두된 1980년대 초 미국과 덴마크 등에서 도입됐다.

“재택 구금이 더 효과적” 주장도
김영진 ‘박병화·조두순 방지법’ 발의

무엇보다 재택구금은 비용절감의 장점이 있다. 재택 구금의 실시 비용은 구치소 구금 비용에 비교하면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고, 대상자는 직장에 출근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으며, 개인별 조건에 맞는 일정도 조절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도 가석방 또는 조기 석방의 조건으로 재택 구금이나 외출제한 등의 결합한 형태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가해제 전 단계서 중간 처우로 재택 구금을 도입하면 재범 우려 불식과 탄력적인 가해제 제도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이른바 ‘박병화·조두순 방지법’을 발의했다. 지난 9일, 김 의원은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과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병화·조두순과 같은 연쇄 성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각 지역서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연쇄 성범죄자 박병화가 수원특례시로 이사 오자 수원 내 시민사회단체서 퇴거를 강력 촉구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전자발찌 효과로는 지역주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국가 등이 운영하는 시설로 지정해 국가가 적극 관리하는 거주지 지정 명령 제도를 도입할 것을 법안에 담았다.

고위험 성범죄자에 대한 거주지 제한은 해외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서 발생한 제시카 런스포드 사건로 인해 만들어진 ‘제시카법’의 경우 성범죄자가 학교와 공원 주변 600m 이내에 살 수 없도록 주거지를 제한하고 있고, 워싱턴주의 경우 출소한 아동성범죄자가 맥닐섬에 위치한 특별 구금센터에 거주하도록 제도화돼있다.

김 의원은 “박병화·조두순과 같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가 출소할 때마다 각 지역에서는 극심한 갈등과 불안을 겪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거주지 
지정 명령

이어 “21대 국회서 법무부가 해당 법안을 너무 늦게 제출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거주지 제한이 기본권 침해·이중 처벌 등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사위서 신속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고, 법사위 위원들과 협의를 통해 신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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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