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동해 석유’ 막전막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10 10:17:37
  • 호수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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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률 20%에 5000억 베팅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20%대 지지율로 고전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 석유 매장’ 가능성을 직접 발표했다. 여권에선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석유가 발견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국면 전환용’이라고 꼬집었다. 개발 성공률 20%에 5000억원이 넘는 시추 비용을 베팅한 윤 대통령의 속내는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서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이 사실을 보고드리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정희 시즌2
사업성 논란

동해 인근 석유·가스 도출 지역을 표기한 대형 스크린까지 동원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발표한 석유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두고 극명한 평가가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1990년대 후반에 발견된 동해 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내년 상반기쯤 윤곽이 나올 산업통상자원부의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통해 직접 현안을 설명한 것은 취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브리핑에 동석했던 안 장관은 “최대 매장 가능성 140억배럴은 현재 가치로 따져보면 삼성전자 시총의 5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453조원으로,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가스의 가치가 약 2260조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해당 소식에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원내대책회의 직후 윤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대해 “확률이나 가능성에 관해선 아직 정확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기대를 갖고 볼 수 있는 좋은 소식”이라고 첫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 기관이 앞으로 순차적으로 여러 과정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반면 야권은 ‘지지율 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석유·가스 매장량이나 사업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매장 추정치를 발표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물리탐사만으로는 정확한 매장량을 추정할 수 없고, 상업성을 확보한 ‘확인 매장량’ 규모가 실제 얼마나 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첫 탐사부터 생산까지 약 7년서 10년이 소요된다”고 꼬집었다.

조국혁신당의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서 “윤 대통령은 보고를 듣자마자 바닥 수준인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보였느냐”고 지격했다.

‘1호 영업사원’ 대통령 그림은? 
2260조원 잭팟? 관심 끌기용?

앞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4·10 총선 이후 지금까지 ‘20~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지난달 10일 발표한 ‘취임 2주년’ 지지율서도 24%를 기록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치’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국민의힘의 윤상현 의원 등도 지난달 7일 진행된 ‘정부 2주년 평가’ 세미나를 통해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기조를 대통령이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남은 3년이 달렸다”고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 성적은 더 비참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 내부의 위기감이 상승한 분위기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지지율을 1%라도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함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서 ‘동해 석유’ 카드는 국민 여론을 반전시킬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오는 6~7일 공휴일 관계로 한국갤럽과 NBS(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용산에선 지지율을 만회할 기회를 마련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의 말대로 용산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 당까지 같이 타격을 입게 된다. 당정 모두 한숨을 돌린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박정희정부 때에도 시추를 착수했던 곳이다. 그러나 1975년 당시 시추공서 흘러나온 시커먼 액체가 ‘원유’라는 명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석유 발견 해프닝’으로 끝났다. 일각에선 ‘석유 매장’ 기대감이 단순 헤프닝에 그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역풍을 맞이할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석유의 실제 매장량을 알기 위해선 최소 5개(1개당 1000억원 소요)의 시추공을 뚫어봐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놓고 결과물이 없다면 국민적 반감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해지는 셈이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6년 1월 기자회견서 “포항서 석유가 난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원유가 아닌 정제된 경유로 드러났다.

장밋빛 미래? 
국면 전환용?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지난 3일 <시사인>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인’에 출연해 “박 전 대통령이 포항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해서 발칵 뒤집혔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며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유전과 가스가 매장된 게 사실로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 ‘박정희 시즌2’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비꼬았다.

박 의원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집권 2년 만에 이렇게 바닥을 친 적은 없다”며 “오죽 급했으면 포항에 유전 가능성을 (윤 대통령이) 얘기했겠나”라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역시 이날 <조갑제닷컴>에 “윤석열의 포항 앞바다 유전 가능성 발표와 박정희의 포항 석유 대소동이 겹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조 전 대표는 당시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하며 ‘포항 석유 경제성 없다’ 등의 기사를 통해 포항에 원유가 매장돼있더라도 극소수이거나 경제성이 없다고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조 전 대표는 글에서 “박정희는 정유를 원유로 오인, 포항서 양질의 석유가 나왔다고 발표했다”며 “윤 대통령이 포항 앞바다에 대유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를 하는 걸 보고 1976년의 일이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전 발견은 물리탐사가 아니라 시추로 확인되는 것인데 물리탐사에만 의존해 꿈 같은 발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박정희의 실패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표는 이튿날인 4일에도 글을 올려 “140억배럴 초대형 유전 발견이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해 앞으로 엄청난 무리가 행해질 것이고 윤 대통령의 지도력은 희화화될 가능성이 대유전 발견 가능성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항 영일만 일대는 약 반세기 전 경제성이 낮다고 포기한 지역인데,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 것은 탐사기술 개발의 진전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현재로선 추정만 있을 뿐, 시추로 확인된 것은 아닌 만큼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서 물리탐사 자료의 심층분석을 수행한 ‘액트지오’(Act-Geo) 사에 대해서도 누리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액트지오 텍사스에 위치한 에너지 컨설턴트 회사로 엑손모빌, 토탈 등 주요 석유기업과도 협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명시돼있다.

액트지오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지도를 보면 이들이 의뢰를 수행한 지역 중 한국의 동해 부분이 표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액트지오는 빅터 아브레우(Victor Abreu) 박사가 설립한 ‘아브레우 컨설팅’이 그 모체다.

‘액트지오’
무슨 회사?

액트지오의 설립자 빅터 아브레우 박사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서 탐사팀의 리더로 근무하며 남미 가이아나 지역의 리자-1 유정 외에도 카스피해, 가나 지역서 석유탐사를 주도했다. 또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라이스대학교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국제퇴적학회의(IAS) 의장과 퇴적지질학회(SEPM) 회장 등 지질학 관련 학술 단체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방한한 아브레우 박사는 윤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있다는 발표가 나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지난해 동해안 심해 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브레우 박사가 당시 대표로 있던 분석업체 액트지오에 석유 매장 가능성 검증을 맡겼다. 액트지오는 자체분석을 거쳐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을 석유공사에 전달했다.

비토르 아브레우 액트지오 대표는 지난 4일 국내 매체와 인터뷰서 “(액트지오는)이 분야의 세계 최고 회사 중 하나”라고 밝혔다. 아브레우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상태서 <연합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신저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서 “한국의 SNS 등에서 액트지오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아브레우 대표는 “우리는 이 업계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며 “고객사로 엑손모빌, 토탈과 같은 거대 기업과 아파치, 헤스, CNOOC(중국해양석유), 포스코, YPF(아르헨티나 국영 에너지 기업), 플러스페트롤, 툴로우 등 성공적인 기업들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액트지오에 대해 “전 세계 심해 저류층 탐사에 특화된 ‘니치’(niche·틈새 시장) 회사”라며 “전통적인 컨설팅 회사와 비교하면 규모는 작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의 사업전략은 작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건물을 소유하거나 여러명의 부사장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구조서 일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액트지오가 주로 심해의 석유 구조 존재를 확인하고 품질을 평가하는 일을 수행한다. 핵심 분야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업 방식에 대해 “능력을 갖춘 석유 관련 지구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이 있는데, 여러 국가를 원격으로 연결해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에 이런 이점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도 침 흘린 영일만
또 천공 그림자가 보인다

윤 대통령이 ‘포항 석유 매장 가능성’을 깜짝 발표한 것을 두고 야권에선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4일 당 원내대책회의서 “(어제)예정에도 없는 일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브리핑을 했다”며 “천공의 그림자가 보인다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연의 일치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발표 뒤 누리꾼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고 주장한 유튜브 영상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실제로 천공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에 올라온 영상 ‘금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지’라는 제목의 영상 강연서 “우리는 산유국이 안 될 것 같냐. 앞으로 (산유국이)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나라 밑에 가스고 석유고 많다”며 “예전에는 손댈 수 있는 기술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있다”고도 주장했다.

천공은 “(과거에는)거기 손댈 수 있는 만큼의 기술도 없었고 척도도 안 됐고, 지금은 그런 척도가 다 일어나”라며 “대한민국 밑에는 아주 보물 덩어리로 대한민국은 이 한반도는, 인류서 최고 보물이 여기 다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석유 개발 발표에 지난 4일 오전 석유·가스개발과 관련된 종목들은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며 급등하기도 했다.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25% 급등하며 4만8000원대에 진입했다.

최대 140억배럴의 석유·가스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 1㎞ 심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다. 실제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와 석유공사는 올해 말 첫 시추를 추진하며 2026년까지는 지속적으로 시추공을 뚫게 된다. 시추선은 이미 확보된 상태며, 첫 시추 결과는 내년 3~4월에 나올 전망이다.

이정환 전남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비유하자면 현재는 병원서 초음파 검사만 한 상황이다. 의사가 혹을 발견했는데 암인지 물혹인지는 조직검사(시추)를 해봐야 안다”며 “시추 성공률은 10%를 밑돌기도 한다. 탐사 결과가 좋게 나와도 시추는 실패할 수 있기에 성공 확률을 논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성공 확률이)20%가 맞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면서도 “지난해 영국서 시추 계획을 승인한 게 100건이 넘는데 그 가운데 상업화까지 갈 유전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각계 반응

기사에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들은 모두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발표 조사(지난달 7∼9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의 응답률은 11.2%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다. 그후 31일 발표 조사(같은 달 28~30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의 응답률은 11.1%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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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