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 맞설’ 국힘 새 원내대표 과제 다섯

출발부터 앞이 깜깜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쉬운 길은 없다지만,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내달리는 게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이다. 당도 어수선한 데다, 거대 야당에도 맞서야 한다.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가 매머드급 야당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과제가 많다. 

국민의힘이 기나긴 구인난 끝에 신임 원내대표가 탄생했다. 그런데 또 영남권 출신이다. 당 조직적 측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거야에 둘러싸인 상황서 새 원내대표가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 당내서 거는 기대가 크다. 앞서 윤재옥 전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독주를 막아내기가 버거웠다. 임기 말로 갈수록 방어에만 급급하다가 아쉬움 속에 임기를 끝마쳤다. 정치권에선 여당의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인난 끝에…
결국 추경호

애초 원내대표에 나설 인물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원내대표 선거는 지난 2일 치러질 계획이었으나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대표적 친윤(친 윤석열)계인 이철규 의원만이 나홀로 나섰다. 

이 의원은 일찍부터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위해 시동을 걸었다. ‘친윤 중 친윤’으로 불리는 이른바 ‘찐윤’ 중 한 명인 그는 당내서 주요 요직을 맡으며 압도적 존재감을 보여왔다. 실제로 인재영입위원장,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당초 원내대표 단독 출마설까지 거론됐던 것과는 다르게 결국 원내대표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이 의원과 관련한 추대설, 나이 연대(나경원-이철규 연대) 등 다양한 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결국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원내대표를 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 의원의 출마설이 유력하게 떠오르자, 당정관계 등을 우려한 다양한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재빠른 총선 패배 수습을 위한 새 원내 지도부가 반드시 필요했다.

이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가 없던 일로 되자, 선거 대진표는 수도권·충청권·대구·경북(TK) 의원 3자 구도로 펼쳐졌다. 수도권에서는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송 의원은 이번 총선을 포함, 경기도 이천서만 내리 3선 고지에 오른 인물이다. 강점으로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 중 몇 안 되는 수도권 의원이라는 점이다.

원내대표 후보 정견발표서도 송 의원은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서 특히 수도권서 참패했는데,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처절하고 간절한 성찰, 반성이 필요하다”며 수도권 패배를 지적했던 바 있다.

중도 확장론을 꺼내든 충청권의 이종배 의원도 참전했다. 이 의원은 충북 청주서 내리 4선 고지에 올랐으며, 후보군 중 가장 높은 선수라는 강점을 갖고 있었다. 또 중도층 흡수가 유리하고 기존의 당정 관계에 관한 해법에도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찐윤 세력 빈 공간 메울지 관건
특검법 등 이탈 표심 관리해야

앞서 그는 출마 입장문을 통해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한 협상을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석열정부 관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추경호 의원(초선)도 원내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 추 의원의 강점으로는 보수 결집을 한층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받았다. 


정견발표 당시 추 의원은 “민생 현안에 대해 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 긴밀한 당정 소통으로 유능하게 해법을 찾겠다”고 건강한 당정관계를 강조했다.

하지만, 추 신임 원내대표도 친윤으로 누가 되든 현재의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탈피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 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과 관계 설정은 이번 국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과감히 ‘아니다 싶을 때엔 NO’를 외칠 수 있어야 민심을 끌어올 수 있다. 

소통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원외 인물들과도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민심을 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당내에서는 이들은 비교적 계파로부터 자유로운 인물로 평가하지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

원내대표 선거는 지난 9일 치러졌다. 당선자 총회를 개최했고, 후보 토론을 통해 국민의힘이 처한 위기를 돌파할 전략을 내세웠다. 이날 국민의힘은 원내대표 선출 규정인 22조에 의거해 재적 의원 과반수 투표와 투표 의원 과반수의 득표를 획득한 추 후보를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차기 원내대표에게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당장 일선서 물러난 찐윤 세력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윤석열정부 초기만 해도 핵심 그룹은 당의 전면에 나서 주류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제는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를 리스크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또다시
영남권

이 때문에 차기 원내대표는 대통령실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봐야 하는데, 수직적 당정 관계의 우려는 여전히 산재하고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이미 찐윤인 정진석 의원을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정 비서실장이 당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대통령실의 의중을 강화하려는 인사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따라서 차기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실과의 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주목된다. 

현재 국민의힘의 입지는 잔뜩 쪼그라든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서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패싱당했다. 수직적 당정 관계의 여파인 셈이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당 운영을 대통령실 의중에 맞춰왔다. 

당장 국민의힘은 여소야대에 형국에 처한 원구성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관건이다. 민주당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 “상임위원장을 모두 민주당이 맡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언급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민주당은 21대 국회서 국민의힘에게 양보했던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차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 신임 원내대표는 사실상 원구성부터 불리한 형국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하는 셈이다. 그는 운영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사위원장은 통상 국회의장 출신 정당의 상대 정당이 맡는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21대 국회 전반기 때 총선서 압승하면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이 같은 행태는 22대서도 그대로 이어질 방침이다. 추 신임 원내대표가 상임위 등 원구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산적한 
숙제들

영남권 출신인 그는 결국 영남이라는 한정된 구도 속에서 여러 난제들을 매듭지어야만 한다. 그는 당선 소감으로 “108명이 똘똘 뭉치자”고 언급했다.

당내에서는 추 원내대표가 비록 영남 출신이지만 21대 국회서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고, 앞선 민주당과 협상 과정서 성과를 냈던 점을 인정받았다. 일례로 2021년 민주당의 상임위 독식 체제를 끝낸 점이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당장 채 상병·검건희 여사 특검 이탈표를 단속해야 하는 임무가 놓여있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거부권을 시사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날인 오는 28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특검법을 재차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적 의원 중 절반 출석을 통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법안을 재의결하게 된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현재 21대 국회 재적 인원은 총 296명으로 출석 의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찬성표가 중요하다. 이 중 구속 수감 중인 윤관석 의원을 제외하고 295명 중 197명만 찬성표를 던질 경우, 특검법은 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원(113명)이 모두 참석해 반대표를 던지면 부결 처리된다. 

관건은 국민의힘 내의 이탈표다. 공개적으로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은 특검법 통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던바 있는데, 이들 중 15명 이탈 시 특검법은 가결 처리된다. 이들은 이번 총선서 불출마했거나 낙선한 의원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실과 관계 설정 변화 필요
비대위원장과 호흡도 상당히 중요

이런 탓에 국민의힘 내에서는 전운마저 감지된다. 당내서 총선 책임론의 타깃을 윤 대통령으로 조준할 경우, 즉시 타격할 수 있는 셈이다. 앞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체포동의안이 헌정사상 최초로 본회의를 통과했던 바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이 같은 점을 고려해 당내 입단속(?)에도 성공해야 한다.

이 밖에 22대 국회는 국민의힘에게 있어 ‘범야권 192석’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에선 이번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다시 본회의에 올리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 양평 고속도로 특검법 등 윤 대통령을 옥죌 사안들이 다수 대기 중이다. 추 원내대표가 이 같은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단기적인 방어에 치중할 게 아닌, 장기적 전략을 짜야 한다. 여소야대라는 유리한 야당 정국에 맞서 촘촘한 구상을 통해 오히려 정국을 주도할 수 있을 만한 플랜이 반드시 필요하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관계성도 중요하다. 비록 두 달간의 짧은 동행이지만 이 과정서 분란만 생긴다면 당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내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황 비대위원장은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오는 6월 말이나 7월 초가 아닌 8월경에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헌·당규상 필요한 절차가 40일이 소요되는 만큼 시기상으로 7월 이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윤 전 원내대표의 6월 말에서 7월 초에 조속히 열어야 한다는 입장과 대치된다. 당내 반발이 거칠어지자 일단 한발 후퇴하는 액션을 취했다가 다시 입장을 선회했다.

추 원내대표는 차기 원내대표로서 전당대회 시기를 황 비대위원장과 조율해야 한다. 

시작부터
불리하다

한때 뜨겁게 달궜던 전당대회 룰 부분도 황 비대위원장이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현행 국민의힘은 당헌·당규상 당원투표 100%로 전당대회를 치르도록 돼있는데, 정진석 비서실장이 비대위원장 시절에 바꿨던 규정이다. 친윤 인사들은 현재대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내에선 전대 룰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신임 원내대표는 시작 전부터 불리하게 임기를 맞는다. 거야에 둘러싸여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21대 국회는 민주당만 상대했다면, 22대 국회는 여러 당과 맞서야 하는 정국이다. 초반 행보가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재옥 전 원내대표 마지막 메시지는?

국민의힘 윤재옥 전 원내대표가 차기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보다는 상대를 선의의 경쟁자로 보는 문명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을 1년 1개월 동안 이끌어오며 어려운 형국에 처해왔음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그러면서 어려운 한 해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정쟁의 시간이 협치의 시간을 압도했다”며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여야가 협치하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원내대표가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협상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9일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당선자 총회에서는 “신임 지도부에 많은 숙제를 넘겨드리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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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