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뉴진스 엄마’ 민희진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29 11:19:03
  • 호수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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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볼모로 밥그릇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와의 대립각 속에서 “뉴진스를 이용하지 말라”는 부정 여론에 휩싸였다. 뉴진스 멤버들이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쏘스뮤직 출신으로 드러나면서다. 앞서 하이브는 뉴진스 프로듀서 민희진에 대해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을 제기했다. 민희진은 갈등의 본질이 하이브 신생 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고 받아쳤다.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ADOR)와 모 회사인 하이브(HYBE) 간의 분열 사태는 봉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어도어는 하이브와의 경영권 갈등 관련 감사 질의서 시한인 지난 24일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어도어 측은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모의 등 사실관계를 묻는 감사 질의서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빼앗기?
베끼기?

이를 두고 일각에선 각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킨 민희진은 직접 멤버 5명의 캐스팅부터 트레이닝·음악·퍼포먼스·매니지먼트 시스템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진스 엄마’ 민희진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소녀시대를 최고의 걸그룹으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2002년 SM에 공채로 입사한 민희진은 그룹 소녀시대, 샤이니, 레드벨벳, 엑소 등의 콘셉트 제작을 담당해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SM 등기이사가 됐다.


2000년대 초 SM에 신입사원이었던 그는 소녀시대의 그룹명이 정해지자 당시 SM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에게 콘셉트에 대해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는 후문이다.

소녀시대 ‘Gee’의 스키니진, 레드벨벳 ‘빨간맛’ 등은 모두 민희진의 손에서 탄생했다. 잘나가던 민희진은 등기이사 승진 약 2년 만인 2018년 말 SM서 퇴사했다. 번아웃 증후군 때문이라고 밝힌 그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20~30대를 일에 바쳤다고 생각한다”며 “자학과 자기 검열이 너무 심했다”고 털어놨다.

2019년 하이브의 CBO(최고브랜드관리자, Chief Brand Officer)로 돌아온 민희진은 하이브 신사옥 공간 디자인까지 맡을 정도로 감각을 인정받았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이사(CEO)의 연봉 5억900만원보다 많은 5억2600만원 연봉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4대 기획사 중 연봉 5억원 이상을 받은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후 민희진은 하이브 자본으로 2021년 11월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한 뒤, 2022년 그룹 뉴진스를 탄생시켰다. K팝 업계서 수십년간 내공을 쌓은 민희진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지만, 뉴진스의 데뷔 후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뉴진스는 명품 브랜드 구찌, 디올 등의 홍보모델로 발탁될 정도였다. 이외에 스마트폰, 금융 등 전 분야의 광고까지 휩쓸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뉴진스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뉴진스 흥행 2년 만에 민희진은 ‘경영권 탈취 의혹’에 휘말리며 반역자로 몰린 상황이다.

뉴진스 멤버 전원 쏘스뮤직 출신
“네꺼? 내꺼!” 박 터지는 집안싸움


앞서 민희진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제가 가진 18%의 지분으로 어떻게 경영권 탈취가 되겠느냐”며 “80% 지분권자인 하이브 동의 없이 어도어가 하이브로 독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도모했다는 하이브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번 갈등의 본질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BELIFT LAB)이 지난 달 데뷔시킨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베끼기’라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22일 어도어 측은 “뉴진스가 이룬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아일릿을 뉴진스의 아류라고 표현했다. 이어 “어도어는 하이브나 빌리프랩 등 어느 누구에게도 뉴진스 성과를 카피하는 걸 허락하거나 양해한 적이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며 “하이브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공한 문화 콘텐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카피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최근까지 민희진이 밝힌 입장은 경영권 욕심보다 스스로 지켜온 ‘독립성’ ‘독창성’을 하이브가 해치고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은 각 레이블이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한 체제이지, 계열 레이블이라는 이유로 한 레이블이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다른 레이블들이 따라가는 데 면죄부를 주기 위한 체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의가 어떻게 어도어의 이익을 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어도어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고 토로했다.

멀티 레이블
구조적 결함

일각에선 민희진이 온전한 ‘뉴진스 엄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뉴진스 멤버 전원은 쏘스뮤직 소성진 대표가 발굴했다는 것이다. 

먼저 뉴진스 멤버 민지가 쏘스뮤직에 입사한 건 2017년이고, 하니는 2019년에 들어왔다. 빅히트와 쏘스뮤직이 주최한 글로벌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다. 해린과 다니엘은 2020년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 주자는 온라인서 발굴한 혜인이 오디션을 통과해 쏘스뮤직과 도장을 찍었다.

이들 모두 2021년 하반기까지 쏘스뮤직서 연습생으로 지냈다는 결론이다. 

민희진이 하이브로 이적한 시기는 2019년이다. 그의 롤은 브랜드 총괄 CBO. 하이브 관계사 전반에 대한 브랜드를 지휘하는 역할이었다. 민희진은 쏘스뮤직 데뷔조를 준비해야 했지만 독자적인 레이블의 수장을 원했고, 어도어 탄생의 배경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훗날 민희진은 쏘스뮤직서 연습생을 선발했고, 현재 뉴진스 멤버를 구축했다. 대신 쏘스뮤직에는 그동안의 트레이닝 비용을 전달했다. 민희진이 뉴진스를 만든 건 맞지만, 뉴진스 멤버는 쏘스뮤직서 발굴한 인재로 골랐다는 것이다. 

민희진의 보상도 재조명됐다. 하이브 이사회는 2023년 1분기,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대신, 어도어의 주식(구주)을 저가에 살 수 있게 했다. 민희진은 어도어 지분 18%(57만 3,160주)를 보유,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민희진이 주식을 받았을 당시 어도어는 적자 기업에 비상장사였다. 2022년 매출은 186억원, 영업적자 40억원이었다. 민희진이 스톡옵션을 받았다면, 취득 시점에 45%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적자기업 주식을 받음으로써 세금도 아꼈다. 이를 통해 민희진이 하이브 시스템의 수혜자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이브는 지난 22일, 민희진과 측근 A씨가 투자자를 유치하고자 대외비인 계약서 등을 유출, 하이브의 어도어 주식을 팔도록 유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감사에 착수했다. 또 A씨가 어도어 독립에 필요한 비공개 문서와 영업비밀 등을 어도어 측에 넘겨줬다고 의심했다.

조금만 
잘나가면···

하이브는 확보한 전산 자산 등을 토대로 필요하다면 법적 조처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날 하이브는 본사에서 어도어 측이 쓴 것으로 보이는 ‘빠져 나간다’는 의향과 해외 펀드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안 등이 적힌 문건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해당 문건이 하이브가 감사의 명분으로 제기한 ‘경영권 탈취’의 물증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을 끌었다.

하이브는 문건 확보를 계기로 경영진 교체를 위한 주주총회 소집 절차에 속도를 냈다. 지난 23일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가 전날 어도어 전산 자산을 확보하면서 찾아낸 문건은 최소 3개다. 이 문건은 민희진의 측근 A씨가 지난 3월23일과 29일 각각 작성한 업무 일지다. 23일자 문건에는 ‘아젠다’(Agenda)라는 제목 아래 ‘1. 경영 기획’ 등 소제목, 그 아래 ‘계약서 변경 합의’ 같은 세부 시나리오가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문건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1안·2안 정리’라는 항목으로 ‘G·P는 어떻게 하면 살 것인가’ 하는 대목과 내부 담당자 이름도 적시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G는 싱가포르 투자청(GIC), P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로 보고 있다.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일부를 싱가포르 투자청이나 사우디 국부펀드에 매각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 문건에는 또 ‘하이브는 어떻게 하면 팔 것인가’ 하는 문장과 또 다른 담당자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이브를 모종의 방법으로 압박해 현재 80%인 하이브의 어도어 지분을 팔도록 하겠다는 고민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민희진이 “아일릿이 뉴진스를 따라 했다”는 비판 역시 ‘압박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하이브는 해석했다. 민희진은 최근 하이브 내부 면담 자리서 “아일릿도 뉴진스를 베끼고, 투어스도 뉴진스를 베꼈고, 라이즈도 뉴진스를 베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29일자 문건에는 ‘목표’라는 항목 아래 ‘궁극적으로 빠져나간다’ ‘우리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다’ 등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 하이브를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빠져나가는 방안이 정리된 문건”이라고 귀띔했다.

“경영권 탐낸 거 아니냐”
어쩌다···방시혁과 대립

결국 민희진 측은 지난 24일까지 기한이었던 하이브의 감사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으면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어도어에 대한 하이브의 감사권 발동 관련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 사태’라고 규정하며 “모방 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를 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경영권 탈취와 관련한 사실을 부인해 왔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회사 정보자산 반납 요구에도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당초 반납 시한은 지난 23일 오후 6시까지였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 측이 어도어 이사진을 상대로 오는 30일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으며 대표 사임을 요구하는 서한도 발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가요계에서는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의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해석도 내놨다.

지난 2005년 2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설립된 하이브는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로 금자탑을 세웠다. 이 과정서 쏘스뮤직(2019년), 플레디스(2020년), 이타카 홀딩스(2021년), 빌리프랩 지분 51.5%(2023년), QC 미디어 홀딩스·엑자일 뮤직(2023년) 등을 잇따라 인수해 멀티 레이블 체제의 기틀을 잡았다.

이는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 방식 운영보다 더 많은 가수와 음악을 동시다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가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활동이 잠시 멈춘 2022년 이래 르세라핌, 뉴진스, 아일릿 등 신인 그룹을 짧은 기간에 대거 데뷔시킬 수 있던 것도 멀티 레이블 체제의 덕이 컸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일부 레이블 대표가 독자 행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약점도 드러났다. 하이브가 80%라는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한 레이블 어도어서 잡음이 빚어졌다는 사실은 단순 ‘지분 문제’ 이상의 구조적 결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각각 김앤장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세종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결국
법정으로?

문화계에서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이 결국 양측의 법적 대응을 통해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어도어 측이 하이브가 요구한 이사회 소집을 거부할 경우 하이브는 곧바로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위한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의 가처분 신청 판단은 통상 2개월여 소요된다. 이어 현재 양측이 맞부딪히고 있는 쟁점들에 대한 소송전이 열리고 상급심까지 가게 되면 분쟁이 끝나는 시점은 예상하기 어렵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고발당한 민희진, 왜?

어도어 경영진을 상대로 감사를 펼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기로 했다. 

지난 25일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 어도어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결과 문건과 경영권 탈취 계획 등이 담긴 메시지앱 대화록 등의 정보자산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하이브는 정보자산에 담긴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민희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이브에 따르면 민희진은 어도어 부대표 등 경영진에게 “하이브가 보유 중인 어도어 지분을 매각하도록 하이브를 압박할 방법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실제 하이브가 이날 공개한 민희진과 부대표가 나눈 메시지앱 대화록에는 ▲2025년 1월2일 풋옵션 행사 엑시트(Exit) ▲어도어는 빈 껍데기 됨(권리침해소송 진행) ▲재무적 투자자를 구함(민 대표님+하이브서 어도어 사오는 계획) ▲하이브에 어도어 팔라고 권유 ▲ 적당한 가격에 매각 ▲민 대표님은 어도어 대표이사+캐시 아웃(Cash Out)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경영권 탈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하이브는 지난 22일부터 감사를 실시해 ‘하이브의 죄악’ ‘프로젝트 1945’ 등 경영권 탈취 계획 내용이 담긴 여러 문건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하이브는 감사를 통해 얻은 물증을 근거로 민희진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키로 한 것이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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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