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갑질 공화국도 을질 공화국도 안 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제2항엔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이 명시돼있다. 이는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의사결정이 국민에 의해 이뤄지며 국민 스스로가 주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국민의 대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즉 “우리나라 주인인 국민이 ‘갑’이고, 머슴인 대표는 ‘을’이다”는 사실이 헌법 제일 앞부분에 명시돼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기간 동안엔 확실히 국민이 ‘갑’이고, 대표로 나온 후보가 ‘을’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반대로 당선된 국민의 대표가 ‘갑’이 되고, 국민은 ‘을’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안타까운 우리 현실이다. 

선거로 뽑힌 우리나라 대표들이 말로는 임기 내내 국민을 주인인 ‘갑’으로 모시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대표 자신이 ‘갑’이 돼 갑질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주권의 주체를 헌법 제일 앞부분에 명시한 것 같다.


22대 총선 과정을 보더라도, 선거 기간 동안 우리 국민은 분명히 ‘갑’이었고 후보는 ‘을’이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 국민은 ‘을’로 전락해 있고, 당선된 후보가 갑질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거 기간 동안 일부 국민이나 세력이 후보를 향해 갑질한 것도 사실이다.   

역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전엔 국민이 ‘갑’이고 후보가 ‘을’이 돼 국민의 일부 세력이 갑질했고, 선거 후엔 당선자가 ‘갑’이 되고 국민은 ‘을’로 전락해 당선자가 갑질했다.

또 선거서 이긴 정당은 ‘갑’이 되고 진 정당은 ‘을’이 됐는데, 정당 역시 지난 수십년 동안 번갈아가며 ‘갑’이 된 후 갑질했다.

우리나라가 경제는 선진국에 진입했는지 몰라도 정치, 사회, 문화에선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다.

오래 전, 모 방송국 코미디 프로 중 ‘갑과 을’ 코너가 높은 시청률과 함께 꽤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음식점 주인과 에어컨 수리 기사가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해 서로 갑질하는 컨셉이었다.  

음식점 주인이 에어컨 기사가 늦게 왔다고 갑질하자, 에어컨 기사가 음식을 시키면서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갑질하고, 다시 음식점 주인이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다고 갑질하자, 에어컨 기사는 음식이 식었다고 갑질하는 식의 프로였다.

우리나라 국민과 대표도 1년에 한번(보궐선거 포함) 꼴로 치러지는 선거 전과 후로 나뉘어, 번갈아가며 ‘갑’이 돼 갑질하는 모습이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 명시돼있듯이 국민은 선거 전이나 후나 상관없이 항상 주권을 가진 ‘갑’이고, 국민이 뽑은 대표는 항상 ‘을’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래서 필자는 선거서 당선된 대표 즉 대통령, 국회의원, 단체장 등이 선거 후에 하는 갑질은 갑질이 아닌 을질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갑’과 ‘을’이 바뀌면 방송국 <갑과을> 코너처럼 코미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번 총선 과정서 일부 국민이나 세력은 ‘갑’으로 갑질했고, 후보는 ‘을’로 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총선 후에 당선자가 횡포를 부린다면 이는 갑질이 아닌 을질이라고 표현해야 맞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갑질 공화국이 되기도 하고 을질 공화국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분명히 ‘갑’과 ‘을’로 나뉘어 있다. ‘갑’은 계약 관계서 주도권을 가진 쪽이고, ‘을’은 그 반대쪽이다.

쉽게 말해 보수를 주며 재화나 노동력을 제공받는 쪽이 ‘갑’이고 보수를 받아 재화나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쪽이 ‘을’에 해당된다.

‘갑’과 ‘을’이 번갈아가며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갑’과 ‘을’의 관계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우리 사회는 ‘갑’과 ‘을’에 대한 명확한 정리도 안된 채 법을 만들고 개정하면서 ‘갑’도 ‘을’이 되고, ‘을’도 ‘갑’이 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국가 차원에선 ‘갑’이 ‘을’보다 사람 수가 더 많아 선거 때마다 정확한 심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차원에선 흔히 말하는 ‘갑’은 ‘을’보다 사람 수가 적어 만약 ‘을’이 을질하면 ‘갑’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세 이후 많은 국가가 왕정정치나 군주정치와 싸워 민주주의를 세웠지만 을질이 난무한 민주주의 체제 때문에 몰락한 국가가 한둘이 아니다.

을질은 갑질보다 훨씬 위험하다. 갑질이 난무하면 체제가 무너지지만, 을질이 난무하면 국가가 무너진다.

우리 사회가 강압적으로라도 을질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22대 총선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도, 패한 국민의힘도 모두 ‘을’일 뿐이다. 을질을 해선 안되는 양대 정당이다.


또 민주당이 이번 총선서 승리했다고 국민의힘에 대해 갑질하면 안 된다. 이는 국민에게 갑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당 간엔 ‘갑’과 ‘을’ 관계가 존재할 수 없다.

현 정부도 국민을 상대로 을질하면 안 된다.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갑’인 국민을 섬기는 ‘을’답게 처신해야 한다.

국정기조를 바꾸되 국민을 섬기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2027 대선을 염두에 두고 국정운영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국민에게 을질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앞서 말했듯이 을질은 결국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돼야 한다. 갑질 공화국이 돼도 을질 공화국이 돼서도 안 된다. 특히 22대 국회가 모 정당이나 단체가 갑질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 갑질을 막기 위해 ‘을’에게 을질하도록 법을 만들거나 개정해선 절대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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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