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 진 ‘문심’ 어디로 향할까?

손만 잡아도 50% 먹고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이낙연·조국이 홀로서기에 나섰다. 한 목소리로 “윤석열정부 심판”을 외치면서도 화합과 견제를 반복한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서 여의도를 바라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속마음이 아리송하다.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이 과연 누구의 뒤를 받쳐줄지 눈길이 쏠린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직후 집권한 만큼 큰 기대를 받았다. 이 때문일까? 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코로나 팬데믹, 부동산정책 등 온갖 악재를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는 평이 나온다. 2022년 청와대를 떠났지만 중요한 일을 앞둔 야권 인사들이 하나 같이 평산마을을 찾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건재한
영향력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4일,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마을에 위치한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이들은 30여분간 회담한 뒤 지도부와 함께 오찬을 가졌다. 총선을 60일 앞두고 성사된 만남인 만큼 문 전 대통령은 당의 통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파 다툼을 비롯해 선거제 개편 문제를 놓고 당내 이견이 평행선을 달리던 때였다.

1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제1야당을 사수하기 위해 병립형으로 마음이 기운 듯했다.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이유에서다. 당시 민주당 핵심 관계자조차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병립형을 선택할 가능성에 크게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남을 가진 바로 다음 날인 지난달 5일, 이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언했다.

이날 이 대표는 “거대 양당 한쪽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패배를 각오하지 않는 한 맞은 편 역시 대응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며 “선거 때마다 반복될 위성정당 논란을 없애고 준연동제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는 이 악순환을 피하려면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하지만 여당이 반대한다. 그렇다고 병립형 회귀를 민주당이 수용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했다. 병립형으로 가닥이 잡히던 상황을 단숨에 뒤집을만한 인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은 180석을 경험했던 만큼 이 대표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줬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역시 ‘정치 입문’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앞두고 문 전 대통령을 찾았다. 조 대표는 지난달 12일, 문 전 대통령을 만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신당 창당을 통해서라도 윤정부 심판과 총선 승리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안에서 함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신당을 창당하는 불가피성을 이해한다”고 답했다. 사실상 조 대표의 신당 창당 계획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이후 조 대표는 곧바로 부산을 찾아 창당을 공식 선언한 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중대 발표 전 찾는 필수 코스
평산마을서 어깨동무 ‘찰칵’


새로운미래를 이끄는 이낙연 공동대표 또한 지난해 7월 신당 창당을 시사하기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다.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미국서 귀국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공동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2시간가량 만찬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큰 실마리를 남기지 않았다. 예방 직후 이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통령의 별도 당부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있었지만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 공동대표는 지난 1월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새로운미래 창당 과정에 돌입했다. 앞서 이 대표와 회동을 통해 이견을 조율을 시도했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민주당을 떠난 것이다.

세 명의 대표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평산마을을 찾았다. 저마다의 길을 택하면서 지금의 총선 구도가 형성된 만큼 문 전 대통령의 입김이 여전히 여의도의 기류를 바꿀 수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이재명·이낙연·조국 대표는 모두 민주당이라는 뿌리로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둥지를 틀었지만 결국 문 전 대통령과 필연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다. 친문(친 문재인)은 지난 정부서 180석을 구성했던 세력이다.

따라서 친문 세력을 조금이라도 적으로 둔다면 곧바로 지지율이 고꾸라질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해석이다.

하지만 위 주장이 무색하게 친문과 친명(친 이재명) 세력은 총선을 앞두고 여러 차례 충돌했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이 만남을 거듭하며 화합을 중요시했지만 지지자와 계파 간의 갈등을 봉합하지는 못했다. 결국 공천 과정서 설훈·홍영표 등 다수의 친문계가 컷오프당하거나 경선서 탈락했고 이는 줄탈당으로 이어졌다.

공천 파동의 뇌관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의 뜻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나 싶더니 이번에는 경기 안산갑에 공천을 받은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이 파문에 휩싸였다.

양 후보는 2008년 언론연대 사무총장 시절 ‘이명박과 노무현은 유사 불량품’이란 제목의 칼럼을 작성했는데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고 쓴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오월동주
여의도

이 밖에도 ‘미친 미국소 수입의 원죄는 노무현’이란 칼럼서 “낙향한 대통령으로서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양 후보의 공천을 취소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도부는 발언 대상이 사회적 약자 등이 아닌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유세 현장서 양 후보와 관련한 기자 질문에 “발언이 지나쳤다”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그 이상의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우리 국민들께서 판단할 것”이라며 사실상 공천 유지 입장을 밝혔다.


양 후보와 경선서 맞붙어 패한 친문계 전해철 의원은 SNS를 통해 “양 후보의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자 인식의 표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를 포함해 같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수박, 바퀴벌레, 고름이라 멸칭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해 왔다”며 “대통령님에 대한 비난의 발언은 그 빈도와 말의 수위, 내용의 문제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잠시 수면으로 가라앉았던 계파 갈등의 불씨가 살아나자 김부겸 상임선대위원장이 급히 진화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이 문제는 일단 정리하고 이제 총선 승리라는 한 가지 목표로 매진하는 게 옳을 것 같다”며 “한 목소리를 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서 매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화약고와도 같은 친문·친명 갈등이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전부터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명문(친명·친문이 서로 화합하는)’ 정당을 거듭 강조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명문 정당은 두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거두기 위한 ‘립서비스’뿐이라는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는 친문 세력이 끌어들이는 지지층을 보장받고자 하고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세력을 보호해줄 ‘장치’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이 지나고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의 사이가 껄끄러워질 것”이라며 “그럼에도 이 대표는 무리하게 공천을 진행시켰다. 문 전 대통령의 지지 없이도 총선서 승리를 거둘 것이란 자신감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공동대표의 새로운미래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 지지도는 ▲조국혁신당 10% ▲개혁신당 2% ▲새로운미래 2% ▲녹색정의당 1%로 집계됐다. ‘지지 정당 없음·모름·무응답’은 21%였다.

민주 진영
새로운 바람

지역구 투표 정당 역시 ▲조국혁신당 5% ▲개혁신당 2% ▲녹색정의당 1% ▲새로운미래 1% 순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18.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 공동대표는 지난 10일, 광주 광산을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지지율을 견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공동대표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배경을 두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호남 사람에게 있어 민주당을 탈당한 사람은 ‘가출한 아이’와 똑같다”며 “게다가 개혁신당과 손을 잡지 않았나. 이는 광주 민심에 호소하기 어려울뿐더러 문 전 대통령 또한 선뜻 손을 들어주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새로운미래에 힘을 실어준다면 친명계와 친낙(친 이낙연)계의 계파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질 것으로도 예상했다.

이 공동대표가 현재 상황을 뒤집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대표는 다른 후보에 비해 늦게 출마를 선언했다. 현장을 찾아 지역주민과 스킨십을 한 기간이 비교적 짧았던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율이 상승할 가능성을 마냥 닫을 수 없다는 관측도 제시된다.

반면 가장 늦게 출발한 조국혁신당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창당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지율이 오름세를 기록하며 이번 총선의 돌풍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힘을 입은 듯 조 대표 또한 활동 반경을 넓히는 추세다. 당초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야권의 본진이라는 점을 강조해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지민비조’를 표어로 내세웠다. 유권자의 교차 투표를 격려함으로서 민주당과 상생의 관계로 거듭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역시 이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듯했다. 이 대표와 조 대표는 지난 5일, 국회서 만나 “윤정부 심판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며”며 총선 연대를 강조했다. 조 대표가 “윤석열 탄핵”을 가감 없이 외친 덕에 ‘정권 심판론’이 한층 두드러지는 효과도 한몫했다.

공천 파동? 사법 리스크?
미운 놈 떡 하나 더 줄까?

하지만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을 위협하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민주당이 “지역구도 비례도 민주당을 찍어 달라”며 ‘몰빵론’으로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에 조 대표는 “뷔페에 가면 여러 코너가 있지 않나”라며 “음식을 보고 본인 취향에 맞는 것을 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지민비조에서 더 나아가 “조국혁신당을 찍는 김에 민주당을 찍으라”는 ‘비조지민’으로 전환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자신감의 배경으로 문 전 대통령의 긍정 메시지가 소폭 반영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창당을 앞둔 조 대표가 평산마을을 찾았을 때 문 전 대통령은 이 공동대표와 달리 격려의 말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있어 조 대표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문 전 대통령이 조 대표를 당시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기 때문에 ‘집중적인 정치 수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조국혁신당에 마음이 반발 앞선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서로의 이해타산이 성립했다”고 평가했다.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2심서 실형을 받은 조 대표는 총선 출마를 통해 정치적 부활을 노리고 있다. 친문 세력은 민주당서 대거 컷오프되면서 갈 곳을 잃었다.

조국혁신당의 몸집이 커질수록 친문 세력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정치 일선에 나설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하지만 자신의 세력이 22대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 물밑서 움직이지 않겠냐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조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현재 이 대표는 일주일에 2~3번씩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똑같이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 대표까지 집중을 받는다면 정부·여당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격 대상이 된다.

이 같은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의 관계에 선을 긋는 분위기도 이어진다. 마음의 빚을 진 문 전 대통령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격려의 말을 했을 뿐, ‘조 대표의 신당 창당에 크게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오히려 22대 총선서도 민주당이 제1야당을 이어가기 위해 전적으로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무용론’도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임기가 끝난 정치인의 영향력은 총선 판세를 뒤엎을 만큼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닫힌 문?
열린 문?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문 전 대통령의)메시지가 (특정 당의)지지율에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는 ‘이미 지나간 세력’이라는 점을 들었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전 정부의 영향이 여의도 담을 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은 ‘전 정부 심판’이 아닌 ‘현 정부 심판’으로 치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에 악재가 찾아올 때마다 문 전 대통령이 자칭타칭 구원투수로 소환된다. 총선 결과를 떠나 4월10일 이후 문 전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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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