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송환과 테라·루나 재판 상관관계

50조 말아먹은 그놈이 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피해액이 약 50조로 추산되는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으로 꼽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다. ‘여의도 저승사자’인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 1호 수사인 테라·루나 사건의 재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가 타 가상자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몰락했던 ‘한국판 일론 머스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 테라·루나 코인 개발자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이야기다. 그의 한국 송환으로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 7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기존 권씨의 미국 인도 결정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미국 인도 
결정 뒤집어

재판부는 당시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했다고 본 원심과 달리 “한국 법무부가 지난해 3월24일 영문 이메일로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미국보다 사흘 빨랐다”고 밝혔다. 또 미국 정부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있어 이를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몬테네그로 법원은 권씨에 대해 미국과 한국 중 어디로 범죄인 인도될 것인지를 두고 1년여간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은 몬테네그로 법무부가 권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하면 한국 법무부에 이를 통보 후 구체적인 신병 인도 절차 협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우리 경찰은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협조 요청한 상태다.


이용상 경찰청 국제공조담당관은 “몬테네그로 같은 유럽계 국가는 인터폴의 영향력을 받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의 공조 지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지속적으로 인터폴사무총국에 송환 관련 얘기를 해 왔는데, 이번에 몬테네그로 법원이 기존 미국 인도 판결을 뒤집은 것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부도 권씨가 국내서 재판받고 형이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권씨의 항소 기한이 연기돼 한국 송환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권씨 측이 영문 판결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권씨 측은 고등법원 법원장에게 권씨가 이해하는 언어인 영어로 된 결정문을 보내는 긴급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 권씨 측이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 송환을 뒤집고 한국 송환 결정을 받은 만큼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권씨는 2018년 가상화폐 업체 테라폼랩스를 설립하고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했다. 루나 공급량을 조절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로 맞추는 방식이다.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의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2022년 5월 가상화폐 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 발행해 가격을 방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50조원에 이르던 시가총액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이로 인해 가상화폐 업계 전반이 휘청였고 국내서만 피해자가 20만명 이상으로 추산됐다. 

몬테네그로 법원 한국 송환 결정
공동대표·최측근 재판 진행 중

권씨는 가상화폐인 테라·루나의 폭락 위험성을 알고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계속 발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미국과 한국, 싱가포르 등 3개국서 사기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수배 명단에 올랐다. 중동과 동유럽 등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3월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서 위조 여권을 사용해 덜미를 잡혔다.


권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된 이후 한국서 재판 중인 테라·루나 사건에 관심이 모인다. 지금 한국서 재판 중인 건은 2건으로 테라폼랩스의 공동창립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 한창준이 각각 기소된 재판이다.

신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신 전 대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테라 프로젝트의 허구성을 숨긴 채 지속적인 거래 조작, 허위 홍보 등으로 전 세계 투자자를 속여 4629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득하고 약 3769억원을 상습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전자상거래 업체 대표에 대한 금품 로비, 결제 정보 무단유출, 테라폼랩스 법인자금 횡령 등의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이 과정서 허구에 가까운 ‘테라 블록체인 지급결제 사업’을 내세운 ‘차이 프로젝트’로 국내외 벤처투자사 등으로부터 투자금 1221억원을 유치한 혐의도 받는다.

차이코퍼레이션이 갖고 있던 고객정보를 테라폼랩스 등 다른 회사에 유출한 혐의,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전 대표 유모씨에게 “테라를 간편결제 수단으로 도입한다고 홍보해 달라”고 청탁하고 그 대가로 루나를 제공한 혐의도 적용됐다.

신 전 대표는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이다. 신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첫 공판서부터 “2020년 권도형과 사업적으로 결별했고, 폭락의 원인도 결별 이후 권도형이 진행한 앵커 프로토콜의 무리한 운영과 외부 공격 때문”이라며 “피고인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테라 프로젝트 구상 당시 가상자산 활용 결제 방식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었던 점, 자진 귀국해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약정된 루나 코인 7000만개 중 32%밖에 수령하지 못한 점, 신 전 대표가 루나 코인 대부분을 매도한 시점이 루나 코인 가격 폭등 이전인 점 등을 들어 신 전 대표의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 신 전 대표의 재판은 증인신문을 진행 중이다.

권씨와 함께 도피했던 한씨는 지난달 2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3개국서
수사 중

검찰에 따르면 한씨는 테라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속여 루나 코인을 판매·거래해 최소 536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또 증권신고서 제출 없이 루나 코인을 판매하는 등 증권의 모집·매출행위를 한 혐의와 차이페이 고객의 전자금융 결제 정보 약 1억건을 동의 없이 테라 블록체인에 기록해 무단 유출한 혐의도 있다.

테라 코인 발행으로 주조차익이 발생한 것처럼 속여 테라폼랩스 회사 자금 141억원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대가 없이 지급해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는다. 2022년 4월 권씨와 한국을 떠나 도피한 한씨는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 현지 경찰에 권씨와 함께 체포됐다.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고 몬테네그로 당국과 협의해 한씨의 신병을 인도받아 지난달 6일 송환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한씨의 재판은 지난 6일 첫 공판기일이 진행됐지만 공전했다. 한씨 측 변호인은 이날 “아직 증거기록을 입수하지 못했다”며 “기록 검토 후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검찰 측에선 기존에 진행 중이던 신 전 대표 사건에 한씨 사건을 병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결국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건으로 보인다”면서도 양측에 “증인의 진술조서 등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 달라. 증인신문 진행 후 사건을 언제 병합할 수 있을지 날짜를 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신 전 대표의 재판에서 증인신문이 마무리돼도 한씨 재판서 증인신문이 이뤄진 후 병합이 될 예정이라 재판 자체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권씨도 송환된 후 기소되면 해당 재판들과 병합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법조계와 피해자 커뮤니티에 권씨가 유력 법무법인과 미리 초호화 변호인단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첨예한 법적 공방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씨 송환 이후 재판서 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이들의 처벌 수위에도 영향을 끼친다. 증권성 여부가 인정되면 자본시장법 혐의가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건의 재판
현재 상황은?

자본시장법 제443조에서는 시장 교란 행위를 통해 불법 이익을 취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의 규모가 50억원을 넘어설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증권성이 인정되면 권씨 등 테라·루나 관계자들은 피해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만큼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은 신 전 대표 등이 만든 루나 코인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증권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루나 투자자와 테라폼랩스 간 공동사업인 테라 블록체인 플랫폼 사업이 존재하고, 루나 투자자는 이 사업에 법정화폐 혹은 가상자산을 투자했으며, 공동사업은 테라폼랩스가 독점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신 전 대표 측은 재판서 “발행 법인과 루나 보유자 사이, 루나 보유자들 사이의 공동사업성 모두를 인정하기 어렵고, 다수 참여자의 활동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타인성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루나 보유자가 발행법인에 어떠한 계약상 권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계약상 권리를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며 증권성을 부인하고 있다. 권씨도 “루나는 증권이 아닌 화폐”라며 계속해서 증권성을 부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이미 테라·루나가 증권이라고 결론내렸다. 지난해 12월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테라폼랩스와 권도형이 ‘미등록 증권’을 판매해 법을 위반한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에서는 증권성 판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서 인정될 만한 논리적 근거가 없어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 있는 형국이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진행한 ‘가상자산의 증권성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제화 방향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상자산이 경제적 실체에 따라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구분되며 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게 되고 비증권형에 해당할 경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2024년 7월 시행 예정)’ 적용을 받게 된다.

문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과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주체가 사안별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증권성 여부 다시금 수면 위로
‘가중주의’보다 낮은 처벌 예상

테라·루나에 관해서는 “테라 트랜잭션이 발생할 때마다 수수료를 배분하는데 이를 전매차익으로 볼 수 있는지 아니면 분배수익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스테이킹을 하는 루나 보유자에게 하는 스테이킹 보상을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의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역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대검찰청이 의뢰한 연구서도 명확히 판단이 어렵다고 인정한 셈이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이런 연구 결과와 정부 대처를 변호인단을 파고들 가능성이 크다”며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권씨나 그 조력자들 모두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로 다른 가상자산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디센트법률사무소의 진현수 변호사는 “특경법상 사기죄는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제는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라면서 “처벌 여부를 떠나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코인 전문 변호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 리플 등 논란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신속히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우리나라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이후 2년이 지나도록 증권성 여부에 대한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며 “현재 선례가 없어 판단이 미뤄지고 재판서 미국 판례를 이용하고 있는데 테라·루나 재판이 완료되면 다른 가상자산 사건에 해당 판례가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코인을 증권이라 규정할 경우 후폭풍이 부담스러워 법원도 판단을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테라·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되면 상장 폐지 전까지 이 코인의 거래를 중개했던 두나무 등 국내 거래소들이 모두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루나 등과 같은 기준으로 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들도 증권성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가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테라·루나의 증권성 여부와 상관없이 권씨는 미국의 처벌 수위와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미법계’인 미국은 개별 혐의 형기를 합쳐 형량을 정하는 ‘병과주의’를 택하고 있다. 징역 10년 선고가 가능한 범죄를 10개 저질렀다면 100년형을 선고할 수 있는 식이다. 하지만 ‘대륙법계’인 한국은 ‘가중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보다
솜방망이?

국내 형법은 한 사람이 2개 이상 범죄를 저지른 ‘실체적 경합범’의 경우 여러 혐의 중 최고 형량의 최대 2분의 1을 가중토록 한다. 최고 형량이 징역 10년인 2개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상 선고 가능한 최고 형량은 15년이다. 이 밖에 형법에선 유기징역 상한을 30년, 가중할 경우 최대 50년으로 정하고 있다.

권씨에게 적용될 혐의는 특경법상 사기로 한국 경제사범 중 역대 최고형은 대법원이 2022년 1조원대 펀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 대해 확정한 징역 40년이다. 미국으로 송환됐다면 115년 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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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