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20대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전직 경찰청 및 청와대 관계자들은 경찰 정보라인을 이용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 맞춤형 선거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2019년 6월 기소됐다. 당시 경찰청 정보국은 지역 정보 경찰을 동원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문건을 만들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12일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 전 청장의 상고심서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총선과 무관한 정보활동에 관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별도로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공직선거법 제18조 제3항 분리 선고 규정에 따른 것이다.
2019년 기소
함께 기소된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20대 총선 관련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이 유지됐다. 이 외 김상운 전 경찰청 정보국장, 박기호 전 경찰청 정보심의관, 정창배 전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총선 관련 혐의에 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다른 혐의들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미 동일한 사실관계로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은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그대로 유지됐다.
또 이들은 직권을 남용해 2012~2016년 당시 청와대와 여당에 비판적인 진보 성향 교육감과 국가인권위원회 일부 위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등을 좌파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찰하도록 지시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도 받는다.
앞서 1심서 강 전 청장은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강 전 청장은 12만 경찰조직의 수장이자 국가경찰 사무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경찰공무원들의 직무집행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지휘·감독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음에도 이를 방기한 채 위법한 정보활동을 최종적으로 승인·지시했다”며 징역 1년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나머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부분에 대해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분리해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받았다. 다만 2심은 “강 전 청장이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범행에 임하진 않았다”며 “이미 상당 기간 구속 수감된 점 등을 고려하면 실형 선고는 다소 무겁다”고 징역형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친박’ 여론 살피고 청와대에 보고
1심 징역 1년2개월···2심 집유 감형
앞서 경찰청 정보국은 2015년 말 대구 지역 여론과 선거전략을 담은 문건을 만들어 대구 출마 예정인 여권 인사한테 전달했다. 2016년 4월 실시된 20대 총선 당시 이른바 ‘친박(친 박근혜)계’ 후보의 당선을 위해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가 선거 관련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하거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당시 강 전 청장은 이를 보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 전 청장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8월부터 2016년 8월까지 2년간 경찰청장을 지냈다.
검찰은 또 경찰이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유력 여권 인사의 출마가 예정된 호남의 한 지역 여론 등을 강 전 청장에게 보고한 단서도 확보한 바 있다. 이를 청와대에 지속적으로 배포할 것을 지시하는 등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았다.
2019년 검찰은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 시절 경찰이 불법 사찰 및 정치에 개입하려 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를 수사했다. 앞서 2018년 11월과 12월에 이어 2019년 4월9일 경찰청 정보국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3차례 압수수색했고,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또, 검찰은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일한 강 전 청장이 경찰 정보 라인의 선거개입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하고 지시·보고 여부를 추궁했다. 2019년 5월15일 서울중앙지법서 12시간 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강 전 청장은 선거 분석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 등 관여 정도를 물었으나,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퇴임 후 강 전 청장의 행보는 실형 선고가 무겁다는 재판부의 판단과 대치된다. 2022년 4월 강 전 청장은 외국계 로펌 고문직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선거개입 혐의를 받는 강 전 청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고액의 고문료를 받으면서 수사기관을 상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강 전 청장은 다국적 로펌인 덴톤스 리(Dentons Lee)에서 수년째 고문으로 활동했다. 로펌 측은 “강 전 청장이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전 청장은 퇴임 후 고문으로 영입돼 수사 관련 자문을 주로 하다가 2022년부터 해당 로펌 고문인 이수원 전 특허청장과 블록체인, 가상자산 사건 일도 맡았다.
불법 선거운동 신고 ‘긴급’ 분류 지시
퇴임 후 로펌 고문···경찰 수사 자문역
정보통 출신 경찰 고위직이 고문으로 영입되면 월 수백만 원 이상의 고문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청장은 구속되기 전, 선거치안 확보를 주문하는 등 청렴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3월 중순, 주요 정당의 20대 총선 공천 작업 과정서 발생하는 흑색선전 등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신고를 ‘긴급’(코드1 이상)으로 분류해 신속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긴급신고인 코드1 상황에선 경찰이 최단시간을 목표로 현장 출동해야 한다.
강 전 청장은 “가용경력을 총동원해 선거사범 단속과 선거 치안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거 신고 사건에선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거가 중반전에 이르면서 선거사범 112신고가 하루 900여건 가까이 접수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본인의 죄를 감추기 위한 연출에 불과했다.
한편,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은 강 전 청장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것에 관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판결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일요시사>와 통화서 “정보과 출신 경찰들은 시민들과 가장 밀접한 ‘바닥 정보’ 수집이 주요 업무인 만큼, 선거 기간 동안 정치권으로부터 결탁 요구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박 전 행정관은 “개입하지 말았어야 할 사건에 휘말린 강 전 청장에 대해 경찰들은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며 “권력에는 반드시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수사 당국이 특정 정당에 힘을 실어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강 전 청장은 경찰 내부에서 ‘정보통’으로 불렸다. 1982년 경찰대학 2기로 입학한 그는 1986년 경위로 임용돼 2003년 총경으로 승진해 울산지방경찰청 정보과장, 경찰청 정보2과장, 서울지방경찰청 송파경찰서장, 대통령실 치안비서관실 등에서 근무했다.
직권남용
2010년에는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행정안전부 치안정책관, 서울지방경찰청 경무부장을 지냈다. 2011년 11월에는 치안감으로 승진했고 경찰청 수사국장, 정보국장 등을 지낸 뒤 경북지방경찰청장을 지냈다. 2013년 2월에는 대통령비서실로 파견 가서 사회안전비서관을 지냈다.
2013년 12월에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됐다가 이듬해 8월25일에는 이성한 청장에 이어 19대 경찰청장에 올랐다. 경찰대 출신으론 첫 경찰청장이다. 2010년에 경무관을 달고 2014년에 치안총감을 달아 고속 승진했다. 2016년 8월23일, 이철성 당시 경찰청 차장과 이임식을 하며 퇴임했으며, 2003년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두 번째로 임기를 채운 경찰청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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