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형벌은 범죄를 억제하는가?

  • 이윤호 교수
  • 등록 2024.03.08 17:22:44
  • 호수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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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의 위협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든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매우 이성적이고, 사고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형벌을 경험하게 하거나 가할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그 고통을 다시는 감내하기 싫어서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극히 상식적인 이 같은 생각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억제(Deterrence)’는 일종의 신념에 가까운 것인데, 그 효과는 실제로 거의 없다. 이런 이유로 억제는 오히려 양형·형벌의 더러운 비밀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엄중한 형벌이 범죄를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또 엄중한 형벌로 대중을 억제하려는 ‘일반 억제’는 물론이고, 이미 형벌이 확정된 범죄자가 장래에 또 다시 재범하지 않도록 하려는 ‘특별 억제’도 그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소위 ‘한계 억제(Marginal Deterrence)’라는 것으로, 형벌의 엄중성은 실제로 억제 효과나 또는 재범을 낮추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억제 효과는 형벌의 ‘엄중성(Severity)’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Certainty)’이라고 할 수 있는 체포의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만약 붙잡힐 확률 및 개연성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오히려 어느 정도 확실하게 억제재로 작용할 수 있다. 라면 하나를 훔쳐도 사형인 세상에서 가장 엄중한 형벌이 존재하더라도 라면을 훔친 일로 붙잡혀서 처벌받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형벌을 통한 범죄억제 효과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논란이 되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억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별 억제라면 범법자가, 일반 억제라면 대중들이 법을 잘 알고 또한 형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가정이 전제돼야 한다.


물론 대다수는 특정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더라도 특정한 형태의 범행인지, 범죄 행위는 어떤 형벌을 받게 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합리적인 인간이 범죄의 이익과 비용을 계산해 자유의지에 따라 범행을 선택하기에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는 전제하에 가능해지는 억제이론은 만약 범죄자가 자신의 행위가 범죄인지, 형벌이라는 비용이 얼마인지 전혀 알 수 없다면 아무런 계산이 가능하지 않고, 그래서 원천적으로 형벌에 의한 범죄억제는 신기루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또 다른 억제 효과의 가정은 범법자들이 체포되고 유죄가 확정될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계산해 범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범죄자는 합리적 계산을 할 수 없거나 하지도 않는다. 누구는 정신질환이나 장애로, 누구는 음주와 약물의 영향으로 합리적 계산이 되지 않는다.

테러범 사례서 볼 수 있듯이 대다수 확신범은 형벌도 불사하고 범행을 저지른다. 또 누구는 형벌을 비용이 아니라 보상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형벌을 통한 억제가 작동할 리 만무하다. 대부분의 폭력 범죄를 포함하는 ‘표출적 범죄(Expressive Crimes)’는 범죄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처음부터 비용-편익이라는 합리적 계산 및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죄에 상응한 처벌은 마땅한 것이다. 굳이 억제가 아니라도 그것이 최소한의 사법 정의의 실현이기에 그렇다. 처벌되지 않거나 처벌이 죄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형벌을 통한 범죄억제는 요원할 뿐이다. 그렇다 해도 형벌의 엄중 여부와 범죄가 억제 효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범죄의 중함과 비교해 지나치게 경미한 처벌은 사법제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사적 제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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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