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일요초대석> 벽지서 세상을 보다 - 김종국 원로 신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05 13:55:05
  • 호수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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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식사 없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김종국 원로 신부를 만났다. 편안해 보이는 인상으로 30년이 넘게 토마스의집을 운영했던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하루에 300명이 넘는 식사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신부는 지금도 영등포역 토마스의 집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에는 토마스의 집이 있다. 1970년대 여인숙과 집창촌이 있었던 장소다. 영등포 쪽방촌은 산업화에 밀려난 도시 빈민층이 몰리면서 생긴 쪽방 주거지다. 쪽방이란 부엌,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6.6㎡ 이하 규모의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나 일세를 받는다. 이곳은 현재 역세권 공공주택단지로 바꾸기 위한 공공 주도 재정비 사업이 2028년에 마무리될 예정이지만, 아직도 거주민들이 살고 있다.

30년 넘은
급식 봉사

토마스의 집은 가난하고 소외된 행려자에게 ‘빵이 곧 생명’이라는 철학으로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원래는 ‘사랑의 선교수도회’ 급식소가 운영하다가 문 닫은 자리서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매일 500명서 550명이 토마스의 집을 이용했다면, 현재는 하루에 평균 320명 정도가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를 한다.

토마스의 집은 자원봉사자들이 주 업무를 한다. 주·부식 준비부터 식판에 반찬 담기, 배식 및 설거지와 뒷정리까지가 토마스의 집 일과다. 다음 날 배식 준비로 일이 더 늘어날 때도 있다. 이곳 자원봉사자들은 ‘이웃에 대한 정신적인 성원과 협력’ ‘나눔은 이웃을 비난하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경’하는 신념으로 봉사활동에 임한다.

어느 덧 올해로 토마스의 집은 32년 째 운영 중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시작은 김종국 원로 신부로부터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2일 오후 1시 서울시 중구 명동 가톨릭회관서 김종국 원로 신부를 만나, 김 원로 신부가 지난 30여년간 겪은 봉사의 삶과 이 시대가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김 원로 신부는 “토마스의 집을 하기 전, 영등포교도소서 10년 동안 있었다. 가톨릭 담당으로 교도소에 있는 교인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며 “교도소에 있는데 어느 날, 영등포역서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이 무료 급식 봉사를 하다가 그만뒀다는 얘길 들었다.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며 부탁받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원로 신부는 장고에 들어갔다. 봉사활동이야 신부된 도리로 좋은 일이라지만, 당시 그는 본당 신부인 입장이라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이런 까닭에 선뜻 급식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우선 영등포역을 방문했다. 어떤 장소서 급식 봉사를 한 것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교도소 10년, 토마스의집 30년
한 끼 대접하자 마음으로 시작

이때 김 원로 신부 눈에 들어온 것은 쪽방촌이었다. 김 원로 신부는 “쪽방도 아니었다. 거의 허물어가는 집이었다. 직접 가 보니까 어려운 사람에게 밥을 한 끼 대접하면 좋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급식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원래 급식 봉사했던 장소가 정리가 돼있지 않았던 탓이다. 김 원로 신부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려고 리어카로 9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도 돈이 들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건물 주인이 급식 봉사를 하도록 허락해준 것이었다.

수저, 밥그릇 등 모든 것을 다 직접 사야 했다.


평신부였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었다. 토마스의 집을 꾸리는 것이 너무 고생스러워 ‘내가 이런 고생을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부터 후원해주는 곳이 없으니 사비도 들어갔다.

김 원로 신부는 “물건 구매는 물론, 음식도 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후원해주는 곳이 없어 사비를 쓰면서 체계를 잡아 나갔는데 거의 시작하자마자 거의 전국으로 알려져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회상했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그 뒤로는 잘됐다. 토마스의 집은 따로 홍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당시엔 무료 급식을 하는 곳도 드물었던 만큼, 노숙자들 사이서 입소문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토마스의 집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거노인이다. 요즘엔 지하철요금이 무료라 시골에 거주 중인 노인들이 토마스의 집까지 원정을 오기도 한다. 시골 노인 한 명이 토마스의 집에서 무료로 식사하고 동네 노인과 같이 오는 식이다.

김 원로 신부는 “우리는 식사만 하는 게 아니라 빵, 사과, 라면도 끼워서 준다. 그래서인지 많이 온다”고 밝혔다. 무료 급식소가 전국에 있는데 꼭 굳이 토마스의 집까지 찾을 필요가 있을까? 이는 토마스의 집만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쪽방촌
지킴이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이 김 원로 신부의 지론이다. 사람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고, 스스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김 원로 신부는 “나도 외로울 때가 있고, 소외감을 느낀 적도 있다. 이게 쌓이면 병이 된다. 그래서 토마스의 집에 식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우리 님’이라고 부른다. 여기 와서 밥 먹는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높여서 부르면 존중받는 것을 느끼니까 많이 오는 것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화는 김 원로 신부가 교도소 신부로 있었을 때의 경험을 살려서 만든 것이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는 70세가 넘은 할아버지 수감자가 있었다. 교도소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대접해주는 문화가 없다. 오히려 약자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다.

다른 수감자들이 이 70대 수감자를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하면서 함부로 불렀다. 그러나 김 원로 신부는 미사에 참석했던 이 70대 수감자에게 큰 목소리로 “젊은 오빠, 어디 계십니까!”하고 불렀다. 70대 수감자는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왔다.

김 원로 신부는 그를 ‘젊은 오빠’라고 부르면서 챙겨줬다. 다른 사람들도 챙겼지만, 선물을 주더라도 먼저 주는 식이었다. 이때부터 교도소 안에서 70대 수감자의 별명이 ‘젊은 오빠’로 바뀌었다. 이 수감자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부르던 명칭도 사라졌다.

김 원로 신부는 “사람을 존중하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 수감자들은 절도범이 많았는데 강도, 강간, 살인미수는 기본이었다. 그래도 존중받으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토마스의 집에 독거노인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많이 오는 편이지만, 젊은 사람도 많이 온다. 초반에는 대부분이 남성이었다면 지금은 여성들도 찾아온다. 이곳에서 함께 식사하면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된 것을 느낀다는 것이 김 원로 신부의 말이다.

대부분
노인들

현재 토마스의 집은 외국서 자원봉사자가 올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외국서 한국으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토마스의 집에서 식사했던 사람들이 김 원로 신부에게 인사하러 오기도 한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조용히 “신부님, 잘 먹었다” “나중에 제가 복직하게 되면 꼭 이 은혜를 갚겠다” 등의 인사를 하며 떠난다.

직접 만든 수세미를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파는 물건이 남으면 쓰라고 가져오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김 원로 신부는 “결국 사람은 정에 굶주리면 가장 힘든 것인데, 이곳에서 사람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정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고, 주님은 나에게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토마스의 집 외에 다른 무료 급식소들이 생겨서, 이제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김 원로 신부는 봉사활동을 끝낼 생각이 없다.

“언제까지 봉사를 이어나갈 생각이시냐”는 질문에 김 원로 신부는 “글쎄,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할 생각이다. 만약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면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한국에 토마스의 집 같은 무료 급식소가 아예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 것이니까”라고 답했다.

김 원로 신부와 토마스의 집 외에도, 현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특히 젊은 층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러면서 해당 문제 역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로 신부는 “극단적 선택이나 마약 같은 정신병은 소외감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 중에는 청년이 많다. 이것도 결국 사랑이 배제된 사회라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사업 및 삶의 도전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원했던 공부만 했더라도 그대로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데 반해, 돈을 들인 것에 비해 자기 자리를 잡는 사람이 드물 수도 있다. 결국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 설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가난하고 소외된 행려자 지원
외국서 자원봉사자가 올 정도

김 원로 신부는 “청년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설 자리가 없으니 계속 불안해지고 더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을 상담하면 대부분 우울증이 있다. 소화가 안 되고, 답답해하다가 호흡까지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이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법은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인데, 이 방법이 잘못되면 안 된다.

김 원로 신부는 “종교가 도움을 준다. 자기를 마음껏 드러내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니 점점 더 외골수가 되고 대인기피증도 생긴다. 상담하러 오면서도 ‘너 지금 나를 감시하러 왔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편하고 좋은 마음으로 대화하기 힘든 것은 이 시대가 병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종교를 갖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꼭 성당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 원로 신부는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게 종교다. 어느 종교든 상관없다. 불자는 불자대로,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 믿는대로 가는 것”이라며 “종교관 속에서 자신이 편안해지고, 스스로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게 좋다. 결국 사랑은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신념을 전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편안한 대화는 쉽지 않다. 고부 갈등, 상사-직원 간의 갈등, 부모-자식 간 등의 갈등이 난무하는 탓이다. 

이는 모두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들어주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냥 조용히 들어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김 원로 신부는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니다. 내려놓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말은 쉽지 누구나 청산유수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행동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 자존심이 깎인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니 지금 시대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의 힘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옳다고 볼 순 없다. 끊임없이 이슈되는 종교 내 성 문제 역시도 그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성은 축복이지만, 이를 남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결국 제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기성 종교인들이 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잘하면 이런 문제도 없을 텐데,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은 결국 종교인들이다.

사창가서
살던 수녀님

김 원로 신부는 “그렇다고 모든 종교인이 잘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인근에 있는 사창가서 살던 외국 수녀님도 있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셨다”며 “처음엔 사창가 사람들이 수녀님에게 ‘저 X이 우리 잡아먹으려고 들어왔다’고 욕하며 삿대질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생활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줬다”고 말했다.

그는 “밥도 나눠주고, 나도 근처에 있으니 식사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 덕분에 사회가 좋아지는 것 아닐까”라고 마무리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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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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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