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여섯살 난 딸의 어머니, 노모의 딸, 언니, 사촌 동생이었던 여성이 직장동료이자 전 연인이었던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딸과의 시간을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던 여성의 마지막 출근길은 피로 물들었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여성의 마지막 말이 됐다.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그 기록을 되짚어봤다.(<일요시사> 1442호 ‘<인터뷰>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눈물’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40615 참고)
“설씨가 살이 쪘더라고요. 우리는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고 매일 울고불고 하는 사이에 ‘가해자는 마음이 편한가 보다’ 생각이 드니까 너무 속이 상했어요. 정작 지금 벌을 받는 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인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인지 모를 정도로요. ‘벌은 우리 가족이 받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허탈함 토로
설모씨는 지난해 7월17일 오전 5시53분께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 복도서 옛 연인 이모씨의 가슴과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피해자 이씨의 비명을 듣고 집 밖으로 나와 범행을 말리던 이씨의 어머니도 설씨가 휘두른 칼에 양손을 크게 다쳤다.
설씨는 폭행과 스토킹 범죄로 지난해 6월 “(피해자)이씨로부터 100m 이내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 이씨는 그 자리서 숨졌다.
검찰은 “피고인이 법원의 잠정조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출근 시간에 무방비 상태인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계획적 범행”이라며 “피고인을 말리던 피해자의 모친에게도 상해를 가했고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범행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치유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게 해 사안이 심히 중대하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지난 18일 설씨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인천지법 형사15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또 설씨에게 출소 후 10년 동안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부착하고 120시간의 스토킹 범죄 재범 예방 강의를 수강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출근길에 갑작스럽게 공격받고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됐는데 범행 당시 두려움과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기 어렵다”며 “피해자의 모친은 범행을 막다가 손가락과 손목에 부상을 입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의 딸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엄마를 잃은 슬픔과 정신적 고통 또한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이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정신적 고통이 크고 피해자 유족은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보복살인죄와 관련해서도 “(피해자의)스토킹 신고나 잠정조치 결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설씨의 죄명에 형량이 더 센 보복살인을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했고 재판부의 허가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피해자 자녀가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피고인이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도 범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형벌을 가중할 요소로 포함하지는 않았다”며 “자신의 죄를 처벌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다른 보복 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영구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 이씨의 유족은 재판부가 가중처벌 요소를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지난 24일, <일요시사>는 피해자 이씨의 사촌언니와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촌언니 이씨는 “졸지에 엄마를 잃은 조카를 지켜주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었다. 설씨가 출소해서 조카에게 보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최소 무기징역을 바랐는데 판결이 이렇게 나버렸다”고 말했다.
사촌언니 이씨에 따르면 설씨는 법정서 여러 차례 피해자 이씨의 딸 이름을 말하면서 “○○에게 미안하다” “○○에게 큰 아픔을 줬다”고 말했다.
사촌언니 이씨는 “설씨가 조카를 엄청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설씨가 조카를 본 것도 3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한테는 설씨가 조카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졌는데 재판부는 반성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복 살해 인정하면서도 징역 25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다르다?
그러면서 “설씨가 수십장의 반성문을 낸 것으로 아는데 그건 재판부에 낸 것이지 유족에게 낸 게 아니지 않나? 설씨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은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했던 선고기일 당시 설씨의 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촌언니 이씨는 “설씨가 그 말을 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사형을 집행하고 있지 않지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설씨가 법원을, 판사를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칼을 샀을 때도 설씨는 ‘자살을 하기 위해 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실제 심리검사 등에서 설씨는 죽으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고 나온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줬다”며 “형사 절차 전반서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국내외 유사 사안의 선고형 분석 결과와 법원의 양형 기준을 구형량에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1심 재판부가 ‘해당 사건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다르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 “스토킹 행위, 피해자의 신고, 수사 개시, 살해 결의와 범행 도구 준비,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두 사건을 다르다고 볼 수 없다”며 “양형에 차등을 둬선 안 된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은 대법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피해자 이씨의 유족은 설씨의 범행이 보복살인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발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사촌언니 이씨는 항소심서 조카가 설씨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점 등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사건 당시 설씨의 범행을 막던 피해자 이씨의 어머니는 손녀가 바깥으로 나오자 손녀를 보호하기 위해 안고 집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이씨의 동생은 지난해 11월, 4차 공판서 “조카는 눈앞에서 엄마가 흉기에 찔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엄마와 마지막 인사도 못한 6세 아이는 평생 잔혹했던 그날에 대한 트라우마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재 피해자 이씨의 딸은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사촌언니 이씨는 “조카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 당시 내용이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며 “그 부분에 대해 입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항소
“경찰서 사촌 동생을 보호해주지 못했잖아요. 그래서 법원이 유족을 지켜줄 수 있는 판결을 해주길 바랐는데 형량이 이렇게 나왔어요. 또 보복범죄라는 점이 입증됐는데도 불구하고 낮은 형량이 나오면서 선례가 남아 버렸네요. 우리 사건뿐만 아니라 사촌 동생과 똑같은 피해를 입은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판결문을 남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속이 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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