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치인 판사들 잔혹사

법원 재판보다 여론재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의 재판을 맡고 있던 판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4·10 총선을 3개월 앞두고 해당 재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던 차였다. 일각에서는 ‘김명수 코트’ 당시 불거진 재판 지연의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8일, 강규태 판사가 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 재판장을 맡은 강 판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심리 중이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 언론 인터뷰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재직 때는 잘 몰랐다”고 허위로 발언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도망갔나?

공직선거법상 선거법 사건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진행하고 기소 후 6개월 이내 1심 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벌써 1년4개월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서 강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재판의 추가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4·10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이 대표의 재판에 쏠린 상태였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서 어떤 결과를 받느냐에 따라 여야는 물론 민주당 내부도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에 1심 판결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강 판사가 정치에 휘말려 재판을 지연시키다가 끝내 놓아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 판사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재판 지연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녕 변호사는 지난 9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강 판사는 “어제 주요 일간지에 난대로 2월19일자로 명예퇴직한다”며 “일반적인 판사의 퇴직 시점을 조금 넘겼지만 변호사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한다”고 사표 제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상경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난 정권에 납부한 종부세가 얼마인데 결론을 단정짓고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억지로 느리게 한다고 비난하니 참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하여간 이제는 자유를 얻었으니 자주 연락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강 판사는 전남 해남 출신이다. 

강 판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과거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재판은 일반 재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 특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 당시 재판 지연이 사법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현재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이 대표의 재판이 늦어질 가능성이 나오자 이전 재판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사건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을 재판하다가 판사가 돌연 휴직하는 일도 있었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4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 법원에 3년 넘게 있지 않는다는 관례를 벗어난다는 논란 속 인물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법원장 ‘코드 인사’ 논란에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김미리 판사가 속해 있던 형사합의21부에서는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및 유재수 감찰 무마 등 사건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최강욱 전 열린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을 심리 중이었다.


김미리 판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시기 건강상 이유로 3개월 휴직을 신청했다. 여기에 해당 재판을 맡았던 김상연 부장판사 역시 지난해 건강상의 이유로 6개월 휴직했다. 

재판 중 돌연 사표 제출
총선 전 선고 안 나올 듯

조 전 장관 재판은 지난해 2월 1심 선고가 나왔는데 1심에만 무려 3년2개월이 걸린 셈이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지난해 11월에야 1심 선고가 나왔다. 2020년 1월 검찰이 기소한 지 3년10개월 만이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혐의로 기소됐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의 1심 재판도 2년5개월 걸렸다. 

재판 지연이 야당 정치인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판사의 정치색 논란도 함께 불거졌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판사가 정치 성향을 드러내면서 사법부의 신뢰를 깎아 먹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동반됐다.

실제 박병곤 판사의 경우 과거 SNS에 정치 성향이 담긴 글을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편파성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재판부를 맡았던 박 판사는 지난해 8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을 웃도는 실형 판결에 법조계가 술렁였다.

이 과정서 박 판사가 법관으로 임용된 뒤에도 SNS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박 판사는 민주당 이 대표가 낙선한 대선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법원은 당시 재판장의 정치 성향을 거론하며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정치 판결‘ 의혹을 일축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결국 박 판사는 ’엄중주의‘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1월 “해당 법관이 임용 후 SNS에 게시한 글 중 정치적 견해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소속 법원장을 통해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징계는 아니지만 재발 주의를 당부한 것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판사가 SNS에 글을 쓸 때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관련 징계 규정은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로 인한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정치인 재판을 맡은 판사에 대한 ’낙인찍기‘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판사가 정치색을 띠는 것이 아니라 여야 지지자들이 입맛에 맞게 정치색을 씌운다는 비판이다.


실제 민주당 지지자들은 유창훈 판사가 민주당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는 환영하다가 같은 당 송영길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때 비판하는 등 같은 판사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신뢰 추락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은 공정한 잣대로 같은 상황서 흔들림 없는 판결을 하는 것을 사법부에 기대하는데 그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 논란 역시 그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신속하지 못한 재판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없는지,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함을 당한 국민은 없는지, 법원의 문턱이 높아 좌절하는 국민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겠다”며 사법부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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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