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칼 빼든 ‘재판 지연’ 실태

말려 죽이는 판사 ‘바뀔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판사는 말려 죽인다’는 말이 있다. 재판 장기화가 죽을 정도의 고통이라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 개혁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증가했던 재판 지연율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취임으로 해소될지 지켜봐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사법부 수장의 공백 사태가 79일 만에 풀렸다. 조 대법원장은 남들보다 짧은 임기를 가지고 있는 만큼 법원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재판 지연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열린 취임사에서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심기일전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면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균형 있는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장기 사건

이어 “국민들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구체적인 절차의 사소한 부분부터 재판 제도와 법원 인력의 확충과 같은 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점을 찾아 함께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재판 지연 문제 해소에 관한 의지를 다졌다.

재판 지연 문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임기 동안 눈에 띄게 늘었다. 이 기간 전국 법원서 2년 내에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 민사소송은 3배로, 형사소송은 2배로 늘었다. 서울중앙지법서 5년 넘게 판결을 내리지 않은 ‘초장기 미제 사건’도 5배나 급증했다.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에 접수된 민사본안 사건은 1심, 항소, 상고를 모두 합쳐 82만9897건이다. 처리된 사건은 85만700건이다. 처리율로 따지면 105%의 처리율을 보이지만 미제로 남은 사건은 42만2978건이나 된다.

전심급서 1년을 초과한 미제사건은 6만4387건으로 전체 미제사건의 15.2%에 달한다. 민사본안 사건 1심서 법정기간 내 미제 사건은 21만2673건이고 1년 이내 사건은 7만7238이다. 장기 미제로 볼 수 있는 1년을 초과한 사건은 5만3114건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인 2017년은 총 36만2570건의 미제가 있었다. 이 중 1년 이내의 미제 사건은 32만5755건이며 장기미제 사건은 3만339건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2만2775건의 장기 미제가 늘어난 셈이다.

형사재판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2022년 31만254건의 형사사건이 접수돼 이 중 미제로 남은 것은 16만1116건으로 약 52%에 달한다. 이 중 장기미제는 5만2337건으로 32.5%이다.

반면 2017년에는 37만1524건을 접수받아 13만3212건의 미제를 남겼다. 장기미제는 단 1만88건뿐이었다.

김명수 임기 민사 3배·형사 2배↑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혁 속도전

재판 평균 일수도 늘어났다. 2017년 민사본안 사건 합의 처리 기준 1심 처리 기간은 293.3일이었다. 평균적으로 6개월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무려 420.1일을 기록했다. 2018년 297.1일, 2019년 298.3일, 2020년 309.6일, 2021년 364.1일로 꾸준히 증가했다.

형사사건의 1심 평균 처리 기간(합의 재판부 불구속 기준)도 꾸준히 늘었다. 2017년 168일서 지난해 223.7일로 늘어났다. 2018년 159.6일 수준이었지만 2019년 174일, 2020년 194.2일, 2021년 217일로 길어졌다.

소송법서 심급별로 5개월 안에 선고하라고 적시돼있지만 소송법 자체가 재판·집행에 의한 실체법 실현의 방법·형식의 규율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형식법이라 강제성이 없는 상황이다.

재판 지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면조사 불가, 복잡한 사건 증가, 법관 부족 현상, 법원장 후보추천제 등이다.

법조계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로 ‘법원장추천제(이하 후보추천제)’를 꼽았다. 후보추천제는 일선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 후보들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하는 제도로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이전에는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후보추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원장 후보로 유력한 부장판사 등이 동료 및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 진행을 독려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졌다. 

정혁진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고참 법관들이 후배 판사들에게 ‘너무 일하지 마, 1주일에 세 건만 판별해’ 이런 식이었다”면서 “결국 위아래도 없어지고, 판결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판사들도 여럿 생기고 있다”고 후보추천제의 폐단을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재판 지연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범죄자다. 국민은 재판 지연으로 고충을 겪었다”고 꼬집었다.

사법부 수장 교체로 기대감
취임 직후 의지…해소되나

조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후보 추천제의 기틀은 유지하면서도 일선 법원 판사의 투표 절차를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방안은 일선 법원별로 법원장 후보자를 추천받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후보군을 추리는 방안과 대법원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에 판사들이 직접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단위로 추천이 되면 자문위서 결격 사유자를 배제하고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을 최종 임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중이다. 또 조 대법원장은 민사 항소 절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형사소송법에는 항소이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민사소송법은 관련 규정이 없다. 이로 인해 1심 판결에 대해 실질적으로 항소할 의사가 없더라도 판결이 확정되는 걸 막고 보자는 취지서 일단 항소부터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민사소송의 경우 항소 기록을 접수한 뒤 첫 준비서면 제출까지 걸리는 시간은 매년 늘고 있다. 2017년에는 평균 94.8일 걸렸지만 2021년에는 평균 136.6일 걸리며 소요 시간이 50% 가까이 늘었다. 서류가 접수된 뒤 첫 재판이 열리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2017년 평균 133.5일서 2021년 평균 189.6일로 늘었다.

법원행정처는 조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항소 기록 접수 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또는 4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의무적으로 각하하는 제도를 만들어 재판 진행을 신속하게 만드는 방안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민사소송서 항소이유서를 의무화하면 불필요한 기일 공전을 방지할 수 있고, 무분별한 항소 제기도 줄어들 것”이라며 “항소심 진행을 평균 2개월 이상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이러한 방안을 내놓으며 일선 법원 판사의 반발에 휩싸일까 우려한다. 실제로 후보추천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보도되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A 판사는 지난 13일 ‘재판 지연과 후보추천제도 개선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란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 


발만 동동

그는 “이런 논의를 왜 법원 내부서 먼저 접하지 않고 기사들을 통해 접하는지 의문”이라며 “최소한 사법행정에 관한 논의는 법원 내부서 먼저 시작되길 바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A 판사는 “후보추천제의 대표적 폐단으로 ‘법원장이 소속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점이 꼽히는데, 법원장이 재판 지연을 제대로 단속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부당하게 남용하지 않는 전제서 어떤 방식으로 단속하면 재판 지연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고 썼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