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비명계 마지막 비명

“끝까지 쥐어짠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쓴소리 담당인 비명계가 뜻을 모았다. 굵직한 한 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셈이다. 날 선 말이 아플 법도 하지만 지도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공천도, 민주당 의원으로서의 정치생명도 위험하다. 비명계가 꺼내든 최후의 패가 반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친·비명(비 이재명)간의 갈등 조짐이 나타난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총선기획단이 출범하면서다. 친명(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조 사무총장을 필두로 하는 만큼 ‘비명계 숙청’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객 공천’ 논란도 심심찮게 나온다. 원외 친명계가 비명계를 밀어내는 구도가 그려진다. 예상되는 지역구만 20여곳으로 꼽힌다.

단일대오

이처럼 비명계 의원들이 경계하는 건 민주당이 친명으로 채워지는 ‘이재명 사당화’다. 이들은 조 사무총장 사퇴 요구와 함께 이 대표의 험지 출마론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끄는 혁신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이들과 당 지도부 등에게 수도권 등 험지 출마 등을 권고했다. 국민의힘이 먼저 ‘험지론’을 띄우자 비명계 역시 민주당의 핵심이자 기득권인 이 대표가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 지도부가 모범을 보여야 다선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 대표의 고향이자 험지인 경상북도 안동시에 출마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사자인 이 대표는 지역 행보를 넓히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내년 총선에 관한 거취를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지역구인 인천광역시 계양을 재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지난 7일, 이 대표는 계양구 교육시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특별 교부금 24억4500만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다음날(8일)에는 인천시와 민주당 인천시당의 당정협의회에 직접 나서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비명계의 험지 요구를 거부하고 계양을 출마 의지를 굳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계양구는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에게 물려받은 곳인 만큼 이곳에서 재출마를 고수한다면 쉬운 길을 걸으려 한다는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따라서 이 대표가 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양구를 벗어난 도전정신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 험지 요구에 텃밭만 응시
마침내 들고 일어서는 비주류

지도부를 비롯한 친명계 측에서는 비명계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총선을 이끌어야 할 당 대표가 초장부터 험지에 나선다면 판세가 기울어질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 총선이 5개월가량 남은 만큼 당 대표의 험지 출마를 가닥잡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는 해석도 나온다.

조 사무총장 역시 “당내서 그런 검토가 논의되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당내에 마련된 시스템 공천 틀이 있는 만큼 이 대표의 험지론 논란을 잠재웠다.


비명계가 우려하는 공천 학살과 관련해서도 일축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스템 공천의 틀이 잡혀 있는 만큼 특정 의원만 컷오프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불협화음이 이어지자 비명계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일부 비명계는 12월을 마지노선으로 탈당까지 시사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를 통해 당내 문제점으로 사당화와 팬덤 정치, 패권주의 등을 꼽았다. 이로 인해 당내 민주주의가 와해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조 의원은 “끝까지 민주당을 정상적인 정당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겠다”면서도 당이 쇄신하지 않을 경우 12월을 마지노선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5선 중진의 이상민 의원은 “가능성은 어느 경우에나 열려 있지 않나”며 역시나 한 달 안에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원욱 의원도 현재 민주당의 문제점으로 이 대표의 사당화와 강성 지지층을 뜻하는 ‘개딸(개혁의 딸)’에 끌려다니는 팬덤 정치를 꼽았다.

연일 이어지는 탈당 선언에도 지도부가 반응이 없자 비명계는 덩치를 키워 반격에 나섰다. 이원욱 의원은 지난 10일, MBC에 출연해 탈당 가능성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머지않은 시간에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모임을 오픈시킬까 싶다”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원칙과 상식’(가칭)이라는 모임을 통해 의원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세력으로 지도부 압박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총선 앞두고 감지된 지각변화
‘비명 스크럼’ 효과와 한계는?

이후 민주당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민주당의 정풍운동을 지향한다. 당의 무너진 원칙과 국민이 요구하는 상식의 정치를 세우겠다”며 집단행동을 공식화했다. 당 지도부를 향해선 ▲도덕성 회복 ▲당내 민주주의 회복 ▲비전 정치 회복 등의 방안을 12월 내로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비명계는 특별한 구심점이 없었던 만큼 탈당이나 신당 창당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다. 따라서 이번 모임을 계기로 비명계 세력이 결집한다면 정치판에 새로운 물결이 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시된다.

다만 원칙과 상식은 당의 공식 기구가 아닌 모임의 성격을 띠는 만큼 당분간은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임에 참여한 의원들이 대거 탈당한 뒤 그대로 신당 창당 절차를 밟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만큼 세력 결집의 의미를 축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비명계 의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언론서 모임이 ‘출범’한다고 표현하는데, 새삼스럽고 거창한 의미”라며 “출범식보다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이번 모임의 취지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비명계의 움직임에도 지도부는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민주 정당에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만큼 여러 종류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계파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총선 전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세력화가 비명계 최후의 수단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찻잔 속 태풍


이른바 ‘혁신계’로 자리매김한 비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의 사당화를 반대하는 교집합으로 이뤄져 있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지향점이 존재한다. 장기간 ‘원팀’을 이루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관측이 제시된다. 비명계로 꼽히는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본인은 다른 혁신계 의원과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탈당에 관해서도 온도 차가 존재하는 만큼 충돌 지점이 곳곳에 놓여있다. 결국 비명계 내에서도 계파가 갈리는 형국이다. 갈등 봉합하기 위해 이 대표와 지도부가 함께 화합의 메시지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가 화합의 메시지를 내놔도 지도부가 비명계를 배제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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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