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 꿈꾼 마약상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14 08:19:29
  • 호수 14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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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으로 들어간 교도소서 더 배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마약 밀매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해 고등학교도 중퇴했으니 돈 버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교도소서 만난 마약 밀매상은 예수였고, 마약은 복음이었다. 복음을 전파한 나는 천문학적 돈을 벌었지만, 인생의 허무함에 빠진 것도 그때부터다.

“참 끊기 어려운 게 마약이다. 아주 운이 좋고 예외적인 가정 외에는 집안에 누군가 마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아들이 마약을 한 후 처벌받고 다시 마약에 손 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구하기 쉽고
팔기도 쉽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한국서 마약은 특별한 이슈가 아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일반인이 마약을 복용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특수한 사람이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일반인도 마약을 구매하기 쉽다.

아무리 정부가 마약을 엄정 단속하겠다고 해도, 실상은 인터넷에 마약을 검색만 해도 마약 밀매자의 SNS와 쉽게 연결된다.

대검찰청은 지난 7월5일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를 발간하고 지난해 마약사범이 2018년 1만2163명 대비 45.8%p 늘었다고 밝혔다. 이 기간 30대 이하 마약사범은 5257명서 1만988명으로 109%p 급증했다. 외국인 사범도 948명서 2573명으로 171.4%p나 늘었다.


마약류별로는 ▲마약사범 2551명(13.9%) ▲향정(신종마약 포함)사범 1만2035명(65.4%) ▲대마사범 3809명(20.7%) 등이다.

마약 압수량도 2018년 415㎏서 지난해 804.5㎏으로 93.9%p 늘었다. 2021년 필로폰 404㎏와 코카인 400㎏ 밀수 적발에 따라 압수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압수된 주요 마약류로는 필로폰 등 향정이 616.2㎏으로 전체 마약류 압수량의 76.6%를 차지했다. 국내서 주로 유통·사용되는 필로폰 압수량은 175.4kg(21.8%)로 집계됐다. 야바 압수량은 2018년 8.5kg서 지난해 167.6kg으로 무려 1871%p 증가했다. MDMA 압수량은 2.8kg서 42.17kg으로 1406%p 폭증했다.

범죄 유형 분석 결과 다크웹 등을 이용한 인터넷 마약 유통이 확대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다크웹에 마약류 판매 광고를 게시하고 구매자가 나타나면 가상화폐로 대금을 받고 이후 ‘던지기’ 방식으로 매매하는 형태다.

가난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선택
적발 피하려고 항문·두피에 투약

그렇다면 마약 밀매는 어떤 과정으로 시작될까? 이에 대해서는 ‘마약 밀매서 탈출한 회복자들의 실존 체험 속에 나타난 내러티브 탐구’(논문 저자 유숙경)에 자세히 기재돼있다. 이 논문엔 마약 밀매 및 투약을 10년간 한 A(54세)씨가 등장한다.

A씨는 2남1녀 중 장남으로 어린 시절 식사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했다. A씨의 아버지는 화물트럭 운전기사였지만 화물 운송 중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후 술로 소일하던 아버지는 40대 중반에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간암으로 사망했다.


고등학교 시절 A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이 매번 밀렸다. 담임교사는 친구들 앞에서 “너 때문에 회의 때마다 혼난다”고 머리를 때리고 망신을 줬다. 결국 A씨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에 자퇴했다.

지옥 같은 고등학교를 벗어난 그는 동네 선배 소개로 룸살롱 웨이터로 취직했다. 이때 우연히 룸살롱 여종업원이 필로폰을 줬고, 이때부터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A씨에게 마약은 가난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마약 밀매자가 되기 위해 처음 필로폰을 준 룸살롱 여종업원에게 부탁해 마약 공급책을 소개받았다. 마약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고, A씨는 20대 초반에 양복을 입고 그랜저를 몰고 다녔다. 

A씨는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복음이라고 성경에 배웠지만, 당시 나를 구원한 것은 마약이었다. 마약 공급원을 아는 건 힘들었지만 간절하니 길이 열렸다”며 “집이 부자인 것도 아니고, 공부도 못하니 오직 마약밖에 없었다. 이 불행한 삶을 한 방에 해결하는 복음”이라고 말했다.

A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해서 방위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집에 거주하면서 군부대, 예비군 중대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방위가 좋은 것은 저녁에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때 A씨는 마약을 하러 다녔다. 그때마다 그는 ‘너희가 아무리 대대장, 사단장이어도 군인 한 달 월급을 나는 한 번에 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웨이터부터…
10년의 악몽

그가 마약을 판매했던 첫 번째 고객은 유흥업소 여성이었다. 필로폰을 ‘살 빼는 약’ ‘피로회복제’로 속여 팔았다. 단골 고객에게는 단속을 피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당시 유흥업소서 마약 사용 여부를 경찰이 단속할 때는 ‘팔뚝 주사 자국’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마약을 공급하면서 A씨는 본인이 원하는 술을 받기도 했다. “나는 마약을 주고 시바스리갈 12년산을 받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12년산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A씨는 20대 초반에 마약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마약을 공급하던 상선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그도 함께 체포되면서 교도소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마약 밀매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는 없었다. A씨에게 교도소는 ‘적발되지 않고 마약을 밀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장소였던 탓이다.

애초에 그의 꿈은 마약 최초 공급자인 상선과 직거래하는 것이었는데, 교도소에선 다양한 마약상을 만날 수 있었다.

A씨는 “마약이 나한테 내려오기까지 몇 단계를 거쳤는지 모른다. 도매상이 있고 소매상이 있는 유통구조와 똑같다”며 “서너 단계 내려오면 내게 떨어지는 돈이 별로 없다.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검사 앞에 끌려간 다음에 교도소에 갔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대학교 가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약쟁이는 교도소에 다 있다고, 거기에 가야 마약 밀매 거물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범이었던 A씨는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마약 판매 횟수와 액수를 줄였기 때문이다. 교도소에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에 따라 필로폰, 대마초, 본드 흡입자를 다른 수감자와 분리 수감했다. 


교도소서 1년을 보낸 A씨는 이 시간이 마약상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만난 거물 마약상은 지적이고 기품있어 보이는 40대 중반의 방장이었다.

큰돈은
벌었지만…

교도소 생활에 관해 A씨는 “거물 마약상은 정말 선생님 스타일이었다. 양복을 입으면 아무도 마약 장사를 하는지 모르지만 마약에는 박사였다”며 “마약 지식뿐만 아니라 공급 조직도 꿰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징역 6년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교도소와 일반 사회가 다른 점이 있다. 교도소는 죄가 크면 클수록 대우를 받는다. 징역 6개월은 금방 출소하니 대우도 못 받으니 거물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며 “내가 사는 길은 저 사람을 붙잡는 것으로, 마약이 내게 복음이라면 이 사람은 예수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목적은 달성했다. A씨는 출소하기 일주일 전, 마약을 안전하고 지속해서 공급해줄 수 있는 상선의 연락처를 받았다. 남은 일주일간은 마약 판매 비법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교도소서 A씨는 전문적인 마약 밀매상이 되는 준비를 했던 것이다.

출소 후 A씨는 마약 구매 고객을 소매자로 만들면서 자신은 도매자가 됐다. 수익은 천문학적으로 늘었고, 은행 VIP가 돼 돈을 맡기면 일반 창구가 아닌 지점장실로 안내됐다. 모든 일을 처리해 주는 직원도 생겼다.


차는 그랜저에서 벤츠 S 클래스로 바꿨다. 기사까지 둔 그는 말 그대로 ‘사장님’이 됐다. 어디를 가든 대우가 달랐다. 이런 A씨의 인생이 바뀐 것은 결혼이었다. 

A씨는 대형 할인점 매장관리 직원인 연하의 아내를 만났다. A씨는 아내에게 자신을 능력 있는 부동산 분양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동년배들은 도저히 만질 수 없는 거금을 가질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작은 사무실을 얻어 부동산 회사 간판을 달아 사장 명함을 찍기도 했다. 

거짓말하면서까지 결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A씨는 “마약 장수, 약쟁이가 결혼을 해선 안 됐다. 내가 욕심을 부렸다. 부모한테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았으니까 한이 맺혔나 보다. 내가 자식한테 사랑해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가 안 생겼다”고 설명했다.

교도소서 만난 거물급 판매상
일주일간 판매 비법 전수받아

그렇다고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A씨의 아내는 부모를 모시자고 했다. A씨의 부모님과 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먼저 부모님과 형제를 찾아 빨래도 해주고 반찬도 가져다줬다. 건강이 안 좋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기도 했다.

행복이 깨진 것은 A씨가 마약상이라는 것을 들킨 뒤였다. A씨는 재범으로 체포돼 중형을 받게 됐다. 그러나 A씨에게 중요한 것은 중형을 받는 것보다 아내에게 자신이 마약상이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었다.

남편이 마약 밀매로 돈을 번다는 것을 안 A씨의 아내는 교도소에 들어가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때 A씨는 처음으로 인생의 허무와 한계를 느꼈다.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상황이 바뀌었다. 

처음 교도소 수감은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 루트를 확보하고 마약 밀매상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면, 두 번째 수감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A씨는 “교도소에 수감될 때 아내한테 ‘나를 잊어라. 재산 남은 것은 네가 가져가서 새 출발해라’고 했다. 그 뒤 수감돼 아내가 죽은 소식을 들었을 때 공포를 느낀 건 아니다. 그냥 내 삶이 끔찍하고 후회스러웠다. 두 번째 교도소는 인생 학교였다. 징역을 몇 년 받아도 억울해하지 않고 회개하고 살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소회했다.

실제로 A씨는 교도소에 있는 4년 동안 종교활동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 A씨의 어머니는 그가 마약으로 교도소에 들어간 사실도 모른 채 작고했다. 

문제는 출소한 뒤였다. 마약 밀매 경력이 있으니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었다. 이때 실수한 것이, 바로 다시 유흥업소를 찾았던 것이었다. A씨는 다시 마약을 복용하고 팔다가 다시 교도소에 재수감됐고, 그나마 운이 좋게 징역 4년형을 받았다. 

3번째 출소 후 A씨는 마약에 손을 대지 않기 위해 마약과 관계된 사람은 물론, 장소도 모두 멀리했다. 현금 1800만원을 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 서너 가구만 있는 강원도 산골 오지 폐촌으로 향했다. 

감옥만
들락날락 

그는 폐촌서도 야생 대마초의 유혹을 받았다. 대마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A씨는 바로 짐을 쌌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때 교도소 수감 시절, 호의를 베풀어줬던 목사가 떠올랐다.

A씨는 해당 목사가 은퇴 후 기도원을 운영하다가 현재 중풍과 치매 노인을 돌보는 요양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A씨는 “여기서 노인 똥 닦고 몸을 씻어주고 있으면 내가 선해지는 것 같다. 사람은 유혹에 약하다. 이기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도망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도망 온 것”이라고 소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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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