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더블로?’ 이준석 쇼당패

거부할 수 없는 두 장의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이젠 진짜 헤어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의 손을 뿌리치려는 행동을 취했다.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여야는 애써 무시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눈치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바로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가 연일 인터뷰와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몸값을 올리고 있다. 앞서 수도권 중도층을 공략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이와 다르게 국민의힘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공략하려는 듯 보인다. 이 전 대표가 군불을 때 총선서 양당 구도를 흔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도권 공략
몸값 올리기

사실 이 전 대표의 ‘창당설’은 갑자기 들려온 소식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뒤, 당으로부터 1년6개월의 징계를 받았을 때도 창당설이 정치권서 소문처럼 떠돌았다. 지지세도 나름 있었다. 16% 정도의 수치로 호남서 2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창당 시 가장 큰 변화는 20대의 지지세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당시 이 전 대표는 “창당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었던 바 있다. 1년이 지난 현재는 기류가 바뀌었다. 약 한 달 전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서 패배하자, 국회 소통관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서 이 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17개월 동안의 오류를 인정해달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호소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민심의 분노를 마주하고도 대통령실에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사자성어를 다시 꺼냈다. 그가 선택한 단어는 ‘결자해지’다. 여당은 집단 묵언수행을 풀고, 대통령이 각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첫 방문지로 대구를 택했다. 일각에선 이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방문 이유에 관해서도 영남 지역의 민심을 알아보려 간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최근 이 전 대표가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중이다. 

당초 정치권에선 창당이 수도권 중도층을 대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의 텃밭 지역에 초점을 두고 창당을 진행할 양상이다. 

“싹 다 끌어모아” 창당? 복귀? 저울질
일단 헤어질 결심…민주당 애써 무시

특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격차가 얼마 나지 않는 지역을 기반으로 창당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이 빈틈에 이 전 대표가 신당으로 파괴력을 발휘하겠다는 구상이다. 대구·경북(TK)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여전하지만, 부산·경남(PK)의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 민주당도 차이를 점차 줄여가고 있다. 최근 민주당 역시 PK에 힘을 쏟고 있는데, 이 전 대표까지 가세하게 될 경우 22대 총선 승리도 장담할 수는 없다. 특히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에는 폭탄을 던진 꼴이다. 신당 창당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보수표가 분산되면서 민주당에 유리한 국면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중도층 확장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안간힘을 내고 있지만, 떠나간 표심이 쉽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혁신위가 1호 안건으로 이 전 대표의 징계 취소를 언급한 이유도 비슷하다. 청년 표심이 떠나갈 듯 보이자, 국민의힘은 자꾸만 이 전 대표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신의 SNS에 “우격다짐으로 아량이라도 베풀 듯 접근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킨다. 혁신위의 생각에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찾아갔으나, 면전서 영어로 훈수만 듣고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올라온 게 전부였다. 

최근 인 위원장은 다시 한번 이 전 대표에게 “중책을 맡아야 한다”며 회유하고 있으나, 이 전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전 대표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회동을 갖는 등 신당 창당을 위한 스텝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회동에선 창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동에 대해 이 전 대표는 “중요한 행동 전에 자문을 구하기 위해 만났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나오는 중요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창당에 관한 조언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최근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며 “지금 시점서 누굴 만나 상의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나 역시 누구와 상의하고 있는지 공유했다”고 언급했다. 

험지 출마론
TK·PK 혼돈

이 전 대표의 말 대로라면 사실상 국민의힘과의 이별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민주당 내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과 국민의힘 비주류, 제3지대에 소속된 인물들과 만났다. 보폭을 늘리며 비주류 세력을 규합해 하나의 연합된 세력을 꾸리겠다는 의도인 셈으로 풀이된다. 

만남을 가진 인물 중에서는 민주당 비명계 인사 중 한 명인 이상민 의원이 거론된다. 이 의원은 이 전 대표와 만남을 가진 뒤 신당 참여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한 달 안에 이 의원은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당 역시 당내 공천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만큼 이 의원 역시 이 전 대표가 창당하는 시기에 맞춰 노선을 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비명계 수장 격인 우상호 의원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명계 의원들이 이 전 대표와의 회동에 대해 부인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비명계 인사들 중 이 전 대표의 신당에 참여하겠다고 확실하게 못을 박은 인물은 없다. 


다른 비명계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 전 대표와 접촉 여부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안부 전화 차원이었다”며 선을 그었다. 비명계가 합류한다면 이 전 대표가 한층 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만큼 천군만마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세간에 떠도는 친명과 비명의 대결구도는 서울과 경기, 호남까지 뻗어있다. 비명계가 이탈해 모두 당선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주당의 표를 갉아먹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명계가 당장 당을 떠날 생각은 없지만, 이들이 집단으로 뛰쳐나간다면 총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야권 인사들을 먼저 규합한 뒤, 국민의힘이 본격적으로 총선 공천룰 등을 발표하는 시기가 되면 당내서도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즉, 민주당 비명계 인사들이 당의 중심점 혹은 구심점을 만들 기틀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좌우 연합
결국 꾸리나

아직 민주당 인사를 포섭하기 위해선 여러 과제들이 남았다. 바로 정국을 뒤흔들만한 인사가 영입돼야 비로소 파급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데, 상징성 있는 인사 영입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로 김부겸 전 국무총리다. 김 전 총리는 민주당, 문재인정부 인사였지만, 중도 성향을 가져 구심점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그는 과거 야당 신분으로 보수 근거지인 대구서 당선됐던 이력도 갖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신당이 보수 텃밭을 기반으로 창당될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김 전 총리의 합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진보 진영서도 몇몇 인물이 합류를 고민 중이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이 대표적이다. 현재 정의당은 지지율 저조와 함께 지도부 내분마저 겪고 있다. 최근 이정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총사퇴했고, 비대위 체제로 돌입했다. 

정의당은 공식적으로 선거연합 정당으로 재창당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의당 내 그룹인 세 번째권력 소속 류 의원은 “이정미 대표가 지옥문을 열어놓고 발을 뺐다”며 어깃장을 놨다. 류 의원이 속한 세번째권력 역시 이 전 대표와 만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세번째권력 출범 당시 이 전 대표는 축사를 통해 기존 진영 정치의 한계에 관해 역설한 바 있다.

이들은 제3지대에 소속된 인물과도 잇따라 만날 예정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제3지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새로운선택 금태섭 창당준비위원장과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 이들은 양당 정치에 갈증을 느낀 것을 고리로 새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제3지대 통합으로 고춧가루
얼굴 영입해 한계 극복 필요

특히 금 위원장은 창당을 고민하는 과정서 이미 김 전 위원장을 만났다. 알려졌다시피 김 전 위원장은 금 위원장을 물밑서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금 위원장과 이 전 대표는 지난 10일, 회동을 가졌다. 회동에 앞서 금 위원장은 “진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힘을 합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볼 것”이라고 밝혔다. 

금 위원장은 양 대표와도 만남을 가진다. 양 대표 역시 김 전 위원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서 김 전 위원장이 새로운희망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을 필두로, 이 전 대표, 금 위원장, 양 대표가 세력을 규합하게 될지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제3지대 연합전선을 꾸릴 밑바탕과 같다. 

현재 중도층 비율은 30% 정도로 제3지대는 중도층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진보정당, 민주당, 국민의힘 지지율만 이탈시키면 해볼만한 싸움이 된다. 

여기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까지 합세하게 된다면 신당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실제 이준석·유승민 신당은 TK서 30% 가까이 지지율이 나왔다. 이 경우,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어쩔 수 없는 경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새로운 당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있는 셈이다. 

유 전 의원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며 창당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했다. 다만 “창당이 최후의 선택지”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시절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은 탈당 뒤 바른정당 창당을 함께했었다. 최근에는 여러 과제에 관해 직접 논의하거나 사안을 잘 공유하지는 않지만, 두 인물의 연대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전 대표가 앞으로 신당을 꾸리게 될 경우 87체제의 타파, 시대정신 재구축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민주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조건이며, 청년층을 끌어들일 방법 중 하나로 관측된다. 

신당으로
양당 흔들기

여기에 더해 신당을 비례정당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의 지지세만 놓고 보면 원내에 끼칠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다만 여전한 한계점은 신당을 받쳐 줄 대선주자급 허리 역할을 누가 하느냐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단순히 국민의힘 세력만을 깨부수려는 전략을 세운 게 아닌 듯 보이는데, 민주당도 여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신당이 힘을 더 키우려면 당의 얼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a.co.kr>

<기사 속 기사> 급해진 윤 대통령? 바로 대구로 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수의 근거지인 대구를 방문한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만났다.

다른 지역보다 대구를 집중적으로 찾는 모습이다.

총선을 앞두고 부쩍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만나는 이유로 보수서 그의 여전한 영향력을 꼽는다.

박 전 대통령과 관계를 개선하고, TK 지역서 국민의힘 후보가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역할을 하기 위한 행보라는 말이다.

또 보수 정당 소속 대통령인 만큼 조직 관리는 덤이다.

내년 총선을 생각했을 때 보수 텃밭서 크게 이겨야 나머지 지역서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를 염두에 두고, 대구를 찾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윤 대통령이 영남 지역을 더욱 자주 찾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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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