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52)외세에 흔들리는 비극의 땅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10.19 09:08:32
  • 호수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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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내용을 촘촘히 구사해 랩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건 제가 좀 재주가 없어서 말예요.” “복고적이고 낭만적인 스타일로?” “네, 그렇죠! 그리고 요즘 사람들 사이에, 우리의 옛 땅인 만주 대륙을 되찾아야 한다는 모종의 바람이 불고 있잖아요. 그래서 노래 1절은 남북통일, 2절은 대륙의 꿈 콘셉트로 나가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분은 허황된 과대망상이라고 비판하시네요.”

권리와 정당성

그는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꼽추 하씨를 곁눈질했다.

“아니야. 내가 남의 꿈을 비판할 형편은 아니고, 그저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야. 우리야 물론 옛 조상님들이 살던 땅문서를 되찾으면 좋겠지만 중국 뙤놈들의 순순히 잡아 잡슈 하겠느냔 말이지. 오히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얘기도 있던 걸.”

하씨가 상체를 추스르며 볼멘소리를 냈다.


“아 참, 이건 무슨 논문이나 성명서가 아니라 그냥 노래잖아요. 대놓고 뙤놈들에게 땅문서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민족의 맘속에 부푼 꿈을 꾸고 새기며, 언젠가 올 미래를 주시하자는 애소 같은 거죠.”

“흐흠, 그나마 아까 얘기한 것보다는 덜 허황스럽군. 아깐 과대망상이 심해 내심 좀 걱정스럽더만.”

“노래 예술은 현실을 넘어 삭막한 가슴속에 희망을 속삭인답니다, 하하.”

“아무튼 어떤 한계선은 필요하지 않을까 몰라. 현실적이든 예술적이든 많은 사람은 지금 이 현재에서 잘살기를 바라니까 말씀야. 남북통일도 싫고 고토 회복도 싫다, 그냥 주어진 대로 이 반쪽 땅에서나마 남 못잖게 행복해 보자! 그런 사람들 입장에선 통일이든 옛 땅 찾기든 귀찮은 짓일 뿐이겠지 뭐.”

하씨는 탁자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반쯤 쉬다가 말았다.

“현실이 그렇긴 한데… 만주 대륙의 경우 그 땅의 정당한 권리가 중국 쪽에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말하자면 양측 간의 협상 또는 소송이 완료된 게 아니라 진행되다가 중단 교착된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지금은 중국의 힘이 막강해 별수 없지만, 만약 남북한 통일이 되고 우리나라가 자주적이고 부강해지면, 외교 채널을 통해 정당하게 협상을 다시 시작하여 옛 강토를 상당 부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요는 만사가 다 그렇듯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죠.”

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그런 때가 언제 오냐는 말이에요. 중국은 낯짝 한번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씨의 대꾸였다.

통일 후 만주벌판 되찾기 외교 채널 복구 필요
깨지지 않는 만년 소국 고정관념 중 변화 불가?

“덩치가 너무 엄청나고 뻔뻔스러워서 갈수록 더 불가능해질 수도 있죠. 그러니 분쟁이나 전쟁이 아니라 서로 이익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예요. 쌍방이 무역 관계로 한층 중요하고 긴밀한 파트너가 돼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많은 이익을 주고, 나아가 문화 예술적으로 참다운 일류 국가가 돼 정신을 선도한다면 협상을 계속할 수도 있어요.”

“그들 자신은 영원한 대국이고 우리는 만년 소국이라는 중국인의 고정관념이 변하긴 백년하청일 것 같은데요.”

“요즘은 땅 넓이나 인구수로 대국과 소국이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미래엔 더욱 그럴걸요. 열린 마음과 활달한 실천으로 우리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거죠.”

“브라보! 딱 제가 생각했던 거네요. 우선 그런 콘셉트로 멋지게 써 주세요. 제 1탄이 히트 치면 제 2탄 제 3탄으로 만주 대륙을 넘어 바이칼 호수가 보이는 몽골 대초원까지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모창가수의 눈은 새로운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시험 삼아 한 번 써 보긴 하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초짜니까. 나중에 초벌 가사가 나오면 셋이 함께 모여 검토해 봐요. 대신 히트하면 입 싹 닦아선 안 돼요.”

“아, 그럼요! 그땐 이 정든 해방촌 무지개 하숙과도 헤어지기가 섭섭할 거예요. 작가님께는 멀리 한강이 보이는 집필실을, 우리 하 선생께는 뭘 선사해 드릴까요?”

“김칫국보다 술이나 한 잔 듭시다.”

하씨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통일은 대박, 통일은 쪽박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너와 나의 사랑이 행복일지 슬픔의 씨앗을 잉태할지 압록강의 물결은 사시장철 흘러 처녀의 꿈을 적셔 주건만 남풍은 대답 없이 불기만 하네 분단은 대박.

분단은 쪽박 그 누가 손금 보듯 알 수 있을까요?

애증의 쌍곡선이 어디로 흘러갈지 삼팔선 철조망, DMZ의 풀꽃 무정한 세월만 흐르는데 한강변 거니는 총각은 짝 잃은 파랑새 북풍은 한숨 싣고 불어대네요.

며칠 후 내가 모창 가수에게 건넨 가사였다. 그는 선 채로 받아 읽어 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탁! 치고 급히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문 앞에서 은근히 좋아하는 하숙집 딸과 마주쳤으나 몰라본 양 그대로 내달렸다. 마치 뭔가에 좋게 미친 사람 같았다.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한 채 쳐다보더니 곧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한시름 놓곤 그만 잊어버리려 했다. 쉬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은근 걱정스러웠다.


물론 히트를 쳐 성공하면 좋겠지만, 만일의 경우 실패하고 만다면 낙망해서 정말 미치지 않을까 미리 염려됐다.

바보처럼

그렇다고 작곡가를 찾아가 퉁박을 받거나 좋은 곡을 받지 못하거나 음반 취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따위의 과정에 대해서는 별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고생은 모험 시도자의 특권이자 책임이니까 말이다. 다만 그런 과정이 중첩돼 최종적으로 쓴잔을 마신다면 견디기 어려울 터였다.

인간의 변질 가능성. 요즘처럼 실패자를 체험자가 아니라 범죄인인 양 백안시하는 사회 풍조에서는 그럴 위험이 다분했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자살률 1위 국가로 올라선 건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따져 보면 필연이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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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