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핏줄 경영’ 재벌가 방계기업 대해부

재벌이 만든 또 다른 재벌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이 대한민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눈에 보이는 영역은 물론이고, 대중이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도 재벌기업의 손이 닿아 있다. 재벌기업은 또 다른 재벌기업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계열분리를 거치며 홀로 선 ‘방계기업’이 산업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방계기업은 재벌기업 창업주의 직계 후손이 아닌 동생이나 조카 등 방계혈족이 독자 경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하곤 한다. 창업주와 친인척 관계로 묶인 오너 일가 구성원이 많을수록 다수의 방계기업이 분포하는 게 일반적이다.

밀고 당기고 
긴밀한 관계

또 모기업의 업력이 오래됐거나 덩치가 클수록 방계기업의 규모가 커지는 경향이 나타나곤 한다. 한 예로 ‘범삼성가’로 묶이는 방계기업들은 독자적으로 재벌기업 반열에 올라 있다. CJ그룹, 신세계그룹의 경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상태며, 한솔그룹, BGF그룹 등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렸다.

‘범현대가’ 역시 비슷한 흐름이었다. 정주영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현대그룹은 지속적인 분리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창업주의 친인척들이 독자 경영에 나서면서 현대라는 울타리만 공유하는 수많은 방계기업이 탄생했다.

범현대가에 속한 상당수는 지금껏 대기업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를 필두로 HD현대, 현대백화점그룹, HDC그룹, KCC그룹 등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된 상태며, HL그룹은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범현대가에 속한 모든 방계기업이 대중에게 각인될만한 인지도를 갖춘 건 아니다. B2B(기업 대 기업) 솔루션에 주력하거나 덩치가 대기업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몇몇 방계기업은 대중의 시선에서 한 발 비껴나 있다. ‘후성그룹’이 대표적이다.

후성그룹은 한국내화에 뿌리를 둔 중견기업 집단으로, 현재는 후성, 퍼스텍 등을 거느린 그룹사의 면모를 갖춘 상태다. 창업주인 김근수 회장(1948년생)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관계로 인해 현대그룹 방계로 분류된다.

김근수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의 여동생인 고 정희영 여사와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김 회장은 1983년 현대그룹으로부터 울산화학을 사들이며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나타냈다. 현재 오너 일가는 후성HDS에 관한 확고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나머지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뿌리는
같지만…

LG그룹 역시 수많은 방계기업을 탄생시키며 ‘범LG가’를 형성했다. 방계기업 중 LS그룹, LX그룹 등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LF그룹, 아워홈 등 인지도 높은 중견기업도 범LG가로 묶인다.

범LG가는 철저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형성됐다. 장자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전 세대는 그룹 후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룹에서 떨어져나왔다. 최근까지도 범LG가에 속하는 중견기업 집단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구본준 회장이 LX그룹으로 홀로서기를 선택한 게 가장 최근 일이고, LT그룹 역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LT그룹은 2019년 1월 출범한 기업집단이다. 오너인 구본식 회장은 둘째 형인 구본능 회장과 함께 희성그룹 경영을 이끌다가, LT삼보(옛 삼보이엔씨)를 비롯한 4개 계열사를 떼어내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구본식 회장 일가는 2017년 LT삼보 지분 93.47%를 보유한 희성전자로부터 LT삼보 지분을 매입하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후 구본식 회장은 LT삼보를 주축 삼아 LT그룹을 출범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출범 5년 차를 맞이한 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변경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7월, LT삼보는 투자 부문 ㈜LT(신설)와 건설 부문 LT삼보(존속)로 기업을 분할했다. 분할 결정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는 ‘㈜LT→LT삼보·LT메탈·LT정밀→LT소재’로 이어지는 그림으로 재편됐다. 

LB인베스트먼트 역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덜한 범LG가 구성원이다. LB인베스트먼트는 유망 기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워낸 역량이 부각되는 곳으로,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넷째 아들인 구자두 회장 일가가 운영하고 있다. 1996년 LG전자와 LG전선 등 LG그룹 계열사들의 출자로 설립됐으며, 2008년 LG그룹에서 분리됐다.

LB인베스트먼트 지분은 비상장사인 ㈜LB가 100% 보유하고 있으며, 구자두 회장의 장남인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부회장과 차남 구본완 LB휴넷 대표는 ㈜LB 지분을 각각 28.27%, 26.65%씩 보유하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사촌
적당히 끈끈한 유대관계

GS그룹은 2005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면서 LG그룹에서 떨어져나왔고, 현재는 GS그룹을 축으로 하는 ‘범GS가’가 형성돼있다. 가장 눈에 띄는 GS그룹 방계기업은 코스모그룹이다. 

코스모그룹은 허만정 명예회장의 넷째 아들인 허신구 회장 계열 오너 3세인 허경수 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허경수 회장과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사촌지간이다. 코스모그룹은 2015년 GS그룹과 계열분리를 끝내고 지주사 코스모앤컴퍼니를 설립하는 등 독립 경영을 시작했다.

모기업과의 순탄치 못한 관계로 방계기업이 설립된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범롯데가’는 롯데그룹을 필두로 농심, 푸르밀, 롯데관광개발 등으로 구성돼있다. 고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과 나머지 형제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컸고, 이를 계기로 방계기업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5남5녀 집안의 장남이고,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둘째 남동생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를 지내며 신격호 명예회장을 돕다가 1965년 롯데공업을 차렸는데, 라면 사업을 하고자 하는 동생의 구상에 신격호 명예회장은 반대했다.

결국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신준호 푸르밀 전 회장도 신격호 명예회장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신준호 전 회장은 과거 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그룹 내 영향력이 컸지만, 2007년 계열분리를 선택했다.


신준호 전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브랜드 사용을 막으면서 ‘롯데’라는 상호를 쓰지 못했고,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한 신준호 전 회장은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롯데그룹은 2010년 롯데삼강이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하며 우유 사업에 재진출했다. 

롯데관광개발도 엇비슷한 흐름이었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대표의 남편이다. 롯데관광개발이라는 사명에는 ‘롯데’ 두 글자가 들어가지만 롯데그룹의 지분은 없다. 과거 신격호 명예회장은 김기병 회장이 롯데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적당히
홀로서기

재벌기업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기업을 보는 시각은 마냥 호의적이지 않다. 일부 방계기업은 모기업에 기대면서 덩치를 키우거나, 지명도를 이용한 인수합병(M&A)에 치중한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한익스프레스는 한화그룹의 방계기업으로 분류된다. 한익스프레스는 2020년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으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 72억8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1979년 한화그룹 계열사로 설립된 한익스프레스는 2009년 김영혜씨와 그의 차남인 이석환 한익스프레스 대표가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며 한화그룹의 특수관계기업에 포함됐다. 김영혜씨는 김승연 회장 누나다. 한익스프레스는 현재 ‘이석환 체제’로 접어든 상태다. 2021년 이석환 대표의 부친인 이재헌 전 한익스프레스 대표가 경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에는 김영혜씨가 본인 지분 전량을 증여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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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