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한 필리핀 유모, 믿고 맡길 수 있나?

저출생 대책이 고작 ‘값싼 유모?’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황무지서 낱알을 찾는 마음으로 제안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 노동자 시범사업을 놓고 찬반 여론이 갈리자 이같이 말했다. 해당 사업은 저출생에 대응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는 차원서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최저임금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저출생 대책이 차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100명가량 받아들여 서울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업을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고용부가 개최한 공청회서 정책 실효성, 외국인 육아의 신뢰성, 내국인 가사도우미 종사자에 미칠 영향 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달 31일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 사업’ 공청회를 열었다. 빠르면 올해 내로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도입해 서울 지역 내 가정서 가사·육아 업무를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간은 6개월 이상으로 서울시 전역서 시행할 방침이다.

서비스 이용자는 직장에 다니며 아이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정, 임산부 등이다.

고심 끝에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인력 도입을 국무회의를 통해 제시했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인력 확보를 위해 고용허가제 송출국 16개국 중에 가사인력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 중인 필리핀을 우선 검토할 방침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E-9 비자(비전문취업)를 통해 입국한다. 대상자는 가사 노동과 관련해 경력·지식, 연령, 한국어·영어 능력, 범죄 이력 등 검증을 거쳐 선발된다.

입국 전후로 한국어·문화, 노동법 등 교육을 받고, 국내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에 배정된 이후 아동학대 방지를 비롯한 실무교육을 받는다. 서울시는 1억5000만원을 들여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숙소비·교통비 등 초기 정착 비용을 지원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 제안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서 시행 중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와 비교했을 때 저렴한 비용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해당 시범사업 도입을 우려하는 입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자는 법안 발의가 논란의 발단이 됐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고용개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차별 논란이 일었다.

오 시장도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내 최저시급을 적용하면 월 200만원이 넘는다. 문화도 다르고 말도 서툰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200만원 이상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시범사업 참여가 유력한 필리핀은 1인당 GDP가 3500달러로 우리의 10분의 1 정도”라고 말했다.

해당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인건비가 낮아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서울시 관계부서도 이 같은 내용의 의견을 고용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국내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근로기준법과 ILO(국제노동기구) 국제 협약 위반이라는 외국인 차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한국인 고용주 부담이 커져 제도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과 관련해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내국인 가사노동자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고용부에 따르면 가사·육아도우미 취업자는 2019년 15만6000명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3만명 넘게 감소했다. 특히 내국인 가사·육아 인력 취업자는 63.5%가 60대 이상, 28.8%가 50대로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논란 끝 최저임금 맞춘 외국인 가사노동자
“누가 쓰나?” 고소득층 혜택 전락 우려도

찬성하는 쪽에서는 내국인 가사노동자를 채용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내국인 가사인력의 경우 출·퇴근 시 시간당 1만5000원 이상을 줘야 한다. 시간당 9620원인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급여를 지불해야 한다.

결과적으론 서비스 이용자의 집에서 먹고 자는 내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서울 기준으로 한 달에 350만원서 450만원을 줘야 한다.

가사서비스 매칭 플랫폼업체인 홈스토리 생활의 이봉재 부대표는 “맞벌이 가구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데 종사자는 점점 줄고 종사자의 평균 연령대도 올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부대표는 “4주 전 이틀간 외국인 가사도우미 수요가 있는지 조사한 결과 150명 이상이 이용 의향을 표명했다”며 “최저임금을 보장하면서 합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관련 의견 수렴 공청회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가사 육아 인력이 감소하고 있어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정부는 인력이 감소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는지, 중년·고령 내국인 노동자를 가사노동자 시장으로 견인하기 위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며 “가사서비스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되도록 노동환경 개선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실질적 수요자인 육아 당사자들은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쌍둥이 자녀를 둔 김고은씨는 “아이에 관련된 일은 돈이 비싸다고 안 쓰고 싸다고 쓰는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인데, 이주노동자들이 한두 번 교육으로 한국문화를 습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고령화되는 사회서 지금의 중년여성 일자리를 빼앗고 돌봄의 질이 저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복직을 앞둔 워킹맘 강초미씨는 “50·60대 육아도우미를 선호하는 이유는 20·30대 부부가 가지지 못한 육아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이론만으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대디 김진환씨도 외국인 가사·육아도우미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그는 “소중한 가족을 지키는 부분이고 어떤 가정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며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지와 문화적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지, 육아 가치관에 대한 교육을 이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00명
검증은?


정부가 졸속으로 제도를 추진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 위원장은 “최소한의 보호를 제공하는 데 짧게 봐도 10년 걸렸는데, 1년 만에 제도가 만들어지고 정책이 쏟아져 나온다. 공청회도 5일 전에야 공지가 됐다”며 “제도 관련된 의견을 취합했다고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는 절차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매년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관련 정책을 마련할 때마다 논의돼왔던 제도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내국인 맞벌이 부부의 양육 부담을 덜고, 여성 인력의 경력단절을 해소하는 등 저출생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홍콩과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활용하는 점을 근거로 제도 도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과 싱가포르의 출산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하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오 시장은 자신의 SNS에 “한국은 합계출산율 0.81명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출산율과 관련 하향세가 둔화됐다”고 밝혔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은 2017년부터 도쿄, 오사카 등 6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이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시행 이후 저출생 문제 해결과 경제활동 참여율의 상관관계는 없었다. 오히려 합계출생률은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홍콩과 대만은 2020년부터 합계출생률이 1명 미만으로까지 떨어졌다.


실효성
갑론을박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의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지는 저출생 극복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는 아시아 4개 국가서 통계상 유의미한 관계를 찾기 어렵다”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약 1년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서 내국인 인력 유입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외국 인력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위원은 “한국에서는 가사근로자법을 통해 가사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추구하는 만큼, 그에 대한 노동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는 대만, 싱가포르 등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 위원은 “현재 민간시장서 외국인 가사서비스에 대한 수요와 선호도가 실질적으로 어느 규모인지 제대로 파악된 바가 없으므로, 실질적인 수요와 내국인 인력 부족 여부를 신중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 사업 수행기관을 정부 인증기관으로 한정하거나 세액공제, 이용자 바우처 제공과 같은 혜택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보다 싸게 고용하게 되면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9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더 나은 급여 조건을 찾아 다른 일자리로 떠날 수 있어서다.

현행법상 외국인이 국내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려면 방문취업 자격인 H-2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재중동포가 대부분이다.

고용부는 “가사서비스 일자리는 대표적인 중년층·고령층 여성 일자리”라며 “외국 인력 도입 확대 시 내국인 일자리 잠식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저임금 외국인력이 도입되면 내국인의 노동 조건이 저하된다”며 “외국 인력이 고임금 일자리로 이탈하는 사례도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부가 개최한 토론회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 소비자 현장 의견도 가사서비스 영역의 저임금 상황 때문에 외국 인력 이탈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며 “아이 돌봄을 담당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이탈은 제조업의 이탈과 매우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출산율 높이려는 고육지책 
벤치마킹 외국 사례 보니…

한국은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불법체류자 단속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상당수의 싱가포르·홍콩 가정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 대다수의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필리핀 국적 출신이다. 홍콩은 높은 물가로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가 도입하는 방식은 민간 서비스 기업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이용 계약을 맺는다. 가사도우미는 제공기관 기업이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 이 제도를 한국이 도입할 경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조 연구위원은 “한국의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일본처럼 숙소를 제공한다면 수익 창출 가능성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한국 가정서 마주할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일정 시간 이상 입국 전·후 취업 교육을 거쳐 근무지에 배치할 계획이다. 교육 내용에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가사 관련 기술이 포함된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다문화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어머니의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니어서 아동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연구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며 “어머니도 아닌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돌봄이 이뤄지면 어떤 영향을 주겠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필리핀 출신은 영어회화 능력이 장점이 될 수 있다. 고용부가 2021년 11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의 부모들은 영어 능력 때문에 필리핀 가사노동자 고용을 선호한다며 “일상적 의사소통에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의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은 홍콩 어린이들의 영어 의사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대만 가정도 아이 돌봄을 위해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자녀 영어 교육을 위해서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없애는 나라도 생겨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최근 ‘오페어’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페어는 해외서 일하고 언어와 문화도 익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서양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다.

다른 국가
제도 철폐

노르웨이의 필리핀 출신 외국인 가사노동자 일부는 착취와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 이에 노르웨이 당국은 제도의 근본적인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폐지를 결정했다. 

한편 고용부는 대안으로 오페어 제도 도입을 언급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한국문화를 경험하기 희망하는 외국 젊은이나 국내 외국인 유학생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런 방안 중 하나로 네덜란드나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오페어 제도 등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ojh34522@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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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