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떠나는 외노자의 눈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18 09:24:31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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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기계도 노예도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부가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사업장 변경’이 지역과 업종 내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바뀐 내용에도 민심은 흉흉하다. 외국인노동자의 기본 처우는 신경도 쓰지 않고 생색내듯 바뀐 개악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달만 해도 컨테이너 숙소서 지내던 외국인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하러 왔다가 죽는 것이 외국인노동자의 현실이다. 

지난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외국인력정책위원회서 비전문(E-9) 외국인력의 사업장 변경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이번 방안은 입국 초기 외국인 노동자의 잦은 사업장 변경으로 인력 활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착취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입국 후 1년 이내에 최초 배정된 사업장서 다른 사업장으로 변경하는 비중은 31.5%에 달한다. 먼저 정부는 재입국 특례 요건 완화를 통해 외국 인력이 한 사업장서 장기근속할 수 있는 요인을 강화한다.

E-9 비자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노동자는 기본 3년서 연장 1년10개월 등 총 4년10개월간 머무를 수 있는데, 출국한 외국인노동자는 6개월간 재입국이 제한된다. 특례 적용 시 재입국 기간은 1개월로 단축된다.

앞으로 외국인노동자가 최초 사업장서 1년만 근속하면 재입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특례를 받기 위해선 첫 입국 시 취업 활동 기간(최장 4년10개월) 동안 한 사업장서만 일하거나 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을 변경해야만 가능했다.


특례를 받은 외국인노동자는 다시 입국할 때 한국어 시험과 취업 교육 의무도 면제된다.

제도 변경 전, 사업장 변경은 업종 내에서 허용됐지만, 제도 변경 후에는 업종과 지역 내에서 변경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영남권에 도입된 E-9 노동자가 수도권 사업장으로는 이직을 하지 못하는 식이다. 이는 지역 소재의 기업에 입사한 외국 인력에 대한 타지역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이 같은 변경안이 나왔지만, 업계 분위기는 달갑지 않다. 외국인노동자의 처우가 나아지는 변경안이 아닐뿐더러 여전히 이들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전국 이주·노동·인권·사회단체,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사업장 변경을 개악한다며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노동계가 격렬히 반대했지만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이주노동자 숙식비 및 사업장 변경 관련 사항을 의결 발표했다. 2020년 고(故) 속행씨의 비닐하우스 죽음으로 구성된 노동부 태스크포스(TF)의 논의는 사업주 요구를 들어주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임금체불, 감금, 폭행, 컨테이너 숙식…
시대 변해도 열악한 근무 환경 그대로 

이어 “추가로 제기된 사업장 변경안은 일정 기간 후 전면 자유화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최종 TF 회의서 갑자기 ‘지역 제한’을 제시해 노동계가 항의했다”며 “이번 발표서도 노동계가 수년간 이주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요구한 열악한 숙소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사업 장내 부속건물 등 사람이 살 수 없는 가설건축물의 숙소 활용이 여전하다. 임금 전액 지급 원칙에 어긋나는 숙식비 사전공제 대신 사후공제 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사업장 변경은 지역소멸 대응이라는 미명하에 ‘권역별 단위’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겠다는 기본권 침해 내용을 버젓이 내놨다. 기존 사업주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 사업장 변경 제한도 강제노동으로 비판받아왔는데 이제는 지역제한까지 더 하겠다는 것”이라며 유례없는 심각한 개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외국인노동자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지난달 비닐하우스서 살던 캄보디아인은 열악한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살던 장소는 고가도로 아래 늘어선 한 농촌 마을의 비닐하우스였다. 낡은 단칸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밖 도로변에 있었으며, 샤워시설은 물 빠지는 발판이 전부였다.

그는 평소에도 “숙소가 너무 열악하다”며 주변 지인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문제는 사망한 캄보디아인 근로계약서에는 주택을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비닐하우스 컨테이너를 제공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농장주는 숙소 제공을 이유로 월급서 30만원씩 차감하기도 했다.

컨테이너서 사는 외국인노동자들은 “겨울에는 너무 춥다. 비닐하우스서 지낼 때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비숙련 외국인노동자의 70% 정도가 비닐하우스 등 가건물 숙소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적 선택한 캄보디아인
“겨울 내내 난방 없이 지내”

맹 코스타 캄보디아협력공동체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이고, 사업장 숙소 문제가 크다. 난방도 없어서 너무 힘들고 혼자 있어서 외롭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잘해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네팔서 온 우다야 라이씨는 봉제 공장, 가죽 공장, 플라스틱 공장 등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다.

라이씨는 “사업주들은 겉으로는 숙소와 농지가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불편한 교통으로 오가기 힘들어 편의를 봐준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는 농지 바로 옆에 숙소가 있으면 언제든 일을 시킬 수 있고, 멀리 가지 못하게 할 수 있어 통제가 수월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가건물 같은 숙소인데도 숙식비는 사업주에게 내야 한다. 숙식비 지침이 있는데 임금의 8~20%까지 공제할 수 있다고 돼있다. 시설이 너무 열악하거나 폭행, 임금체불 등 매우 불합리한 처우를 받을 경우,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노동자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근로계약을 해지해야 하는데 사업주의 동의를 얻거나 사업주의 위반사항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업주의 폭행으로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선 CCTV 등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없는 경우가 많고, 있더라도 열람 및 확보를 위해선 사업주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임금체불 증명이나 초과 노동시간에 대한 증명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지만 실제로 구제받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라고 덧붙였다.


돌려보내

이주노조 우다이 라야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는 기계도, 노예도 아니다. 노동자고, 다 같은 사람들이다.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모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3D 산업현장 운영을 위해 데리고 와서 짧은 기간에 최대한 착취해서 돌려보내는 존재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사업주의 인력 수급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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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