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끌려간 소년-소녀병들은 지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6.19 11:12:33
  • 호수 1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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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그들은 버려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6‧25전쟁 발발 73주년. 현재 한국은 전쟁의 참사를 찾아볼 수 없다. 박물관 정도 가야 확인할 수 있을까? 참사가 현실서 사라지듯, 같이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이다. 이제 이들도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됐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흘렀지만, 소년-소녀병들은 6‧25전쟁 참전병으로 인정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한국의 역사를 가르는 6‧25전쟁이 발발했다. 6‧25전쟁은 북한이 기습적으로 한국을 침공하면서 발발됐다. 미국과 중국이 참전해 세계적 대규모 전쟁이 될 뻔했으나, 1953년 7월27일 오후 9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됐다. 세계적 대규모 전쟁을 피했다 뿐이지, 6‧25전쟁은 한국이 치른 전쟁 중 가장 피해가 큰 전쟁이다.

“끌려가…”
강제 징병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 전사자 13만8000명과 민간인 사망자 24만5000명, 피난민 651만명으로, 베트남 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에 비해 6‧25전쟁은 민간인 사망자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처참한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발생한 이재민도 1000만여명이 넘었다. 이는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피해를 본 것으로 가족을 잃거나 헤어진 사람들은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재산 피해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북한군에 밀려 마지막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됐다. 국내 제조업의 42%가 파괴됐고, 군사작전에 이용될 수 있는 도로뿐만 아니라 철도, 교량, 항만, 학교 등은 물론 개인 가옥도 대부분 파괴됐다.


6‧25전쟁으로 집을 잃거나 고향을 떠난 피란민은 거처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미군 부대서 나오는 포장지와 통조림 깡통 등을 모아 엮어서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당시 대부분 국민은 우방국이 원조한 구호 식량과 나무껍질, 풀뿌리로 연명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서 끓인 꿀꿀이죽이 피란민의 주요 영양 공급원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초콜릿을 얻기 위해 미군 병사의 꽁무니를 따라다녔고, 시장에나 거리에서는 담배를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피해 규모를 비교할 순 없으나,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는 6‧25전쟁 소년-소녀병이었다. 소년-소녀병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군인이나 이들로 이뤄진 군대를 뜻한다. 이런 이유로 학생 때 자진해서 군에 입대한 학도의용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10대에 전쟁 참여…지금도 강제 징집 논란
UN “미성년자 군사 목적 동원은 절대 금지”

하지만 학도의용병은 학생 신분으로 자진해 지원한 비정규군으로, 그 업적과 존재를 인정받았지만 소년-소녀병은 아니다.

소년-소녀병은 병역의무를 지우면 절대 안 되는 17세 이하의 아동임에도 현역병으로 징집돼 군번을 부여받아 정규군으로 참전했다. 국방부 군적에 남아 있는 인원만 무려 3만여명에 달한다. 그 속에는 소녀군도 500명이나 포함돼있다.

UN은 미성년자를 군사적 목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으로 판단해 엄격히 금지한다. 중대한 인격침해라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서도 이를 금지하고 있다. 18세 미만을 소년-소녀병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6‧25전쟁 때 소년, 소년들은 어떻게 징집된 것일까? 15세에 대구서 중학교를 다니다 6‧25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2달 만에 징집된 생존 소년병 윤한수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윤씨는 “(학교에 온 군인들이)‘제군들, 장교나 일반 병사로도 지원해서 모두 가거라, 나라가 이리 위중하다’며 징집을 권유했는데 법률적으로 우리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안됐으니까, 그건 이제 설사 지원한다고 해도 안 받아 주는 게 원칙”이라며 “그런데 자고 나면 학생이 하나씩 없어졌다. 그때 방위군, 경찰관들이 와서 강제로 데리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쟁 탓에 평범한 학생들이 강제적으로 군인이 된 것이다. 당시 윤씨는 키 160㎝가 안 됐다. 이때부터 책가방 대신 24㎏ 군장을 들어야 했다. 총 쏘는 법도 몰랐던 윤씨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버려지다

윤씨는 “전쟁터서 다친 아이들을 들것에 담고 내려왔다. 생명이 붙어 있는 놈들은 고함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몸 전체에 소름이 끼쳤다. 나도 곧 저리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린 소년병에게 담력을 키운다며 실험을 했다. 실험은 제네바 협정에 의해 포로를 잡으면 즉결심판 같은 것을 못 시키는데 즉결심판을 시켰다. 그 즉결심판 처형 사수를 소년병에게 시켰다. 나는 총 쏘는데 안 맞았다”며 “떨려서 잘 안 봤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고, 좌우간 내가 그걸 했다. 너무 무서웠다.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6‧25전쟁 당시 무려 1만2000명의 소년병이 가장 치열하고 위험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 최전선에 투입됐다. 이때 전체 소년병 3만명 가운데 10%인 3000명이 전사했다.

6‧25전쟁 소녀병이었던 김명자씨는 이후 한국 최초의 여군이 됐다. 김씨는 한 방송 프로에 나와 “6‧25전쟁 당시 소녀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16세에 군대에 들어가서 3년7개월 있다가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가 와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난리가 났었다. 그때 여군을 모집했다. 우리 동네서 여자만 20명이고 다른 동네 합쳐서 40명 넘게 트럭을 타고 갔다. 죽을 각오로 간 거다. 가서 싸우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정말 죽으러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특수부대서 활동했다.

잊혀져 가는
그들의 고통

그는 “켈로 8240부대였고, 작전명이 ‘래빗’이었다. 당시에는 이게 뭔지 몰랐다. 중3이 ‘켈로’가 뭔지 어떻게 아느냐. 아군서 파악하지 못한 걸 보고 알리는 일이었다. 첩보활동이라 비밀을 알아와야 했다. 각자 맡은 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맡은 임무는 비밀이었다”며 “나는 먼 곳으로 파견돼 100리, 200리를 걸어갔다. 산속이니 엄청 힘들었다. 치마저고리 입고 고무신 신고 다녔다. 겨울에는 발이 얼어서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하다가 도중에 시체도 못 찾고 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50명 모집해서 나처럼 임무를 하다 30명쯤 죽으면 또 가서 모집했다. 나는 죽으러 왔는데 왜 살고 살려고 바둥댄 사람들은 다 죽었다. 울적하면서도 슬프고 이게 인생인가 싶었다. 떠난 동료들이 생각나 잠도 못 잔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트라우마로 소년-소녀병들은 일생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 이유는 참혹한 전투서 동료들을 두고 혼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소년병 참전자로 강제 징집된 장성곤씨는 3주간의 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투에 투입됐다. 장씨는 “바로 시체를 넘고 다니는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광경이 뇌리에 박혀서 떠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전투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는 등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남은 건 정신적‧물질적 상처뿐이다.

그는 “피해는 말도 못한다. 거지가 됐다. 당연히 학업을 못 했는데, (군대에)3~4년 있다가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은 졸업을 했다. 우리는 군에 갔다 왔기 때문에 졸업장이 없으니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진 동네 아이들
“폭탄 떨어져 죽고, 총 쏴서 죽이고”

이런 상황 속에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 명예선양법이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소년-소녀병이 나라 존망 위기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집중 투입되는 등 희생됐지만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전 유승민 의원이 19·20대에 걸쳐 두 차례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끝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서도 국민의힘 강대식·임병헌 의원이 2020년과 지난 3월 각각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있다.

이 법안의 목적은 ‘6‧25전쟁 당시 병역의무 대상 연령이 아닌데도 징집 또는 소집돼 참전한 소년-소녀병 및 그 유가족의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합당하게 예우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소년-소녀병 및 그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소년-소녀병 위로금 지급심의위원회를 설치 ▲6‧25전쟁 당시 병역의무 대상 연령이 아닌데 참전해 희생한 소년-소녀병과 그 유족에 대한 예우에 관한 사항을 규정 ▲소년-소녀병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소년-소녀병 또는 그 유족에게 위로금 지급 ▲위로금 지급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위원회가 검증 또는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년-소녀병을 추모하고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및 추모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함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임 의원은 “소년-소녀병들의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예우가 시급하다. 소년-소녀병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국민의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일익이 될 것인 만큼 조속한 법안 통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어린 소년-소녀병들이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남은 분도 2000여명이 되지 않는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야가 한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 조사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소년-소녀병 강제징집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만 17세 미만 소년-소녀들이 강제 징집되는 과정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늦었지만…
시작된 조사

정영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국 국장은 “아동 소년병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입대 혹은 징집시켜서 군 복무를 시킨 점은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봐 조사 개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실규명 신청인인 하경환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국무총리께서, 국방부 장관께서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 말씀을 꼭 드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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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