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개헌과 공화국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05.15 15:43:08
  • 호수 1427호
  • 댓글 11개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달 <헤럴드경제> <코리아헤럴드> 공동 인터뷰서 내년 총선 전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선거제도 개편이 완료되면 곧바로 ‘개헌절차법’을 만들어 개헌 작업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8월 국회의장단 만찬 당시 “내가 개인적으로 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개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했다.

대한민국 국회는 1987년 9차 개헌 이후 매 정권마다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개헌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해 실패했다.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은 개헌특위를 구성해 적극적인 반면 국민의힘은 소극적이어서 여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9차 개헌에 머물러 있는 현행(제10호) 헌법이 개정될 경우 10차 개헌, 제11호 헌법이 된다. 

미국은 건국 헌법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헌법을 고쳐왔기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는 개헌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일본도 1947년 대일본제국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개정된 이래 현재까지 76년 동안 한 차례의 개헌도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 헌법 이래 9차례 걸쳐 헌법을 개정했으며, 현행 헌법은 ‘6월항쟁’ 영향으로 1987년 개헌한 이후, 지금까지 36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도 1954년 헌법을 제정하고, 1975년, 1978년, 1982년 개헌한 바 있고, 1982년 이후 41년 동안 한 번도 개헌하지 않았다. 


위 네 나라의 최근 개헌 상황을 볼 때, 그만큼 한 나라의 헌법을 고치는 개헌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미국은 수정헌법 추가를,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은 개헌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시도해왔다.

나라별 개헌의 방향도 일본은 전쟁 포기와 군대를 두지 않는다는 문구를 명시한 헌법 9조를 고치는 것이고, 중국은 시장경제로 경제체제를 전환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인 반면, 대한민국의 개헌은 대부분 정권을 연장하거나 뺏기 위해 대통령 선출 방법과 임기를 고치는 후진국형 개헌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개헌을 기준 시점으로 공화국을 구분할 때 항상 대통령 임기와 거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1공화국(1948~1960년)은 헌법 제정(1948.7.17) 이후 4차 개헌 전까지 12년으로, ‘대통령제’ 이승만정부였고, 2공화국(1960~1963년)은 4차 개헌(1960.11.29 3·15부정선거 소급입법) 이후 5차 개헌 전까지 3년으로, ‘내각제’ 윤보선정부였다.

3공화국(1963~1972년)은 5차 개헌(1962.12.26 대통령 중심제 4년 중임제) 이후 7차 개헌 전까지 9년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박정희정부였고, 4공화국(1972~1981년)은 7차 개헌(1972.12.27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간선제 6년) 이후 8차 개헌 전까지 9년으로, ‘대통령 6년 중임제’ 박정희·최규하정부였다.

5공화국(1981~1988년)은 8차 개헌(1980.10.27 대통령 간선제 7년) 이후 9차 개헌 전까지 7년으로, ‘대통령 7년 단임제’ 전두환정부였고, 6공화국(1988년~현재)은 1987년 9차 개헌(1987.10.29 대통령 직선제 5년) 이후 개헌이 이뤄지지 않은 현재까지 36년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정부였고, 그리고 현재는 윤석열정부다.

공화국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선거에 의해 일정한 임기를 가진 국가원수를 뽑는 국가 형태기에, 대통령 선출 방법이나 임기 등 통치 구조를 고치는 개헌을 할 때마다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한다.  


통치 구조를 고치지 않고 기본권이나 헌법 전문 삽입 같은 개헌을 하면 새로운 공화국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왜 대한민국 국회는 지난 75년 역사 속에서 수차례의 통치 구조를 바꾸는 개헌(대통령제 → 내각제 → 대통령 4년 중임제 → 대통령 6년 중임제 → 대통령 7년 단임제 → 대통령 5년 단임제)을 하면서 새로운 공화국을 계속 탄생시켰을까?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관점이 아닌 정당이나 정치인의 관점서 개헌이 이뤄졌고, 그 개헌을 통해 정권이 출범했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노태우정부부터 현재 윤석열정부까지 6공화국이지만, 우리 사회는 9차 개헌 이후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했던 1993년까지 5년 만을 6공화국으로 인정하고, 그 이후는 문민정부(김영삼 정권), 국민의 정부(김대중정권), 참여정부(노무현정권) 등 별칭으로 불러왔다.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독재정권을 연상케 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국회가 여야 합의 후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통치 구조를 고치는 개헌을 한다면 정치사적 기록에는 7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할지 몰라도 우리 국민은 7공화국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10차 개헌만큼은 여야 합의에 앞서 먼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이 개헌과 공화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칠 수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언급했듯이 자신이 개인적으로 손해(임기 1년 단축?)를 보더라도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관철시키고, 대선 때 5·18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겠다고 공약했듯이 ‘5·18민주화운동 헌법 명기’에 적극적으로 나서 10차 개헌을 성공시킨다면, 윤 대통령은 1987년 헌법 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미래의 헌법 체제를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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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상원 모른다”<br> 윤석열 거짓말 포착

[단독] “노상원 모른다”
윤석열 거짓말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이라는 사람 아는 바 없다.”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형사 재판서 한 말이다. ‘경고성 계엄’일 뿐이었다는 기적의 논리에 딱 들어맞는 주장이다. 국군정보사령부 전·현직 간부들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검찰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윤 전 대통령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모를 수 없는 정황은 곳곳서 포착된다.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윤 전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노 전 사령관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정보사 전·현직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수도권 여러 안가서 모였다. “모를 수 없다” 곳곳에 정황들 이 자리에는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군 정보·공작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은 회의서 언급된 내용을 정리해 수첩에 적은 이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했다. 김 전 장관은 이를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해 9월부터 김 전 장관의 임기가 시작되자 노 전 사령관은 계엄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블랙요원 명단 유출 이전 900여단) 사무실인 B 연구원서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했다. 민간인이었던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에 필요한 인원과 앞으로의 계획을 보고받고 김 전 장관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정리해 윤 전 대통령에게 알리고 ‘계엄 시기’에 대해 고민했다. 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이 마음대로 정보사를 주무를 수 있었던 이유로는 김 전 장관이 든든한 뒷배로 있었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윤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며 “윤 전 대통령이 노 전 사령관의 계획에 대해 굉장히 흡족해했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이 관리한 수사2단은 1·2·3대로 나뉜다. 계엄 사태에 연루돼 업무가 배제된 김모 대령이 1대장을, 노 전 사령관과 햄버거집 회동을 한 정보사 김모·정모 대령이 각각 2·3대장을 맡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조직은 예비역인 노 전 사령관, 국방부 조사본부 출신으로 예비역인 김용군 전 대령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려 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와 선관위 직원 납치·감금·심문이었다. 정 대령은 앞선 조사에서 선관위 장악을 위해 직원들을 케이블타이, 두건, 마스크 등을 사용해 무력 통제한 뒤 특정 장소에 감금하는 방안을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등과 함께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선관위 직원들을 심문하려 할 때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가 쓴 책을 참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간부들에게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이 쓴 책을 숙지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노 미팅·정보사 플랜 윤에 수시 보고 “윤, 흡족…김이 대통령 미팅 제안한 이유” 한 정보사 간부는 검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만약 부정선거에 가담한다면 이 조직, 이 사람들일 것’이라는 취지로 정리해줬다”고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가 노 전 사령관에게 건넨 명단에는 임시 사무소 예산 담당 직원을 비롯해 선관위 전산 시스템 운영 직원, 전산 운영 실무자 등이 포함됐다. 이후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약 한 달 전 정보사 간부들을 만나 “언론에 특별한 보도가 나면 선관위에 가서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확인해야 한다”며 선관위 직원 30여명 명단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원장은 2022년 대선 당시 윤 전 대통령 캠프서 공명선거·안심투표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원장이 2021년에 쓴 책은 부정선거 의혹 거점으로 임시 선거사무소를 언급한다. 각급 선관위와 임시 사무소 사이 설치된 통신망을 통해 사전투표 및 개표 통신망에 접속해 득표수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책에는 부정선거 의혹 근거로 ‘사전투표지 QR코드 활용’에 문제가 있다고 적혀 있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관계자들에게 “QR코드 증거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당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관위는 QR코드로 사전투표지에 선거구별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은 일련번호가 찍힌 사전투표지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이 민경욱 전 국민의힘 의원 소송에서 4만5000여장 사전투표지 QR코드를 모두 판독한 결과 가짜 투표지는 한 장도 없었다. 노 전 사령관은 신인호 전 국가안보실 2차장과 김 전 장관과는 달리 윤석열 캠프 외곽서 활동했다. 특히 김 전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는 “외곽서 활동했기에 노 전 사령관이 윤석열 캠프 출신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현재 군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김 전 장관이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칭찬을 윤 전 대통령에게 많이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윤 커넥션 캠프서 시작?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전 대통령이 대선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 역공 대비 등을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전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 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한 군 고위 관계자는 “노상원이 윤 전 대통령을 사실 굉장히 보고 싶어했다. 출세욕이 강한 만큼 김 전 장관을 통해 윤 전 대통령을 만나면 다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도 “성범죄 문제 때문에 윤 전 대통령에게 폐를 끼칠 수 있기에 김 전 장관의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고 말했다. 주변 인맥 활용 국방사업 개입?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18년 1월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임명된 후 같은 해 10월1일 국군의 날 교육생 신분의 부하 직원을 술자리 등에서 수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역 장성 신분으로 구속된 그는 1심 보통군사법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심서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불명예 전역 수순을 밟은 노 전 사령관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모두 상실했다”는 걸 감형 이유로 댔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을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노, 윤 캠프 외곽 활동해 조언 일부 현실화 ‘김건희 비화폰’ 미스터리 “노와 교집합”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전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건희씨와 노 전 사령관의 소통을 의심한다. 민간인이었던 둘에게 비화폰(안보폰)이 제공됐고 무속이라는 교집합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 같은 의혹 해소를 위해 지난 16일 용산 대통령실과 한남동 공관촌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대통령경호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저지 및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연루 혐의 등이 대상이다. 경찰청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는 이날 공지를 내고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대통령실 및 공관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착수했다”고 알렸다. 압수수색 대상은 윤 전 대통령 및 김성훈 경호처 차장 등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관련 비화폰 서버, 대통령실 경호처 사무실, 경호처장 공관 등이다. 또 이 전 행안부 장관의 내란 혐의 관련 대통령 집무실 CCTV도 포함됐다. 다만 경찰은 “이 전 장관의 내란 혐의와 관련한 대통령 안전가옥 CCTV, 비화폰 서버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압수수색 영장을 3차례 신청했으나 모두 검찰서 불청구했다”고 밝혔다. 김건희 알았나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경호처 내 비화폰 서버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해 왔지만 경호처는 ‘군사상 기밀, 공무상 기밀’ 등을 이유로 협조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과 부인 김씨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이사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김 차장도 경호처 내부 반발에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공조본 내부에서는 ‘지금이 기회’라는 의견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