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 문건 위조’ 대통령실 거짓말 논란

눈치 보고 섣부른 판단 엎어진 외교 자업자득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통령실을 향한 비판이 거세다.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 수출 논란이 단초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뒤틀리면서 외교 갈등까지 자초했다. 최근 미국 정보당국이 작성한 도·감청 문건에 대해 ‘위조’라는 주장도 거짓말 논란에 휩싸였다. 정작 당사자인 미국 정부가 문건이 진본이라고 시인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결단을 외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 가고 있으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실상은 ‘속 빈 강정’이라는 평가다. 외교 문제에 자충수를 두고 정작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문건과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 수출 문제가 대표적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실의 대처다. ‘노코멘트’라며 침묵만 지키고 있다.

조작됐다고?
문건은 진본

미 정보당국이 도·감청을 통해 작성한 문건 내용은 지난달 1일, 김성한 전 대통령실 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방식을 논의한 게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무기 제공을 압박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다.

당시 김 전 실장은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탄약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폴란드에 155mm 포탄 33만 발을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하자”고 이 전 비서관에게 말한 것으로 돼있다. 우크라이나에 155mm 포탄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폴란드로 수출해 우크라이나에 우회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대화가 있기 사흘 전인 2월27일 작성된 또 다른 미국 기밀 문건에는 한국산 155mm 포탄을 운송(delivery)하는 방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있다. 해당 문건의 제목은 ‘대한민국 155mm 포탄 33만발 운송 일정’으로 돼있다.


문서에는 시행명령(EXORD) 10일(D+10) 이후부터 45일(D+45)까지 매일 항공편으로 4700여발씩을 수송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항공편으로 포탄을 수송하려는 것은 김 전 실장의 대화록에 나온 것처럼 미국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기밀문서에는 이스라엘에 보관 중인 미군 전시비축 포탄 8만8000발을 더해 시행명령 1개월 내에 18만3000발을 목적지에 전달한다는 계획도 포함돼있다. 시행명령 후 27일 이후, 37일 이후에는 경남 진해항에서 수송선 한 척씩을 출항시켜 시행명령 72일 이후까지 모든 포탄 운송을 끝낸다는 일정도 언급됐다.

해당 문건에는 한국 포탄의 운송 목적지는 독일 노르덴함항으로 표시돼있다. 노르덴함항은 독일 브레멘 북부의 항구로 베스터강 하구에 조성된 군사 병참항구다.

미 육군에 따르면 노르덴함항은 2차 대전 때부터 유럽 주둔 미 육군이 사용해온 사설 항구로 설명돼있다. 21전구지원사령부 산하 16여단의 지휘를 받는 곳으로, 강 건너편 브레멘하벤항과 함께 미군의 무기를 유럽으로 반입 또는 반출하는 전략항으로 알려져 있다.

미 정보당국 ‘우크라 우회 지원’ 내용 파악
잡힌 문건 유출 당사자 “모두 위조·조작”

독일에 위치한 항구지만 미군이 실질적으로 점유 중인 군사항인 셈이다. 두 문건의 핵심 내용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한국산 155mm 포탄의 구체적인 물량을 할당해 한국에 지원 요청을 했고, 한국은 이를 거절하기 어려워 폴란드로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국가안보실 등 도감청 의혹 정황에 대해 ‘위조된 정보’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지만 도감청으로 드러난 정보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SBS는 지난 9일, 국가안보실이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걸 고심했다는 내용의 기밀문건이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문건에는 기밀 표시와 함께 자세한 수송 계획이 표로 작성돼있다.

한국서 생산한 155mm 포탄 33만발을 수송하는 계획을 명시한 문건으로 추정된다. 전체 기한은 72일, 항공편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열흘째에 4700여발, 41일째에는 15만3000발을 전달한다고 적혀 있다. 중간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보관하고 있는 전쟁물자를 뜻하는 WRSA-I라는 약어와 함께 추가되는 물량도 표시돼있다.

최고 기밀 문건으로 분류된 다른 문건에는 김성한 전 실장이 155mm 포탄 33만발을 폴란드에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내용이 언급된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방침과 대조적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미국 출장에 나서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났을 당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평가에 한미 양국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포탄 33만발
수송 계획

김 차장은 이날 오전 한미 국방장관이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양국이 정보 동맹이니까 정보 영역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 긴밀하게 함께 정보 활동을 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신뢰를 굳건히 하고 양국이 함께 협력하는 시스템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대변인실 명의의 언론 공지에서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다. 앞서 도감청 의혹 외신 보도서 함께 언급된 프랑스와 이스라엘 등이 ‘허위 정보’라고 일축하고 있는 것과도 궤를 같이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공지에서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 운용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용산 이전’으로 인한 보안 문제를 지적하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대해선 “허위 네거티브 의혹으로 국민을 선동하기에 급급하다”며 “한미동맹을 흔드는 ‘자해행위’이자 ‘국익 침해 행위’”라고 성토했다.

대통령실은 최근까지도 연일 유출된 문건이 조작됐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1600억원이 넘는 포탄 수십만발이 실제 폴란드에 수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국내 최대 포탄 제조업체 풍산은 앞으로 2년간 1647억원 상당의 대구경 탄약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공급한다고 공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폴란드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한 업체다. K9 자주포는 지금까지 10개 나라에 수출됐지만, 포탄을 같이 보내는 건 폴란드가 처음이다.

원칙·방침
또 뒤집기

155mm 포탄은 포신 직경만 같으면 자주포뿐만 아니라 견인포에도 사용할 수 있다. 155mm 포탄은 탄두와 신관, 장약 등이 한 세트인데, 풍산은 고폭탄 탄두만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55mm 고폭탄 탄두는 1발에 40만원 정도다. 계약금액이 약 1600억원인 걸 감안하면 40만발 이상을 폴란드로 보내는 것으로 문건에 적힌 33만발보다 많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폴란드에 K9과 함께 패키지로 수출하기로 한 포탄이 5~10만발이다. 포탄 최종 사용자는 폴란드로 특정됐다. 다만 폴란드가 해당 포탄을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제3국으로 재수출하려면 우리 정부의 사전승인이 필요하다.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더 있다.

미국 주방위군 소속 현역군인이 해당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 유출 용의자로 지목돼 체포된 것이다. 한국의 김성한 전 실장 등 외교안보 부문 고위공직자들의 대화 내용을 미국이 신호정보(시긴트)로 파악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미 현역군인이 유출한 ‘진본’이라는 방증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중진 윤상현 의원은 지난 14일 SNS에 쓴 글에서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 국방부 기밀문건의 유출 용의자가 체포되며 수사가 본격화됐다. 21세의 미국 현역군인”이라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이 미 국방부 보고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고,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유감을 표명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미국 정부와 언론이 문건 유출을 사실이라고 결론짓고 유출 경위를 밝히고 있는데도, 국가안보실 1차장은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는 발언으로 조기 진화에 나섰다”고 김태효 1차장과 대통령실의 대응을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문건의 위조 여부’가 아닌 ‘동맹에 대한 불법감청 여부’”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건 진위 여부’로 본말이 전도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폴란드 포탄 수출 일정 드러나
‘한술 더 떠’ 무기 지원 가능성 시사

윤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 때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켜 주고 원상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에 대한 제한이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며 “전쟁 당사국과 우리나라와의 다양한 관계, 전황 등을 고려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6·25전쟁 때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던 점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방위와 재건을 도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통령실도 당시 “(민간인 학살 등)전제가 있는 답변”이라며 “(무기 지원 불가라는)정부 입장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러 조건이 붙어 있어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현재로서는 입장 변경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리기에는 충분하다. 전문가 대부분도 조건부라도 무기 지원 여지를 남긴 것이 입장에 변화를 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개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기자들과 전화 회의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질문에 “물론 무기 공급 시작은 특정 단계의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상당히 비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이것(무기 지원 시사)은 이 일환”이라고 반발했다.

러시아를
어찌할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 역시 자신의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의 적을 열렬히 도와주겠다는 새로운 자들이 나타났다”며 “한국 국민들이 북한의 러시아 최신 무기를 보면 무엇이라 말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quid pro quo)”며 보복을 경고했다. 러시아의 반응이 나온 직후 대통령실은 “러시아 반응은 가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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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2월 위기설’ 보수 합종연횡 시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일각에서 “장동혁 체제를 무너트린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동혁 대표는 ‘중도 확장’을 언급하면서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 친한계는 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도 친윤계와 일시적 휴전을 하고 있다. 장동혁·친윤·친한·개혁신당은 얽히고설킨 합종연횡을 시작했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각각 지난 5일과 9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비판했다. 이후 국민의힘에선 장 대표가 물러난 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출범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장 다음은 신 비대위?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언더 찐윤 그룹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에 대해 ‘이 사람으로 되겠느냐’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면서 “장 대표가 물러나면 누구에게 비대위원장을 시키면 좋겠느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주장했다. 장 소장은 “그들이 국민의힘 신동욱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한다”고도 했다. 그에 따르면,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신 최고위원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기려는 이유로 경북 상주·언론사 앵커 출신이란 점이 거론된다. 장 소장은 “급소에 침을 넣을 수 있는 핵심은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핵심인 이유는 “언더 찐윤의 구심점이자, 장동혁 체제를 만든 5인방 중 1명”이란 것이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 일원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은 지난 1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에게 제시할 노선 변경 시한은 연말”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은 장 대표가 판단을 잘했다고 보긴 힘들다”며 “국민이 원하면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 국민을 이기려고 정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도부가 연말까지 노선 변경에 대한 전향적 의견을 밝히지 않으면, 상당한 혼선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상당한 혼선’은 장 대표 체제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흔들림 없이 강경 보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을 당 국민소통위원장에 임명했다.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에 임명됐다. 김 최고위원은 그로부터 4일 전인 지난 11일 TV조선 유튜브 채널 ‘엄튜브’에 출연해 “지난해 12월3일 계엄군의 총구를 잡은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의 행동은 사실상 즉각 사살해도 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같은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게 집계되는 여론조사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장 대표를 엄호했다.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단 결과가 나온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 등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제시했다. 이어 “한국갤럽 여론조사 외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른단 여론조사 결과가 대부분”이라며 “장 대표의 투쟁에 모두 단결했으면 더 올라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개 제시된 장동혁의 시간은 ‘연말’ ‘통일교 특검’ 매개로 손잡은 장·이 장 부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청년 참모 1호로 알려졌던 친윤계 일원으로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이 연루됐다”는 논란이 발생한 당원 게시판 의혹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 공천을 받았다가 “과거에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은 장 부원장 공천을 취소했고, 이후 장 부원장은 친한(친 한동훈)계와 대립하고 있다. 장 부원장은 같은 날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 의원은 지도부를 흔들기 위한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며 “연말까지 고름 같은 당내 문제를 해결하면, 새해부터는 대여 투쟁·민생에 집중해서 중도·외연 확장을 할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고름 같은 당내 문제’는 당원 게시판 의혹을 말한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은 지난 9일 당원 게시판 의혹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위원장은 “한 전 대표와 가족 명의로 게시된 글들의 실제 작성자를 확인하고 있다”며 “한 전 대표 가족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3명은 서울 강남병 소속이고, 휴대전화 끝자리가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중 1명은 재외국민 당원으로 확인됐고, 거의 같은 시기에 탈당했다”면서 한 전 대표 가족 실명도 공개했다. 지난 16일엔 친한계 일원으로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윤리위원회에 요청했다. 당무감사위는 지난달 26일부터 김 전 최고위원을 조사했다. 윤리위가 당무감사위의 의견대로 징계를 확정하면, 김 전 최고위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당 활동이 멈춰 총선 공천에서도 큰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같은 날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윤리위가 당원권 정지를 결정하면 가처분을 신청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위원장이 밝힌 김 전 최고위원 징계 사유는 “우리 당 운영을 파시스트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북한 노동당에 비유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당원을 망상에 빠진 정신질환자에 비유하는 등 모욕적 표현을 했고, 사이비 교주의 영향을 받아 입당했다는 특정 종교 비난·종교 차별 발언을 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영혼을 팔았다”는 등 장 대표를 비판한 것도 징계 사유로 제시됐다. 고름 같은 당내 문제 한편 장 대표는 통일교 특검법을 매개로 개혁신당에 연대를 제안했다. 장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중 “통일교 특검법 통과를 위해 개혁신당과 뜻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무자비·포악한 이재명 정권을 막기 위해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곧바로 “16일부터 특검법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와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만나 큰 틀에서 ‘통일교 특검 추진’에 합의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장 대표는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와 다르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라는 등 장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가 용꿈을 꾼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민의힘 대표를 하면, 대권주자로서 약 20% 정도의 지지를 얻으니, 다른 주자가 사라지면 내가 유일한 대권후보란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유착 의혹이 제기된 후 두 사람은 제한적으로라도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관계자들은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에게도 후원금을 제공했다. 하지만 김건희 특검은 “교단의 지시를 어긴 관계자 개인의 일탈이었다”면서 기소하지 않았다. 보수 야권으로선 특검의 공정성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의원 상당수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던 국민의힘으로선 “되돌려줄 기회가 온 것 아니냐”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2018년부터 3년 동안 현금·명품 시계 등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수사 대상이 된 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아울러 장 대표가 친한계 정리 작업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친한계와 개혁신당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단 사실도 주목받고 있다. 친한계와 개혁신당은 쿠팡 새벽 배송 논란 관련 토론회 개최를 놓고 크게 갈등했다. 국민의힘 김은혜·우재준 의원은 지난 15일 ‘새벽 배송 금지, 누구의 새벽을 위한 선택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개혁신당은 사흘 뒤인 지난 18일, 김성열 수석 최고위원이 주관하는 ‘새벽 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친윤·친한 여전한 갈등 김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김·우 의원이 토론회 개최를 예고했다가 취소해서, 개혁신당이 마음 다친 관계자들을 모시고 토론회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혁신당 주최 토론회가 개최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 다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눈치 보다가 남의 것을 빼앗아서 하는 토론회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토론회에도 ‘원조’ 표기를 하고, 상표권도 등록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우 의원은 곧바로 반박했다. 그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새벽 배송 논쟁은 국민의힘이 먼저 제기했고, 우리 토론회는 원래부터 15일 개최가 예정돼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토론회 개최 직전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사회적 관심이 분산될 가능성을 우려해 일정 연기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론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15일 개최를 중요시 여긴 이유 중 하나는 지난 16일 진행된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라고 한다. 구도를 정리하면, 장 대표는 당내 친윤계·친한계와 갈등하면서 개혁신당과 제한적 연대를 추진해 중도 확장·대여 공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려고 한다. 개혁신당은 장 대표와의 제한적 연대를 통해 오랜 갈등 관계인 친한계와의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친한계는 장 대표·개혁신당과 갈등하면서 마찬가지로 오랜 갈등 관계인 친윤계와 중도 확장·지방선거 승리라는 대의 앞에서 일시적으로 휴전한 것 같은 구도를 만들었다. 이를 단순하게 볼 수만은 없다. 장 대표는 지난 17일 경기 고양에서 연탄 배달 봉사활동 이후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방향·보수 가치 재정립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에 수반돼 많은 의원이 말씀하시는 당명 개정도 필요하다면 함께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명 개정’은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친윤계와의 갈등을 진화하기 위한 승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선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김민수·장예찬 내세워 한동훈 축출 작전? 개혁신당과 쿠팡 갈등…친윤과 일시 휴전? 개혁신당은 국민의힘 내 이준석계와 구 친윤계의 갈등 끝에 이준석계가 국민의힘을 이탈한 후 창당됐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 출마한 후 각계에서 언급했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까지 뿌리친 후 완주했다. 이는 구 친윤계와의 화학적 결합은 창당 배경·당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진행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통일교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제기되자, 천 원내대표가 특검 추진 합의를 위해 구 친윤계의 일원이었던 송 원내대표와 손을 맞잡는 그림을 연출했다. 제한적 빅텐트가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도가 ‘화학적 결합’으로 해석된다면, 지난해 2월 이낙연 전 총리와 함께 빅텐트를 치려다가 당원의 강한 항의를 들은 후 무산됐던 것과 같은 사태가 재현될 수도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대표는 지난 1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장 대표는 황 전 대표처럼 굉장히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장 대표가 주장한 ‘우리가 황교안’이란 구호대로라면, 황 전 대표의 좋은 점·나쁜 점·정치적 진로 및 결과까지 다 답습할 것”이라는 등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당원권 정지 6개월을 받은 후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은 개혁신당 구성원·지지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돼있다. 이들은 국민의힘을 틈을 비집고 들어간 후 언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친한계는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징계가 막힘없이 흐르는 현 상황대로라면,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 전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하는 방법이 막힐 위험이 있다. 이렇게 되면 친한계는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개혁신당과의 갈등은 이로부터 비롯된다. 유권자를 상대로 “한 전 대표와 이 전 대표 중 누가 보수의 젊은 적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이 전 대표를 제치고 ‘보수의 젊은 적자’라는 명분을 얻어야 장 대표·구 친윤계와의 당내 다툼에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는 여론조사 수치가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는 지난 12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시장 선거 양자구도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만약 최근 주목받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양자구도를 이루면, 45.2%의 지지를 얻어 38.1%의 지지를 얻은 오 시장을 이길 수도 있단 결과가 확인됐다. 비상 걸린 지방선거 이는 민주당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장 대표 ▲구 친윤계 ▲친한계 ▲개혁신당 등 보수 4자 합종연횡 구도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킬 가능성도 함께 내포한다. 장 대표에게 사실상 주어진 시한은 연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제1심 선고가 진행될 예정인 내년 2월까지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등 매듭 짓지 않으면, 지도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2월 위기설’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은 과연 어떤 연말·연초를 맞이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