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결혼도…’ 친족상도례의 허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28 08:22:31
  • 호수 14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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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고소할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기 결혼을 당해서 혼인취소소송을 해 현재는 혼인 취소 상태다. 결혼 생활 중 전 남편은 내 주민등록증을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 명의를 도용했다. 그때 생긴 빚이 1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친족상도례’ 때문에 전 남편을 고소할 수도 없다.”

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나와 있다. 또 형법 제365조(친족 간의 범행)에는 ‘죄를 범한 자와 본범 간에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신분 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고 적시돼있다.

가족 문제는 
가족이 해결

이 법률은 ‘친족상도례’라고 한다. 법률을 쉽게 해석하면 8촌 내 혈족이나 4촌 내 인척·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죄·사기죄 등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특례를 말한다. 이 법의 취지는 가족 문제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가족 내 문제는 가족이 해결하자고 만든 것이다. 하지만 허점이 존재하는 만큼 비판도 많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적 처벌을 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친족에게 경제범죄(사기·횡령·배임·특별경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수는 지난 3년간 평균 800명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친족상도례를 이용한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법 테두리 밖의 삶은 최유라(가명)씨가 겪은 일로 설명된다. 최씨는 전 남편 강지훈(가명)씨를 보육원 봉사활동서 만났다. 최씨보다 5살 어렸던 강씨는 봉사활동 중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많이 앞장섰다. 누가 봐도 싹싹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강씨가 다니는 직장은 삼성이었다. 그는 보육원에 올 때마다 회사 명찰을 목에 걸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모전에 붙어서 삼성에 취직했다고 했다.

강씨는 당시 집이 충남 천안이었는데, 자신의 차인 제네시스로 봉사활동에 온 사람 모두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여기에 서울에 살던 최씨도 포함됐다.

강씨는 최씨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천안에 거주 중이었던 강씨는 퇴근 후 최씨를 보기 위해 매일 서울에 갔다. 여기에 최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런 과정에 가족관계증명서, 월급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최씨에게 보여줬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강씨의 부모가 모두 사망으로 기록돼있었다. 

만남부터 도주까지 완벽한 플랜
주민증 사진 찍어서 명의 도용

강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고 치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러다 돌아가셨다. 부모님 사이가 너무 안 좋았다. 그런데 너희 집은 따뜻한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도 너무 좋으신 분 같다. 나도 가족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둘은 2016년 결혼에 골인했다.

강씨는 최씨를 위해 이직한 뒤 최씨 부모 집 근처에 집을 구했고 행복해했다. 가족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살면서 이런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당시의 삶이 “평범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집에서 업무를 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서 일을 했다. 퇴근은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강씨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2021년 초다. 강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상속 정리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다. 어머니가 남긴 재산은 꽤 많았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직계가족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강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최씨는 둘째를 출산해 부모님 집에서 한 달 동안 몸조리를 했다. 그 후 집에 돌아갔을 때, 감춰져 있던 비극이 눈앞에 드러났다. 다시 찾아간 집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비밀번호로 문을 열어도 열리지 않았다. 인근 주민센터에 동사무소 직원이 동행해 집 문을 열었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 주인은 황당해했다. 강씨가 집주인에게 연락해 보증금을 모두 받고 집을 내놨다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었던 가구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이 감쪽같았다.

사라진 가장
무너진 가정

공동으로 사용하는 은행 계좌는 2000만원 넘는 돈이 있었지만 250만원, 500만원씩 계속 돈이 출금됐다.

최씨는 강씨의 고향에 찾아갔을 때부터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했다. 강씨의 부모는 모두 살아 있었고 남동생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강씨의 명의도용으로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강씨 고향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앞서 그는 자신을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에 취직해 야간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었으나 대학교 졸업도, 삼성에 다닌 것도 거짓말이었다. 강씨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고, 삼성 하청업체서 일했으며 겨우 6개월을 다니면 다행이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강씨가 보육원 봉사활동에 오기 직전 교도소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기죄로 1년6개월 형을 살았다. 강씨는 사기 결혼을 계획해 의도적으로 최씨에게 접근한 것이다.

연애 중 방문한 강씨 부모 산소는 모르는 사람 것이었는데 당시 옷을 태우기도 했다. 결혼식에 왔던 강씨 어머니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강씨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해 최씨에게 접근했다.

강씨가 최씨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그는 최씨 친구에게 연락해 “둘째 출산 비용이 부족하다”며 600만원을 빌렸고 “아내가 유산했다”며 다시 500만원을 빌렸다. 

사람들은 최씨의 남편이니까, 최씨가 힘든 상황이니까, 최씨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대출까지 
고스란히

강씨는 최씨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자동차를 사거나 렌트했는데 명의는 당연히 최씨였다. 자동차 렌털숍에 가서 “아내가 탈 것”이라며 최씨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구매한 차량이 외제차 아우디와 국내 중형차인 그랜저였다. 

강씨는 이 차량 두 대를 빌려 일주일만 돈을 냈고, 나머지는 모두 체납했다. 체납 고지서는 모두 최씨에게 날라왔다. 현금으로 K7도 샀다. K7을 살 현금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최씨 이름으로 대출을 3000만원 냈고 갚지 않았다. 강씨는 K7을 대포차로 팔았지만 과태료는 최씨 앞으로 날라오고 있다.

강씨의 사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평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할 일이 많아 사업자등록을 했다. 이때 최씨는 기존에 쓰던 컴퓨터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했다. 강씨는 최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는데, 이 금액이 얼마인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연금·건강보험을 이용한 대출 2000만원, 사채를 받으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최씨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딸이 신체포기각서 쓴 것을 알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사채업자가 집에 찾아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한 적도 있다.

최씨의 지인 역시 강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전부 강씨의 아내인 최씨를 신뢰하고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지인 4명에게 친 사기로 피해 금액은 1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강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더 황당한 것은 컴퓨터에 저장돼있던 파일들이다. 강씨는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사람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놨다. 그중에서 빨간 줄이 그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사기 치려고 했을 때 실패했던 사람들이었다. 뚜렷하게 사기 친 흔적이 드러난 문서가 있는가 하면,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문서도 있었다. 

“아내가 쓸 거”라면 전부 “OK”
‘혼인 과정 중’이라 발만 동동

강씨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협동조합에 가입시켰다. 그 문서에는 아이가 갖고 있는 보유 금액으로 215억원과 878만원이 적혀 두 개로 나눠져 있었다. 또 상속 진행 및 출금화 완료 예정일도 결정돼있었다.

최씨가 알지 못했던 아이의 국민은행 통장도 있었다. 이 통장에는 6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 있었다. 부동산 영수증도 있었다. 역시 아이 이름으로 2억7000만원 가량의 부동산 영수증이었다.

최씨 이름으로 피감자 원산지 확인 증명서, 한 번도 입원한 적 없는 삼성병원 입원 확인서 등의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최씨 지인은 최씨에게 “강씨가 아이 통장에 이 정도 돈이 들어있다거나, 최씨가 피감자를 판매했다는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빌렸을 확률이 높다”며 “나도 이런 영수증을 보여줘서 돈을 빌려줬는데, 문서는 조작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최씨는 강씨와 혼인무효소송을 했고, 혼인이 취소됐다. 그는 강씨를 상대로 ▲금전적 사기 ▲문서위조 ▲상간녀로 총 3건의 고소를 했다. 그러나 이 중 2건은 ‘친족상도례’로 인해 고소 건은 취소됐다. 

최씨는 <일요시사>에 “전 남편은 나와 결혼한 기간 동안 나를 중심으로 뻗어나가 사기를 쳤다. 결혼 자체도 사기였는데 혼인 중이었다는 이유로 고소가 취소된 건 말이 안 된다”며 “미혼모 모임에 나가 보면 친족상도례로 피해본 사람이 많다. 일부러 이 제도를 노리고 결혼한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고 억울해했다.

친족상도례 관련 전문가는 “이 법은 1953년 형법과 함께 제정됐다. 과거 농경시대와 대가족제도를 배경으로 면책 범위를 넉넉히 준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가족이나 친족 내 큰 어른에게 갈등을 중재할 권위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대가족은 해체됐고 가족의 개념과 형태는 크게 달라졌다”고 짚었다.

취소된 고소
범죄 면죄부

이 전문가는 “그런데도 1항은 2005년, 2항은 1995년에 개정된 게 마지막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해야 할 형법이 악질적 범죄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라며 “자녀가 노부모 재산을 절도하거나 횡령하고, 부모를 상대로 사기 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우자 몰래 이혼을 계획하고 배우자 재산까지 빼돌리거나 훔쳐 다른 가정을 꾸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장애가 있는 친족을 착취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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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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