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㉔짝퉁 선덕여왕의 과대망상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3.15 09:09:40
  • 호수 1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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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야 임마, 종북 좌빨갱이들이 주장하는 연방제 개도둑놈 식과 우리 선덕여왕 근혜님께서 심사숙고 후 창안해 주창하시는 완전 포용적 북진 통일론을 혼동하면 안 되지. 우리 여왕님에 비하면 김때중인지 놈무힌인지 하는 자들은 얼삥이 강아지야. 북괴 똥 빠는 얼치기라니까.” 

하나님의 명령

“말이 좋아 포용이지 사실은 북한을 때려 엎고 흡수통일 하겠다는 흑심인데, 생각 좀 해보세요. 역지사지로 입장을 서로 바꿔 놓고 상상해 볼 때 그 누가 좋아하겠어요? 어림도 없는 짝퉁 선덕여왕의 과대망상일 뿐이에요. 더구나 북한은 독재정권이라 지탄받지만, 어쨌건 중국과 러시아 대국 틈새에 낀 상태에서도 대한민국의 수구 보수파 박사님 영감님들처럼 미국과 일본에 빌붙어 흥청거리기보다 나름 깜냥껏 자주적으로 살아나가려 발버둥치잖아요. 과연 그들이 일방적 흡수통일을 받아들이겠어요? 비루먹은 양아치 개새끼라 욕하며 차라리 핵무기로 자폭하는 악로[惡路]를 택할지언정… 제발 좀 정신 차리고 현실을 바로 보세요.” 

“뭔 개 여물 먹는 소릴 지껄이냐! 그러니만큼 오히려 우리가 나서설랑 세뇌에 빠진 그들을 잘 설득해 우리 민족의 품안으로 끌어들여야지. 이건 하나님의 명령이야! 너 같은 이기주의자들은 아마 예수님의 십자가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리라만….” 

“네, 전 잘 몰라요. 그러운데 그 의미를 알고 제대로 실행해야겠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의 짐을 대신 십자가로 져 주셨건만, 요즘 인간들은 자기 짐마저도 남에게 떠맡기려 들잖아요. 특히 기독교인들이 더 심한 것 같더군요. 우리 모든 국민들이 애써 고통을 참고 견뎌 겨우 겨우 어렵사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십자가를 좀 벗어나려는 참에 또 파리떼처럼 모여 병균을 막 퍼뜨리잖아요. 교회가 바이러스의 온상이 돼 가고 있어요”.


“괴 바이러스로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는 미국 꼴을 뻔히 보면서도 그걸 따라가려고 광장에 모여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거예요? 우리 국민들의 고통스러운 노력은 개무시하고… 미국의 셰퍼드인지 스피츠인지 한 번쯤 잘 생각해 봐야 할 거예요. 미국은 우리를 혈맹이니 동반자니 겉으로 나불대면서 속으론 스피츠의 발에 낀 때보다 우습게 보는데도… 이럴 경우 아마 고조 할아버지라면 이런 말씀을 하시진 않을까요?

고조할아버지 목소리 들려오는 듯
“정신을 차리고 미국 실상을 봐라”

‘참 무지한 녀석이로군. 미국이 일본을 한국보다 더 중시하는 듯해서 신경 쓰이는 모양인데 다 쑈야. 정신 바짝 차리고 실상을 보거라. 미국이든 일본이든 프랑스든 누구든, 자기네 격에 안 맞으면 결코 친구로 삼아 주지 않아. 너희들 모두가 수고한 덕분에 한국 경제는 이제 그들과 어깨를 겯을 만큼 되었다지만, 정신 문화적으론 아직 그네들의 어릿광대 모방자 노릇을 하고 있잖느냐”.

“각 분야에서 돌출하는 아이돌이 더러 있지만 아직은 멀었어. 너희들의 평범이 비범 못잖게 그네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만 진정한 벗이나 동맹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지. 꽃이 흙 속에 뿌리박고 피어나 향기롭듯 천재와 영웅 또한 일반 민중의 기운을 받아 성장해야 진실하다는 사실을 그네들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미국이 때때로 너희들에게 생떼 어거지를 부리는 건 아직 너희들의 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거야. 인격과 국격 모두… ”

“물론 의견이 백 퍼센트 합치하긴 어렵겠으나, 조선시대 사색당쟁보다 더 저열한 이전투구 벌이지 말구, 가능한 한 싸움을 하더라도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넘어 국익을 서로 생각해 페어플레이 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렇게 되면 이제 5대 강국도 너희를 넘보지 못하고 군사력과 문화를 겸비한 나라로서 존경하게 될 거야. 얘들아, 남북통일은 좀 미루더라도 우선 남한끼리나마 다양성 위에서 일통한다면 미국 또한 억지보다 이성적으로 대한민국을 상대하겠지.”

“미국은 현재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세계 패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전초기지로서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사드니 뭐니 잔뜩 배치하고 있는 속셈인 걸 왜 몰라? 한국은 이미 세계 5위권의 군사 대국인데 대체 왜 당당하지 못하고 옛날 초콜릿 얻어먹은 어린애처럼 미국한테 굽신굽신 빌붙으려 하냔 말이야. 그놈들이 미군 주둔비를 제 입맛대로 잔뜩 인상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느니 어쩌느니 협박을 하는 모양인데…”

“참으로 뻔뻔스러운 놈들이지. 하지만 세상만사 상대적이듯 그 도둑보다 너희들 자신 속에 더 많은 문제가 있는 거야. 폐일언하고, 가겠다는 사람 붙들지 말구 그냥 잘 가시라고 해 보거라. 그들은 가지 못한다. 아니, 결코 가지 않는다. 한국은 지정학적 가치만으로도 하나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얼빠진 바보의 보석함이랄까. 만일 너희들이 총명해져 자신의 진짜 값어치를 깨닫는다면 미국인들도 괄목상대해 제대로 대우해 주리라.” 


“아가들아, 주둔비를 줄 것이 아니라 되레 받아야 하느니. 너희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 땅에서 셋방살이하는 주제에 방세도 공과금도 일체 내지 않고 집안을 더럽히며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그들의 똥오줌과 정액과 가래침으로 더럽혀진 집안에 너희들은 살고 있느니라. 희희덕거리며, 형제자매끼리 서로 싸우며… 옛날 옛적 일본 식민지 시절에 그랫듯, 미국 또한 겉으론 우방 혈맹 하면서도 속으론 너희들이 이리저리 찢어져 증오하며 서로 싸우고 남북한 또한 가능한 한 영원히 통일되지 못한 채 갈라져 으르렁거리길 획책하는 것이다. 왜냐? 답은 아주 간단하다. 자기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부디 명심하기 바라느니라’ 마치 고조할아버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해요.”

가짜 뉴스

“미친 녀석 같으니라구! 할아버지를 빙자해 너 자신의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꼴이구먼. 제발 좀 정신 차려라! 우물 속 개구리처럼 꽥꽥거리지 말고… 세계 최강 최선진국인 미국 대통령도 코로나 바이러스 따윈 감기처럼 별것 아니라면서 국민의 자유를 부르짖는 판에 우리만 호들갑을 떨고 있다구!”

“그건 가짜 뉴스…” 

8촌 형은 두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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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