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땅따먹기’ 화성시 공장 도로, 무슨 일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09 09:10:12
  • 호수 14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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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 위로 화물차 왔다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농업진흥구역은 과거 ‘절대농지’라고 불렸다. 그만큼 농업진흥구역 땅은 무조건 농지로만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도 화성시의 한 자동차공장은 농업진흥구역 땅을 화물 도로로 사용했다. 이는 엄연한 불법용도변경이다. 이미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진 적 있지만, ‘인근 주민 사용’ ‘20년 동안 도로 사용’이라는 이유로 원상복구는 취소됐다. 하지만 도로를 사용하는 주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도 화성시는 제조업이 발달해 전국에서 손꼽히는 산업도시다. 제조업체 종사자는 22만5260여명으로 경기도 전체 제조업체 종사자의 17.3%를 차지해 31개 시·군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다. 이곳에 위치한 주요 기업 중에는 우정읍 매향리에 자리한 자동차 전문 A사의 공장(이하 화성공장)이 있다.

여의도 면적
20년간 사용

화성공장은 여의도 면적의 1.3배(약 100만평)에 달하는 세계적 규모의 자동차 공장으로 1989년에 완공됐다. 1997년에는 경기도 화성 3공장을 준공했고, 지난 1월18일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A사의 지난해 7월, 전년 국내 판매 실적을 보면 전년 동월 대비 6.6% 증가한 5만1355대를 판매했다. 해외에서는 20만6548대를 판매했다.

지난달 국산 자동차 판매 실적은 현대자동차가 5만5182로 38.4%, A사는 5만536대로 42.0%에 달했다. 제네시스(1만5205대) 11.6%, 쌍용자동차(5520대) 4.2%, 르노코리아 (3243대) 2.5% 순이었다.


A사가 항상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때는 회사 정리 절차를 끝냈고, 현대자동차는 A사를 인수 우선 대상 협상자로 국제 선정 입찰에서 낙찰해 자금 체결 후 선정됐다. 당시 ‘A사 살리기 국민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같은 부침 이후로 A사의 성장은 ‘국난 극복의 역사’라고 언급되기도 했다. A사 사장은 “새롭게 선보인 로고는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미래 모빌리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고객들의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킬 OO의 새로운 모습과 미래를 함께 지켜봐달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언급했듯 A사는 국산 자동차 판매 실적 1순위다. 이 같은 호실적에는 화성공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2년 전, 화성공장의 후문 도로를 두고 행정소송이 발생했다. 해당 도로는 도로명도 ‘A자동차로’라고 지정돼있으며 이용자는 화성공장으로 출퇴근하는 직원 및 자동차 관련 화물차 운전사다.

후문 출입문 용지 ‘농업진흥구역’
원상복구 명령했지만 법원서 취소

문제는 화성공장 후문 도로가 ‘농업진흥구역’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농지는 효율적 관리와 보전을 위해 ‘농업진흥구역’과 ‘농업보호구역’으로 나뉜다.

여기서 농업진흥구역은 농업 기반 정비사업이 시행됐거나 시행 중인 지역으로, 농업생산 또는 농지개량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용도로 토지를 사용할 수 없다. 정확히는 ▲농작물 경작 ▲다년생식물 재배 ▲고정식 온실 ▲버섯 재배 및 비닐하우스 ▲축사·곤충사육사 부속 시설 ▲간이 퇴비장 ▲농지개량 사업 ▲농막·간이 저온 저장고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지금은 농업진흥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1996년 이전에는 ‘절대농지’라고 불렀다. 이는 농지법에 잘 기재돼있다. 농지법 제32조(용도구역에서의 행위 제한)는 ‘농업진흥구역에는 농업생산 또는 농지개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 외에는 토지이용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정해놨다.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행위는 ▲어린이 놀이터 및 마을회관 ▲농업인 주택 ▲국방·군사시설 ▲문화재 등이 있다.

즉, A사는 화성공장 후문의 농업진흥구역 땅을 도로로 바꿔 불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문제로 A사는 화성시 우정읍장으로부터 ‘원상복구 이행 명령’을 받은 적 있고, A사는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걸었다. 화성공장 후문의 토지 원상복구를 취소시키려는 의도였다.

딱 봐도
화물도로

A사는 판결문을 통해 “해당 땅은 농업진흥구역이 맞지만, 화성시 우정읍장은 화성시 사무위임 규칙이 아닌 화성시 사무위임 조례의 농지법상 원상회복 사무 재위임 규정을 근거로 이 사건을 처분했는데 이는 권한이 없는 자의 처분으로 하자가 중대‧명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도로는 화성공장의 주유, 물류 도로고 인근 주민의 농업경영을 위한 농기계 등 중요 통행로로 도로 사용을 하지 못하면 화성공장 후문 출입로 폐쇄로 전체적 물류 흐름에 큰 차질이 발생하고 인근 주민의 농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며 “또 이 도로가 화성시장에게 건축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적법한 도로”라고 주장했다.

2021년 7월23일, 해당 행정소송에 대해 법원은 원고(A사)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고등법원 제1행정부는 “A사 도로는 화성공장 후문 출입로로 사용하고 있는데, 만약 이 도로가 폐쇄될 경우 전체 물류 흐름에 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화성공장은 국내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생산 비중 및 화성공장 후문 출입로 위치와 공장 구조를 따지면 A사에 경제적 손해를 끼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도로 인근에서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이 사건 도로를 농지 진·출입을 위한 통행로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사건 도로가 폐쇄될 경우 농기계를 이용한 농업경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농지법은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해 관리하는 용도인데, 폐쇄할 경우 주변 농지의 효율적 이용‧관리를 위해 적절한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버스 노선도 있다”고 밝혔다.

이로써 화성시의 원상복구 이행 명령은 무효가 됐다.

이 판단은 정확한 것일까? 위 판결에 따르면 화성공장 후문 출입로는 인근 주민이 드나들며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반대였다.

현장 가서 
확인해보니…


<일요시사>는 지난 1월 A사 화성공장 후문 출입문 도로에 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해당 도로는 대로변에서 화성공장 후문으로 직행하는 길로 10m 너비의 아스팔트 도로였다. 일반도로보다 폭이 훨씬 넓어 한 눈에 봐도 화물차가 쉽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도로였다. 이 도로 주변은 모두 농지 아니면 농로였다. 

<일요시사>가 화성공장 후문 도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것은 대형 화물차들이었다. 도로에 잠시 서 있었는데도, 화물차 수십대가 계속 지나갔으며 일반 승용차는 보이지 않았다. 해당 도로를 지나는 마을버스도 있었지만 하루에 2~3대만 운행해 볼 수 없었다.

인근 주민들이 이 도로를 이용할 가능성을 살펴봤다. 3시간가량 도로에 서서 지켜봤으나 주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애당초 이 도로 자체는 화성공장에 물품이나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화물차 통행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농기계가 다니는 용도로 쓰일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화성공장 후문에 방문한 시점은 한겨울이어서 농사를 짓는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농기계가 이 도로를 사용해서 농사를 짓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화성공장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되니, 차량이 끊이지 않고 줄을 서는 행렬을 볼 수 있었다. 화물차들도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지나갔다. 농기계의 최고속도가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느리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농기계는 화성공장 직원의 출퇴근 시간에 도로를 사용할 수 없다.

또 앞뒤로 화물차량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농기계로 통행을 시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시·A사 모두 “허가 기록은 없어”
끝없는 행렬…없으면 삥 둘러가야 

화성공장은 일반 회사처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일요시사>가 퇴근행렬 차량을 확인했던 시간은 오후 3시쯤으로, 이 시간에는 일반 승용차가 도로를 이용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인근 주민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게다가 인근 농지는 일반농로가 깔려 있어 굳이 화성공장 후문 도로를 이용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다만, 인근에 화성공장까지 이어진 농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당 후문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화성공장에 진입하는 데는 약 1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길을 잘 안다는 전제하에 승용차로 후문에서 정문까지 이동하는 데 7분 걸린다. 하지만 목적지가 후문에 가깝다면, 정문에서 후문까지 다시 돌아가야 한다. 결국 15~20분의 시간이 더 걸린다.

이마저도 길을 헤맬 경우,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일요시사> 취재진은 초행길이었던 만큼 길을 더 헤매야 했다. 정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즉, 후문 도로 폐쇄 시 A사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이 가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 땅은 여전히 농업진흥구역으로 A사는 불법으로 땅을 사용하고 있고, 해당 도로가 폐쇄되더라도 인근 주민에게는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도로는 A사의 편의에 따라 농업진흥구역 땅을 화물도로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화성시는 A사가 해당 도로를 공사할 때 어떤 방식으로 허가를 내준 것일까? 화성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도로가 만들어진 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현재는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 
허가해줬나

A사 관계자는 “이 도로는 신고와 민원이 들어와서 2019년에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져 행정소송을 했다. 20년 넘게 사용됐는데, 마을 주민이 사용하고 버스도 다닌다. 2021년 하반기에 원상복구 명령이 취소됐다”며 “그 이후로 추가 항소는 없었다. 황당한 것은 마을 주민이 민원을 넣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라며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고한 사람은 공익신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신고를 받았으니 시청은 원상복구 명령을 내린 것”이라며 “도로를 만들 때(허가 방식은) 화성시와 어떻게 논의됐는지는 듣지 못했다. 추측해보자면 도로가 논·밭으로 돼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비포장도로였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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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