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 개편’ 명지대 파문 풀스토리

잘못은 재단이 희생은 학생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파산 위기를 넘기고 한숨 돌린 명지대학교. 회생 절차에 매진하는 가운데 또 다른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학교가 일부 순수학문 폐과 계획을 담은 학사구조 개편안을 교육부에 제출한 탓이다. 해당 학과 구성원은 물론, 교내 여론 대다수가 반대 의사를 표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재단이 초래한 재정 위기를 애먼 교내 구성원의 희생으로 극복하는 모순적 상황. 한술 더 떠 ‘희생 방식’마저 강제하려는 태도에 ‘희생양’들은 뿔이 났다.

“철학과 없애면 그게 종합대학인가요?” 이달 초 <일요시사>와 만난 한 명지대학교 타 과생은 이같이 일갈했다. 원론적인 반문에서 시작된 작심 비판은 재단(명지학원)과 학교의 구체적 실책에 관한 지적으로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재단이 자초한 재정 위기와 학교의 비민주적 여론 수렴 과정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회생안
통폐합

명지대학교는 지난해부터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명지전문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명지대 일부 학과도 통폐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는 모두 학교법인 명지학원에서 운영 중이다. 여기에 재단이 함께 운영 중인 명지초·중·고까지 합치면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재단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는 등 안정적인 재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후 전임 이사장의 무리한 부동산 개발, 재단 사유화 시도 등으로 악재가 누적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재단이 떠안은 부채액은 2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채권자에게 파산·회생 신청을 당하면서 재단 존속 여부가 잠시 불투명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해 법원과 교육부가 재단 측 회생안을 받아들이면서 파산 위기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당시 재단은 회생안에서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일부 부채를 메우겠다고 밝혔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은 본격적인 회생 절차에 돌입하기 위한 필수 밑 작업인 셈이다.

교내 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위)와 컨설팅을 맡은 삼일회계법인은 전공 경쟁력·학생 수요 등을 기준 삼아 적극적인 학사구조 개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제시한 통폐합안 초안에서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바둑학과 등을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했다. 대부분 순수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다.

특히 통추위는 철학과의 폐과 추진 사유를 “자퇴자가 많고 외국인 유학생 유입이 적어 등록금 창출 기여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철학과는 반발했지만, 결국 통추위는 철학과 등의 폐과 계획이 담긴 개편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2월28일 교육부에 제출됐다.

순수학문 위주 일부 학과 폐지 예고
교내 반발에도 강행 시사…불통 비판

지난달 철학과 교수진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통추위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교수진은 입장문에서 “철학과 교수의 연구 실적과 학생의 취업률은 비교 대상인 서울시 내 소재 대학 중 중간 정도를 차지했다. 명지대학교 수준을 훨씬 상회하고 인문대 내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는 통추위가 철학과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학과 실적 지표만 선택적으로 제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비교적 정원이 적은 철학과는 몇 명만 결원이 생겨도 그 비율이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자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걸 지적하기 이전에 이 같은 맥락을 참작해야 한다”며 “그런데 다른 긍정적 지표들은 외면한 채 오해의 소지가 있는 지표를 근거로 드니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내 일각에서는 “통추위가 폐과 대상을 입맛대로 정해두고 자료를 짜맞춘 것 같다”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교수진은 통추위 결정이 상업주의적 판단에 매몰됐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입장문에 “통추위와 학교의 구조조정안은 ‘순수학문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하고 응용학문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편견에 기초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전체 구상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고 상업주의적”이라며 “철학도 충분히 응용적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의 학문적 성격과 사회적 효용에 무지한 통추위와 대학은 철학과를 인문캠퍼스 25개 학과 중 유일하게 쓸모없는 학과로 낙인찍어 폐지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다른 교내 구성원들도 이 같은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명지대-명지전문대 통합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폐과 등 학사 구조개편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통합 사안과 개편 사안 자체를 분리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교직원·학생
집단 반발 중

교내 5개 조직(인문·자연총학생회, 인문·자연교수협의회, 대학노조 명지대지부)은 지난해 11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개편안이 부실하게 작성된 점 ▲구성원과의 협의가 미흡했던 점 ▲개편안이 통합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점 ▲폐과 및 폐과에 준하는 개편안은 교육부 필수 요구조건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통합안 재작성’을 촉구했다.

대학 내 최고 의결기구인 대학평의원회 역시 지난해 12월16일 표결에서 통추위의 학사구조 조정안을 부결했다. 총장 요청으로 재심의가 이뤄진 같은 달 29일에도 심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학교 측이 전체 구성원에게 ‘통합’ 동의 여부를 물었을 때, 80%가 훌쩍 넘는 동의율이 나왔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에 통추위 및 학교 측 관계자는 대학평의원회 측에 “지금까지 교육부에 통폐합을 신청한 학교 중 평의원회 동의를 지참하지 않은 선례가 없었으므로, 통합을 위해서라도 (통합안 및 개편안을) 추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일부 학과의 폐과 여부를 재고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이들은 일부 학과의 폐과 대신 개편안을 제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학과는 응용통계학과, 물리학과는 융합에너지공학과로 개편될 계획이다. 다만 철학과와 바둑학과는 여전히 폐과 대상이다.

대학 평의원회는 이달 초 관련 안건을 재논의했다. 평의원회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통합안에 우선 동의하되, 조건부 동의 의사를 강조하기 위해 별지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별지에는 ‘향후 정원 증원 가능성이 발생했을 때 철학과와 바둑학과의 폐과 철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를 권고’ ‘통폐합 추진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성원의 의견 수렴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작금의 사태 
구조적 모순

<일요시사>는 학교 측 입장을 듣기 위해 통추위 고위관계자에게 이메일로 질의서를 송부했다. 해당 관계자는 답신에서 “교육부 심의가 진행 중인 사안에 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대학은 구성원과 간담회·공청회를 진행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최선의 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용이 수정되고 발전적으로 변경됐다”고 밝혔다.

학사 조정에 얽힌 지표 선택 논란에 대해서는 “대학의 학사구조 조정은 대학서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매우 중요한 업무”라며 “이를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경쟁력 지표 등은 기밀사항 중 하나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내 구성원들은 현 사태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학교가 통폐합을 사실상 강제로 진행하게 된 데에는 재단의 책임이 큰데, 이로 발생한 피해는 애꿎은 구성원들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구성원들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애교심을 가지고 희생을 결심했는데, 재단과 학교가 구성원들을 최대한 보호하기는커녕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재단을 둘러싼 빚더미 대부분은 유모 전 이사장 때 만들어졌다.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자 명지건설 회장이었던 유 전 이사장은 무리한 사업으로 부도 위기에 놓인 명지건설을 살리기 위해 재단을 끌어들였다. 재단의 알짜 자산을 명지건설이 가져가는 대가로 재단에 명지건설의 적자 사업을 떠넘겼다.


명지대 관련 공사는 명지건설이 모두 맡는, 일감 몰아주기가 발각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유 전 이사장은 임금 돌려막기, 기금 횡령 등을 일삼다가 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2012년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돼 2018년 출소했다. 채권자가 신청한 파산·회생 절차 또한 유 전 이사장 재임 당시 재단서 진 빚에 근거한 것이다.

현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유 전 이사장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도 필수 아니라는데…폐과 추진, 왜?
파산 초래한 재단, 구성원 희생 강요 논란 

하지만 유 전 이사장의 친·인척은 여전히 재단과 학교 요직을 맡고 있다. 2020년 교육부는 부실 재정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포함한 재단 이사 10명과 감사 2명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하고, 관선이사 파견을 추진하기도 했다. 재단 측은 가처분신청과 본안소송 등을 통해 이를 저지했다.

재단의 실책은 계속됐다. 얼마 전 재산을 큰 폭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이를 그르치며 입길에 올랐다(1364호 명지대 위험한 땅거래 내막). 2020년 재단은 교육부의 협조를 얻어 교내 유휴용지 매각에 나섰다. 인문캠퍼스 인근 부지 일부(면적 172㎡)와 자연캠퍼스 16개 필지(면적 36만5273㎡)가 그 대상이었다. 

당시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대상 부지들은 교육부의 매각 허가가 있어야만 처분할 수 있었다. 

교육부는 재정이 어려운 재단 측 사정을 고려해 절세 및 교육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유휴용지 처분을 먼저 권유했다. 하지만 2021년 재단은 교육부령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매각 계약을 진행하다가 이를 교육부 정기 감사에서 발각당했다. 

교육 재산 소유권은 매각대금을 모두 받은 뒤 넘겨줘야 하는데, 당시 재단은 계약금만 받은 채로 부지 소유권을 매수자에게 넘겨줬다. 이는 일반 개발사업 중 흔히 볼 수 있는 매각 방식이다. 미리 넘겨받은 소유권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대출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선 엄연히 불법이었다.

결국 교육부는 재단에 연말까지 매각대금을 회수할 것을 지시했지만, 재단은 잔금 확보에 실패했다. 교육부가 매각 허가를 취소하면서 재단의 재산 처분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2월 명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매각 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지만,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시적으로 답보상태에 놓였어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재단은 지난해 5월부로 해당 부지에 매매계약 해제에 따른 가처분신청을 걸어둔 상태다.

좌절된 매매계약 규모는 약 43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진행만 됐다면 명지대 어반캠퍼스 준공비용(약 500억원 추산) 대부분이나 채무 상당 비율을 메울 수 있었을 만한 액수다.

계속될
책임론

지난해 들어 교육부의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당 부지를 처분할 길도 재차 열린 것으로 보인다. 채무 변제 자체가 쉬워지면서 “한숨 덜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교내 여론이 꾸준히 재단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만큼, 관련 논란에 대한 비판과 ‘철학과 구명 운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철학과 관계자는 <일요시사> 측에 “학교 측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과 구조적 모순을 끝까지 지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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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