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 10·29 분향소 불법 논란

원칙맨 시장님 책임은 모르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6개월이 돼간다. 유가족들은 최근 녹사평역 부근에 설치됐던 분향소를 서울시청 광장으로 옮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를 두고 허용한 적 없는 ‘불법 설치’라고 규정했다. 지난 15일 오후 1시까지 자발적 철거가 없을 시 행정대집행을 강제하겠다고 밝히면서 충돌이 예상됐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도의·정치적 책임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말이다.

“도의·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게 따지면 서울시의 참사 사후 대처에는 하자가 없었는지 되묻고 싶다.” 지난 15일, 서울시청 광장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만난 유가족의 말이다. 현재 ‘불법 설치’로 규정된 분향소는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유족들은 몸으로라도 막아 철거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평행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감 있는 행보를 보이지 않는 한 이들 간 마찰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 유족 측은 서울광장에 설치한 분향소 철거와 관련해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다. 서울시는 소통창구를 열어놓겠다고 밝혔으나 행정대집행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유족과의 대치는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서울시가 철거 기한으로 명시한 이날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의 위법 행정을 규탄한다”며 “시는 더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지우려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서울광장 분향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신고 의무가 없는 ‘관혼상제’에 해당해 적법한 집회라고 주장했다. 또 서울시가 유족 측에 계고장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언론에 전달했다고만 말해 행정대집행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6일 ‘분향소를 2월8일 오후 1시까지 철거하라’는 내용의 2차 계고서를 전달한 뒤 7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이날 오후 1시까지로 기한을 유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주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이날 회견에서 “절차적으로 유족은 합법적·적법한 계고 통지를 받은 바 없다”며 “계고 통지는 언론을 통해서 하는 게 아니다. 누가 그걸 해야 하는지 명확히 특정해야 하는데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에도 참사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행정대집행에 가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종철 협의회 대표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우리와 같은 참사 유가족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유족, 녹사평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옮겨
“행정대집행 강행 불가피” 원칙 내세운 오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도 이날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오세훈 시장은 강제 철거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유족이 원하는 장소에 분향소 설치를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유족 측 기자회견 직후 입장문을 내 “유가족이 15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 없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유족과 서울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나 시가 재차 대화를 요청한 만큼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오 시장이 분향소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까지 원칙론을 꺾지 않는 이유는 향후 광장 사용 관련 행정 원칙이 흔들리게 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특별시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시에 사용신고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광장을 무단으로 점유하면 변상금 부과 대상이다.

오 시장의 원칙론이 자칫 역풍으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분향소 설치 당일 행정집행 계고장을 보낸 것은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타협조차 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15일,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에 대한 서울시의 강제 철거 움직임은 과거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해 취했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당초 2019년 4월 광화문광장에 설치됐으나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2021년 11월 서울시의회 앞에 임시 이전됐다.

광화문광장은 지난해 8월 재개장했지만 세월호 기억공간은 원래 있었던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로 임시공간 운영 기간이 지났다며 단전·단수를 통보하는 등 사실상 철거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경찰 대치 평행선 ‘일촉즉발’
무혐의 공직자 사실상 재수사

이태원 참사 사고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수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지난달 13일, 공무원 등 23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1차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사실상 사건을 원점서 수사 중이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대형 재난 사건을 처음으로 맡은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하지는 않았는지 따져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참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이들이 대거 검찰에 넘겨졌지만 특수본은 유족과 여론의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오 시장을 포함해 윤희근 경찰청장 등 ‘윗선’ 인사들은 한 차례 소환조사도 없이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 소방노조의 고발에 따라 피의자로 입건됐지만 소환조사를 피해갔다. 이 장관에 대한 1차적 수사권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특수본은 이 장관 수사에 유난히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2개 이상의 구에서 중첩적으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한 용산구의 상급기관인 서울시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오 시장 등 서울시 공무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무적·정치적’ 책임이 아닌 법리에 따른 책임만을 물은 셈이다.


서울서부지검 수사팀은 안전사고 전문인 대검찰청 최정민 검찰연구관을 파견받아 대대적 보강수사에 착수했다. 최 연구관은 2014년 10명의 희생자를 낸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를 수사하고 안전사고·재난·재해 분야 2급 공인전문검사(블루벨트)로 인증받아 검찰에서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대화 끝?

검찰 보강수사에서 이임재 전 용산서장의 허위공문서작성 혐의와 관련해 정현우 용산서 여성청소년과장(경정)이 추가로 입건돼 기소되는 등 경찰 수사의 허점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특히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송치된 김광호 서울청장을 지난달 18일과 26일 잇따라 압수수색하는 등 경찰보다 강도 높게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아직 기소하지 않은 피의자들의 혐의를 다지는 동시에 경찰이 무혐의 처분한 이 장관과 윤 청장의 수사기록도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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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