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먼 과거가 아닌 1990년대. 30대를 중심으로 90년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2040세대들의 복고열풍이 거세다.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의 잇따른 인기로 대중문화 곳곳에 추억 감성이 스며든 것. 그렇다면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공감 아이템들은 어떤 것일까.
원조 아이돌 그룹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하고, 다마고치(휴대용 전자기기 상의 애완동물)를 키우고, ‘드르르’ 울리는 삐삐진동에 내 마음도 떨리던 시절. 전화선을 연결해 PC통신을 하다 수화기를 든 가족 때문에 통신 연결이 끊기고, 드라마<별은 내 가슴에>를 보며 울고 웃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추억이라는 값진 유산을 안겨준 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땐 그랬지’
그러나 대중들은 여전히 90년대 향수에 젖어있다. 드라마 속 추억이 묻어나는 소품들과 일련의 사건들이 잠자고 있던 과거 기억들을 도드라지게 만든 것. 이 가운데 최근 90년대 학창시절 아이템에 관한 이색적인 설문결과가 발표 돼 눈길을 끈다.
결혼정보업체 바로연이 최근 29∼35세의 미혼남녀 회원 752명을 대상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이성에게 마음을 표현했던 수단’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삐삐’가 1위에 꼽혔다.
전체 응답자중 40.1%는 “‘삐삐’의 음성사서함 또는 ‘1004’, ‘486’ 등 번호를 통해서 마음을 전했다”고 답했으며, ‘손편지’(38.7%), ‘141 전화사서함’(17.3%) 등이 뒤를 이었다. ‘141 전화사서함’은 각 개인의 전화사서함을 통해 음성을 자유롭게 녹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기능으로 현재까지도 KT에서 운영 중에 있다.
직장인 박모(33·남)씨는 “요즘은 휴대폰으로 TV도 보고 인터넷도 바로바로 검색할 수 있게 됐지만 삐삐는 정말 추억이 많이 담긴 물건이다”며 “삐삐가 오면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음성 확인할 때 떨리는 기분이란….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때 그 설레임이 무척이나 그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35·여)씨도 “친구들이랑 삐삐처음 생겼을 때 공중전화기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며 “숫자를 찍을 때도 5242012(우리사이영원히), 1010235(열열이사모) 등의 암호를 남기며 참 행복해했었는데, 그때기억이 새록새록하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학창시절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패션 아이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삐삐’가 1위로 꼽혔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남녀 모두 1위에 ‘삐삐’를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꼽았다.
‘삐삐’외에도 남성들은 힙합바지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꽈배기 허리띠, 알라딘 구두, 엘레쎄, 헤드 등 트레이닝복을 꼽았으며, 여성들은 쟌스포츠 백팩, ‘워크맨’으로 불렸던 휴대용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다마고찌, 스티커사진 열쇠고리 등을 꼽았다.
영화·드라마 등 복고열풍 “당시 노래·상품 유행”
삐삐·HOT·손편지·힙합바지·워크맨 ‘추억 자극’
직장인 이모(32·남)씨는 “워크맨, DDR, 다마고치, PC통신 그리고 그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의류브랜드 등 드라마 사이사이 깨알같이 녹아있는 소품과 장치들은 그 시대 잘 나가는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며 “성적을 빌미로 부모님을 괴롭혔던 그 물건들, 지금은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졌지만 그만큼 낭만은 줄어든 현실에 각박함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이에 바로연 결혼정보 매칭팀장은 “영화, 드라마 등으로 복고열풍이 불고 있다. 노래, 소품 등을 통해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는 미혼남녀들이 많다”며 “선선한 바람으로 데이트 하기 좋은 요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데이트코스도 이성에게 큰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같은 복고열풍으로 최근에는 옛 장소, 옛 상품 등을 찾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CJ몰에서는 <응답하라 1997>에 노출됐던 90년대 인기 제품들을 모아 판매하고 있는데 호응이 좋다. 먼저 드라마 속 90년대 명곡들과 하이라이트 영상 등이 담긴 ‘응답하라 1997 감독판 OST’는 오는 27일 발매를 앞두고 예약판매 3천장을 완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유행했던 반지디자인을 복원한 커플링 ‘응칠반지’를 비롯해 게스 오리지널 티셔츠, 방울머리끈, 가방 이스트팩 등 추억의 상품들도 잘 팔리고 있다.
옥션이 ‘올킬 세일’을 통해 선보였던 잔 스포츠 가방은 총 500여개가 하루 만에 매진됐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리듬에 맞춰 스텝을 맞추는 게임기인 ‘DDR’도 드라마 이후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5%나 늘었다.
복고열풍은 패션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90년대의 대표적 유행 스타일이었던 ‘청남방’이 상반기 히트상품으로 뽑힌 데 이어 올 가을에도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 아디다스, 푸마 등 주요 의류와 신발브랜드에서 군복패션(밀리터리룩), 항공점퍼, 운동화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빈티지(Retro Vintage)가 강세”라고 전했다.
오∼나의 90년대여!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그렇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라는 극중 윤제의 마지막 말로 9주간의 여정을 끝낸 <응답하라 1997>. 비록 드라마는 끝이 났지만 대중들의 진한 여운은 오랜 시간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된 요즘, 삐삐의 촌스러움이 더 그리워지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