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후폭풍’ 경찰 속수무책 속사정

그럼 그렇지∼ ‘까라면 까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류삼영 총경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중징계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내부 불만이 급속도로 퍼지는 분위기다. 윤 청장이 ‘경찰 대표자’가 아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오른팔’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도 윗선 수사를 시작하지 못한 상황. 특히 이 장관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류삼영 총경의 중징계 소식을 접한 경찰 대부분은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신뢰를 내려놨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윗선 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개입 의혹 수사조차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분노는 커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중징계 확정
청장이 요청

경찰청 중장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는 지난 13일 류 총경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앞서 류 총경은 지난 7월23일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총경회의 주최를 주도했다가 상부의 해산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경찰공무원 징계 규정상 정직은 파면·해임·강등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에 해당한다. 징계위는 류 총경이 징계위에 회부된 언론 인터뷰를 이어나간 행보를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복종·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다.

류 총경은 서장회의를 중단하라는 경찰청장의 명령은 정당한 지시가 아니고, 언론 인터뷰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총경에 대한 중징계 처분에는 윤 청장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지난 9월 경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나 윤 청장은 시민감찰위 권고와 달리 류 총경에게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요구했다.

류 총경은 징계위 결정에 대해 즉각 불복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 총경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장도, 경찰인권위원장도, 경찰 내부에서도 계속 (저를)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도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며 “권력을 쥔 소수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류 총경은 징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하고, 구제받지 못하면 법원에 징계 결정 취소소송도 낼 계획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류 총경의 ‘중징계’를 요구한 윤 청장을 향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경찰 내부망 ‘폴넷’에는 ‘윤희근 경찰청장님이 부끄럽다’는 글도 올라왔다.

언론 수차례 접촉…품위 위반 정직 3개월
윤희근·이상민 등 윗선 향한 분노서 그쳐

작성자 A씨는 “청장은 내정자 시절 수많은 부하직원들의 반대만 아니라 (경찰국 신설에)법률적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찰국 설치에 찬성했다”며 “정작 경찰국 논의를 하겠다는 류 총경에게는 중징계를 의뢰했는데, 저는 당시 정치권으로부터 류 총경을 보호하기 위한 청장의 묘수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A씨는 ‘이태원 참사’ 국면에서 윤 청장이 보인 모습까지 비판하며 “청장 자리는 부하직원들의 과실에 대해 칼질을 해대는 자리가 아니라 무한대의 책임을(지는 것)”이라고 했다. 윤 청장이 지난달 1일 “(참사)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발표하자 경찰 내부에선 “책임을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A씨는 “경찰청장이라는 자리는 부하직원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자리가 아니다”며 “저는 윤 청장이 우리의 수장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윤 청장을 향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경찰직협은 “당시 회의(총경회의)는 휴일에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서 이를 중단하라는 직무명령이 적정했는지 의문이고, 과거 검사회의와 비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류 총경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과 윤 청장에 대한 일부 경찰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 윗선을 향한 특수본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올 정도다. 우선 특수본은 지난 13일 오전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된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 전 부장은 용산경찰서 정보과가 생산한 핼러윈 인파 급증 예상 보고서를 서울시내 31개 정보과장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삭제하도록 취지의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김 전 과장은 이 지시를 받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을 회유·종용한 혐의로 입건됐다.

묘수?
꼼수?

특수본은 보고서 삭제에 가담한 용산경찰서 정보과 직원 A씨 역시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특수본은 A씨의 경우 위계에 의해 본인 직무 밖의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 삭제 과정에서 김 청장이 관여한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참사의 핵심인 현장 책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5일 기각되면서 전반적인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이후 특수본은 두 피의자를 세 번째 소환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보강수사에 열을 올렸다. 이번 주 중 두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한다는 계획도 잡았다.

앞서 특수본은 지난 11일 오전 10시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청 마포통합청사로 이 전 서장을 소환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엿새 만이자, 이 전 서장만 총 세 번째 소환 조사다. 이 전 서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만 적시됐다.

당시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번 소환 조사에서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현장에 도착한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실제 오후 11시5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 보고서에는 오후 10시17분에 도착한 것으로 기재돼있었다.

이와 함께 특수본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관련해서는 ‘공동정범’을 적용하는 방향으로도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다.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도 ‘과실의 공동정범’ 법리가 받아들여진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서장의 단독 과실로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지만, 경찰·구청·소방·교통공사 등 관련 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참사가 발생했다고 법리를 구성하면 인과관계 입증이 수월해진다는 게 특수본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법리 구성을 하게 될 경우 업무 과정에서 사소한 과실이 있는 공무원도 전부 포함될 수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원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업무상과실치사상 공동정범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숨 돌린
수뇌부

결국 특수본이 이 전 서장에 대한 영장 재신청 시 공동정범 여부 등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관한 보강수사는 물론,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도 추가 분석해야 하는 등 해결 과제는 늘어나게 됐다.

특수본이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윗선 수사에도 속도감이 생길 수 있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피의자는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책임 주체로서 비교적 과실이 뚜렷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들에 대해 무혐의 또는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나오면 김 청장이나 윤 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구속 지연은 경찰 외에 소방이나 구청 등에 대한 수사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수본은 지난주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곧바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영장을 신청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입건한 이태원 참사 관련자 대다수가 이 전 서장, 송 전 실장과 같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는 점이다.

특수본은 피의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구청 등의 미흡한 대처, 즉 과실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기초적 수사 스탠스가 초반부터 흔들리게 되면 한 달이 지난 특수본의 수사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수사 동력을 잃는 등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한다고 해도 윗선 수사가 더 큰 난제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 기관 수사는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고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도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기댈 곳은 특수본뿐인데…용두사미 조짐
헛도는 수사…업무상과실치사상 적용 어려워

게다가 최근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유가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가 유가족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정치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특수본 소속 경찰관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수사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복수의 경찰 간부들은 “특수본 관계자들이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성과를 내려 애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청 한 간부는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혐의 입증을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어제 특수본 후배를 만났는데 정말 힘들어 한다. 윗선 수사에 미적거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정말 억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인과관계 입증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적 증거와 논리가 퍼즐처럼 들어맞아야 한다. 또 다른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분을 할 수도 없어서 애쓰고 있다”며 “유족들이 실망하지 않을 결과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유가족과 경찰 내부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이 장관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12일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에 대해 “해임은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진상 확인과 실체 규명이 이뤄져야 책임 소재도 가려낼 수 있다는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은 이날 인사혁신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수사와 국정조사 이후 확인된 진상을 토대로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도의적 책임이나 야당의 공세를 이유로 경질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부끄럽다”
비판 확산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은 해임 건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이상민 문책론’을 부정하는 듯 비쳐 자칫 유가족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부대변인이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며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최대의 배려이자 보호”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출근길에서 국회 해임 건의에 대한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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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