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구청-해밀톤 이태원 카르텔 막후

살아야 했던 상인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핼러윈 데이 비극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담당 기관들의 부실·소극 행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안일했던 대응에 사과했으나 도의적 책임을 지는 이는 없는 상황이다. ‘경찰이 경찰을 수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 상권을 장악한 해밀톤 호텔 간 유착 의혹까지 제기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태원 상인연합회와 해밀톤 호텔은 사실상 한 몸이라고 불린다. 해밀톤 호텔 간부가 상인회 간부를 맡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밀톤 호텔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경찰뿐만 아니라 용산구청 및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상인회는 수백억원대 자산을 가진 해밀톤 호텔 대표의 문제점에 대해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들의 카르텔에 대해 사실상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상권 장악
막강 인맥

해밀톤 호텔 이상용 대표이사는 불법 증축으로 호텔 주변 골목을 좁혀 참사 규모를 키웠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는 구청 출연기관 이사장과 경찰발전협의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용산구 유관 단체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 때문에 해밀톤 호텔 불법 증축물이 강제철거가 돼야 했음에도 10년 가까이 이행강제금을 내며 버텨올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2020년 5월부터 2년간 용산구 조례에 근거해 운영되는 용산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용산복지재단 이사장 자리는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을 구청장이 임명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용산구청과의 관계가 시작된 셈이다.

당연직 이사로 용산구 주민복지국장 포함돼있고 구청으로부터 자원봉사센터 운영을 수탁받는 만큼 용산구청과의 관계는 불보듯 뻔하다. 특히 구청에서 퇴직한 공무원이 재단으로 소속을 옮기기도 해 사실상 낙하산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 바 있다.


이태원 지역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자산가로 알려진 이 대표는 참사 발생 두 달 전인 8월17일, 용산구 통합방위협의회에 민간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날에는 박 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도 자리했다.

2000년대 초부터 해밀톤 호텔이 용산구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면서 용산구상공회 고문과 용산구 구세심의위원회 외부위원까지 맡았다. 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용산구협의회장까지 역임해 정치권과의 관계도 유지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산구의회 관계자는 “용산구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 대표의 관계가 굉장히 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용산구 유관기관과 단체에서 이 대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주장했다.

호텔 대표, 유관기관·단체와 깊은 친분
불법 증축 미철거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이 대표의 손길은 경찰에까지 뻗쳤다. 2012년부터 용산경찰서 경찰발전협의회(경발협) 위원으로 활동해온 것이다. 경발협은 경찰과 지역사회의 협력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로 지역주민들이 경찰서의 치안정책 등에 대해 조언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되기에 소속 위원들은 자연스럽게 경찰 간부들과 친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발협은 2018년 ‘버닝썬 사태’ 당시 경찰과 지역 유지들의 유착 통로로 지목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 대표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 출범 이후에야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수본이 적용한 건축법과 도로법 위반 혐의는 경찰도 이태원 참사 이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2013년 용산구청이 해밀톤 호텔의 불법 증축물을 적발했음에도 호텔이 5억553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내며 시정조치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표와 용산구와의 긴밀한 관계가 작용했다는 주장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언론 보도를 통해 해밀톤 호텔과 구청 등의 유착 의혹이 제기된 사실을 알고 있다. 현재 확인하고 있다”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엄정하게 처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수상한
연결고리

해밀톤 호텔은 용산구 랜드마크로 꼽힌다. 부동산 가치만 1500억원 가까이 되고 보유 현금이 약 130억원에 이른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해밀톤 호텔 운영회사인 해밀톤관광의 지난해 말 보유한 이태원 토지의 공시지가는 1499억원으로 집계됐다.

해밀톤 호텔 일대의 5558.46㎡ 면적의 부지를 보유 중인 해밀톤 호텔은 해당 부지를 86억원에 취득했다. 공시지가가 취득가의 17배에 달했다. 호텔은 부동산 장부 가치를 158억원으로 회계 처리했다.

이태원 일대의 1500억원대 부동산을 확보한 해밀톤 호텔은 고 이철수 회장이 1973년에 완공했다. 자금 조달 문제로 우여곡절 끝에 호텔을 열었으며 2015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리모델링 시점 직후에 불법 증축물인 분홍색 철제 임시벽이 설치됐다는 관측이 많다.

불법 증축물을 철거하지 않은 까닭으로는 매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밀톤 호텔은 2010~2019년까지 매년 2억~3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면서 수십억원대 영업손실이 났다.

2~3년간 적자가 났지만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 이익잉여금은 209억원에 달했고 같은 기간 부채 비율은 49.8%에 불과한 사실이 해밀톤 호텔이 버틸 수 있었던 비결로 보인다. 해밀톤 호텔은 이 회장의 장남인 이 대표 등 그의 일가족이 지분 86.2%를 보유 중이다.

일부 상인들은 이태원에서 유흥업소와 술집 등을 운영하려면 이 대표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사실상 이태원의 상권을 장악했다는 주장이다.

상인회 윗선 지목 사실상 갑 위치
“불만·항의 시 장사 접을 각오해야”

이태원의 한 상인은 “한 달에 수억원의 매출을 올려도 해밀톤 호텔이 갑에 위치해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보면 된다”며 “불법 증축물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해도 정치권 인맥과 용산구 유관기관 카르텔이 심하기 때문에 제대로 해결된 적이 전무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상인도 “이 대표에 대한 문제나 항의를 하면 이태원에서 장사를 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쉽사리 나설 수 없었다”고 했다.


특수본은 최근 이 대표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 대표 등의 휴대전화 5점과 건축물 설계도면을 분석 중이다. 해밀톤 호텔의 불법 증축 건축물과 이태원 참사 인명피해의 연관성도 확인할 계획이다.

또 용산구청 관계자를 이틀 연속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박 구청장의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박 구청장은 핼러윈 기간 안전사고 예방대책 마련을 소홀히 하고 참사에 부적절하게 대처한 혐의 등으로 입건돼 수사받고 있다.

특수본은 용산구청이 핼러윈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했는지, 실제 어떤 업무를 이행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중이다. 지난 4월 용산구의회에서 제정된 이른바 ‘춤 허용 조례(서울시 용산구 객석에서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일반음식점의 운영에 관한 조례)’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중이다.

문제 제기
안 해? 못해?

일반음식점에서도 음향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을 출 수 있게 허용한 조례 탓에 참사 당일 일대 업소들이 클럽처럼 운영되면서 피해가 커졌을 가능성 등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용산구청이 재난문자 발송을 지체한 이유도 살펴보고 있다. 용산구청은 참사 직후 재난문자를 발송해달라는 정부와 서울시 요구에도 78분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특수본 수사가 시작된 이달 7일에야 해밀톤 호텔을 포함한 불법 증축물 7곳을 경찰에 뒤늦게 고발했다.


특수본은 용산경찰서 간부가 참사 발생 후 핼러윈 기간 안전을 우려하는 내용의 정보보고서를 부당하게 삭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용산경찰서 소속 정보관들을 불러 진술을 들었고 관련자 추가 조사와 압수물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삭제를 지시한 용산경찰서 정보과장과 정보계장을 소환할 방침이다.

특수본은 용산서 정보과 간부들에게 다른 직원을 시켜 정보보고서를 작성한 정보관의 업무용 PC에서 문건을 삭제하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을 회유·종용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증거인멸·업무상 과실치사상)가 있다고 보고 입건해 수사 중이다.

또 보고서 삭제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성민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도 관련자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소환할 계획이다. 박 부장은 용산서를 포함한 일선 경찰서 정보과장들이 가입된 메신저 대화방에서 “감찰과 압수수색에 대비해 정보보고서를 규정대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행안부와 서울시의 참사 책임에 관해서는 사실관계를 추가로 파악한 뒤 적용할 법리를 검토하기로 했다. 혐의 관련성이 있고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강제수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본격 수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수본 유착 의혹 수사 검토
수사 칼끝 정치권 향할 수도

김동욱 특수본 대변인은 지난 16일 언론 브리핑에서 행안부 압수수색 여부에 대해 “수사에 필요한 절차는 모두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 7명을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 중이지만 추가 피의자가 나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지난 14∼15일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을 비롯한 재난안전 관련 부서 직원들을 잇따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이들 조사와 법리검토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이 장관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할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특수본은 이 장관이 경찰 지휘·감독 책임자로서 지위는 물론 재난을 예방·수습할 직접적인 법적 책임을 갖는지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단순히 경찰을 지휘·감독하는 수준을 넘어서 재난 발생에 직접 책임을 지는 당사자로 인정되면 직무유기는 물론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장관이 재난을 방지하고 수습하는 정부부처 수장으로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에 참사가 발생했다는 법리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특히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 국가가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지 들여다본 후 이 장관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특수본은 “행안부 직원들 참고인 조사를 통해 (이 장관의)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 의무가 존재하는지 등을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 등 경찰 소속 피의자들의 참사 책임 여부도 신중히 들여다보고 있다. 특수본은 경찰 현장 책임자였던 이 전 서장이 현장에 늦게 도착한 경위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당시 수행원과 용산경찰서 직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또 이 전 서장이 핼러윈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현장 책임자로서 안전조치를 충분히 했는지 따져보기 위해 이날 오후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특수본은 경비과장 등 용산경찰서 직원들을 상대로 이 전 서장이 참사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한 것처럼 상황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캐물을 예정이다.

봐주기 논란
의식한 경찰

경찰청 특별감찰팀이 수사를 의뢰한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과 서울경찰청 상황3팀장도 조만간 불러 조사한 뒤 입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특수본은 이들에게 참사 발생 사실을 윗선에 제때 보고하지 않아 경찰 보고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적절한 사고수습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특별감찰팀은 이들에게 어떤 범죄 혐의를 물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는 않았다. 특수본은 당사자와 관련자 진술을 모두 살펴 입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