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부가 대부업권에 어려운 서민들에 대해 서민금융 정책 공급을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불법 사금융을 수사·단속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불법 사금융은 여전히 횡행 중이다. 이 와중에 대부업권에선 정부에 대출금리를 높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대부금융협회와 함께 대부업권의 서민층 신용 공급 현황에 대한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금융당국은 대부업권의 서민층 신용 공급 현황 및 자금조달 동향 등을 점검하고, 대부금융 협회의 의견을 청취했다.
서민 위해?
이날 회의에서 금융당국과 대부금융 협회는 최근 경제 여건하에 대부업권의 신용 공급이 크게 줄어들면 서민층의 어려움이 늘어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금융당국은 대부업권이 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서민층의 신용 공급에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금융당국은 대부업권의 신용 공급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저축은행‧대부 업체 등에서 대출이 어려운 서민들에 대해 정책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한다.
불법 사금융에 대해서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하는 범정부 수사‧단속체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불법 사금융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정부의 약속에 국민들은 어떤 반응일까. 오히려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을 대부 업체에 떠밀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우선 대부 업체의 법적 사채 비율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정부 시절 금융당국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 업체들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대부 업체 이용자 수가 줄었다고 파악했다.
법정 최고금리는 대부업법 시행령이 개정된 2018년 2월 27.9%에서 24%로 감소됐다. 2011년까지만 해도 대부업계 최고금리는 연 39.9%였는데, 10여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법적 사채 비율이 20%대로 줄어들자 국내에 있었던 일본계 대부 업체 대부분이 철수했다. 철수한 일본계 대부 업체는 ▲산와대부(산와머니) ▲조이크레디트가 있다. 이 두 곳은 2019년 3월과 2020년 1월에 대출 영업을 중단했다.
이렇게 법정 최고금리를 내린 것은 서민의 고금리 피해를 막기 위해 최고금리를 낮춘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대부업권에게 서민금융의 신용 공급 역할을 부탁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불법 사금융 여전히 성행하는데…
업계에 서민금융 공급 확대 요청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리 상승기 대부금융의 생존전략은’이라는 주제로 제13회 소비자금융 콘퍼런스를 열었다.
임승보 대부금융협회장은 “지난해 최고금리 인하로 대부업 신용대출 시장이 위축되면서 연간 약 30만명의 금융취약계층 이용자가 대부업권 대출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금리상승 시기 대부금융이 서민금융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법정 최고금리 상한의 적정 수준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에 따르면 지난해 말 대부금융시장의 신용대출 규모는 전년 대비 약 3400억원 감소했다. 2019년 말과 비하면 약 1조9000억원 감소한 수치다. 현재 대부금융 시장의 초과 수요는 약 2조원이고, 만약 최고금리가 연 15%로 더 낮춰질 경우 12조8000억원의 초과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최철 숙명여대 교수는 “기준금리와 물가 상승률이 각각 3%와 5%일 경우, 대부 금융시간의 적정 금리 예측치는 연 37.7%로, 가장 낮은 예측치도 연 26.7%”라며 “최고금리 인하는 포용적 금융에 그 취지를 두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부시장의 수요자인 취약계층을 소외시키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부가 대부 업체에 서민층 신용 공급 역할을 부탁하면서 법정 최고금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불법 사금융 피해자가 줄어들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0년 동안 임대주택 LH에 거주 중이던 A씨는 돈이 급한 상황이 됐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과 다른 돈이 필요한 상황이 겹쳐서 7억원이 부족했다. 은행 등 1금융권에 돈을 빌리고 싶었지만 신용이 좋지 않아서 계속 거절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선택한 것은 대부업이었다. 대부업에서는 A씨에게 “6억원 기준 이자는 월 600만원, 7억원을 빌리면 이자가 한달에 850만원, 9억원 기준 이자가 월 1100만원이다. 우선 금리는 확정이다. 이 금리로 3개월 이용하면 3개월 뒤에는 바꿔야 한다. 3개월 뒤 예상 금리는 3~4%다. 지금 신청을 하면 10일 뒤에 금액이 나온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등 예측해 연 37.7% 적정?
“범정부 수사·단속 체계 적극 지원”
하지만 대부업에서 3개월 뒤에 금리가 3~4% 낮아진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같은 방식은 전형적인 대부업 사기 중 하나인 작업 대출이다.
작업 대출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노년층, 청년층 등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대출 브로커가 이들의 서류를 조작해 은행 등 대부 업체로부터 대출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대부 업체가 돈을 빌려준 뒤 이자를 받지 않다가 한꺼번에 이자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30대 주부 B씨는 대부 업체서 2000만원을 빌렸다가 상황이 어려워지자 1500만원으로 원금을 낮춰 갚기로 구두로 합의했다. 곧이어 며칠이 지난 후 대부 업체는 B씨의 대출채권을 또 다른 대부 업체에 매각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다른 대부 업체는 B씨에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상황이 계속 미뤄지고 있었던 어느 날, B씨는 법원에서 서류 한 통을 받게 된다. 다른 대부 업체에 그간의 원리금과 연체이자 2200만원을 상환하라는 지급명령서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소액이 필요해서 대부 업체에 대출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사기를 당한 사람은 더 많아졌다. 또,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 업체들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불법 대출을 권유하는 경우도 많았다.
불법 대출 피해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정식 등록 대부 업체 확인’만 강조하고 있어, 이를 믿고 거래한 취약계층의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1금융권에서 이용이 불가한 저신용자, 취업준비생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대출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교묘히 ‘내구제 대출’을 권유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내구제 대출이란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한 뒤 유심칩을 제거하고 공기계를 팔아 현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대부 업체는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공기기를 매입해 높은 수수료를 챙긴다. 반면 소비자는 매달마다 통신사에 시가로 구매한 휴대폰값을 내야 한다.
책임 약속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감독 규정 개정 조치와 병행해 서민층 신용 공급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정책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하겠다. 불법 사금융에 대해서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하는 범정부 수사·단속 체계를 적극 지원하고,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서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지원하는 등 서민층의 안정적 금융생활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